지난 4.27 재보선에서 패한 한나라당이 야단법석이다.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패했으니 내부를 정비해서 내년도 총선과 대선에 대비하는 것은 정당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민심 가운데 하나는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염원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를 파탄 낸 것을 우려하는 민심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까?
민심이란 측정할 수 있는 뚜렷한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많은 정치인들이 주관적으로 민심을 들먹인다. 그러다 보니 민심을 왜곡하는 일이 잦다. 민심을 마치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같이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성이 하늘이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마음가짐을 분명히 한다면 결코 민심을 주관적으로 해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부나 한나라당은 남북관계에 대한 민심을 '퍼주기하면 안 된다', '북한에 끌려다니면 안 된다'는 것으로 파악했다. 과연 이것이 민심일까? 이것은 민심이 아니라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을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낸 정치논리일 뿐이었다. 이명박 후보의 대통령 당선은 '퍼주기'나 '끌려다니기'라는 정치 논리에 민심이 움직였기 때문이 아니다. 그의 흠이 없지 않지만 국민들은 경제를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이 과거 잘못에 대한 심판을 유예해준 것에 대한 빚을 지고 당선되었다. 경제살리기에 전념하는 것이 그 빚을 갚기 위한 유일한 길이다. 그러나 이제 이명박 정부가 경제를 살린다고 말한다면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이 되어버렸다. 경제살리기는 보수세력이 전문인 줄 알았고, 더구나 CEO 출신이니 당연히 그럴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 기대가 무너져버린 것이다.
남북관계에 '민심'은 있는가?
남북관계에 대한 민심은 한결같았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절대로 안 되고, 통일은 혼란이 없게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하며, 현 단계에서는 남북이 평화적으로 교류협력해서 공존공영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로이어지는 과정에서 수많은 토론회와 청문회 그리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입증된 것이다.
그래서 노태우 정부도 이런 민심에 입각해서 북한을 동반자로 선언한 7.7 선언을 발표하고 북한과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했다. 김영삼 정부는 냉탕온탕을 오락가락 했지만 '남북연합'의 과정을 거쳐서 통일에 이르는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만들었다. 김영삼 대통령 개인의 성격 때문에 오락가락 했지만 민심을 완전히 저버릴 수는 없어서 이런 통일방안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김대중, 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면서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노태우·김영삼 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판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이 더 많았다는 점을 들어서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민심을 떠난 것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민심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일이다. 노태우·김영삼 보수정부의 대북정책을 민주세력이 지지해준 반면, 김대중·노무현 민주정부의 대북정책을 보수세력들이 정치적인 논란거리로 만든 데서 비롯된 논란이었기 때문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보수세력들의 정치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대북 화해협력정책에 대한 지지도는 평균 75%선을 꾸준히 유지해왔다.
▲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9일 독일 베를린에서 클라우스 보베라이트 시장의 안내를 받아 통일의 상징 브란덴부르크 문을 둘러봤다. ⓒ청와대 |
남북관계 파탄이 이명박 정부 업적?
1960년 4.19 혁명 직후 터져나온 평화통일의 열기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민심은 분단 이후부터 존재해 왔다. 박정희 정부도 이런 민심 때문에 1970년 '8.15 평화통일선언'을 하고 1972년에는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이 실행 여부를 뒤로하고 최소한 정책 차원에서는 '평화유지'와 '교류협력' 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대북정책이 1970년 박정희의 8.15 평화통일선언 이후 노무현의 10.4 선언에 이르기까지 일관해서 이어져온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퍼주기', '끌려다니기'라는 정치논리가 의도하는 바를 충실하게 따라서 남북관계를 파탄내고 말았다. 이명박 정부가 이루어낸 업적 아닌 업적인 '남북관계 파탄'은 박정희 정부 이후 이어져온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의 맥락을 끊어놓은 것이기도 하다.
설사 '퍼주기'나 '끌려다니기'라는 정치논리에 공감하는 국민들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일부 극단적인 여론을 제외한다면 남북관계 단절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선동논리에서 합리적인 핵심을 굳이 찾는다면 남북관계를 개선하되 국민감정을 고려해서 '일방적'이지 않게 추진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실제로 많은 여론조사에서 남북관계 단절을 지지하는 여론은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 민심을 아예 '돌다리를 부숴버리는 것'으로 왜곡시켜 버렸다.
이명박 정부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북정책만큼은 지지를 받고 있다고 스스로 만족하고 있는 듯하다. 이명박 정부의 여론조사는 실제 민심을 정확하게 측정하지 못한 것이라는 것은 이미 각종 선거를 통해서 입증되었다.
MB 정부에게 만족 준 '감옥의 민심'
촛불시위에 참석한 주부들을 몇 년간 추적해서 체포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은 거대한 감옥이나 다름없다. 2008년 촛불시위에서 여중생들이 외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기본원리조차 이 정부에선 부정되었다. 국민들은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은 마치 감옥의 죄수처럼 권력에 의해 감시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파놉티콘'이라 할 수 있다. '파놉티콘'이란 감옥이나 유치장과 같은 죄수수용소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모든 것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파놉티곤의 핵심은 죄수들이 감시받고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파놉티콘에 수용된 죄수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항상 자신을 감시하고 있을 감시자의 시선 때문에 규율을 벗어나는 행동을 하지 못한다. 이명박 정부의 여론조사는 바로 '파놉티콘의 민심'을 측정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명박 정부의 여론조사가 실제 민심을 반영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이명박 정부는 그동안 파놉티콘의 정치에 의해 만들어진 지지율에 도취되어 있었기 때문에 민심을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이명박 정부가 안겨준 교훈은 '좋은 정부의 등장'이나 '정치의 민주화'가 남북관계도 발전시킨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확인시켜줬다는 점이다. 남북관계에서 정부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가 레임덕에 빠져들고 있다 하더라도 이명박 정부가 이제라도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전환적인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쇄신도 파탄난 남북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조치가 포함되었을 때 진정으로 쇄신조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살리기에 대한 국민의 염원을 안고 출발한 이명박 정부가 남은 임기 동안에 마지막으로 취할 수 있는 것은 남북경제협력의 불씨를 살려서 다음 정권으로 넘겨주는 것이다. 남북경제협력은 실제로 '한국의 경제 살리기'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길이다.
북한을 경제와 평화의 '엘도라도'로 만들기
'경제 살리기'라는 측면에서 볼 때 정부가 하기에 따라서 북한은 여전히 우리에게 '엘도라도'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한국 기업들에게는 북한은 투자위험이 큰 지역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고, 그 결과 '엘도라도'는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 북한이라는 독특한 행위를 하는 국가를 노련하게 상대하지 못한 이명박 정부의 책임이다.
개성공단이 중국이나 베트남, 태국에 비해 경쟁력에서 월등히 앞서므로 중소기업의 활로라는 점은 명확하다. 부산항에서 나진항을 통해서 시베리아 철도를 거쳐 유럽까지 연결하는 것은 물류비용을 대폭 절감시키는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대륙의 꿈을 심어주는 일이 될 것이다. 국제적으로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는 상황에서 북한의 자원개발은 우리 경제의 활력소가 될 것이다. 서해의 남포와 동해의 안변에 조선소를 건립하면 조선업에서 우리는 위협하는 중국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금강산 관광은 북한의 잠수함 기지인 장전항을 개방하게 만들었고, 개성공단 건설은 수도권을 기습 공격할 수 있게 개성남쪽에 배치된 북한 군대를 후방으로 이동시켰다. 이렇게 평화를 만드는 일을 돈으로 산다고 한다면 억만금을 퍼주어야 가능했을 것이다. 또 10.4 선언에 따라 서해 평화협력지대를 건설했다면 연평도 포격사건 같은 것은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고, 남북 사이의 화약고인 서해 5도 일대를 평화지대로 만드는 일은 이미 착수되었을 것이다.
한나라당이 민심을 제대로 읽는다면
남북한이 경제협력을 추진할 수 있는 북한 지역을 연결하면 북한 전체를 에워싸게 된다. 동쪽으로 두만강 하류에서부터 나진·선봉과 안변, 금강산, 장전항까지, 서쪽에서는 해주를 포함한 서해5도 일대에서부터 대동강 하류로 평양의 입구인 남포를 거쳐서 압록강 하구인 신의주까지, 그리고 북쪽 백두산 공항까지 이렇게 북한 전지역을 둘러 싼 남북경제협력지구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한반도 허리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비무장지대를 제외한 이 모습은 마치 한반도에 모자를 씌운 모습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가 남북경협을 두려워할 이유가 뭐가 있는가. 두려워한다면 오히려 북한이 두려워해야할 노릇이다.
이런 남북경협을 추진하지 못한다면 '경제'와 '평화'를 포기한 정부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이명박 정부가 진정으로 실용주의를 추구한다면 정치·군사 상황과 경제를 철저하게 분리해서 어떠한 정치·군사 환경에도 불구하고 남북경제 협력을 추진할 수 있게 제도화해야할 것이다.
한나라당의 쇄신에는 이러한 내용을 법률로 보장하는 것이 정책적으로 포함되어야 한다. 그것이 민심을 제대로 반영한 쇄신이고, 새로운 정책을 가지고 혁신하는 모습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동안 흔하게 보아왔던 '패거리 짓기'에 다름 아니다. 민심을 잘 평가하고 당을 쇄신한다는 한나라당이 과연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쇄신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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