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오사마 빈 라덴을 아는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오사마 빈 라덴을 아는가

[김재명의 월드 포커스] 반미 테러를 잠재우려면

오사마 빈 라덴(1957~2011년)은 21세기 국제정치에서 하나의 주요변수다. 5000만 달러(550억원)란 엄청난 현상금을 내걸고 미국 정보기관들이 '공공의 적 1호'로 수배했던 빈 라덴은 파키스탄 영토 안에서 미군 특수부대인 네이비 씰 대원들에게 사살됐다. 이로써 지난 2001년 9.11 사건 뒤 10년 가까이 잠행을 거듭해오며 전세계 반미 지하드(jihad. 성전)의 지도자로 자리매김했던 한 인물이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졌다.

하지만 사라진 것은 자연인 빈 라덴일 뿐이다. 반미-반이스라엘 투쟁으로 요약되는 빈 라덴 변수는 여전히 국제사회에 충격을 가할 잠재력을 지녔다. 다름 아닌 9.11에 버금가는 또 다른 대형테러의 가능성이다. 빈 라덴을 '순교자'로 여기는 반미 저항세력은 지금 이 시각에도 그의 죽음을 피로써 앙갚음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을 것이다. 지구촌 평화는 그의 죽음으로 더 불안해졌다.

같은 죽음을 보는 다른 눈길

미국은 그동안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현지에 미 중앙정보부(CIA) 특수활동대를 투입해 빈 라덴 사냥에 나서왔다. 살해 면허장을 한손에 쥔 CIA는 미군 전역자들을 주축으로 각 팀 당 6명으로 이뤄진 150명 규모의 특수활동대를 꾸려온 것으로 알려진다. 아울러 파키스탄 정보부(ISI)의 협력을 얻어 현지인 협조자들을 포섭하고 탈레반 내부 인사들에게 달러 뭉치를 건네거나 보상금을 약속하면서 빈 라덴 찾기에 땀을 흘려왔다.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한 이후 미국에 대한 최대의 공격"이라는 평가를 받는 9.11 테러의 배후인물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됐다는 소식에 미국인들은 성조기를 휘두르며 기뻐했다. 그렇지만 반미-반이스라엘-반서구 투쟁 이념에 동조하는 이슬람권의 적지 않은 민초들은 그를 '순교자'로 기억할 것이다. 빈 라덴의 죽음을 통해 21세기라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 넘나들 수 없는 단절의 벽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보게 된다.

▲ 자신의 가게 앞에 빈 라덴 포스터를 붙여놓은 카슈미르 청년 ⓒ김재명

카슈미르와 팔레스타인에선 '영웅'

오사마 빈 라덴은 논쟁적인 인물이다. 아마도 그만큼 극단적으로 엇갈린 평가를 받아온 인물은 없을 것이다. 미국에서 빈 라덴은 악(惡)의 화신이다. 미국 소학교 교실에서 어린이들은 빈 라덴을 마귀의 얼굴을 한 흉칙한 사나이로 그렸다.

그러나 지구촌 반대편 이슬람권 사람들에게 빈 라덴은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인도-파키스탄 사이의 오랜 유혈 분쟁지역인 카슈미르에 취재를 갔을 때, 그곳 쌀가게에서 일하는 젊은이는 가게 기둥에 빈 라덴의 사진을 붙여놓고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에게 빈 라덴은 '영웅'이었다.

미국으로부터 해마다 30억 달러의 공짜 군사원조를 받아온 이스라엘이 식민지로 다스리면서 살벌한 억압통치를 펴고 있는 팔레스타인에서도 빈 라덴의 이미지는 사뭇 긍정적이다. 팔레스타인 현지취재 때 들은 빈 라덴 호감도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높다. 카슈미르와 팔레스타인 뿐만이 아니다. 적지 않은 이슬람권 사람들에게 빈 라덴의 반미-반이스라엘 투쟁은 '테러'가 아니라 '지하드'다. 그들의 눈에 비친 빈 라덴은 '이슬람 저항운동의 영웅'이다.

빈 라덴이 보는 아랍 시민혁명의 한계

하지만 2011년 봄 중동을 뒤흔든 시민혁명에 대해 아랍 거리의 보통사람들과 빈 라덴의 생각은 다르다. 거리의 보통사람들이 민주화를 통해 서구적인 자유국가를 꿈꾸었다면, 빈 라덴이 마음 속에 그리던 정치적 구도는 '이슬람 종교가 정치를 지배하는, 미국의 영향력이 배제된 신정(神政)국가 건설'이었다. 지구상에서 그런 나라를 찾는다면, 지금의 이란 또는 탈레반 시절의 아프가니스탄이다. 빈 라덴은 이집트를 비롯한 중동국가들이 이슬람 신정국가가 되길 바랬다.

한걸음 더 나아가 빈 라덴은 아랍혁명의 불길이 사우디 아라비아로 번져 친미독재 왕정이 엎어지기를 바랬다. 미국의 정치학자 미첼 도란(프린스턴대 교수)을 비롯한 여러 중동전문가들이 지적했듯이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우디의 호메이니'가 되는 것이었다.

만약 어떤 언론사 기자가 그를 만나 인터뷰를 했다면, 빈 라덴은 "이집트나 튀니지의 정치변혁으로 신정국가를 세우지 않고 그저 덜 억압적인 정치 지도자로 얼굴만 바뀌면 결국 또 다른 친미정권이 출현할 것이다. 그래선 안 된다"라고 주장했을 것이다.

체 게바라와 빈 라덴

비무장 상태의 빈 라덴을 체포하지 않고 즉결처형하듯 사살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필자는 체 게바라의 얼굴이 떠올랐다. 남미 볼리비아의 산악지대에서 게릴라 활동을 폈던 체 게바라는 1967년 10월 7일 미군이 훈련시킨 볼리비아군 특수부대의 포위공격으로 붙잡힌 뒤 작은 시골마을인 라 기에라의 학교 교실에 갇혀 있다가 즉결 처형됐었다.

당시 현장에는 미 CIA 요원이 볼리비아군 장교들과 함께 헬기를 타고 와 있었다. 당시 베트남전쟁으로 골머리를 썩이던 존슨 미 행정부와 볼리비아 군부 독재정권은 체 게바라의 처리 문제를 놓고 머리를 맞댔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국제사회의 눈길을 끄는 재판을 거치는 것보다는 즉결처형하자"는 쪽이었다.(☞참고기사: 김재명의 쿠바 리포트 <4> 혁명아 체 게바라의 마지막 날)

44년 뒤 빈 라덴의 죽음도 같은 선상에 있다. 빈 라덴 즉결처형의 정당성을 둘러싸고 국제사회의 논란이 일고 있지만, 그의 운명은 9.11 뒤부터 이미 그런 쪽으로 굳어져 있었다. 빈 라덴이 산 채로 붙잡혀 미 군사법정에 선다는 것은 미국으로서는 바라지 않는 구도였다.

"우리가 왜 미국을 미워하는가", "미국은 무엇을 잘못 했나"를 법정에서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빈 라덴의 소식이 전세계 안방으로 전해진다면, 미국으로서 이로울 게 없다. 또한 재판 과정에서 빈 라덴 지지 데모(뒤집어 보면 반미 데모)가 곳곳에서 벌어질 것이 뻔하다. 생포-재판-사형 절차를 밟아나간다는 것은 한 마디로 미국에게 골치만 아프다.

빈 라덴 "미군 오면 나를 죽여도 좋다"

빈 라덴도 언젠가는 미군 공격에 사살되거나 공습으로 폭사 당할 것을 각오한 모습이었다. 큰 키에 호리호리해 연약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그는 강철 신경을 지닌 사내다.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 내전에 참전하면서 단련된 강철 신경이다.

아울러 자존심을 지닌 빈 라덴이다. 주적 국가로 압송돼 재판을 받는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빈 라덴이 측근들에게 "미군이 체포되는 상황이 닥칠 경우 나를 죽여도 좋다"고 당부한 것으로 한 아랍 언론이 보도한 바 있지만, 사실 여부를 떠나 논리적으로 맞는 말이다.

지금까지 미국에 도전한 제3세계 지도자는 여럿 있었다. 그렇지만 반미의 깃발을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고 미국이 국제기구를 휘두르며 던진 견제구(경제제재)에 걸리거나, 아니면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공습)으로 무너졌다. 세르비아공화국의 슬로보단 밀로세비치,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그 패배자들이다. 이들에 비춰보면, 체 게바라의 쿠바혁명 동지 피델 카스트로는 50년 넘는 반미 투쟁 이력으로 돋보이는 인물이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에서 이겼다?

빈 라덴이 죽었다고 해도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빈 라덴의 투쟁 매카니즘 때문이다. 그는 직할 조직인 알카에다(우리말로는 '근거지')를 빼고는 여러 아랍권의 반미, 반이스라엘 저항조직들과 수평적이지도 수직적이지도 않은 느슨한 관계를 맺고, 때로는 그들에게 풍부한 자금을 지원하면서 공동의 적인 미국과 이스라엘에 맞서 지하드를 벌여왔다. 따라서 9.11 뒤 서유럽과 아시아에서 벌어졌던 대부분의 테러 행위들은 그로부터 직접 구체적인 지령을 받지 않아도 작전이 이뤄졌다. 한마디로 그는 지하드 닷컴(jihad.com)의 회장이지, 지역 사령관은 아니었다.

둘째는 테러의 근본적인 동기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테러는 정치학사전에서도 풀이하고 있듯이 '정치적 동기에 따른 폭력적 행위'이다. 미국의 친 이스라엘 정책(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창설 문제), 사우디 아라비아를 비롯한 부패한 친미 독재정권들의 존재, 중동지역 미군 주둔 등 근본적인 불만 요인들이 해소되지 않는 한, 이슬람권 반미 저항조직들의 파괴적인 움직임은 이어질 것이다.

미국이 테러 공포에서 벗어나려면

뒤집어 말해 미국의 중동정책이 친 이스라엘 일방주의를 포기하는 등 획기적인 변화가 따르지 않는 한, 미국인들이 저항세력의 테러 공포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미국인들이 그런 공포에서 벗어나는 길은 두 가지다. 하나는 빈 라덴이 줄기차게 제기하고 그가 투쟁의 대의로 내세웠던 문제점들을 풀기 위해 정치외교적으로 노력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테러와의 전쟁'이란 깃발을 앞세워 물리적으로 해결하는 길이다.

후자의 해결방식은 초강대국인 미국이 자랑하는 무력으로 '테러리스트들을 뿌리 뽑는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오바마가 택한 방식은 후자의 강공수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 전쟁은 끝이 안 보이는 무한전쟁이 될 수밖에 없다. 테러의 동기가 사라지지 않는 한 제2, 제3의 오사마 빈 라덴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 필자 이메일 kimsphoto@hanmail.net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