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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속화하는 북한의 '개방'…방향은 '북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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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속화하는 북한의 '개방'…방향은 '북쪽'

[정욱식의 '오, 평화'] 북한 개방과 동북아의 지정학

북한의 '개방' 정책이 가속화되고 있다. 그런데 방향이 남쪽이 아니라 북쪽이다. 남방 개방, 즉 한국·미국·일본과의 관계 개선 시도가 번번이 수포로 돌아가면서 냉전 시대 동맹국들이었던 중국·러시아과의 경제협력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우선 중국의 행보가 주목을 끈다. 중국은 재작년 10월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방북 직후 북한의 나진항과 인접한 훈춘지역으로 이어지는 '창지투(長吉圖: 창춘長春-지린吉林-투먼圖們)' 개방 선도구 사업을 확정했다. 남한 면적의 70%가 넘는 7만3000㎢, 인구 1100만 명에 달하는 삼각지역을 북한의 라선특별시(구 라진-선봉) 및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와 연결해 극동 및 태평양 진출의 거점으로 삼기로 한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중국은 2015년 완공을 목표로 창춘과 훈춘(琿春)을 잇는 고속도로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한 '창지투' 지역과 블라디보스토크를 잇는 도로 및 철도 개보수와 신규 건설에도 적극적이다. 이러한 교통망 구축은 2020년까지 훈춘을 중심으로 창춘-지린-옌지(延吉)-투먼 일대를 동북아 물류기지로 개발해 북한·러시아와의 무역을 대폭 확대하고, 태평양 진출로 및 중국 남부로 가는 물류 수송로를 확보하고자 하는 계획에서 나온 것이다.

적극적으로 손잡는 북-중-러

이와 관련해 4일자 <한겨레> 보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신문은 복수의 중국 정부 및 기업 관계자들을 인용해, 북중 양국이 5월 30일 훈춘의 취안허(圈河)와 북한의 원정 및 라선을 잇는 도로 공사 착공식을 갖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이 행사를 두고 중국 쪽 관계자는 "북중 경협과 북한 개방을 전세계에 공표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훈춘-원정-라선 도로 공사가 주목을 끄는 이유는 이 도로가 북중 양국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라선 개발의 '대통로'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도로 공사 및 라선특별시 개발 사업은 양국 중앙정부가 직접 나서고 있고, 최근에는 양국 사이의 양해각서(MOU)도 체결됐다.

이에 앞서 중국은 라진항 1호, 4호, 5호, 6호를 개보수해 수십년간 사용할 권리를 획득해놓았다. 또한 훈춘의 남는 전력을 직접 송전하거나 노후화된 북한 선봉의 중유 발전소를 개조하는 등, 라선 지역의 전력 공급 방안도 강구하고 있다. 북한의 라진항을 '동북아 물류중심기지'로 삼기 위한 중국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러시아 역시 적극적이다. 이미 북한으로부터 50년 간 라진항 사용권을 획득했고, 최근에는 북한 및 중국과 이어지는 철도·도로 및 가스파이프 라인 건설, 그리고 블라디보스토크 현대화 사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는 북한 노동자를 대거 받아들여 블라디보스토크 건설 현장에 투입하고 있다.

이는 아시아-태평양이 세계 경제의 중심지로 부상하면서,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극동 개발과 함께 2012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을 국운 융성의 계기로 삼겠다는 의도에 따른 것이다. APEC 정상회담을 러시아의 실세인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직접 주도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 지난 2008년 10월 북한 라선시 두만강지구 조로(북-러)친선각에서 북한 라진강과 러시아 하산역을 잇는 철도구간 현대화 공사 및 라진항 개건착공식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북-중-러 경제협력의 함의

이들 세 나라 협력 강화는 경제적, 안보적, 정치적 차원에서 중대한 함의를 갖고 있으며, 이 세 가지 함의는 물론 서로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이는 거꾸로 한국에게는 경제적, 안보적, 정치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우선 경제적 관점부터 살펴보자. 최악의 경제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와의 협력 강화를 통해 이들 국가의 투자 확대, 광물 수출 및 라진항 임대에 따른 외화 수입, 노동력 제공을 통한 노임, 중국식 경제모델 학습 등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중국은 낙후된 동북 3성 개발 가속화, 태평양으로의 진출, 물류비용 절감, 저렴한 북한 자원과 노동력 확보를, 러시아는 연해주 및 시베리아 개발과 극동 진출을 꾀할 수 있다.

안보적 차원에서는 북한의 급변사태론에 대한 한-미-일과 북-중-러 양대 측 사이의 근본적 접근법의 차이가 주목된다. 한-미-일 3국은 대북 제재를 유지하면서 북한의 경제난 악화가 급변사태 발생 가능성을 높인다고 보고, 한미연합군의 북한 내 투입 계획인 '작전계획5029'와 3국 간 군사협력 확대를 비롯한 다양한 대비책을 세우고 있다. 여기에는 북한의 급변사태 발생을 '통일의 호기'와 '북핵 문제 해결의 근본적인 처방책'으로 간주하는 한-미-일 각국 내의 강경론이 깔려 있다.

반면 북-중-러 3국의 생각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 주도의 '급변사태론'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선군정치와 "핵 억제력 강화"를 정당화하려고 한다. 중국과 러시아 역시 북한의 급변사태 발생이 중국의 동북 3성 개발과 러시아의 극동개발 계획에 큰 차질을 줄 수 있고, 대량의 탈북자 발생과 한미연합군의 개입에 따른 전쟁 발발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며 강한 경계심을 내보이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북-중-러 사이의 경제협력 강화는 북한의 경제난 완화를 통한 급변사태 발생 가능성을 낮추고, 한반도 유사시 중국과 러시아의 발언권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끝으로 정치적 관점에서는 내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강성대국론과 '3대 세습', 중국의 후진타오(胡錦濤)에서 시진핑(習近平)으로의 권력이양, 러시아의 대선 및 블라디보스토크 APEC 정상회담이 2012년에 겹쳐지면서, 세 나라가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상호 협력을 강화해야 할 동기가 더욱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국가적 대사를 앞두고 북한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러 양국이 북한의 불안정을 팔짱끼고 두고만 보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한국의 경제적, 안보적, 정치적 손실

이처럼 북한의 '북방 개방'과 북-중-러 3국의 협력이 가속화되면서 한국의 경제적, 안보적 정치적 손실도 커지고 있다. 우선 경제적으로 볼 때, 북한 경제의 중국으로의 예속화는 남한에게 북한의 풍부한 지하자원과 저렴한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의 문'이 좁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남북경협에 참여해온 많은 기업들은 북한이 중국의 독무대가 되고 있다며 한탄하고 있는 지경이다. 또한 남한에게 북한은 유라시아로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이자 대륙경제와 해양경제를 연결하는 가교라는 점에서, 남북교류협력의 급격한 위축은 엄청난 경제적 잠재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외교안보적 관점에서 볼 때에도 여러 가지 잠재적인 위협이 있다. 우선 대북 제재의 실효성 약화를 가져와, 대북 압박을 통해 6자회담 재개와 비핵화 실현을 목표로 하는 한-미-일 3국의 전략적 결함이 새삼 확인되고 있다. 또한 북한과 한-미-일 사이의 군사적 대결과 군비경쟁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및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을 통해 경제난에서 조금씩 벗어난다면 북한이 군사비 투자를 늘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치적으로는 '통일이 멀어져간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미국 및 일본과 손잡고 북한 급변사태를 유도해 이를 통일의 기회로 삼겠다는 MB 정부의 접근법은 국제법적으로나 동북아의 지정학적인 고려에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시도가 '제2의 한국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이고도 위험천만한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결국 북한을 중국에 떠미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동북아의 세력균형체제는 더욱 고착화되고 평화적 통일 실현은 더욱 요원해질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러한 상황 전개의 모든 책임이 MB 정부에게 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MB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와 개방을 대북정책의 양대 목표로 내세웠지만, 결과는 북한의 핵무장 능력 증대와 북한의 북방 개방으로 나타나고 있다. 역대 어느 정부보다 통일을 적극 주장하고 있지만, 그 통일의 실체는 '제2의 한국전쟁'의 위험성을 잉태한 흡수통일이라는 점에서 위험천만하다. MB 정부는 중국의 역할과 부상을 경계하면서도 대북강경책으로 일관해, 북한 경제의 대중 예속화와 중국의 대북 영향력 증대도 자초하고 있다.

또한 MB 정부가 '한반도적 시야'를 갖고 있었다면, 중소기업에게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고 토목·건설 경기를 활성화하는 다른 방법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남북경협에 관심을 갖고 있는 기업 가운데 상당수가 중소기업이라는 점에서, 남북경협의 활성화는 '동반성장'을 이룰 수 있는 유력한 분야 가운데 하나였다. 북한의 무너진 사회간접자본과 황폐화된 자연환경을 복구하는 데에 남한의 토목·건설 업체가 참여했다면, 멀쩡한 4대강을 망치지 않고도 남북한이 '윈-윈 게임'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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