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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의 우라늄 농축, '기다리기'와 '인내'로는 해결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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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의 우라늄 농축, '기다리기'와 '인내'로는 해결 못해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한반도포커스']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 북핵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가 발간하는 <한반도포커스> 13호(2011년 5·6월호)를 전재합니다.

<한반도포커스>는 극동문제연구소의 교수진과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한반도 문제 관련 정책소식지입니다. 이번 13호는 '북핵 문제, 다시 보기'를 주제로 6편의 글이 실렸습니다. 5월 첫째 주 동안 영문 논문을 제외하고 매일 1편씩 소개됩니다.(☞제13호 전체 내려받기)

1972년 설립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는 북한·통일 문제에 관한 연구와 정책 제안 활동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는 최고의 민간 연구기관입니다. <편집자>


북핵문제는 여전히 교착상태다. 2008년 12월 이후 6자회담은 한 번도 열리지 못하고 있다. 2009년 북한은 6자회담이 영원히 끝났다고 선언했고 그해 말 보즈워스 특별대표의 방북 이후에도 북한과 미국의 의견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다. 평화체제 논의를 요구하는 북한의 입장에 대해 오바마 행정부는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고 남북관계 개선과 진정성 있는 비핵화 조치를 요구하는 미국에 대해 여전히 북한은 미적거리고 있다.

별다른 성과 없이 각국의 노력과 주장이 겉도는 사이에 북핵문제는 2010년 말을 기점으로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했다. 북핵 위기가 기존과는 전혀 다른 모습과 구도를 갖게 된 것이다. 헤커 박사가 직접 눈으로 확인한 원심분리기와 우라늄농축 프로그램(UEP)은 북핵문제를 새로운 차원으로 바꿔놓고 말았다. 이미 북한은 2009년 4월 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는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 이후 자체의 경수로 건설을 공언했고 핵연료용 우라늄 농축 의지를 표명했다. 설마하던 원심분리기 가동과 우라늄 농축작업이 실제 사실로 드러나고 만 것이다.

2010년 11월 확인된 북한의 UEP는 북핵문제를 그 이전과 이후로 구분하고 말았다. 이제 북핵문제는 단순히 플루토늄 핵무기를 넘어 우라늄 핵무기까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물론 북한은 경수로용 핵연료를 위해 저농축을 한다는 것이지만 사실 이는 언제라도 고농축을 통해 핵무기용으로 전환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른바 '전략적 인내'를 내세워 북한과의 핵협상에 적극 나서지 않고 이명박 정부의 '기다림의 전략'을 직간접으로 지지했던 오바마 행정부에게 북한의 UEP는 더 이상 협상을 주저할 수 없게 만드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실제로 지난해 말 이후 미국은 북한의 핵위협을 재인식하기 시작했고 게이츠 국방장관은 미중정상회담 직전에 북한의 장거리탄도탄 미사일 능력이 예상보다 빨리 진전될 수 있음을 공개거론하기도 했다. 이를 배경으로 2011년 1월 미중정상회담에서는 한반도 위기 해소를 위한 남북관계 개선과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개최의 필요성이 합의될 수 있었다. 남북 대화가 실무예비회담 결렬로 불발되었지만 여전히 미국은 이명박 정부의 완강한 고집에 당혹해하면서 북미 협상 분위기를 위해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 식량지원 여론을 형성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남북 비핵화회담을 거쳐 6자회담을 재개하는 단계별 접근을 한국에 주문하고 있다. 금년 들어 일관되게 감지되는 미국의 대북 협상의지와 이를 위한 남북관계 개선 요구는 바로 북한의 UEP 확인 이후 새롭게 인식된 북핵위협의 절박성에 토대한 것이었다.

▲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 ⓒ연합뉴스
헤커 박사와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의 보고서는 북한의 우라늄 농축 기술과 설비를 토대로 산정할 경우 정확히 계산할 수는 없지만 연간 30-40kg의 무기급 우라늄 생산이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공개한 2000개의 원심분리기 외에도 다른 지역에 미공개 농축시설이 존재할 가능성과 능력을 우려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핵활동으로 북한이 확보한 플루토늄 총량 30-40 kg과 비교해보면 연간 30-40 kg의 무기급 우라늄은 가공할 만한 수치다. 플루토늄에 비해 운반과 은닉이 용이하고 핵무기 개발이 손쉬운 무기급 우라늄이 이제 북한 자체 능력으로 생산되는 상황이라면 이는 미국에게 매우 우려스러운 현실이다.

사실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핵협상을 주저하며 전략적 인내를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2009년 미사일 발사와 추가 핵실험이라는 북한의 성급한 벼랑끝 위기조성에 기분이 상한 점도 있었지만 그 이면의 정세인식에는 2008년 6월 냉각탑 폭파 이후 영변의 5Mw 원자로가 사실상 해체되었고 핵활동이 중단된 상태였기 때문에 더 이상의 핵물질 생산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자리잡고 있었다. 실제로 영변 원자로는 불능화 작업에 의해 사실상 해체되었고 또한 사용연한이 거의 종료되어 원상복구는 가능하지만 북한 입장에서 복구를 시도하지 않았다. 지난 해 리처드슨 주지사의 방북을 통해 북한이 미사용 연료봉의 해외반출을 제시한 것도 원자로 가동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더 이상 쓸모가 없는 연료봉이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결국 북한으로선 기존의 흑연감속로 가동에 의한 플루토늄 추가 추출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된 셈이다.

2.13 합의는 북한이 약속을 어기고 원점으로 되돌아갔다는 비난이 지배적이지만 그 이면에는 불능화 작업으로 원자로가 사실상 해체됨으로써 플루토늄 추가 생산이 봉쇄되었다는 점에서 북한도 손실을 감수한 셈이 되었다. 핵물질 증대라는 대미 위협 카드가 소진되어 버린 상황에서 북한은 핵협상에 나서지 않는 미국을 압박하기 위해 결국 원심분리기에 의한 우라늄농축 카드를 꺼내 들었고 이는 실제로 오바마 행정부에게 간단치 않은 위협으로 인식되었다.

UEP 확인 이후 북한의 대미 압박은 이제 새로운 차원으로 전환되었다. 기존의 플루토늄 핵무기에 더하여 이제는 무기급 우라늄이 향후 북미간 새로운 협상의제가 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북핵문제는 매번 위기 상황을 겪었고 그 때마다 북미간 핵심 이슈가 변화해왔다. 1993-1994년의 1차 핵위기에서 북한은 일관되게 평화적인 핵동력 공업을 주장하면서 전력생산용 시설임을 강조했고 당시 최고의 위기는 저장된 폐연료봉을 꺼내 재처리를 하는 것이었다. 2002년 부각된 2차 핵위기 이후에는 미국의 적대정책과 침공위협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자위적 억제력으로서 핵무기 보유를 공식선언했고 결정적 위기는 이를 입증하는 핵실험 실시였다. 그리고 2010년 11월 UEP 가동이 확인된 지금은 기존의 핵무기와 핵물질 보유에 더하여 무기급 우라늄 추출이 최대의 위기로 다가오게 된 것이다.

따라서 UEP 확인 이후 북핵문제는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접근과 고민을 우리에게 안겨주고 있다. 플루토늄과 달리 은닉과 추출이 용이한 원심분리기 공장이 미공개로 다수 존재할 경우 북핵문제는 단기간에 북의 핵능력 증대라는 새로운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금년 들어 미국이 북한과 핵협상에 나서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UEP 확인 이전까지는 영변 원자로 해체로 북한의 핵능력 증대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지만 이제 미국은 원심분리기 시설을 직접 본 이상 자기 통제권 밖에서 작동하고 있는 북의 핵능력 증대를 더 이상 방치하기 힘들게 되었다.

UEP는 또한 6자회담의 의제에서도 새로운 협상 구도를 고민하게 한다. 당장 2.13 합의는 영변 핵시설의 폐쇄와 불능화 및 검증과 폐기를 다루고 있지만 이제 경수로 발전소와 농축시설이 추가적인 핵심 의제가 될 수밖에 없고 이 경우 2.13 합의의 사실상 효력이 의문시될 지도 모른다. 9.19 공동성명 역시 북한의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도록 명시하고 있지만 '적당한 시기에' 경수로 발전소 건설을 논의한다고 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 상황에서는 사실 9.19 공동성명의 실효적 적합성을 의심해야 할지도 모른다. 결국 북한의 UEP 이후 국면은 기존의 9.19와 2.13합의마저도 새롭게 들여다봐야 하는 결정적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여기에 북한의 평화체제 논의 요구가 새롭게 제기된 만큼 향후 6자회담이 재개되면 북핵문제의 논의 구도는 과거와는 다른 차원에서 진행될 지도 모른다.

당장 검증 문제에서 6자는 기존과 다른 논의를 할 수밖에 없게 된다. 2008년 6자회담이 결렬된 것도 불능화 이후 검증의정서 채택문제를 둘러싼 것이었던 바, 북미가 팽팽히 맞서고 있는 복잡한 검증문제는 이제 UEP가 추가될 경우 북한 전역으로 검증지역을 확대하는 것이 불가피하게 되고 북한이 이를 수용할지 여부와 함께 검증 자체의 실효성 문제도 끊임없이 제기될 것이다. 검증 이슈만 놓고 봐도 UEP 이전과 이후는 천양지차를 보이게 되는 셈이다.

또한 북한의 UEP는 핵무기 위협 외에도 핵안전이라는 새로운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도 6자회담이 가동되고 유지되는 기간에는 북한의 핵시설과 핵활동에 대한 국제적 관리와 감시가 개입될 여지가 있었지만 지금 북한의 농축활동과 경수로 건설은 아무런 통제도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북한이 자체의 기술로 경수로를 건설하고 원심분리기를 개발했다고 강조하는 마당에 그들의 핵활동이 만에 하나 안전상의 사고를 일으킬 경우 이는 핵안보가 아닌 핵안전이라는 또 다른 위기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일본 원전의 대재앙을 목도하고 있는 지금, 북한의 핵시설에 안전 문제가 발생할 경우 한반도의 위기는 상상불허가 될 것이다.

결국 북한의 UEP는 지금까지의 북핵 문제를 이전과 이후로 확실히 구분하는 분기점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전략적 인내를 고수하던 오바마 행정부는 더 이상 북핵문제를 방치하기 힘들게 되었다. 이제 6자회담이 열린다 하더라도 의제와 합의사항 그리고 쟁점은 과거와 차원이 다른 더욱 복잡하고 어려운 힘겨루기를 예고하고 있다. 일본원전 사태 이후 새롭게 부각한 핵안전 문제 역시 북한의 경수로 건설을 매우 위험하고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북한의 냉각탑 폭파와 핵시설 불능화 이후 '시간은 북한 편이 아니다'는 정세인식에 따라 대북협상을 마냥 미루기만 했지만 이제 북한의 UEP 가동 이후 미국과 한국은 이제라도 북한과의 협상에 서둘러 착수해야 한다. 사실은 시간이 우리 편이 아니고 북핵문제는 갈수록 최악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 원제 - 북핵문제의 새로운 국면: UEP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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