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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군사 개입 옳았나? 목적 말고 방법으로 따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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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군사 개입 옳았나? 목적 말고 방법으로 따져라"

[해외시각] 바세비치 교수 "오바마, 부시와 다를 바 없어"

미국이 리비아 군사작전의 지휘권을 나토(NATO)로 넘기면서 '한 발 빼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조 바이든 부통령은 미국이 가진 자원은 한정돼 있기 때문에 이란, 북한, 아프가니스탄 문제에 더 주의를 집중하고 리비아에서는 한 발 물러나야 한다면서, 나토와 국제사회는 미국의 도움 없이도 독자적으로 리비아 군사작전을 실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서방의 리비아 개입은 여전히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의 일부분임을 부정하기 힘들다. 나토군 최고사령관도 미군 유럽사령부(EUCOM) 사령관이 겸하고 있으며, 미군 아프리카사령부(AFRICOM) 역시 리비아 작전에 깊숙이 관여해 왔다.

서방의 개입이 논란이 되는 것은 이들이 군사 행동의 성격에 대해 '인도주의적 개입'임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라크 전쟁이나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과는 달리 '민간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어서 찬성 측의 논리도 힘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저명한 국제관계 및 안보 전문가인 앤드류 바세비치 교수 보스턴대 교수는 서방의 군사 개입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그는 "중요한 것은 '왜 개입했나'가 아니라 '어떻게'"라며, 문제는 개입의 이유가 아닌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바세비치 교수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식의 군사주의적인 태도를 지적한다. 그는 과거 카터 행정부 때부터 미국은 수많은 이유를 내세워 중동에 개입했지만, 구실이 달랐을 뿐 결국 무력 사용이라는 방법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고 꼬집었다.

이는 '인도주의적 개입'은 목적 뿐 아니라 수단 또한 정당성을 담보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최근 유엔이 '민간인 보호 책임'(R2P)를 내세우며 인권 침해에 적극 개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같은 논의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즉 민간인 보호가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유엔과 프랑스가 코트디부아르 내전에 개입해서 보여준 방식으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
☞관련기사 보기)

다음은 지난 12일 미국의 군사 문제 전문 웹사이트 <톰디스패치>에 실린 바세비치 교수의 글을 번역한 것이다. (☞원문 보기) <편집자>

▲ 앤드류 바세비치 보스턴대 교수는 "문제는 '왜'가 아닌 '어떻게'(how)"라며 문제를 군사력으로만 해결하려고 하는 태도를 비판했다. 사진은 미군 의장대의 모습. ⓒ연합뉴스

미국의 리비아 개입, 문제는 '왜'가 아니라 '어떻게'

새로운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되고 백악관으로 이삿짐 트럭이 들어갈 때, 그 안에는 단지 양복과 넥타이가 아닌 미국민들의 희망도 한 짐 가득 실려 있었다. 이는 미국 정치권 모두가 공감하는 부분이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인물인 미국 대통령이 새로 취임하면, 새 역사가 시작될 것이라고 미국인들은 믿었다. 과거의 오점과 실망스러움, 구태를 결백함과 희망, 신선함으로 대체하리라고 말이다. 새 대통령은 겨우 몇 번의 펜놀림으로 재판도 없이 테러 용의자들을 영원히 가두어 놓았던 당황스럽고 논쟁적인 바닷가 감옥의 폐쇄를 명령할 수 있다. 이같은 일은 이미 일어났다. [관타나모 수용소를 말한다. 버락 오마바 대통령은 취임 이틀 후인 2009년 1월 22일 수용소 폐쇄를 명령했다. 그러나 수용소는 아직 존재하고 있으며 심지어 이번 달에도 재판이 열렸다.]

이런 저런 이유로 오바마 대통령의 백악관 입성은 매우 큰 기대를 모았다. 미국인들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 않다면 신임 대통령에게 노벨 평화상을 수여한다는 노벨위원회의 결정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노벨위원회는 '평화에 기여한 사람에게 주는 상'을 '평화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되는 사람에게 주는 상'으로 노벨 평화상의 의미를 바꿔 버렸다. 이는 축구 시즌 중에 MVP 수상자를 미리 지명한 것과 마찬가지다.

대통령 취임식 전후의 정치적인 분위기는 물론 약속과 새로운 발견을 강조하는 것이었지만, 그 새로움이 가시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스토리 라인은 여기서 급강하했다. 오바마는 약속을 어겼고, 우리를 실망시켰다. 그도 전임자들과 전혀 다를 바 없다.

미국의 문필가인 H.L. 멘켄(1880~1956)의 말이 여기에 해당한다. '볼티모어의 현자'인 멘켄은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람에 대한 군중들의 환호를 듣고 있노라면 언제나 그 대상자에게 연민을 느끼게 된다. 그가 야유받기 위해 해야 할 모든 일은 충분히 오래 사는 것 뿐이므로."

버락 오바마는 이제 야유받고, 비난받고, 경멸받기에 충분히 오래 살았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계속하고 확장시킨 우리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는 리비아 전쟁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오바마 옹호자들은 오바마 정권을 전임자들과 구분하기 위해 애쓰면서 그의 동기가 순수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들은 대량살상무기를 테러리스트들의 손에 넘겨주기 않기 위해 미군이 석유 부국인 이라크를 침공한다는 조지 W. 부시의 주장은 경멸했으면서, 대량학살을 막기 위해 미국이 석유 부국인 리비아에 개입한다는 이번 대통령의 주장은 흔쾌히 받아들이고 있다. 게다가 이번에는 프랑스도 우리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하고 있으므로, 미국의 고결한 의도가 증명되고 있다는 식이다.

'왜'인지 설명해봐야 쓸데없어

사실 하나의 목적이나 이론적 근거를 커다란 외교정책의 원인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고의적 왜곡이다. 어떤 행정부에서도 실제 나타난 행동은 사전에 합의된 범위를 넘어 커졌다. 또 역대 대통령의 보좌진들 내의 의견 일치가 꼭 국민적 합의에 바탕한 것도 아니었다. 린든 B. 존슨 대통령의 주변 인물들이 베트남전 개입을 지지했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참모들이 이라크에서의 정권 교체를 밀어붙인 것을 보면 말이다.

동기란 불안정한 것이다. [부시 행정부의] 폴 월포위츠 전 국방부 부장관이 이라크전에 대해 남긴 유명한 말처럼, 대량살상무기는 대중이 전쟁에 동의하도록 하는 구실에 불과했다. 사실 이라크 침공 결정에는 다른 여러 동기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어떤 행정부 관리들에게는 하나의 말썽꾸러기를 제거함으로써 다른 말썽꾸러기들에게 본보기를 보인다는 기대가 있었다. 다른 관리들에게는 세계 에너지(석유) 생산의 심장부인 그곳에서 미국의 패권을 재확인한다는 희망이 있었다. 또 (월포위츠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 지역을 변화시켜 민주화하고, 평화를 가져오고,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의 근원을 영원히 제거한다는 매력적인 전망이 있었다.

그밖에도 의회 대신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한다든가, 이스라엘의 안보를 확고히 한다든가, 아버지가 끝내지 못하고 남겨둔 일을 마무리한다는 등의 미미한 이유들도 있었다. [아버지 부시는 걸프전에서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지 못했다.] 정책결정자들은 이런 복합적인 근거들 속에서 겉으로 내세울 이유를 선택한다.

심지어 상황이 변하면 그들은 내세운 근거를 변경할 특권마저 요구한다.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판명나 부시 대통령이 큰 곤란에 처했을 때, 그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의 진정한 침공의 목적은 잔혹한 압제에서 이라크 민중을 해방시키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결국 오늘날 이는 '이라크 자유 작전'으로 불리지 않는가?

그러므로 언론과 역사가들조차 가지고 있는 선입견, 즉 어떤 일이 '왜' 일어났는지를 설명하려고 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이들의 답이 얼마나 창조적이건, 또는 어디서 베껴 왔건, 이는 불가피하게 추측에 근거한 것이고, 부분적이고, 애매모호하다. 다르게는 될 수가 없다.

지금 받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주목을 받아야 하는 질문은 '왜'가 아닌 '어떻게'다. 여기서 우리는 버락 오바마와 조지 W. 부시가 결국 하나도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빌 클린턴, 조지 H.W. 부시, 로널드 레이건, 지미 카터는 언급할 필요도 없다) 이슬람 세계에서, 지난 30년 동안 미 정부의 '어떻게'는 한결같이 군사력을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즉 미국 정부의 방법론은 어떻게든 전쟁에 참여한다는 것이었다.

역대 대통령들은 아마 우리가 중동에서 정확히 얻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 의견이 모두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오바마라면 부시가 제창한 '자유' 의제를 단호히 거부할 것이다) 하지만 지난 몇십 년 동안 그들은 '수단'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건, 군사력이 열쇠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날,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쇄한 오바마가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을 받아들이고 확장하는 기이한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 바세비치 교수는 문제를 힘으로만 풀려고 한다는 점에서는 오바마나 부시나 다를 게 없다고 꼬집는다. ⓒ프레시안(손문상)

중요한 것은 '어떻게'…즉 '힘으로'

오바마 행정부의 리비아 사태 개입 의도를 신성화하려는 노력은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수전 라이스 유엔 주재 미국 대사, 사만다 파워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인권 담당 보좌관이라는 세 사람의 '하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피'(harpy)란 새의 몸에 여자의 얼굴을 한 그리스 신화상의 호전적인 괴물] 영향력있는 지위에 있는 이 세 여성은 표면적으로는 미국이 1994년 르완다 학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데 후회하며 그에 대한 부담으로 '이번에는 올바르게 대응하자'는 차원에서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다. 즉, 미국은 중동이라는 지역을 '망치질이 필요한 헐거운 못'으로 보고 있으며, 현재의 최고사령관[오바마 대통령] 역시 호전적인 전임자들의 뒤를 잇고 있다는 것이다.

핵심적인 포인트는, 전임 대통령들처럼 오바마나 그의 하피들이 (그리고 영향력있는 위치에 있는 모두가) 그 '망치'가 광고에 나온 것처럼 제대로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데 있다. 망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없이 많은 증거가 있는데도 말이다.

미국이 걷는 군사적 모험의 여정은 지미 카터가 1980년대 '카터 독트린'을 주창하면서 시작됐다. 재미있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아름다운 역사는 아니다. 로널드 레이건은 레바논에 평화를 가져온다면서 노력을 기울였지만 이는 1983년 유혈 대참사로 끝났다. [미군은 레바논 내전 종식을 위해 개입했지만 1983년 미군 241명이 자폭테러로 숨지면서 결국 레바논에서 철수했다.]

1991년 걸프전에서 미국은 사담 후세인의 군대를 쿠웨이트 밖으로 밀어내긴 했지만 사태는 더 복잡해졌고 '사막의 폭풍' 작전은 이름뿐인 승리로 끝났다. 1990년대에 빌 클린턴도 여기저기 폭탄과 미사일을 흩뿌렸지만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했고 심지어 덮어두지도 못했다. 과거 소련군에 대항하기 위해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사태에 개입한 부작용은 9.11 테러와 또 한번의 아프간 전쟁으로 돌아왔고, 현재 이 전쟁은 불명확한 전망 속에 10주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조지 W. 부시의 두 번째 이라크전도 더 나을 게 없다. 그리고 이제는 리비아다.

이런 질문이 제기된다. 미국은 승리하고 있는가? 만약 아니라면, '왜' 그처럼 막대한 고통을 감수하면서 얻을 것은 거의 없는 노력을 계속해야 하는가?

이는 아마도 버락 오바마가 자신의 세계에서 악을 제거한다는 사만다 파워의 결정을 받아들이면서 그를 정치적 단짝(soulmate)으로 여겼기 때문일 수 있다. 또는 오바마 역시 고상한 말을 늘어놓으면서 그보다 덜 고상한 목적을 추구하는또 하나의 계산적인 정치인일 뿐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답'이 이 둘 중 무엇이건 간에, '질문' 자체가 적절치 못했다. 중요한 것은 '왜'가 아니라 '어떻게'다.

그의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오바마는 중동에서 무력을 사용해 온 이전부터의 미국의 경향을 따르며 잘못된 도구를 골랐다. 이로써 그는 그 자신과 미국 모두에 전임 대통령들의 잘못을 되풀이하기를 강요하고 있다. 이 실패는 상상력이 부족해서이기도 하고, 또한 용기가 없어서이기도 하다. 아무튼 오바마는 '약속'을 했고, 따라서 우리는 더 나은 것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 ( )는 원저자의 표기이며, [ ]는 옮긴이가 추가한 내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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