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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의 고민을 파고들어라

[정욱식의 '오, 평화'] 한반도 비핵화, 대타협을 향하여(하)

☞ 한반도 비핵화, 대타협을 향하여(상)

필자는 앞선 글을 통해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물론 여기에는 대전제가 있다. 북한 지도부가 핵무기 포기시 실보다는 득이 크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핵포기에 따른 득실관계는 외부와의 상호작용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북한이 핵포기라는 대담하고도 전략적인 결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이에 상응할 만한 한국과 미국 등 다른 6자회담 참가국들의 '통큰 결단' 역시 요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할 것인가'라는 물음과 동전의 앞뒤 관계에 있는 질문은 '한-미-일 3국이 북한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꿀 의사가 있는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전자의 문제에만 주목해왔고,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한반도 비핵화는 더더욱 멀어진 것이다.

핵무기 포기한 국가들도 있다!

일단 외부 요인을 제외하고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다른 나라들이 핵무기를 보유한 이후에도 이들 무기를 포기한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흔히 북한의 핵포기 가능성이 없다는 근거의 하나로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의 사례가 제시되곤 하지만, 그 반대의 사례도 얼마든지 있다. 197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핵무기 개발에 착수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은 1980년대 후반 들어 안보와 경제 불안이 크게 해소되면서 핵무기를 폐기했고, 오늘날에는 핵 비확산 외교를 주도하고 있는 나라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또한 1991년 소련이 몰락하면서 하루아침에 세계 3,4,5위의 핵보유국이 된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벨로루시도 수년에 걸쳐 핵무기를 러시아로 넘겨 폐기 수순을 밟았다. 신생독립국으로서 안보와 경제를 최우선시 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 나라가 핵폐기를 선택한 데에는 미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5대 핵보유국의 안전보장과 경제지원, 그리고 평화적 핵 이용 보장 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비록 이들 국가의 핵포기 사례는 북한과 단순 비교할 수 없는 속성을 갖고 있지만, 북한의 핵무장이 곧 '게임의 끝'은 아니며, 더욱 중요하게는 북한에도 이들 나라처럼 핵폐기를 결단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북핵 해결의 지름길이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

▲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연합뉴스

김정일의 고민을 파고들어야

또 하나는 북한 스스로 "조선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고 말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2차례에 걸쳐 핵실험을 했고 수시로 핵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노리는 발언을 해오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발언은 진정성이 결여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이 '2012년 강성대국론'의 지도원칙으로 삼고 있는 김일성의 유훈은 북한체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작다고는 볼 수 없다.

또한 북한이 말하는 "조선반도 비핵화"는 북한의 핵포기뿐만 아니라 미국의 핵우산 철수를 비롯한 한반도 전체의 비핵화를 의미하고, 이는 역설적으로 자신의 핵무장을 통해 미국의 핵 위협 해소와 "조미간의 적대관계를 평화관계로 전환", 그리고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대체를 추동할 수 있는 힘으로 간주하고 있다. 거꾸로 북한은 이러한 목표 달성이 가시권에 들어오지 않는 한, 절대로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대북정책에 있어서 중대한 함의를 지닌다. "조선반도 비핵화"가 김일성의 유훈인 만큼 이는 북한에 핵포기를 요구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일 정권이 김일성의 유훈 관철을 '2012년 강성대국론'의 핵심으로 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는 것은 아버지의 유훈에 역행하는 것이다. 또한 핵무기가 품고 있는 가공할 파괴력은 '갖고자 하는 유혹'과 함께 '가져야 할까라는 부담'도 동시에 수반하는 속성이 있다.

아마도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아버지의 유훈, 핵무장 및 핵포기에 따른 득실관계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협상의 포인트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김정일의 고민을 파고들어 '통큰 제안'을 통해 김정일 정권의 '통큰 결단'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부질없는 시도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러한 시도는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고, 또한 한-미-일이 생각을 달리 한다면 북한에 핵포기에 따른 이익을 제공할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시도할 만한 가치가 있다.

최고 수준의 진정성을 교환하라

상호간에 불신이 지배하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협상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한미 양국과 북한 사이에 최고 수준의 진정성을 교환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또한 여러 쟁점과 상호간의 요구가 난마처럼 얽히고설킨 상황에서 실타래를 풀 수 있는 절묘한 실고르기도 필요한 시점이다.

이와 관련해 필자가 제안하고 싶은 방안은 이렇다. 북한이 핵무기 및 핵물질의 폐기 시한과 방식을 공약하고 '과도기적 지위'로 핵확산금지조약(NPT) 및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조치협정에 복귀하는 것과 남-북-미-중 4개국이 한반도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을 맞교환하자는 것이다.

여기서 '과도기적 지위'란 북한의 핵폐기가 완료되지 않았지만, 시한과 방식이 명시된 핵폐기를 약속하고 NPT 체제에 복귀하는 것을 의미한다. 위에서 언급한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벨로루시 3개국도 핵폐기를 약속하고 NPT에 가입한 이후에 핵폐기를 완료했다는 점에서 이러한 접근법은 생소한 것만은 아니다.

또한 북핵 폐기 방식은 핵무기와 핵물질을 러시아로 이전해 폐기하는 방안을 권고하고자 한다. 이러한 제안은 러시아가 핵폐기에 관한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가 있고, 외부 이전을 통한 폐기가 북한 내에서의 폐기보다 비용과 시간을 훨씬 줄일 수 있으며, 실질적으로 비가역적인 북핵 폐기를 달성할 수 있다는 장점들을 고려한 것이다. 아울러 폐기 시한은 북미·북일 관계정상화, 한반도 군비통제 및 군축 조치, 북한의 에너지난에 대한 포괄적인 해결 방안, 미국 핵우산의 철수 등과 함께 상호조율된 방법으로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북핵 폐기 완료의 상응조치 가운데 하나로 한반도 군비통제와 군축을 언급한 이유는 한반도에서 재래식 군사력의 불균형이 완화되지 않는 한 북한의 핵포기는 기대하기 어렵고 또한 이것이 평화체제의 핵심 과제라는 점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 핵우산의 철수도 북한의 핵포기를 이끌어낼 유력한 상응조치 가운데 하나이면서 오바마 행정부가 주창한 "핵무기 없는 세계"의 정신을 구현할 수 있는 구체적 조처라는 점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큰 장점들이 있다고 판단된다. 가장 중요하게는 문제 해결의 최대 걸림돌이라고 할 수 있는 전략적 불신을 크게 완화할 수 있다. 한미 양국은 북한에 줄곧 비핵화 의지에 대한 진정성 있는 태도를 요구해왔는데, 북한이 핵폐기 완료 시한과 방식에 동의하고 NPT와 IAEA에 복귀하는 것은 가장 높은 수준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평화협정 체결은 북한이 요구해온 "적대관계의 평화관계로의 전환"에 이정표를 세우는 것이라는 점에서 한미동맹에 대한 북한의 불신을 획기적으로 완화할 수 있다.

이렇듯 상호간의 구체적이고 대담한 실천을 통한 최고 수준의 진정성의 교환은 전략적 불신을 크게 완화하고 공동의 목표를 확고히 함으로써 한반도 비핵·평화 프로세스를 촉진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북한의 NPT 복귀와 평화협정 체결의 교환'은 난마처럼 얽히고설킨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 영변 핵시설 불능화 재개, 대북 제재 해제 및 중유 지원 재개, 경수로와 검증 등 "디테일 속의 악마들"을 풀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이기도 하다. 또한 최고 수준의 진정성의 교환을 통한 신뢰구축, 핵심 쟁점들에 대한 포괄적 합의 토대 마련, 러시아로의 이전을 통한 북핵 폐기 등은 문제 해결의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 필자 정욱식 블로그 '정욱식의 뚜벅뚜벅'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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