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안보팀 교체만으로 부족하다
오바마 2기 외교안보팀은 군사행동보다는 대화를 중시하는 실무진용이며, 정치적 견해를 공유하는 일종의 친정체제라고 할 수 있다. 1기 팀이 당시 민주당이 꾸릴 수 있는 가장 보수적인 라인이라는 평을 받았던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래서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당장은 힘들겠지만, 어느 정도 안정된 이후에는 미국의 대북정책이 변할 수 있다고 보는 전문가들도 많다. 그럴 가능성이 분명 있지만, 모든 것은 오바마의 결단에 달려 있다. 이유는 오바마의 외교가 닉슨 이후 백악관에 가장 권력이 집중되어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왕성한 활동으로 세계를 누비면서 존재감을 과시했지만 정책을 수행하는 유형이었지, 정책을 입안하고 주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게이츠 국방장관이나 파트레이어스 CIA 국장도 탕평인사의 의미가 강했으며, 대외정책의 주도권을 행사하지는 못했다. 그러므로 2기 외교안보팀이 오바마와 개인적 친분이 깊고, 이념적으로 일치하며, 또한 헤이글과 케리 등이 적대적 국가들과의 협상에 있어 일가견이 있다는 점만으로 부족하다. 오바마가 문제 해결에 관한 의지가 있고, 그만큼의 권한을 이들에게 이양해주느냐가 관건이다.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지난 1월 7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척 헤이글 신임 국방장관(왼쪽)과 존 브레넌 신임 중앙정보국 국장(오른쪽) 지명을 발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의 함정
오바마 2기의 대(對)한반도정책은 미중관계와 깊이 결부되어 있다. 초기 G2로 대변되는 협력 기조는 시간이 갈수록 대결적 기조로 바뀌었다. 2011년 말부터 추진된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은 포용과 봉쇄의 균형이라는 모양새를 유지하고 있지만, 상황과 추세를 감안하면 후자로 기울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재정위기 지속과 그로 인한 국방비 삭감 속에서 미국이 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증가시키겠다는 전략은 결국 동맹국들을 통한 아웃소싱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한국과 일본의 국방비를 증액시켜 자신의 부담은 줄이면서도 중국의 부상은 효과적으로 견제하겠다는 복안이다. 따라서 주둔부담금 증액과 무기구입은 물론이고, 미사일 방어 참여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 커질 것이다. 한반도 위기상황은 미국의 이러한 전략을 정당화시켜주고 있다.
미국은 내친 김에 한-미-일 삼각 공조를 군사동맹수준으로 격상하기를 원한다. 2012년 한일군사비밀보호협정 체결시도도 미국의 강한 권고로 추진되었던 일이다. 일본의 아베 정권이 미국의 구상에 가장 적극적이다. 그러나 아베 정권의 우경화 드라이브로 인해 한일관계가 악화되면서 아직까지는 미국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고 있다. 어쨌든 미국의 전략은 근본적으로 냉전적 진영외교의 부활에 가깝다. 20세기를 전부를 미국의 세기로 군림했기에, 자신의 하락과 더불어 중국의 부상이라는 현실을 수용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의 상황이 말해주듯이 중국은 이미 미국의 전략을 자신의 하락을 늦추기 위해 중국의 상승을 방해하려는 위협으로 해석하고 있다. 중국이 군비증강을 통해 맞대응하고, 미국은 다시 이에 반응하는 안보딜레마를 촉진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제재로는 해결할 수 없다
제재만으로 북한의 핵무기를 포기시킬 수는 없다. 국제정치에서는 경제제재가 가지는 두 가지 딜레마가 자주 거론된다. 하나는 경제제재가 대상국가의 정권을 겨냥한 것이지만, 실제로 더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주민들이라는 점이다. 또한 제재가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모든 국가가 빠짐없이 참여해야 하는데 이것 또한 쉽지 않다. 북한은 이 두 가지 모두 해당된다. 특히 2009년 2차 핵실험 이후의 유엔제재는 중국의 대북지원으로 효과를 보지 못했다. 물론 3차 핵실험 이후엔 중국의 변화된 역할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도 중국은 북한에 대해 전에 없는 불쾌감과 단호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중국의 대북 레버리지가 과대평가되어왔던 것처럼, 이 역시 희망적 사고에 가깝다. 약간의 태도 변화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보유보다는 북한체제의 안정이 중국의 국익에 더 중요하다는 핵심원칙은 당분간 유지될 것이다. 이런 점들을 감안할 때 제재로는 북한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도리어 북한의 더 심각한 도발만 조장할 공산이 크다.
우선순위의 변화 없이 어렵다
북한에 있어 미국의 존재는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가장 위협적인 적인 반면, 생존을 보장받고 싶은 대상이다. 그런데 양국은 비대칭 적대 관계로서 위기상황이 최고조에 이르지 않으면 미국으로서는 대북협상이나 보상을 제공할 필요나 동기가 거의 없다. 미국 대외정책의 우선순위에서 차지하는 북한의 비중이 그리 높지 않기에, 북한은 그 순위를 높이기 위해 도발을 감행해온 측면이 크다. 이 때문에 위기상황을 만들어야 대화가 시작된다는 북미관계의 이상한 공식이 만들어졌으며, 지난 20년간 북한은 핵과 미사일개발을 들고 벼랑 끝에 서서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지 과시하는 방법으로 미국을 협상테이블로 불러들이는 일을 반복해왔다. 북한으로서는 성공한 적도 있으나 근본적인 미국의 태도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유례없는 도발과 긴장 고조에도 미국은 여전히 북한을 외교의 최우선순위로 다루지 않고, 최소한의 위험관리에 주력하고 있다. 게다가 대북문제에 무력감과 피로감까지 겹쳐 있다. 부시 행정부 8년과 오바마 1기 4년을 북한붕괴의 요행수만 붙들고 낭비하는 바람에 북한의 전략적 가치와 위험성만 더 키웠는데, 또다시 시간 낭비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 결코 미국의 편이 아니라는 것이다.
▲ 북한은 지난 2일 플루토늄 추출에 이용되는 흑연감속로를 재가동하겠다고 밝히며 사실상 6자회담 파기를 선언했다. 사진은 지난 2008년 6월 북한이 비핵화의 의지를 보여주겠다며 폭파한 영변의 냉각탑 ⓒ뉴시스 |
핵확산 레드라인 설정의 허점
3차 핵실험까지 진행한 북한은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사실상 핵보유국이다. 오바마의 연두교서에서도 감지할 수 있듯이 미국도 북한의 핵보유보다 핵확산 방지에 방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바로 앞에서 지적했던 위기해결보다는 관리에 집중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두 가지 심각한 걸림돌이 존재한다. 우선 이란 핵과의 연관성인데, 미국이 이 문제를 북한문제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북한의 핵 개발 속도가 이란보다 더 빠르다는 점에서, 북한의 핵보유를 실제적으로라도 용인할 경우 이란을 막기가 더 어려워진다. 북한에 대한 관리에만 머물 수 없는 이유다.
두 번째 문제는 비록 핵확산을 레드라인으로 설정했다고 하더라도 어디까지를 핵확산으로 볼 것인지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핵무기 보유와 마찬가지로 핵확산도 레드라인이 그리 선명하지 않다. 정보의 불확실성과 이에 대한 미국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북한이 시리아, 미얀마, 이란 등과 핵무기개발에 관련된 일정 정도의 협력을 해왔다는 증거들이 불확실하고 부분적이지만 이미 있는 상황인데 어느 지점을 레드라인 침범으로 설정할 것인지 쉽지 않다. 게다가 레드라인 침범이라고 규정하더라도, 그 후에는 다시 군사공격 여부에 대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 것도 대안은 아니다. 미국이 협상테이블로 나오지 않을 경우 북한은 지금보다 더 높은 수위의 도발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핵보유도 그랬듯이 핵확산이라고 북한이 멈출 이유나 동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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