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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리비아 공습으로 민간인 보호? 순진한 발상"

중동전문가 "보호책임 개념, 이론적으로만 타당"

리비아 내전이 역전에 재역전을 거듭하며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서방의 공습에 힘입어 수세에서 공세로 돌아선 반군이었지만, 28일에는 카다피군의 저항에 부딪혀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연설에서 미국의 군사 개입은 리비아인들에 대한 학살을 막기 위한 것이며, 개입의 목적을 카다피 정권의 교체로 확대하는 것은 실수가 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미국과 프랑스, 영국 등 서방 주요 국가들은 29일 런던에서 회의를 열고 '포스트 카다피' 체제를 논의한다. 오바마 대통령의 말과는 상반된 움직임이다.

이런 가운데 서방 군사 개입의 정당성에 대한 논쟁은 국제적인 이슈가 됐다. 군사 개입에 반대하는 측은 민간인 보호는 명분일 뿐 실제 목적은 △석유 확보 △영국·프랑스 등 보수 정권의 국내정치적 필요 △중동의 독재자와 유착했던 과거의 '탈색' △서방의 군사력 시위 등을 꼽는다.

동시에 이들은 군사 개입이 그토록 필요하다면 민주화 시위를 유혈 탄압하는 바레인, 예멘과 그들의 후원국 격인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해서는 왜 개입하지 않느냐고 따진다. 리비아 반군은 민주화를 원하는 세력이 아니라 정권을 잡으려는 부족일 뿐이며, 그들이 손쉽게 무기를 거머쥘 수 있었던 것은 서방의 비밀 공작 때문이라고 본다. 또한 민주주의는 스스로의 힘으로 이뤄야지 외부, 특히 아랍인들의 거부감이 강한 서방의 지원에 의해 이뤄질 수 없다고 말한다.

반면 군사 개입 옹호론자들은 무아마르 카다피 원수가 시위대를 공격하는 상황에서 군사적 개입은 불가피했다고 주장한다. 이같은 인식은 일부 진보주의자들도 공유하고 있다. 이들은 바레인, 예멘, 사우디 등은 왜 가만 놔두느냐는 추궁에 '일단 리비아부터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중동·아프리카 문제 전문가인 스티븐 준스 미 샌프란시스코대 교수는 지난 27일 발표한 글에서 '인도주의적 목적의 개입'이라는 주장에 동조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스티븐 준스 교수는 이날 미 외교정책 논평 사이트인 <포린폴리시인포커스>에 기고한 '국민보호책임과 이중잣대'라는 글에서 이같이 말하고, 개입 옹호론자들이 내거는 '국민보호책임' 개념이 이론적으로는 유효할지 몰라도 현실에서는 오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군사 개입의 이중잣대와 위선이 있다고 해서 리비아에 대한 개입이 자동적으로 잘못됐음을 뜻하지는 않는다"라면서도, 개입의 정당성에 관한 토론이 민간인 보호라는 명분의 타당성을 이야기하는데서 출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그의 글을 번역한 것이다. (☞원문보기)


▲ 리비아 출격을 준비하는 벨기에 공군 ⓒAP=연합뉴스

국민보호책임과 이중잣대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이 반군을 공격하는 상황에서 미국과 나토 동뱅국들이 국민보호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 R2P) 개념에 입각해 리비아를 공격하기로 한 결정은 과연 적절했나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사람들도 의견이 다를 수 있다.

서방의 군사 개입이 학살을 막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군사 개입은 다수의 민간인이 희생될 수 있는 군사적 답보 상태를 연장하기만 할 수도 있다. 미국이 중동에서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에 이어) 세 번째 전쟁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고심하는 이들이 제기하는 우려도 일리가 있다. 범죄 정권의 대량 학살을 막기 위해 무력을 사용해야 할 도덕적인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는 인권운동가들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어쨌든 분명한 사실 하나. 인도주의적인 관점에서 리비아에 대한 전쟁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은 전쟁의 진짜 이유가 아닐 수 있다.

아랍연맹 국가들은 리비아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지지했다. 아랍연맹은 기본적으로 친서방적 독재국가들의 기구다. 자국의 민주화 투쟁을 난폭하게 탄압하는데 주저하지 않은 나라들이다. 당초 많은 아랍 국가의 상당수 대중들은 리비아 반정부 세력의 궤멸을 막기 위해 외부적 지원이 제한적으로 있어야 한다는데 동의했다. 미국의 개입주의를 반대하는 민주화 활동가들 역시 그러했다.

그러나 서방의 공습과 미사일 공격은 카다피군에 의한 민간인 폭격을 저지하는 것에서 무장 반군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쪽으로 간단히 넘어가 버렸다. 아랍연맹의 아무르 무사 사무총장은 "리비아에서 일어난 일은 비행금지구역 설정이라는 목표를 벗어났다. 우리는 민간인 보호를 원했지 다른 민간인들에 대한 폭격을 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R2P 개념은 남용될 여지가 있긴 하지만 이론적으로는 법적·도적적으로 유효하다. 국가의 주권이란 것이 폭군들의 자국민 학살까지 보장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가다피가 무장 반군과 비폭력 저항 세력에 대해 군사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무시무시한 만큼, 외부의 군사적 개입이 민간인 생명 보호라는 서방 정치지도자들의 우려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순진하다. 미국, 영국, 프랑스는 과거 과테말라, 인도네시아, 콜롬비아,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 정부와 연합해 민간인을 학살하는데 관여했었다. 현재 리비아 상황과 같거나 더 참혹했다.

카다피의 공격으로 희생된 민간인의 수를 확인하는 건 어렵다. 1000명에서 8000명까지 평가가 제각각인데, 지난 5주 동안 대략 1700명 정도가 사망했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1700명이라면 그것은 2006년 이스라엘-레바논 전쟁, 2008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공습 때 사망했던 민간인 숫자를 합한 것과 대략 같다. 두 사건에 대해 미국의 의회와 정부는 인구 밀집지역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을 강력히 옹호했고, 유엔 산하 기구와 국제법학자들이 이스라엘의 국제인권법 위반 사실에 대한 증빙 문서를 작성하고 이스라엘과 아랍 측 전범 용의자들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는 걸 권고한데 대해 비난했다.

R2P 개념을 적극 옹호하는 대표적인 인물은 가레스 에반스 전 국제위기감시그룹(ICG) 회장이다. 그는 "압도적으로 도적적인 사안"이라며 리비아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최선두에서 역설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에반스는 호주 외무장관이던 시절 20만 명의 민간인이 희생된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학살을 누구보다 적극 옹호했으며, 인도네시아의 전쟁 범죄를 감싸기까지 했었다.

군사 개입에 대한 위선과 이중잣대 문제가 리비아에 대한 군사 개입이 잘못됐다는 걸 자동적으로 의미하지는 않는다. 리비아의 상황을 알고 있는 우리 같은 사람들도 여전히 모호한 상태이지만, 군사 개입이 생명을 살리고 안정을 가져오고 민주화 이행을 촉진시킬 수 있다는 걸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리비아 공격이 인도주의적인 고려에 따라 시작됐다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하다. 외국군의 개입을 지지하는 리비아인들조차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비폭력적인 민주화 세력을 난폭하게 탄압하고 있는 예멘과 바레인 정부에 대해 미국이 여전히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은 미국이 왜 그렇게 빨리 리비아에 개입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키운다. 리비아 무장 반군이 과연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세력인가에 대해서는 더욱 미심쩍다.

따라서 리비아 사태에 대해 솔직한 토론을 하려면 군사 개입이 카다피 정권의 광범위한 반군 탄압을 중단시키는데 필요한 것인지에 관한 질문에서 시작해서는 안 된다. 미국이 내전에서 어느 한쪽 편에 서야 하는지, 공습으로 민주주의가 만들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서 토론은 시작되어야 한다.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최선의 길은 외국이 지원하는 무장 봉기인지 아니면 이집트, 튀니지, 세르비아, 칠레, 필리핀, 인도네시아, 폴란드 등에서처럼 대중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전략적인 비폭력 행동에 의해 독재를 무너뜨리는 것인지 토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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