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흡착물질 논쟁은 천안함 침몰 해역 부근에서 건졌다는 어뢰추진체와 천안함 파괴의 인과관계를 따지는 핵심 논쟁이다. 민·군 합동조사단은 작년 5월 20일 조사 결과 발표에서 천안함 선체와 어뢰추진체에서 나온 물질이 어뢰 폭발로 나온 비결정질 산화알루미늄이며, 자신들의 모의폭발실험에서 나온 물질 역시 마찬가지이므로 천안함은 '1번 어뢰'에 의해 폭파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작년 6월부터 이 논쟁에 뛰어든 양판석 박사는 선체와 어뢰추진체에서 나온 물질은 산화알루미늄이 아니라 수산화알루미늄 계열의 물질이라고 주장했다. 양 박사는 당초 합조단이 제시한 자료를 바탕으로 그같은 1차 결론을 내렸다. 이후 그는 국회 이정희 의원이 국방부에서 제공받은 선체 및 어뢰추진체의 흡착물질을 직접 건네받아 10여 가지 실험 분석을 했다. 그 결과 백색 물질은 '비결정질 바스알루미나이트'라는 결론을 얻었다. 상온 또는 저온에서 생성되는 수산화물이다.
백색 가루를 직접 분석하기 전까지 양 박사는 그 물질을 '깁사이트' 혹은 '수산화알루미늄' 등으로 추정해 부른 바 있다. 양 박사가 '말을 바꿨다'는 <조선일보>의 주장은 바로 이 부분 때문이다. 그러나 깁사이트, 수산화알루미늄, 바스알루미나이트는 모두 수산화알루미늄 계열의 물질을 일컫는 말이다. 산화알루미늄이냐 수산화알루미늄이냐가 문제의 핵심인데, 수산화알루미늄 계열의 물질을 다르게 불렀다고 해서 '말을 바꿨다'고 하는 것은 핵심을 벗어난 것이다.
이후 안동대 지구환경과학과의 정기영 교수도 <한겨레21>과 한국방송(KBS) <추적60분>의 의뢰를 받고 같은 물질을 분석했다. 그 결과 정 교수는 그 물질을 비결정질 알루미늄황산염수화물이라고 밝혀냈다. 이 역시 수산화알루미늄 계열의 물질을 더 엄격한 물질 명명법으로 부른 것일 뿐이다.
양판석 박사와 정기영 교수의 분석은 천안함 선체와 어뢰추진체에서 나온 물질은 어뢰 폭발로 흡착된 게 아님을 과학적으로 입증한다. 그것은 곧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에 의해 폭파됐다는 합조단의 핵심 논거가 성립되지 않음을 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 박사의 문제 제기에 비과학적인 반박만을 해 온 합조단과 국방부는 작년 9월 최종보고서를 발표한 후 입을 닫고 있다.
그리고 26일 천안함 1주기가 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전날 "당시 북한의 주장대로 진실을 왜곡했던 사람들 중에 그 누구도 용기있게 잘못을 고백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양판석 박사는 이번 기고문에서 정작 우리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묻는다. <편집자>
▲ 작년 6월 29일 국방부에서 열렸던 천안함 언론 설명회 장면 ⓒ프레시안(최형락) |
합조단 과학자들의 솔직한 고백이 없어 슬프다
천안함 민·군 합동조사단이 천안함 선체와 어뢰추진체에서 발견된 백색 물질을 어뢰 고폭약에 첨가된 알루미늄 가루가 어뢰 폭발시 발생한 높은 열에 의해 용융-산화된 후 해수에 의해 급랭되어 생성된 비결정질 산화알루미늄이라고 발표한지 1년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증빙자료로 제시된 데이터들은 합동조사단이 주장하는 산화알루미늄과 화학적으로 판이하게 달라 필자는 다른 물질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 후 문제의 백색 물질을 입수해 직접 화학분석한 결과, 폭발 생성물의 하나인 산화알루미늄이 아니라 상온 침전물인 비결정질 바스알루미나이트로 판명되었다.
어떤 물질의 정체에 대해 실제 물질을 확보하기 전에는 매우 제한된 정보에 따라 추정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런 추정이 실제 물질을 직접 분석한 후 얻은 새로운 정보에 근거해서 달라진다고 해서 놀라운 일은 아니다.
정작 놀라운 것은 이런 과정을 '말바꾸기'라고 간단히 폄하하는 <조선일보>의 오만한 태도다. 이는 한 과학자를 비하해 문제의 초점인 백색 물질에 대한 합동조사단의 오판 혹은 조작을 흐리기 위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 양판석 박사가 말을 바꿨다고 주장하는 <조선일보> 21일 기사 ⓒ조선일보 캡쳐 |
합동조사단은 백색 물질을 AlxOy라고 표기하고 알루미늄산화물이라 부르지만, x와 y의 변화 범위는 매우 제한적이어서 이상적인 산화알루미늄의 비율인 2:3을 크게 벗어나지 않아 산화알루미늄(Al2O3)과 다를 바 없다.
분자식으로 알 수 있듯이, 산화알루미늄은 화학적으로 너무나 단순한 물질이어서 에너지 분광기 같은 기초 화학 분석 장비를 사용해도 실수나 오해를 일으킬 여지가 없다. 합동조사단은 아직도 백색 물질이 산화알루미늄이라 강변하고 있지만 제시한 자료들은 모두 산화알루미늄이 되기엔 너무나 많은 산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런 필자의 합리적인 지적에 합동조사단은 과다한 산소가 백색 물질에 포함된 습기 때문이라는 상식 이하의 반박을 했다. 이에 필자는 화학 분석이 높은 진공에서 이루어져 물질의 표면에 습기가 있을 수 없다고 재반박했다.
그 후 합조단은 백색 물질의 내부에 기공이 있고 물로 채워져 있다고 주장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전자현미경 사진이나 투과전자현미경 사진을 제시하라는 요구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물론 필자가 실제 물질을 확보한 후 직접 관찰한 결과 그런 기공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판명됐다. 이런 과다한 산소는 필자의 독자적인 화학 분석을 통해 백색 물질이 비결정질 바스알루미나이트(Al4(SO4)(OH)105H2O)로 판명되면서 자연스레 해소됐다.
이 물질의 알루미늄:산소 비율은 4:19로 합동조사단이 제시한 자료와 완전히 일치하며 합동조사단이 검출하고도 출처에 대해 최종보고서에서 언급조차 하지 못했던 황산염을 잘 설명해 준다.
필자의 화학 분석 후 안동대학교 정기영 교수도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으며, 더 엄격한 물질 명명법을 적용해 비결정질 알루미늄황산염수화물(AASH)로 불렀다.
합동조사단이 최종보고서 부록(258~260쪽)에서 제시한 열처리 실험 결과도 산화알루미늄이 아님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물질이 진정 산화알루미늄이라면 열 실험 온도가 산화알루미늄의 안정 영역에 이르기 전에는 습기 증발 외엔 열역학적 변화가 없어야 정상이지만 합조단의 자료는 이 낮은 온도 구간에서 수차에 걸친 상변화를 보여주며 이는 백색 물질이 바스알루미나이트처럼 산화알루미늄보다 휠씬 더 낮은 온도 영역에서 안정한 물질이었음을 증명한다.
문제의 백색 물질이 산화알루미늄이 아니라는 것이 일찍이 밝혀졌고 합동조사단이 제시한 모든 자료도 이를 지시하지만 1년이 다 되어 가도록 이를 고백하지 않는 합동조사단 소속 과학자들의 비양심이 필자를 슬프게 한다. 이는 결국 천안함 침몰의 진실 규명을 더욱 더디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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