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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사태 바라보는 서구열강의 '부도덕한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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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사태 바라보는 서구열강의 '부도덕한 희망'

<FT> "기존의 사악한 거래 지속하겠다는 거냐"

리비아 사태로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국제유가의 고공행진이 장기화되면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회복 기조를 보여온 세계 경제가 다시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이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중동의 민주화 혁명이 중동의 다른 산유국들까지 확산되지 않을 것이며, 리비아 사태로 인한 '오일쇼크'도 단기적인 것에 그칠 것이라는 희망섞인 전망을 믿고 싶어한다.

하지만 가격 안정을 바라는 원유 수입국들이 중동을 바라보는 시각은 이기적이고 부도덕한 측면이 있다. 2일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의 수석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는 이런 점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그는 "리비아 사태로 인한 경제적 충격이 단기간에 그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은, 중동 사태가 이 정도에서 마무리 될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면서 "나아가 안정적인 석유 공급을 위해 억압에 눈감는 '기존의 사악한 거래'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제에 기대고 있다"고 지적했다.
▲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의 퇴진을 요구하며 시작된 민주화 시위가 갈수록 무력 충돌을 불사하는 내전 양상을 빚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안정적인 석유공급, 비도덕적 거래로 가능했다"

이어 그는 "이런 거래가 소비자에게는 유리하다"면서 "하지만 이런 거래가 도덕적으로 바람직하다거나, 정치적으로 지속가능한 것이냐"고 반문했다.

현재의 중동사태가 단기적이고 지역적으로 제한적인 것으로 끝난다면, 경제적 의미보다 장기적인 정치적 함의가 더 크다고 할 수 있지만, 이런 전제가 빗나간다면 전대미문의 오일쇼크가 터지는 혹독한 경제적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는 경고다.

사실 미국과 영국 등 서구 열강들은 겉으로는 중동의 민주화를 지지한다면서도 실제로는 이 지역의 안정을 선호해 중동의 독재자들을 지지해왔다. 이집트 사태 초기에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가 무바라크 정권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고, 지난 2004년 당시 영국의 블레어 총리는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을 지지하는 이른바 '사막의 거래'를 했다는 사실로 요즘 비난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울프는 "최근 중동사태의 정치적 함의 중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표현과 정치참여의 자유를 요구하는 데 있어 '아랍은 예외'라는 개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전제정치에 억압돼있던 빈곤국들이 안정적인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되는 과정은 멀고 험하다. 독재자 차우셰스쿠를 축줄한 뒤 루마니아가 겪은 혼란은 이런 위험을 잘 보여준다.

"돈으로 언제까지 민주화 열망 억누를 수 없다"

하지만 현재 중동사태는 이런 논란을 넘어서 중대한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현재의 민주화 열기가 어디까지 확산될 것이냐다. 중동의 아랍국들을 넘어 전세계의 독재국들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울프는 "산유국들은 오일머니로 내부의 불만을 무마할 수 있다는 가정은, 바레인과 리비아 사태에서 보듯 더 이상 설득력을 상실했다"고 지적했다. 정치적 자유를 향한 열망은 보편적인 것이며, 언제까지나 돈으로 억누를 수 없다는 점을 최근의 사태들이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오일쇼크'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정치적 분석이 한가롭게 들릴 수도 있다. 거시금융학자 개빈 데이비스에 따르면, 70년대 이후 5번의 글로벌 경기침체에는 어김없이 '오일쇼크'급의 국제유가 급등 현상이 선행됐다.

1970년대 석유공급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발생한 1, 2차 오일쇼크와 2008년 중국 등 신흥경제대국들의 수요 급증으로 초래된 오일쇼크가 대표적이다. HSBC의 수석이코노미스트 스티븐 킹은 "시계처럼 정확하게, 100%가 넘는 유가 상승은 GDP의 감소로 이어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1일(현지시간) 배럴당 114달러를 넘어선 영국산 브렌트유의 경우 1년전인 지난 2010년 3월과 비교했을 때 이미 64%나 오른 것이다. 과거의 사례를 돌아볼 때 심상치 않은 상황인 것으로 분명하다.

배럴당 20달러 상승마다 석유수입 비용은 GDP 1%나 늘어

이에 대해 울프는 "문제는 우리가 어느 정도나 우려할 상황이냐는 것"이냐면서 유가 급등이 초래하는 경제적 영향을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즉각적이며, 이미 나타났다. 또한 유가의 고공행진이 장기화되면 GDP 성장률을 잠식할 가능성이 높다.

데이비스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의 국제유가 수준에서 배럴당 20달러 상승은 석유 수입 비용을 크게 증가시킨다. 비용 증가분이 전세계 GDP의 1%에 해당된다. 지난 10개월 동안 국제유가는 배럴당 40달러나 올랐다는 점에서 이런 유가 수준이 지속되면 글로벌 경제는 뚜렷한 침체를 보일 수 있다. 특히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신흥경제국들이 받을 충격은 선진국들보다 더 크다. 선진국 중에서 에너지 과소비국으로 악명높은 미국도 오일쇼크에 취약하다.

중요한 변수는 중동 사태가 세계 최대의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 등 다른 산유국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다. 당장은 사우디가 리비아의 생산 차질분을 보충하고 있다. 또한 리비아 등 정권이 흔들리는 산유국들도 석유 수입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생산시설이 파괴되지 않았다면 가급적 빨리 생산량을 회복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동의 민주화 혁명이 장기화되거나 전세계 독재정권으로 확대될 수 있다. 그럴 경우, 안정적인 석유공급을 위해 중동의 독재정권과 손잡고, 중동의 민주화를 외면한 서구열강들은 때늦은 후회를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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