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집트 사태 때도 석유수송로인 수에즈 운하의 폐쇄 가능성 때문에 일시적으로 석유가격이 요동을 쳤지만, 수송량 자체가 미미하다는 점 때문에 지속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국민은 안중에 없고 석유 이권에만 눈독을 들인 독재자 카다피를 비난하는 시위 문구. 카다피는 중동의 산유국 중 처음으로 반정부 시위로 실각할 위기에 몰렸다. ⓒ로이터=뉴시스 |
하지만 리비아 사태가 석유시장에 미치는 파괴력은 이집트 때와는 다르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이집트는 산유국이 아닌 반면 리비아는 산유국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오일 쇼크' 가능성 논란과 관련,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23일 "리비아는 예고편이라면, 진정한 위기는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 생산 차질이 빚어질 때 찾아올 것"이라고 경고해 주목된다.
리비아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산유국 중 9위이지만, 지난해 하루 평균 생산량은 163만2000배럴로 세계 18위에 불과하다. 하지만 사우디는 일일 생산량이 830만 배럴에 달하는 세계 최대 산유국이다. 따라서 사우디의 생산이 감소하는 상황은 국제원유시장에 큰 충격을 줄 수밖에 없다.
<FT>에 따르면, 현재 사우디와 이웃한 바레인 등 주변 일대의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면서 사우디의 정정불안 가능성도 증가했다. 또한 리비아의 생산 중단에 이어 알제리의 생산 중단이 잇따르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
특히 리비아의 상황을 보면 사우디도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그동안 서방의 전문가들은 리비아 같은 중동의 산유국들은 민주화 시위의 영향을 덜 받을 곳으로 분류했다. 오일머니가 국민들의 주머니에도 흘러들어가기 때문이다.
리비아에서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40년 넘게 철권통치를 하고 있지만, 민심의 불만이 고조되면 임금을 올려주는 등 오일머니로 민심을 달래왔다. 리비아의 1인당 GDP는 1만2000달러 정도인데, 오일머니가 56%를 차지한다. 그런데도 리비아 국민들은 이제는 돈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자유를 요구하고 나섰다.
지정학적 위기와 투기 겹친 석유가격 급등 우려
그렇다면 역시 리비아보다 1인당 GDP가 조금 더 많은 1만4000달러인 사우디에서도 민주화 시위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같은 산유국이라도 리비아와 사우디는 급이 다르다는 것이다.
<FT>는 "리비아 사태는 중동의 산유국은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이라는 전제가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시장의 패닉을 막기 위한 선제적 조치를 취할 시기를 놓치지 않고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IEA가 시장가격 안정을 위해 사용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이미 지난 2008년 원유가격이 배럴당 147달러까지 치솟을 때 IEA는 무력했다.
당시 가격 상승은 지금처럼 지정학적 위기가 아니라 수요 증가, 특히 중국의 수요가 급증한 것이 최대 요인이었다. 이번에는 지정학적 위기를 틈탄 투기바람도 불 가능성이 높다. 이때문에 <FT>는 "G20 등 국제회의의 의제로, 심각한 지정학적 위기 상황에서는 특별한 규제를 발동할 수 있는 제도 도입을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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