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는 북아프리카와 중동에 퍼져있는 아랍국들에 대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정책에서 핵심 초석의 하나로 꼽히는 곳이기 때문에 외교안보적인 의미가 크다.
또한 현재 위기를 겪고 있는 아랍국들의 공통점은 산유국이거나 석유수송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들이라는 점에서 세계석유시장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관점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 이집트 사태로 주요 석유수송로인 수에즈 운하 운행이 차질을 빚고 있다. ⓒAP=연합 |
일각에서는 글로벌 경제위기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최근 아랍권의 사태가 또다시 오일쇼크를 초래해 세계 경제에 큰 타격을 주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집트에서 반정부 시위가 절정에 오른 지난 28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NYMEX)에서 거래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3월물 가격이 89.34달러로 전일대비 3.70달러나 올랐다. 이날 상승폭은 지난 2009년 9월 이후 16개월만에 최대 상승률을 기록, 이집트 사태가 석유시장에 어느 정도 충격을 주는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집트는 원유 및 석유제품 등의 주요 생산지인 중동으로부터 아시아, 유럽을 잇는 뱃길인 수에즈운하를 보유하고 있다. 수에즈 운하 통행료에 따른 수입이 이집트 경제의 4%나 차지해 이집트 정부가 수에즈 운하를 차단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중론이지만, 이집트 정부가 시위를 억제하기 위해 인터넷을 전면 차단하고 나서 수에즈 운하 운행에는 이미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오일쇼크의 역사를 고찰해온 캘리포니아대 경제학 교수 제임스 해밀턴에 따르면, 최근의 사태가 석유시장에 미칠 가능한 시나리오들은 이렇다.
가장 낙관적으로는 아랍권 일대에 독재정권을 타도하려는 민중의 의지가 분출해 민주주와 민중의 경제여건이 개선되는 길로 갈 것으로 보는 시나리오가 있다. 가장 비관적인 시나리오는, 최근의 사태 일부가 새로운 종교적 독재정권들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배후에서 지휘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역사적인 고찰에 따른 현실주의자인 해밀턴 교수는 양쪽의 시나리오가 동시에 작동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면서, 역사적으로 혁명적인 이념에 따른 민중봉기가 종종 반민주적인 세력에 의해 이용당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아랍국들의 권력교체 과정 일부가 평화적이기보다는 혼란으로 귀결된다면, 세계석유시장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권교체가 유력해 보이는 이집트는 석유 일일 생산량이 66만 배럴(2010년 10월 기준)이며, 매일 수백만 배럴의 석유를 실은 유조선이 수에즈 운하를 관통하며, 110만 배럴의 원유가 이집트를 거쳐가는 수메드(Sumed) 파이프라인을 통과한다.
1956년 '수에즈 운하 위기' 재연될까
1956~1957년에 발생한 '수에즈 운하 위기' 당시 수에즈 운하가 상당기간 차단되고, 시리아를 거쳐가는 이라크 석유공사의 파이프라인과 연결된 유전들에서 일어난 파업이 겹쳤을 때 세계 석유생산의 10%가 감소했다. 이 비율은 이후 어떤 오일쇼크 때보다 많은 감소량이다.
당시 중동의 석유생산량이 정상 수준으로 회복되기까지 6개월이 걸렸다. 다른 곳에서 생산량을 늘리면 3개월 이내에 공급차질을 메울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했다. 1956년 12월 1일자 <뉴욕타임스>는 당시 '오일쇼크'의 모습을 이렇게 전했다.
'수에즈 운하 위기'로 석유공급이 차질을 빚자 특히 유럽 국가들은 큰 타격을 받았다. 네덜란드와 스위스, 벨기에 등지에서는 일요일 자동차 운행을 금지했고, 영국과 덴마크,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석유 배급제를 실시했다.
영국의 자동차업체들은 공장가동일을 주 5일에서 4일로 단축하고, 스위스 최대 자동차업체 볼보는 생산량을 30% 감축했다. 영국의 주유소 70%는 일요일 영업을 중단했다. 난방시설 가동이 멈춘 건물들도 속출했다. 네덜란드 호텔업계의 추산에 따르면, 일요일 운행 금지로 예상 매출의 85%가 격감했다.
하지만 해밀턴 교수는 현재 수에즈 운하의 폐쇄는 1956년 때처럼 경제적인 타격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당시에는 수에즈 운하가 세계 석유공급량의 8.8%를 차지했지만, 지금은 1.1%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번 사태가 이집트에서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다. 이라크와 이란 같은 주요 산유국들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2010년 10월 기준으로 이라크의 일일생산량은 약 240만 배럴, 이란은 420만 배럴이다. 해밀턴 교수는 "일일생산량이 1000만 배럴 안팎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공급이 일시적이라도 멈춘다면, 역사적인 비교도 불가능한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나아가 그는 "현재의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르지만, 중동의 불안정한 지정학적 역사, 그리고 신흥 산업국들의 수요 급증을 고려할 때 향후 10년내에 오일쇼크가 어떤 것인지 목도하게 될 것은 거의 확실하다"고 경고했다.
석유분석업체 "향후 18~36개월 사이 오일쇼크 닥칠 것"
석유시장 분석업체 더글러스-웨스트우드는 중동의 지정적학 사태와 별개로 향후 18~36개월 사이에 오일쇼크가 닥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았다. 세계 석유의 추가 생산여력이 이미 한계에 도달해있어, 신흥국가들의 석유 수요 증가를 탄력적으로 뒷받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EIA)에 따르면, 세계 석유의 일일 추가 생산여력은 465만 배럴이며, 그중에서 사우디가 375만 배럴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사우디는 일일 생산량을 1000만 배럴 이상 늘릴 가능성이 희박하고, 현재 일일 생산량이 850만 배럴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세계의 추가 생산여력은 사실상 240만 배럴에 불과한데, 지난해 석유수요는 200만 배럴 가까이 증가했다. 따라서 올해 이후 석유 수요 증가량이 지난해처럼 늘어나고 증산은 이뤄지지 않는다면, 오일쇼크가 현실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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