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도 이 열기를 피하지 못했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튀니지에서 독재자가 축출되는 사태가 일어나도, 이집트에서 독재자 무바라크가 물러날 때도 표면상 '무풍지대'처럼 보였던 리비아에서도 15일(현지시간)부터 반정부 시위가 시작됐다.
수도 트리폴리 인근 도시와 제2 도시 뱅가지 등에서 수천명이 시위에 나서 현재 수십명의 부상자를 냈다. 야권에서는 17일을 '분노의 날'로 정하고 더욱 대규모의 시위를 예고했다.
리비아는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으로 무아마르 카다피가 1969년 쿠데타로 왕정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잡은 후 42년째 철권통치를 하고 있으며, 아들 사이프 알- 이슬람이 유력한 후계자다.
▲ 42년 철권통치를 펴온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 리비아에서도 반정부 시위가 본격화됐다. 카다피도 이집트의 무바라크의 뒤를 이을 것인가. ⓒ로이터=뉴시스 |
리비아의 반정부 시위 배경에 대해 17일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카다피 정권도 튀니지와 이집트처럼 높은 실업률, 심각한 부패, 가혹한 억압 등 민중봉기를 초래할 같은 문제들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이집트를 거친 혁명의 열기는 인근 알제리와 예멘, 요르단, 이란, 바레인 등 중동을 넘어 저 멀리 남아프리카공화국까지 미칠 정도로 뜨겁다.
서구권 일각에서는 중동의 친서방 아랍 독재정권들에게 불어닥친 이번 혁명이 독재자를 타도한 뒤 안정된 민주체제를 가져오기보다는 혼란만 부르거나, 이슬람 세력이 부상할 것으로 우려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 미국 존슨홉킨스대의 중동 전문 국제정치학자 조슈아 무라브치크는 16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에 게재된 기고문에서 '이집트 혁명'의 정신과 혁명 이후의 이집트의 앞날을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목된다.
무라브치크 교수는 "이집트 혁명은 평화적으로 이뤄졌고, 이집트 혁명의 정신은 파괴적인 것이 아니라 건설적이었다"면서 "이런 모습들은 이 나라와 중동 지역에 상서로운 조짐이 되고 있으며, 이집트가 민주주의로 성공적인 전환을 이룰 수 있다면 다른 나라들도 뒤를 따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집트 국민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려면, 야권에서 유일하게 조직화된 세력인 무슬림형제단에 대항할 정당이 구성될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경계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자칭 '네오콘' 성향인 무라브치크는 최근 이란의 반정부 시위에 대해 "결정적인 순간이 오는 것은 시간문제"라면서 이란의 신정체제 붕괴에 대한 기대감도 감추지 않았다.
다음은 이 글의 주요내용이다.<편집자>
무슬림형제단이 조기 선거 요구하는 속셈
올해 중동에서는 더 많은 민중봉기를 목도하게 될 것이 거의 틀림 없는 것 같다. 혁명은 종종 더 나쁜 상황을 초래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집트에서 보여진 시위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폭력적인 민중봉기는 통상 새로운 독재를 부르지만, 평화적인 민중봉기는 진정한 자유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기 때문이다.
이번 이집트 혁명에서 주목할 만한 점 중의 하나는 이슬람 세력이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집트 최대 야권세력인 무슬림형제단 지도부가 민주적 요구를 하고 나선 것은 진정성을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여론에 편승하기 위한 부자연스러움이 느껴진다.
무슬림형제단은 조기 선거를 원하고 있다. 이집트 야권에서 조직화된 유일한 세력이기 때문이다. 이집트 군부는 이런 요구를 거부해야 한다. 그 대신 이집트 군부는 시민사회와 대화를 재개하고, 시민 대표들과 권력을 공유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군부가 집권할 의도가 없다는 것을 믿게 할 수 있다. 또한 이렇게 해야 이집트에서 공정한 선거 체제를 구축할 시간을 벌 수 있다.
오는 9월로 예정된 대선은 연기되어야 한다. 대통령만 뽑는 것이라면 빨리 할 수도 있겠지만, 총선은 그렇지 않다. 입법부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그리고 유권자들이 총선 후보들에 대해 알 시간, 정당을 구성할 시간 등이 필요하다. 대통령을 견제할 의회가 없는 상태에서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따라서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려면 지금으로부터 1년 정도 선거 일정을 연기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 될 것이다.
"유혈진압 꺼리지 않는 이란 성직자들, 최대 패배자 될 것"
현재 예멘, 요르단, 바레인, 알제리 등에서도 혁명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다. 이런 나라들은 독재정권이기는 하지만, 과거 시리아나 이라크에서처럼 독재자들이 시위에 나선 시민 수천명을 폭력 진압할 정도는 아니다.
이란은 친서방 무바라크 정권 붕괴를 고소하게 보고 있지만, 이란의 성직자들은 최대의 패배자가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란 정권은 국민을 유혈진압하는 데 별로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2009년에 이어 다시 발생한 이란의 반정부 시위 '녹색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더 큰 폭력이 필요하는 사태가 벌어지면, 이란 혁명수비대조차 분열될 수 있다.
2009년에는 '녹색운동' 시위대는 성공적으로 진압됐지만, 그들이 이집트인들을 고무시켰듯 이번에는 이집트 혁명이 그들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결정적인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이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설혹 이란의 집권자들이 원하는 대로 되고, 무슬림형제단이 이집트의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고 해도 그들은 자신들의 승리를 후회하게 될 것이다. 이집트의 수니파 이슬람 정권과 이란의 시아파 이슬람 정권의 대립은 곧바로, 공산주의의 기반을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온 중국과 소련의 경쟁 양상을 보일 것이다.
하지만 한달 전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을지 모르지만, 무슬림형제단이 이집트에서 권력을 잡을 가능성은 그때보다 더욱 낮아진 것으로 보인다.
아랍권에서 안정을 느낄 수 있는 정권은 하나도 없다. 혁명은 전염력이 있다. 이집트의 독재자를 무너뜨린 열기는 튀니지에서 왔다. 하지만 그 불씨는 18개월 전 이란에서 나타났다. 그 이후 이집트의 사이버공간에서는 "왜 우리는 이렇게 무기력한가?"라는 한탄하는 소리들이 가득찼다.
백만 명이 넘는 이란인들이 자유를 요구하며 시위에 나선 것을 보고 부러워했던 이집트의 젊은이들은 결국 이란의 반정부 시위에 자극을 받아 타흐리르 광장에서 결실을 맺었다.
이집트 혁명의 정신은 파괴적인 것이 아니라 건설적이었다. 시위대의 분위기는 보복심보다는 애국적이고 연대의식이 강했다. 혁명의 날 이후 이집트의 시위대는 거리를 청소하기 위해 다시 나왔다.
이런 모습들은 이 나라와 중동 지역에 상서로운 조짐이 되고 있다. 이집트가 민주주의로 성공적인 전환을 이룰 수 있다면, 다른 나라들도 뒤를 따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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