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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시위대 "무바라크 '더러운 게임'에 안 속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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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시위대 "무바라크 '더러운 게임'에 안 속아"

정부-야권 개헌委 설립 합의에도 저항 계속

이집트 정부와 야권 단체들은 6일 대규모 반정부 시위 사태 이후 처음으로 정식 회의를 열어 개헌위원회 구성에 합의하는 등 개혁을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정부와의 협상에 참석했던 이집트 최대 야권 단체 무슬림형제단 등은 정부가 발표한 합의 내용은 정치 선전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카이로 시내에 다시 모여든 수만 명의 시위대는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즉각 사임을 요구하며 투쟁 강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정부 협상 대표, 시위대 귀가 종용

무바라크 대통령의 대리인 격인 오마르 술레이만 이집트 부통령은 이날 야권 단체 대표들과의 협상 후 발표한 성명에서 사법부 인사들과 정치인 등이 참여하는 개헌위원회를 구성해 내달 첫째 주까지 개헌안을 마련키로 했다고 밝혔다.

술레이만 부통령은 또 새 헌법에 대통령의 연임을 제한하는 규정을 신설하고, 야당 후보들의 대선 출마를 가로막았던 기존의 조항을 폐지해 많은 인사가 대선에 출마할 수 있도록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1981년 안와르 사다트 당시 대통령의 암살 사건을 계기로 발령되어 현재까지 30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비상계엄법을 폐지하기로 했다고 소개했다. 반정부 시위 참여자 보복 금지, 언론 자유 보장, 부패 척결 활동 강화 등도 합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술레이만 부통령은 무바라크 대통령의 권한을 인수해달라는 야권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이 협상에 참여한 한 대표자가 <AFP> 통신에 전했다. 또한 그는 협상 중에 방영된 TV 인터뷰에서 무바라크 대통령이 당장 하야하면 정국이 불안정해질 것이라며 정부가 변화를 실행에 옮기는 동안 시위대는 귀가해야 한다고 종용했다.

술레이만의 제안으로 마련된 이번 협상에는 무슬림형제단 외에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을 지지하는 청년그룹, 소수 좌파 그룹, 자유주의단체 등 다양한 야권 단체 인사 50여 명이 참여했다. 엘바라데이는 협상에 직접 참석하지 않고 대리인을 보내 술레이만 부통령과 별도로 만나게 했다.

▲ 이집트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서 무바라크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대 ⓒ로이터

시위 주도 단체들 연합체 구성

그러나 협상에 참석한 야권 대표들은 이날 술레이만 부통령이 제안한 사항들은 무바라크 대통령이 지난 1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내놓은 내용과 다를 바 없다며 이날 협상은 '첫걸음'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야권 단체들은 이날 협상에서 진전을 봤다는 정부의 주장은 정치 선전(propaganda)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특히 무슬림형제단의 지도부는 자신들이 술레이만 부통령을 만난 것은 요구 사항을 분명히 전달하는 동시에 자신들이 정부와의 대화를 거부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무슬림형제단은 △무바라크의 즉각 사임 △비상계엄법 폐지 △의회 해산 △모든 정치범 석방이라는 기존의 요구 사항을 정부 측에 전했다고 밝혔다.

이 단체의 고위 관계자인 에삼 엘 에리안은 "우리의 요구사항은 전과 같지만 정부 측은 그 중 일부에 대해서만 대답을 내놨고, 그것도 피상적인 해법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일례로 정부는 비상계엄법 폐지의 조건으로 "안보 상황을 감안해"라는 조항을 넣음으로써 즉각적인 폐지를 거부했다고 야권은 비판했다.

엘바라데이 전 사무총장도 <CNN>, <NBC> 등 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제안한 내용이 "불투명하다"(opaque)며, 무바라크 대통령은 즉각 퇴진하고 3인의 대통령위원회에 권력을 이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치를 수 있는 1년간의 과도기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거리에 나온 이들의 목소리는 더욱 높았다. 시위를 하다가 경찰에 붙잡혀 3일간 구금됐던 샤이 엘 가잘리 하브라는 외과의사는 <뉴욕타임스>에 "정부는 과거 그들이 해왔던 더러운 게임을 여전히 하고 있다"며 "우리는 시민들을 믿는다"고 말했다.

'4월 6일 청년운동' 등 시위를 주도한 청년 단체들은 이날 연합체 '청년의 분노 혁명 통일 지도부'를 구성하고 무바라크 대통령이 물러날 때까지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 점거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연합체 지도부 중 한 명인 칼레드 압둘-하미드는 이날 정부와 야권 간 회의는 자신들과 무관하다며 이같은 입장을 내놨다.

이 연합체에는 4월 6일 청년운동 외에도 '정의와 자유 그룹', '문 두드리기 운동', '엘바라데이를 지지하는 대중운동', 무슬림형제단, 민주전선당 대표자들이 참가했다. 그러나 무슬림형제단은 수일 안에 정부와의 2차 협상이 있을 거라고 말해 청년 단체들과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이에 따라 무바라크 정부가 야권의 분열을 꾀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미국 비판 목소리 커져

시위대들은 또한 '변화'를 말하면서도 무바라크의 즉각 퇴진에 대해서는 모호한 입장을 취하며 '점진적인 권력 이양'을 강조하고 있는 미국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내놨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시위대들이 술레이만 부통령에 대한 미국의 지지에 대해 분노를 터뜨렸다고 전했다. 엘바라데이 전 사무총장도 TV 인터뷰에서 미국이 이집트에 엇갈린 메시지를 보내 혼란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고 비난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4일 "권력 이양 작업을 당장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가 다음 날에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프랭크 와이즈너 특사 등이 무바라크의 대통령직 유지 쪽에 무게를 둔 발언을 한데 따른 비판으로 풀이된다.

<뉴욕타임스>는 술레이만 부통령이 야권과의 협상 후 발표한 성명에 대해 미국의 당국자들은 만족스러워한다면서도, 술레이만의 발표 내용은 미국인들이 보기에도 문제점이 많다고 비판적인 논평을 내놨다.

비상계엄법 폐지에 '안보 상황 고려'라는 조건이 붙어 있는 것 외에도, 개헌위원회의 명단을 누가 짤지에 대해 불명확하고, 획기적인 개헌안을 마련한다 해도 무바라크 체제에 충성스러운 이들로 가득한 의회가 과연 그걸 통과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신문은 지적했다.

한편 한 주의 첫날인 이날 일부 학교들이 1주일 여 만에 처음으로 수업을 재개하고 은행과 일부 상점 등이 다시 영업에 들어가는 등 카이로 시내는 시위 이후 기능 마비 사태에서 벗어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는 오후가 되면서 타흐리르 광장에 시위대가 10만 명 가량으로 늘어났고, 일부 시민들은 광장에 텐트를 치면서 장기전에 돌입할 태세를 갖췄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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