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은 정상회담에서 남북대화를 촉구한 지 몇 시간 만에 남북이 군사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한 것을 환영하는 분위기이다. 미중 정상회담이 한반도 정세를 '선 남북대화, 후 6자회담'이라는 일정에 따른 대화 국면으로 전환시켰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은 21세기 두 번째 10년을 열어가는 시점에서 열렸다. 시점이 상징하는 것처럼 앞으로 수년 동안 전개될 미중관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미국과 중국의 정상은 모두 자기 나라의 전략적 이익을 가장 우선시했다.
중국으로서는 길게는 2020년 소강사회 건설, 단기적으로는 2012년 권력교체 등을 위해서 주변 환경을 보다 안정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아울러 중국의 국가 이미지를 개선하는 것도 중국의 장기 국가발전 전략에서 필요한 과제이다. 실제로 미국 내에서 중국에 대한 이미지는 일종의 '무례한 졸부'와 비슷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19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뉴시스 |
후진타오의 실용주의
후진타오 주석의 방미로 미국과 중국의 쟁점들이 한 번에 해소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으로 향후 중국이 도약해가는 과정에서 미국과 갈등을 키우지 않으면서 국가이미지 개선을 위한 발판을 다진 것으로 보인다. 후진타오는 방미 일정 내내 소프트파워를 강조했다. 세계 주요 2개국(G2)의 국력에 맞게 '소프트파워'(軟實力. 롼스리)를 키워 중국에 대한 편견을 없애자는 취지인 것이다. 중국의 발전 전략을 위해서 후진타오는 철저하게 실용주의적으로 접근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만족해하고 있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서 중국은 천안함 사건이나 연평도 포격 이후에도 줄기차게 6자회담 재개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번에 '남북대화 우선'이라는 미국의 요구와 타협했다. 북한의 농축우라늄(UEP) 문제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하여 미국을 만족시켰다.
중국은 북한이 작년 11월 미국의 핵 전문가인 지그프리드 해커 박사에게 영변의 원심분리기 수천 대를 보여주며 UEP를 공개했을 때도 자신들이 확인하기 않았기 때문에 명확하지 않다며 이를 쟁점화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 북한 농축 우라늄에 대해 미국의 입장에 동조한 것이다.
중국이 이렇게 입장을 바꾼 것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오바마 대통령의 경고 때문이라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18일 후진타오 주석과 만찬에서 '아시아 주둔 미군 재배치와 군사훈련 강화'를 거론하면서 중국이 북한에 대해 압력을 넣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실제로 아프간스탄에서 병력을 철수하는 2015년 이후 전세계 미군의 재배치가 이루어질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 이후인 12월 6일에도 후진타오 주석과 전화통화에서 이와 같은 경고를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의 기사에 대해 오바마 정부는 시인도 부인도 안하고 있다.
중국,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중국이 '선 남북대화, 후 6자회담', 북한의 우라늄 농축 우려 표명 등에 대해 합의한 것은 중국에 큰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니다. 북한은 북미 정상회담 직후 발 빠르게 남북 군사회담을 제안했다. 또 작년 11월에 북한이 원심분리기를 공개한 것도 우라늄 농축을 쟁점화해서 협상카드를 키우기 위한 목적이었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우라늄 농축을 우려한 것은 이런 북한의 의도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즉 남북대화 재개나 북한의 농축 우라늄에 대한 언급이 중국과 북한의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 사안은 아닌 것이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미국을 만족시키고, 북한과 관계는 돈돈히 유지하면서, 주변정세를 안정시키는 중국의 국가전략도 달성하는 등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둔 셈이다.
중국 정부는 대만, 티벳, 신장위구르, 남지나해, 서해 등 5대 지역을 중국의 영토와 안보에 핵심적인 이익이 걸린 지역으로 생각하고 있다. 연평도 포격 이후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인 조지워싱턴호가 서해에서 실시된 한미 군사훈련에 참가했다. 이는 중국의 베이징, 상하이 등 주요지역이 미국의 작전반경에 포함되는 것으로 중국의 영토와 안보에 대한 위협이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미국은 서해로 진입할 명분을 얻은 것이고, 반대로 중국은 이를 저지할 명분을 잃은 것이다. 연평도 포격과 미국 항공모함의 서해진입으로 중국으로서는 한반도 정세 안정이 자신들의 핵심 이익에 대한 위협을 줄이기 위해 필수적인 것임을 확인했다. 한반도 정세가 안정되어야 경제성장, 국가이미지 개선, 소프트파워 신장에 몰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실히 판단한 것이다.
'본토 위협'을 강조하는 미국 안보 최고책임자들
그렇다면 오바마 정부가 연평도 포격이라는 북한의 나쁜 행동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에서 대화를 촉구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의 전략을 '도발 → 대화 → 경제지원 요구'로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청와대는 북한의 연평도 도발 이후 대화를 재개 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한국 등 동맹국과 관계 증진을 중요한 외교과제로 삼고 있는 오바마 정부가 대화에 대한 한국 정부의 소극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대화로 선회한 것은 그만큼 미국 내부의 절실한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에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제재 일변도의 대북정책을 재검토하는 전문가 검토회의를 가지기도 했다. 그러나 별다른 정책 전환은 보이지 않았다.
미국 내에서는 작년 하반기부터 남북대화를 촉구하는 여론이 조성되기 시작했고, 신년 초부터는 게이츠 국방장관이나 주한미군사령관 등은 북한의 위협에 대해 부쩍 강조하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의 보도와 미국 조야의 흐름이 일맥상통한 점이 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후진타오 주석에게 "북한의 잠재적 공격으로부터 '미국의 국토'(American soil)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우라늄 농축 시설, 플루토늄 핵폭탄 생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세 가지 위협으로 꼽았다. 오바마 정부는 과거와 달리 북한의 위협을 분명 상향 평가하고 있다.
신문이 전한 오바마의 이런 인식은 미중 정상회담을 조율하기 위해 연초에 중국을 방문한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의 발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게이츠 장관은 1월 11일 후 주석과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한정된 능력을 5년 이내에 개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월터 샤프 주한미군사령관은 이틀 뒤 미국 <PBS> 방송에 출연해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이 위협이 될 경우에 한미동맹은 그것을 폭파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말했다. 오바마, 게이츠, 윌터 샤프 모두 '미국 본토'가 위협받는 것을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북미 직접대화 필요성까지 나돌아
미 국방장관과 주한미군 사령관이 신년 벽두부터 북한 위협론을 강조하고 것은 국방예산을 증액하기 위한 통상적인 북한위협론과는 성격이 달라 보인다. 무엇보다도 게이츠 장관이 앞장서서 국방예산을 감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북한 위협론과 함께 미국 조야에서는 6자회담뿐만 아니라 북미 직접대화의 필요성까지 나돌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핵무기는 통상 '플루토늄 재처리/우라늄 농축 → 실험 → 무기화 → 실전배치'의 단계를 거쳐서 무기화된다고 볼 수 있다. 1990년대 초반에 시작된 북한 핵무기에 대한 논란은 플루토늄 재처리의 단계에 대한 논쟁이었다. 2000년대에는 '우라늄 농축과 실험'으로 논란이 확장되었다. 오바마 대통령, 게이츠 국방장관, 샤프 사령관의 발언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미국은 이제 북한 핵능력의 '무기화' 단계에 대한 염려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 북한이 플루토늄이나 농축 우라늄을 테러집단에 이전하는 핵확산을 염려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게이츠의 발언에 따른다면 미국은 북한이 5년 이내에 핵무기 소형화에 성공해 대륙간 탄도미사일에 장착하는 것을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무기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은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단을 수용하고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동결하면 직접대화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정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해커 박사 일행의 방북과 북한이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 12월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지사의 방북과 제임스 스타인버그 국무부 부장관의 방중 등 일련의 행보들을 거치면서 미국은 대북정책을 재검토해온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정부는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로 판단해왔다. 그래서 지난 2년간 추구한 것이 '전략적 인내'였고 그 결과는 대화 교착이었다. 오바마 정부는 북한 핵 프로그램 포기를 설득하는 것보다도 대화 교착 상태가 더욱 어렵고 위험스러운 상황을 만들었다고 평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의 많은 전문가들이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는 북한의 핵무기고만 늘려서 치러야할 위험과 지불해야할 비용만 늘릴 것이다"라고 했던 충고를 이제야 받아들인 셈이다.
오바마의 네오콘 스타인버그 국무부 부장관
미 행정부에서 한반도 문제를 총괄 조율하고 있는 스타인버그 부장관이 26일 방한하면 구체화되겠지만 미국 언론들은 오바마 정부가 한국 정부에 대해 대북접촉을 부드럽게 권고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스타인버그 부장관은 과거 부시 정부 시절의 네오콘을 연상시킬 정도로 핵심적인 대북 강경파이다. 그런 인물이 동맹국인 한국을 향해 북한과 대화를 권고하고, 북한에도 진정성 있는 대화를 촉구하는 '중재자'의 모습으로 탈바꿈 하게 될 것이다.
물론 남북 군사회담에서 천안함과 연평도에 대한 양측의 시각 차이가 좁혀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 또 청와대가 요구하는 농축 우라늄 문제를 다루기 위한 남북 별도의 고위급 대화가 열리는 것도 현재로서는 미지수이다. 남북대화가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언덕이 많고 산이 높다. 스타인버그 부장관과 한국의 당국자들은 이점에 대해 심도 깊게 협의할 것이다.
천안함과 연평도 포격, 농축 우라늄 문제에 대해 한미 양국이 만족하는 남북 사이에 합의 수준에 대해 조율할 것이다. 이 문제들에 대한 완전한 해결을 남북대화의 전제조건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남북대화를 지속하고 6자회담을 재개하기 위해 보다 완화된 수준을 찾을 것인가? 그의 방한에 주목하는 이유이다.
미중 두 강대국의 조율에 의해 만들어지는 대화 국면이지만 분쟁보다는 낫기 때문에 이를 환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외상도 새해 초부터 북일대화를 언급하고 있는 마당이다. 이들의 전략적 구상에 지금처럼 따라가기만 할 것인가? 따라가기조차 버거운 것인가? 우리 운명이 항상 그들의 계산대에서 좌지우지 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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