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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히" 요청하던 북한은 왜 돌변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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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히" 요청하던 북한은 왜 돌변했나?

[정욱식의 북핵이야기]<9> 핵무기와 강압 외교

"북한의 재래식 무기의 지속적인 쇠퇴를 고려할 때, 북한의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은 정치적 협상의 수단이라는 성격을 지닌다. 북한에 미사일 프로그램이 없다면(그리고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이 없다면), 다른 국가들은 북한과 인도적 지원 이외에 토론할 만한 것이 거의 없을 것이다."

스웨덴의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2000년 연례 보고서에서 분석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의 정치적 특성이다. 실제로 1994년 제네바 합의를 통해 북핵 문제가 해결 국면에 접어들자 북한은 미국의 관심에서 빠르게 멀어져갔다. '북한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과 함께.

그러나 곧 망할 것 같았던 북한이 1998년 8월 3단계 로켓 기술을 이용해 광명성 1호를 발사하자 미국은 다시 북한에 관심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에 힘입어 2000년에는 북미관계 정상화 일보 직전까지 갔었다. 북한은 1994년에는 핵 카드를 통해, 2000년에는 미사일 카드를 통해 외교적 목적을 달성하려고 했다.

이러한 북한의 행동을 두고 흔히 '벼랑끝 전술'이라고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로 미국을 압박하지 않으면 미국은 북한의 요구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근본적으로 미국은 북한과 친해지지 않아도 별문제가 없는 반면에, 북한은 미국과의 적대관계를 청산하지 않으면 체제 유지와 발전이 어렵다. 이러한 극단적인 불일치야말로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한반도 문제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 북한은 지난 5일 저녁 8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정전협정을 백지화하고 판문점대표부 활동도 전면 중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키리졸브 훈련이 시작된 지난 11일 북한은 판문점 직통전화를 받지 않았다. ⓒ연합뉴스

드문 표현, "정중히"

북한에 핵은 강압 외교의 핵심적인 수단이다. 강압 외교를 통해 달성하려는 목표는 북미간의 "적대관계를 평화관계로 전환"하는 데 있고, 그 핵심적인 방식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그 궤적을 추적해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된다. 평화협정 논의를 "정중히" 제안한 것이 먹혀들지 않자, 핵 위협의 수준을 높이는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북한은 2013년 들어서 핵보유국 지위로 평화협정 체결까지 욕심에 두고 있다.

북한 외무성은 2010년 1월 11일 "조선전쟁발발 60년이 되는 올해에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 위한 회담을 조속히 시작할 것을 정전협정당사국들에 정중히 제의한다"고 밝혔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조미적대관계를 해소하고 조선반도비핵화를 빠른 속도로 적극 추동하게 될 것"이고, 이를 위한 평화협정 회담을 "조속히 시작할 것"과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대담하게 근원적 문제에 손을 댈 용단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거친 외교적 언사로 유명한 북한이 "정중히"라는 표현까지 써가면서 평화협정 논의 착수를 제안한 데에는 2009년 11월 미국의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북 결과 북미 대화의 기대감이 높아진 것이 주효했다. 실제로 북한은 6자회담 복귀에 전향적인 자세를 보였고 2010년 3월에는 보즈워스의 방북에 대한 답방의 형태로 김계관 외무성 부상의 워싱턴 방문도 추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계관 방미 직전인 2010년 3월 26일 천안함이 침몰하면서 상황은 돌변했다. 김계관의 방미를 둘러싸고 오바마 행정부 내에서는 의견이 엇갈렸고, 이명박 정부는 부정적인 입장을 전달했다. 결국 김계관의 방미는 무산되고 말았다. 천안함 침몰을 북한의 소행이라고 결론내린 한미 양국은 북미·남북대화는 물론이고 6자회담 재개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자세로 돌아섰다. 당연히 북한이 제안한 평화협정 논의 제안도 묵살당했다.

그러자 북한은 2011년부터 핵 강압 외교의 수준을 크게 높이기 시작했다. 평화협정 논의 착수를 "정중히" 요청한다던 태도에서 "핵참화"를 운운하면서 미국을 압박하는 방식으로 선회한 것이다. 북한은 2011년 신년 공동사설에서 남북한의 대결 상태 및 한반도 전쟁 위기 종식을 위한 평화협정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이 땅에서 전쟁의 불집이 터지면 핵참화밖에 가져올 것이 없다"고 위협했다.

그리고 1월 말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은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에게 비밀 서한을 보냈다. 정확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국의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그 내용의 일부를 공개하고 나섰다. "'이대로 두면 한반도에 핵참화가 일어날 것'이라며 북미 직접 대화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MB 정부가 외교비밀을 공개하자 미국은 외교채널을 통해 한국 정부에 항의하는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했다. 아마도 현인택이 '외교비밀'을 언급한 사유는 북한의 호전성을 부각시켜 대북강경책을 합리화시키고 싶었던 데 있었을 것이다.

압박 수위 높이는 북한

북한이 2011년에는 "핵참화"를 앞세워 평화협정 논의를 압박했다면 2012년에는 평화협정에 대한 기대를 낮추고 핵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는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은 8월 31일 외무성 비망록을 통해 2010년 1월 11일 성명을 상기시키면서 "조선전쟁발발 60년이 되는 해에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 위한 회담을 조속히 시작할데 대한 제안도 모조리 외면하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어제도 오늘도 미국의 구태의연한 립장은 한마디로 공화국과는 그 어떤 평화협정도 시기상조이니 그저 정전상태만 잘 유지하자는것이다. 다시 말하여 우리를 계속 교전일방으로, 적으로 삼겠다는것이다"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도 미국에 최후통첩을 보냈다. "미국이 실지 행동으로 그러한(평화협정 논의) 용단을 보여준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기꺼이 화답할 준비"가 되어 있고, "미국이 끝내 옳은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경우 우리의 핵보유는 부득불 장기화되지 않을수 없게 될것이며 우리의 핵억제력은 미국이 상상도 할수 없을 정도로 현대화되고 확장될것"이라고 경고했다. 평화협정 논의에 응하든지, 북한의 핵 억제력 강화를 감수하든지 양자택일하라는 것이었다.

2013년 들어서 압박의 강도는 극단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유엔 안보리가 북한의 광명성 3-2호 발사에 대해 대북 제재 결의 2087호를 채택하자, "세계의 비핵화가 실현되기 전에는 조선반도비핵화도 불가능하다는 최종결론을 내리였다", "자주권존중과 평등의 원칙에 기초한 6자회담 9.19공동성명은 사멸되고 조선반도비핵화는 종말을 고하였다", "조선반도와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대화는 있어도 조선반도비핵화를 론의하는 대화는 없을것이다" 등의 입장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3차 핵실험에 대해 유엔 안보리가 또 다시 대북 제재 결의 2094호를 채택하자, 정전협정과 남북불가침 선언 백지화를 선언하고, "서울 불바다", "워싱턴 불바다", "핵선제타격" 등 극단적인 표현을 동원해 위협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평화협정에서 멀어지는 미국

이처럼 북한은 평화협정 체결을 목표로 미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미국의 반응은 냉랭하다. 오바마 행정부는 1기 출범 직후인 2009년 2월 "북한이 진정으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게 핵무기 프로그램을 제거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미국은 양자 관계를 정상화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며, 다른 나라들과 함께 북한 주민들의 에너지 수요와 경제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지원에 나설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준비가 되어 있다면"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것인데, 이는 북한의 핵폐기 완료 이후 평화협정을 체결할 의사가 있다던 부시 행정부 때보다 진일보한 것이었다.

그러나 2기 오바마 행정부는 평화협정이나 관계 정상화를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3월 11일 뉴욕 아시아 소사이어티 연설에 나선 톰 도닐런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은 미얀마 모델을 강조하면서 "북한이 지금의 길을 바꾸면 경제지원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3월 13일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확실히 하려는 것은 나쁜 행동에 보상하지 않는 것"이라며, "과거 북한은 숟가락으로 탁자를 탕탕 치고 나서 돌연 식량지원을 받아냈다. 다시 탁자로 돌아와 잠깐 협상하다 지루해지면 또 도발을 시작했다. 우리는 이러한 패턴을 깼다"고 주장했다. 이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의도가 경제적 지원을 받아내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며, 북한이 이러한 길을 포기하면 경제지원에 나설 용의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북한의 반응 역시 싸늘하다. 3월 16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는 "우리가 그 무슨 경제적 혜택과 바꿔먹기 위한 흥정물로 핵을 보유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허황하기 그지없는 오산"이라며 "우리가 다른 길을 택하면 도와주겠다는 미국의 서푼짜리 유혹이 다른 나라들에는 통할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개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미얀마를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최근 미국 정부가 미얀마 모델을 강조한 것에 대한 반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1기 출범 직후에는 평화협정에 대한 적극적인 의사를 피력했던 오바마 행정부는 시간이 지나면서 왜 이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 있는 것일까? 일단 오바마 행정부는 2009년 초에 자신의 포괄적인 문제 해결과 대화 의지에 대해 북한이 로켓 발사와 핵실험으로 응한 것에 깊은 실망감을 토로해왔다. 또한 이명박 정부의 평화협정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 역시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실제로 이명박-오바마 시기의 주요 한미간 성명 어디에도 평화협정이나 평화체제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없다. 이는 노무현-부시 시기와도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보다 전략적인 이유가 숨어있을 가능성이 높다. 2010년부터 중국 견제 및 봉쇄를 위해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를 추진했던 오바마 행정부는 2011년부터 이를 공식화했다. 그런데 '재균형(rebalance)'이라고도 불리는 이 전략은 한반도 평화협정과 상당한 긴장관계가 있다. 미국은 아시아 전략의 핵심축을 한미동맹과 미일동맹, 그리고 한일 군사협력 강화를 통해 한-미-일 3각 관계 구축에 두고 있다.

이는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로 한미일 3자 관계 설계자 가운데 한 사람인 커트 캠벨의 공개적인 발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2011년 3월 1일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우리는 (한미일) 3자 협력을 증진하기 위해 야심에 찬 조치들을 취할 것"이라며 "3자 협력의 제도화는 앞으로 미국 외교정책의 중요한 초점이자 클린턴 국무장관이 한국 및 일본의 외교장관을 만날 때의 대화 포인트"라고 말했다. 캠벨은 2012년 6월 13일 미국신안보센터 연설에서도 "21세기의 알짜배기(lion's share) 역사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쓰여질 것"이라며,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일본-한국이다. 물론 미국은 이들 두 나라와 매우 강력한 관계를 공유하고 있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은 보다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한일 관계"라고 말했다. 그리고 2기 오바마 행정부 들어서도 대북정책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한-미-일 3각 공조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전략에 있어서 '북한위협론'은 더없이 좋은 소재이다. 우선 북한 위협이 증대될수록 미국은 한국과 일본에 대한 안보 공약 재확인을 통해 이들 동맹국에 대한 영향력을 높일 수 있다. 또한 한국과 일본의 군비증강으로 미국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한일 군사정보호협정 추진 움직임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한일간에 '금기의 벽'을 깨는 데에도 가장 중요한 구실이 되고 있다. 이는 미사일방어체제(MD)를 고리로 삼아 한-미-일 3각 동맹 구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반해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움직임이 본격화되어 북한 위협이 상당 부분 완화되거나 해결되면 미국의 아시아 전략은 근본적인 도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우선 평화협정 체결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의 상당한 수준의 해결을 동반할 것이라는 점에서 MD를 핵심으로 하는 한-미-일 3각 동맹 구축 시도가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또한 천안함 침몰이 오키나와 미국 재배치 계획에서 미국의 의도를 관철하는데 이용된 것과는 달리, 평화협정을 통한 한반도 정세의 안정화는 미일동맹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평화협정 체결은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감축 요구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만약 미국이 한반도 평화협정에도 불구하고 군사력을 앞세운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밀어붙이면 미중관계는 일대 파란을 겪을 수밖에 없고, 이는 미국에도 엄청난 부담이다.

이처럼 미국이 아시아 전략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 한반도 평화협정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한다면, 북핵 문제의 해결 전망은 더더욱 어두워지고 이에 따라 한반도 위기는 상시화될 공산이 크다. 따라서 관건은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보이면 미국도 평화협정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일 것인가'이다. 이는 거꾸로 '미국이 평화협정에 대해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이면 북한은 핵포기 결단을 내릴 수 있느냐'는 질문으로도 이어진다.

최근 몇 년간의 국면은 좋지 않다. 미국은 평화협정을 비롯한 북한과의 근본적인 관계 개선에 대한 흥미를 거의 잃어가고 있고, 북한은 핵보유에 대한 집착을 더욱 강하게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둘 사이의 괴리를 메워 협상의 가교를 놓아야 할 당사자는 바로 한국이다. 한국엔 한반도 평화협정과 비핵화 모두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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