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잉글랜드 고등법원은 16일(현지시각) 어산지의 보석을 허용돼서는 안 된다는 검찰 측의 주장을 기각했다. 이 나라 웨스트민스터 치안법원은 앞서 14일 어산지의 보석을 허가했으나 검찰은 도주 우려가 있다며 항소했다.
고등법원의 던칸 우슬리 판사는 "어산지가 법정에 출석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그는 분명히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 싶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슬리 판사는 또한 "(만약 그가 도주한다면) 그의 많은 지지자들의 눈으로부터 스스로의 명성을 실추시키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법원의 결정에 따라 이날 오후 6시경 석방된 어산지는 법원 앞 계단에서 언론 인터뷰에 응하며 "런던의 신선한 공기를 다시 맡게 돼 매우 좋다"고 말하고 "나를 믿어준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한다"고 밝혔다.
어산지는 그의 변호사들이 "용감하고 성공적인 법정투쟁"을 보여줬다고 감사의 뜻을 전하고 보석금과 보증금 등을 통해 재정적인 지원을 해준 사람들에게도 "크나큰 어려움과 부담(aversion)을 무릅쓰고" 자신을 도와준 것에 대해 고맙다고 말했다.
어산지는 자신의 보석 결정에 대해 "언제나 정의가 결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아직 죽지는 않았다"고 평가하며 "내가 해왔던 일을 계속하기를, 또 내 결백을 증명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영국 <BBC>방송은 어산지가 풀려난 후 영국 언론인 회관 격의 건물인 '프런트라인 클럽'에서 축하주로 칵테일을 마시기 위해 계단을 뛰어올라갔다고 말했다. 이 건물은 그의 보증금을 납부해 주고 보석 기간 동안 거처를 제공해 주기도 한 영국 언론인 본 스미스 소유다. 그는 어산지의 친구이기도 하다. 이후 그는 건물 밖으로 나와 언론인들과 간단한 대화를 나눴다.
어산지는 프런트라인 클럽 앞에서 이뤄진 BBC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없어도 (위키리크스) 조직은 잘 돌아간다는 것을 우리는 확인했다"며 "이는 우리 조직이 수뇌부를 노린 공격에도 버텨낼 수 있는 회복력을 가졌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 16일 오후(현지시각) 풀려난 줄리언 어산지가 자신의 보석 허가 서류를 들어 보이며 웃음짓고 있다 ⓒEPA=연합뉴스 |
어산지 "시련은 나를 단련시켰다"
몇 시간 후 어산지는 보석 기간 동안 그가 거주할 스미스 소유의 맨션에 도착했다. 맨션은 런던 중심부에서 북동쪽으로 약 195km 떨어진 곳에 있다. 어산지는 이 곳에 도착한 후에도 언론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감옥에서의 시간들은 스스로를 단련시켰다(steel)고 말했다. 이 경험을 통해 그는 자신의 철학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고 말하고 구금된 상태에 대해 매우 화가 났었다며 "(그) 분노는 나를 100년 정도 버티게(last)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어산지는 이 곳에서 전자 태그를 부착하고 외출과 여행이 제한되는 보석 생활에 들어간다. 그는 또한 매일 저녁 경찰서에 직접 자신의 상태를 보고해야 할 의무도 있다. 그러나 그는 인터넷을 통해 활동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크리스틴 흐라픈손 위키리크스 대변인은 어산지의 보석 조건이 "사실상 가택 연금과 다를바 없다"(virtual house arrest)며 비난했지만 스미스의 맨션에서 인터넷을 통해 활동을 계속할 것이라며 "그 맨션은 인터넷 접속이 매우 잘 된다"고 덧붙였다.
어산지의 변호사 마크 스티븐스는 어산지의 보석에 대한 항소는 그에 대한 "복수"라고 말했다. 항소는 당초 스웨덴 검찰로부터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스웨덴 검찰청 관계자 닐스 레케는 "항소는 순전히 영국 당국의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16일 스웨덴 검찰청 대변인은 "스웨덴 왕립검찰청은 스웨덴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으며 검찰 책임자(Director of Prosecution)은 오늘 오전 어산지의 보석에 대한 항소를 완전히 지지한다"고 말했다.
어산지의 보석 후 그의 어머니 크리스틴은 "매우, 매우 기쁘다"며 "아들을 만나 안아주고 싶다"고 말했다. 크리스틴은 "나는 영국 사법 당국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었으며 고등법원도 치안판사의 결정을 지지할 것이라고 믿었는데 나의 믿음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성범죄 혐의로 어산지를 고소한 두 명의 여성의 법정 대리인인 젬마 린드필드 변호사는 어산지가 도주할 "실질적인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린드필드 변호사는 그가 이 나라 저 나라를 돌아다니는(유랑하는) 삶을 살아 왔다고 지적하며 어산지는 "(도주에 필요한) 능력과 수단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 법무부 공격 계속?…일부 위키리크스 출신들 '어산지도 비민주적 인물'
한편 15일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미국 연방검찰이 어산지가 기밀문건 유출 혐의로 구속 중인 브래들리 매닝 일병과 공모했다는 증거를 찾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익명의 법무부 소식통을 통해, 미 사법 당국은 어산지가 매닝 일병으로 하여금 비밀 자료를 군 내부전산망에서 빼내도록 부추기거나 도움을 줬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사법 당국은 관련 정황을 파악 중에 있으며 만약 어산지가 매닝 일병을 부추긴 것이 사실이라면 단순히 유출된 문건을 수동적으로 넘겨받아 공개한 것과는 달리 문건 유출을 사주하거나 함께 모의한 '교사범' 또는 '공범' 혐의를 적용받을 수 있다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 그러나 법무부 측은 해당 보도에 대해 공식 답변을 거부했다.
이와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어산지에 대한 뼈아픈 공격도 제기됐다. 일부 위키리크스 출신 활동가들은 어산지의 독단적인 위키리크스 운영 방침에 불만을 품고 새로운 정보공개 사이트 '오픈리크스(OpenLeaks)'를 출범시킬 계획이라고 미국 <ABC> 방송이 14일 보도했다.
위키리크스 창립 당시부터 어산지와 함께 활동했던 독일인 돔샤이트 베르크는 "지금의 그는 내가 처음 만났을 때와는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어산지는 위키리크스 내부에서 그에 관해 뭔가를 폭로하면 화를 냈다'며 자신이 언론매체에 그를 부정적으로 묘사했는지를 추궁하며 어산지가 "나는 지금 심각한 보안위반 사항을 조사하고 있는 중이야, 대답 안 할 거야?"라고 말한 적도 있다고 주장했다.
일부에선 어산지가 위키리크스를 개인숭배의 장으로 만들었다는 비난과 함께 모금한 돈의 사용처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어산지의 자기 중심주의는 통제 불능이라며 한 직원은 "그는 '내가 이 조직의 심장이자 영혼'이라고 말하곤 했다"며 어산지가 "'나와 안 맞으면 꺼지면 돼'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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