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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승부수를 던졌다, 우리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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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북한은 승부수를 던졌다, 우리의 선택은?

[한반도 브리핑]

북한의 포 사격은 어디를 향했을까? 무슨 뜬금없는 질문인가 의아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의 포 사격은 물론 연평도를 향했다. 그리고 그것은 민간인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용납하기 어려운 도발이며, 남북관계의 넘어서는 안 될 '레드라인'을 넘은 것이다. 안타깝게도 북한은 또다시 평화적 방법을 통한 문제해결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들고 대북강경론자들의 입지를 강화해버렸다.

냉전이 종식된지 20년이 흘렀어도, 그리고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했음에도 북한정권은 교류와 협상을 통한 이득보다 여전히 대치와 적대적 공생으로 얻는 이득이 훨씬 더 많다고 판단하는 모양이다. 인명과 재산을 앗아간 사건 자체도 비극적이지만 남북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한계를 절감하게 만든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제 협상론은 상당기간 꺼내기조차 어렵게 되어버렸다. 이명박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전임정부의 햇볕정책 탓을 하며 자신의 대북강경책이 얼마나 옳은지 강변하고 압박의 수위를 더욱 높여야 한다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이런 악수(惡手)를 두었을까? 우리 입장에서 보면 악수이지만 그들에게는 분명 의도와 목적을 가진 행위일 것이다. 이번 도발은 과거 서해에서의 충돌보다 더 주도면밀하게 계획된 행위라는 점에서 원인을 보다 면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포신은 물리적으로 연평도를 향했지만 그 전략적 함의는 여러 방향을 노렸다.

▲ 지난달 23일 북한군의 포격으로 인해 연기가 피어오르는 연평도 ⓒ뉴시스

남한 정부를 향한 발포

먼저 이번 포격에는 북한이 이명박 정부에게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선언이 담겨있다. 북한에 대한 후(後) 보상의 막대함을 강조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엄격한 선(先)핵폐기론을 고집하며 북한의 굴복을 전제한 강경노선으로 인해 남북관계에는 어떤 연결고리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지난 10년 간의 남북관계를 '잃어버린 시간'으로 규정하고 정상회담이 아닌 남북기본합의서를 계승하겠다는 정책에서 북한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김정일 정권은 80년대 말과 90년대 초 외교적 고립과 파탄에 가까운 대내적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대미협상에 매달렸다. 생존을 위해 대규모 변화와 개방이 절실했지만 이를 허용할 경우 자신도 동유럽의 독재자들과 같은 운명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꺼낸 카드가 핵무기였다. 핵개발을 통해서 개방과 개혁을 하더라도 자신이 주도권을 가지고 페이스를 조절하겠다는 것이다.

핵을 놓고 줄다리기를 한 20년 동안 많은 굴곡들을 겪으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핵을 보유한 셈이 되었지만 원래 목적이었던 생존에 대한 보장은 여전히 불안하고 미완성인 상태다. 게다가 권력 이양의 문제까지 겹쳤다. 부시 정부 8년을 버틴 후 오바마 정부에게 기대를 했지만, 미국의 정책 부재 속에 남한 정부가 강경국면을 주도하는 상황이 계속되는 데 대한 불만이 북한 내에서는 축적됐을 것이다. 국면전환이 불가능하다면 결국 권력이양을 위해 '적대적 공생'의 이득이라도 챙기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듯하다.

북한 내부를 향한 발포

이번 포격은 또한 북한 내부의 권력승계 과정에서의 내부단속을 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 9월 김정은으로의 3대 세습 공식화의 전격성에 비해 후계 작업은 적어도 외관상으로 큰 난관 없이 무난하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뭔가 부족하다는 판단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 이유가 실제로 북한내부의 불만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앞으로 발생할 상황을 차단하려는 보험용인지 현재로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이번 도발은 대외적 긴장조성을 통해 대내적 체제통합을 이루려는 북한의 전형적인 수법의 성격이 있다. 북한이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해 김정은의 공적을 치켜세우는 것과 함께 주체사상과 경제자립을 연일 강조하고 있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아닌 게 아니라 대외 개혁개방 국면에서 김정은에게 권력이 이양될 경우 권력기반이 약한 그가 심각한 저항에 직면하거나 주도권을 상실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폐쇄적 방식을 통해 권력을 공고하게 만든 차후에 김정은이 국면을 주도할 수 있을 것으로 계산했을 것이다.

미국을 향한 발포

이번 도발은 또한 미국에 대한 무력시위의 측면이 상당부분 존재한다. 오바마 행정부의 지난 2년 간의 대북정책은 이른바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였다. 말은 그럴 듯하지만 이는 출범 전에 천명했던 직접협상을 통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문제해결을 회피한 채 대북제재의 틀을 유지하며 북한의 자발적 비핵화나 또는 북한정권의 급변사태를 기다리겠다는 거의 무정책에 가까웠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임기 말, 일반의 예상을 깨고 순항하던 2.13 합의가 시료채취와 검증합의서 채택문제로 교착상태에 빠진 것은 당시 워싱턴 내부 강경파에 의한 저항도 있었지만 새로이 등장하는 오바마 행정부를 상대하겠다는 북한의 의지도 작용했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시급한 국내문제에 대외정책이 희생되는 국면이 지속되면서 대북문제는 계속 뒤로 밀려버렸다.

북한이슈가 급박한 위기국면이 아니라면 미국 대외정책의 우선순위가 되기 어렵다는 근본적인 한계를 재확인한 북한은 2차 핵실험을 감행함으로써 위기국면을 조성해 순위를 끌어올리려 했다. 하지만 미국은 여전히 자신은 나서지 않고 한국을 등에 업는 강경책과 중국을 등에 업는 협상책이라는 두 트랙을 '외교 아웃소싱'을 통해 지속했다. 2009년 8월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이 국면전환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했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남북정상회담이나 북미 고위급대화, 그리고 6자회담의 재개 등 소문만 무성한 채 시간만 흘러가다가 결국 천안함 사태로 상황은 더 악화되고 말았다.

이런 맥락에서 연평도 포격은 수일 전 대규모 농축우라늄 생산시설을 공개한 것과 함께 북한이 미국에게 던진 또 다른 승부수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마지막 승부수라고 단언하기는 어려워도 지금까지의 시도 중 가장 강력한 것만은 틀림없다. 민간인을 공격한 것은 물론이고 농축우라늄시설을 공개한 것 역시 2차례의 플루토늄 핵폭탄 실험과는 또 다른 차원이다. 우라늄 농축은 미국이 '핵보유'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보는 '핵확산' 문제와 깊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북한 핵개발이 과연 협상용인가 아니면 보유용인가의 이분법적 논쟁에 매달리면 본질을 보지 못한다. 북한은 두 가지 모두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봐야 한다. 제2의 인도나 파키스탄이 된다면 북한 입장에서는 최상의 시나리오일 것이고 포기국면이 된다 하더라도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할수록 받을 보상이 커진다고 믿기 때문에 양자가 전적으로 배타적인 관계인 것은 아니다.

중국을 향한 발포

마지막으로 이번 사건이 북중관계에서 가지는 함의에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포격에 대한 유관국들의 한결같은 반응은 중국이 북한에게 압력을 행사하라는 주문이었다. 상대적으로 중국이 북한에 대한 레버리지(영향력, 본래 뜻은 지렛대)를 갖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 지렛대의 효용성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 한미 양 국 역시 중국의 대북영향력을 과대평가하다 보니 처음의 기대가 중국의 행보에 대한 배신감으로 이어지는 형국이다.

대북제재가 장기화되면서 북한의 중국에 대한 의존이 심화되고 있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북미 및 남북관계가 경색된 현 상황에서 북한에게 다른 선택이 없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이를 무조건 수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지난 5월과 8월 김정일이 중국을 두 차례 방문했던 것에 대한 항간의 분석들에 문제가 없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알려진 대로 김정일의 중국방문의 핵심은 후계구도의 인정과 경제지원을 위한 것이었다. 중국은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는 조건으로 개혁개방을 종용하고 6자회담으로 복귀할 것을 주문했을 것이다. 중국방문 이후 북한이 여러 번 6자회담에의 복귀 의사를 피력한 일이나 남북 이산가족 상봉의 재개 등으로 남북화해의 노력을 보이려 했던 것은 이를 간접적으로 증명한다.

하지만 북한이 중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우려하고 있다는 점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김정일이 중국방문에서 돌아온 이후 북한은 어느 때보다 외부의 영향을 배제한 주체사상에 의한 자립경제를 강조했다. 특히 김정일이 귀국 직후인 9월 초에 실시한 자강도 현지지도는 과거에도 자립노선을 강조할 때 반드시 이 지방을 방문했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즉 북한이 중국에 대한 일방적 의존을 결코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뜻이며, 더 크게 보면 중국과 미국 사이의 '헤징전략(hedging strategy)'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북한은 과거에도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실리를 챙긴 헤징전략의 명수다.

북한이 중국의 경제지원을 조건으로 한 요구사항을 받아들였다면 불과 3개월 만에 일어난 연평도 포격사건을 이해하기 어렵다. 북한이 중국의 전적인 영향력 확대를 원치 않는다는 점에서 이번 연평도 사건을 봐야 한다. 연평도 사건 이후 다이빙궈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의 북한 방문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다이 위원은 포격 불과 나흘 뒤인 지난달 27일 한국을 방문했지만 북한 방문은 12월 9일에야 성사되었다. 중국이 국제사회의 우려를 전하고 도발 자제를 요구할 것을 알고 있는 북한이 의도적으로 회피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다이빙궈의 방북이 유력했던 11월 30일부터 일 주일간 김정일은 지방 현지지도를 실시했고 이를 중앙통신을 통해 공개했다. 앞에서 '자강도 방문'이 주체사상을 고취할 때의 카드로 사용되는 예와 유사하게, 지방 현지지도는 외국 고위인사를 만나기 거북할 때 종종 꺼내 드는 카드다. 중국은 내심 북한의 저항을 괘씸하게 생각하겠지만 북한을 결코 포기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북한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오히려 이번 일로 말미암아 북한을 달래기 위해 더 많은 지원을 할 가능성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다.

추가도발, 확전, 아니면 전화위복의 계기?

지금까지 연평도 포격사건이 남북한과 중국, 그리고 미국에게 가지는 다면적 함의를 살펴보았다. 이런 모든 점을 북한이 진정 의도했을까하는 의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번 사태가 가져온 결과에 있다. 즉 어떤 의도에서였든지 간에 북한은 승부수를 던졌고, 이제 우리의 선택이 남아있다.

선택지는 여전히 강온전략 중의 하나일 수밖에 없지만 어느 쪽도 쉽지 않다. 민간인 희생까지 초래한 도발로 강경론이 어느 때보다 정당성을 얻고는 있다. 하지만 워싱턴에서조차 시인하듯이, 당위론과는 달리 실제적으로 현 경제 제재를 넘어서는 수준의 조치가 별로 없다. 그렇다고 군사제재를 감행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이고 미국도 찬성할 리 없다. 특히 미국은 포격 직후에 한국이 공습으로 대응하려 했던 것을 제지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협상을 선택하는 것에도 이에 못지않은 어려움이 있다. 6자회담에 복귀해서 문제를 다루자니 협상재개 자체가 북한의 나쁜 행동에 대한 보상이 되어버렸다. 우라늄 농축시설 문제까지 추가되어 6자회담에의 복귀가 한미 양 국에게는 그야말로 굴복처럼 보일 수 있다.

이렇게 두 선택 모두 장애물이 있지만 전쟁하자는 것이 아니라면 결국 협상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현 시점에서 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북미 간 비밀협상이다. 오바마 행정부 출범 전부터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를 다자주의 외교로 대체한 것은 옳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대북문제에 관해서 UN이나 6자회담 같은 다자체제가 무력했던 것은 북미 양자가 먼저 매듭을 풀어야만 해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선 매듭을 북미양자회담으로 풀고 6자회담으로 마무리를 하는 것이 맞다. 경고와 맞경고로 이어지는 자존심 대결로 상황을 악화시키지 말고 일단 비밀협상을 통해 북한의 도발에 대한 강력한 경고는 경고대로 해야 한다. 실질적인 해결의 접점을 모색해야 그나마 답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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