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이번에 북한이 대한민국 영토에 포격을 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며 "북한에서 무슨 의도로 했건 잘못한 것이다. 그런다고 우리 정부가 굴복할 리도 없고 오히려 국민들로부터 적개심·분노심만 불러일으켰다"며 분노와 함께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임 전 장관은 그러나 이제까지 북한과의 관계에서 제재와 압박만으로는 북핵개발이나 남북관계 개선에서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 없었다면서 군사력 증강에 의한 문제 해결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고 계기가 마련되면 협상과 대화를 통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을 위한 첫 단계로 '갈등의 서해'를 '평화협력의 서해'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만일 이명박정부가 지난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구상을 실천에 옮겼더라면 이번 연평도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 체제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 1단계는 서해바다를 평화의 바다로 만드는 것입니다. 긴장과 충돌의 바다를 평화의 바다로 만들어야 해요. 그게 첫걸음입니다. 문제는 이 정부에 그럴 의지가 있냐는 데 있습니다."
한편 임 전 장관은 북한의 추가 핵실험에 대한 경계심도 늦추지 않았다. 현재와 같은 남북및 북미 대결 상태가 지속된다면 북한의 3차 핵실험은 '시간 문제일 뿐, 반드시 할 것'이란 경고다. 인도, 파키스탄 등의 비공식 핵보유국들이 7,8차례의 핵실험 끝에 핵무기를 손에 넣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그리고 지금까지처럼 북한의 핵개발을 방치해둔 채 실효성 없는 압박과 제재만을 고집한다면 북한은 핵무기를 확보할 때까지 앞으로도 계속 핵실험에 나서리라는 것이다.
임동원 전 장관은 클린턴 전 대통령이 94년 제네바 핵합의로 북한의 핵개발을 제1단계에서 8년간 묶어둔 반면, 부시 전 대통령은 2002년 우라늄농축을 빌미로 한 대북 강경책으로 제네바합의를 파탄으로 이끌면서 북한의 핵개발이 2006년 3단계까지(핵폭탄 실험) 발전하도록 도와주었다(?)면서 현재와 같은 이른바 '전략적 인내'로는 북한의 핵개발을 결코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점점 사태가 악화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전환의 기회는 오리라고 보고, 또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현재의 사태를 바라보는 임동원 전 장관의 진심 어린, 간절한 충고였다.
다음은 지난 26일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가 진행한 인터뷰 전문이다. <편집자>
▲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현 한반도평화포럼 공동대표 ⓒ프레시안(최형락) |
"청와대 '우라늄 농축 은폐' 의혹 제기는 뭘 잘 모르고 하는 소리"
프레시안 : 얼마 전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이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북한의 우라늄 농측 사실을 알고도 은폐했다는 의혹을 제기해 26일 반박문을 발표하신 것으로 안다. 일각에서는 우라늄 농축 뿐 아니라 이번 연평도 사태도 햇볕정책 때문이라며 자꾸 모든 책임을 이전 정부로 돌리고 있는데.
임동원 : 이 정부가 집권한 지 벌써 3년이 다 돼 가는데 항상 모든 것을 전 정부에 뒤집어씌우는 그런 식으로는 참 곤란하다. 3년 동안 무슨 일인들 못하겠는가. 의원내각제 하는 유럽 국가들 보면 1년 만에도 정권이 바뀌기도 하고 그런데도 정책을 입안하고 할 일을 다 한다. 3년은 긴 세월이다.
(이 정부는) 출발할 때부터 이전 정부를 부정하면서 출발했다. 부정하는 건 좋은데, 그러면 3년 동안 뭔가 긍정적인 것을 했어야 할 것 아닌가. 잘 안 되면 과거의 잘못 때문이라고 하는 것은 곤란하다. 우라늄 농축 은폐 의혹 제기 같은 것은 뭔가를 잘못 알고 얘기한 것 같다.
프레시안 : 지그프리드 헤커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소장의 방북 보고서를 보면 북한 관리들이 현재의 우라늄 농축 시설을 2009년 4월부터 짓기 시작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유엔에서 (북한의 '광명성 2호' 발사와 관련해) 안보리 의장 성명을 채택하고 북한에 대한 경제적 제재를 했을 때 아닌가.
임동원 : 그렇다. 실제로 그때부터 지은 것으로 본다. 이번에 헤커 박사가 방북하기 겨우 며칠 전에 완공됐다는데, 그러면 (북한의 시설 착공 시점이 남한의 정권교체 이후이므로) 이전 정부에서는 숨길 것도 없다. 뭘 모르고 하는 소리다.
다만 인정하는 것은 이전 정권 때도 북한이 UEP를 추진하려고 하는 '의도'는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프로그램을 추진할 능력은 없었고 갖추는 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최근 2년 동안에 프로그램을 추진한 것이다.
헤커 박사의 보고서를 보면 북한의 기술로는 원심분리기를 만들지 못했을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는데, 그럼 이 원심분리기가 어디서 나왔겠느냐. 어딘가 외국에서 들여온 것 같은데 그렇다면 유엔의 무역 제재조치를 어떻게 뚫었는가가 또 수수께끼다. 진상을 알 재간은 없지만 상황으로 본다면 유엔 제재도 무력하지 않나 싶다.
"미국이 알려줬다고? 증거도 없었다"
프레시안 : 발표문을 보면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은 1997년부터 미국 언론에 보도가 됐고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가 2002년 방한했을 때 관련 정보를 알려줬다고 돼 있지만 그건 확실한 게 아니었다고 돼 있다.
임동원 : 사실 그 당시에는 남북관계가 활기를 띠고 있었고 2002년 8월 30일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도 북일 정상회담을 위해 9월 17일 평양을 방문한다는 계획까지 발표됐다. 그런데 그 직전에 미 국무부 내 대북 강경파인 존 볼튼 국제안보담당 차관이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국방부 장관 등에게 "북한이 1997년부터 추진해 온 고농축우라늄(HEU) 생산 계획이 우려할 만한 수준에 이르렀다"며 "이는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장애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 일정이 알려진 다음에 이를 저지할 목적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 그 무렵 한국 정부가 남북 철도를 연결하기 위해 비무장지대의 지뢰를 제거하려 할 때도 (볼튼 차관 등은)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당시 우리 정부는 미국 측의 그런 행태에 대해서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양국 정보기관끼리 먼저 협조해서 우리 정보기관이 (미국 측으로부터 얻은 정보를) 우리 정부에 보고하는 것이 정상적인 정보공유의 과정인데, 정치인인 볼튼 차관이 서울에 와서 한국 국방부 장관과 외교통상부 차관보에게 말한 것은 좀 이례적이다. 게다가 방한 목적도 '강연'이었다.
북한의 HEU 생산 의혹은 1997년 <워싱턴타임스>가 이틀 동안 1면 머리기사로 싣는 등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전세계에 알려졌고 그때부터 한미 양쪽 정보기관이 꾸준히 추적해 왔다. 양국 정보기관은 정기적으로 정보교류 및 평가회의를 하는 등 협력을 강화해 왔다. 2002년 6월경 까지는 진전된 정보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이 6월 당시 한미 정보기관 간의 회의 내용이었다.
그런데 볼튼 차관이 이상한 발언을 하길래 우리 정보기관에 확인해 보니 정보기관 사이에는 그런 정보교류가 없었다는 것이다. 미국 측에서 정보를 공식으로 통보해 주지도 않은 것이다.
같은해 10월 3~5일로 예정된 방북을 앞두고 켈리 차관보가 서울에 들렀다. 부시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전화해서 '대담한 접근'을 하겠다며 특사를 보내겠다고 해서 '이제 드디어 북미 간의 긴장관계를 해소하기 위해 특사를 보내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 전까지는 한국 정부가 북한과 대화하고 협상하라고 해도 안 된다는 것이 부시 행정부의 입장이었고 또 북한은 '악의 축'이며 선제적 군사공격으로 제거해야 할 정권이라는 것이 '부시 독트린'의 입장이었지 않나. 볼튼 차관은 '이라크 다음에는 북한이다'는 말까지 했다. 그래서 우리 정부는 켈리 차관보의 방북을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유화적 제스처로 보고) 내심 반겼다.
그런데 정작 켈리 차관보를 만나 보니 그런 게 전혀 아니었다. '북한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을 추진한다는 것을 미국은 알고 있으며, 이를 폐기하지 않으면 대화는 없다'고 통보하러 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만약 북한이 UEP를 추진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왜 정보기관끼리의 정보 교환이 없는가, 한국 정부에 정식으로 정보를 제공해야 하지 않는가' 하고 물었더니 결국 켈리 특사의 방북 이후인 10월 7일에 미국 중앙정보국(CIA) 팀이 서울에 와서 우리 정부 당국자들에게 브리핑을 했다.
그 첫 브리핑을 나도 같이 들었다. (임 전 장관은 당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역으로 재임 중이었다.) 브리핑 내용은 '북한이 지하에 HEU 생산 시설을 건설하는 중이며 원심분리기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또 CIA는 북한이 2005년부터는 1년에 핵폭탄을 2개씩 생산할 수 있는 고농축 우라늄(HEU)을 생산할 것이라는 정보판단을 전했다.
그래서 '이것은 보통 심각한 게 아닌데 증거는 있는가' 하고 물었더니 확증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국가정보원 원장까지 지낸 사람인데, 불확실한 첩보 수준의 것을 가지고 정치적으로 해석해서 정보라고 하면 되느냐, 참고는 하겠지만 이런 수준의 정보를 근거로 대북정책을 바꿀 수는 없다'라고 못을 박았다.
미국이 제기한 잘못된 첩보인 북한의 '금창리 지하 핵시설 의혹' 때문에 1998년에도 전쟁이 일어날 뻔했다. 그것이 당시로부터 불과 4년 전의 일이었다. 미국에서 식량 60만t 을 북한에 제공해 주고 그 대가로 현장에 가서 조사했더니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이런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되며 북미간 긴장관계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북한 핵개발은 용납할 수 없다. 그러나 확증이 있는 정보를 가지고 대처해야 하지 않겠나. 지금부터 긴밀히 정보협력을 유지해서 확증을 먼저 확보한 후에 대책을 논의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당시 이런 내 생각을 미국 측에 전달했다. 그런데 뭐, 미국이 말을 듣나. (웃음) 그냥 미국 네오콘들이 처음에 계획한 대로 끌고 가는 것으로 미국 대북정책은 정해졌다.
당시 우리 정부가 걱정한 것은 북미 간의 '제네바합의'가 깨지는 것이었다. 제네바합의의 골자는 북이 풀루토늄 생산 등 핵활동을 중단하는 대신 한미 등 서방측이 경수로를 지어주기로 한 것인데 만일 이 합의가 깨지면 북한은 (1994년 이후) 8년 동안 중단했던 플루토늄 핵 활동을 재개할 것이라고 보았다. 당시 상황에서 플루토늄 프로그램 재개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인 반면 UEP는 아직 의혹 제기 수준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릴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급한 건 북한의 플루토늄 프로그램을 막는 것이라 판단 하에 제네바 합의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것을 우려해서 신중하게 대응하자고 한 것인데 미국은 경수로 제공 프로그램을 중지하고 중유 공급도 중단하는 등 '막 나갔다.' 결국 2003년 1월에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을 하고 핵개발을 재개해서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을 하지 않았나. 그래서 미국에서는 북한의 핵폭탄을 '부시의 핵폭탄'이라고들 부른다. 부시행정부의 대책 없는 대북 강경책이 북한의 핵개발을 도와줬다는 의미다.
프레시안 : 2002년 북한의 UEP 관련 정보를 공개한 것은 미국 네오콘들이 남북관계 및 북일관계의 진전을 막기 위한 움직임이었다는 것인가?
임동원 : 그런 면이 있다. 이후 미국 내에서도 북한의 우라늄 농축에 관한 정보의 정확성과 관련해 논란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예를 들어 2007년에도 미국 <뉴욕타임스>에 이 논란을 다룬 기사가 나왔다.
프레시안 : 노무현 정부 때는 북한의 UEP와 관련된 의혹이 제기된 적이 없나?
임동원 : 그런 적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 때 문제는 플루토늄이었기 때문이다. 2005년 9.19 선언에서 합의한 것이나 북한이 핵실험을 한 것은 모두 플루토늄과 관계된 것이다. 물론 6자회담을 시작할 때는 UEP를 핑계삼아 시작했지만 논의 과정에서 플루토늄 관련 얘기만 나오고 우라늄 프로그램 논의는 얘기는 물에 잠겼다.
당시 북한의 UEP 관련 정보의 신뢰도가 높지 않다는 증언도 나왔다. '중간 정도'의 정확성을 가진 정보라고 신뢰도가 하향조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조지프 데트라니 전 미국 6자회담 대사가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또 오바마 행정부 들어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도 2009년 2월 한중일 3개국 순방 당시 일본 도쿄에서 기자회견하면서 북한 UEP 정보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으며 이에 대해 미 정보기구 내에서도 논쟁이 많다'고 말했다. 또 클린턴 장관은 부시 행정부가 대북정책을 잘 못해서 (북한 핵개발이라는) 이런 사태를 초래했다는 요지의 발언도 했다.
"햇볕정책 때문이라고? 그게 말이 되겠나. 허허허…"
프레시안 : 북한의 UEP도 연평도 사태도 모든 것이 햇볕정책의 결과라는 주장도 있다.
임동원 : 그게 말이 되겠나. (허탈한 듯 웃음) 모든 잘못을 햇볕정책으로 돌리고 자기 잘못은 생각지 않는데 그건 말도 안 되는 얘기다. 3년이 얼마나 긴 시간인데 이 정권은 무엇을 했나. 왜 안 되는 것은 다 과거 탓으로 돌리나.
프레시안 : 일각에선 햇볕정책도 실패했다는 말도 있다. 북한이 끊임없이 도발을 하고 있고 한국의 안보태세는 취약해졌다는 것이다. 지금 정부 식의 강경책도 아니고 햇볕정책도 아닌 뭔가 새로운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는데.
ⓒ프레시안(최형락) |
물론 김대중 정부 당시인 2002년에는 충돌(서해교전)이 있었다. 한 번에 갑자기 없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긴장이 완화되고 신뢰도 조금씩 키워나가고 이런 현상이 실제로 진행됐었다. 정부만의 노력만으로는 안 됐겠지만 시민참여 공간을 넓혀 줘서 접촉과 교류가 활성화되는 이런 과정을 통해 양쪽 국민들 사이에서 의식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했다. 특히 북한 국민들의 (남한에 대한 의식은) 엄청나게 달라졌다.
독일의 통일 과정을 보면 서독이 동독에 20~30여 년 동안 많은 지원을 했다. 화해를 통한 변화라고도 하고 접촉을 통한 변화라고도 하는 이런 정책을 통해서 지원하고 교류하고 민족 공동체 의식을 만들었다. '비록 지금은 갈려져 있지만 한민족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지내자' 이러면서 동서독 국민간 통합 의식을 만들려 했고 이러면서 동독 사람들의 인심을 얻었다. 이것이 통일의 기반이 된 것이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나.
프레시안 : 그렇다면 이명박정부가 '비핵·개방·3000'등 이전 정부의 정책을 뒤집어 강경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이런 일련의 사태가 일어났다고 봐야 하나.
임동원 : 그렇다. 압박과 제재를 통해서는 북한 핵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부시 전 대통령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라는 미국의 막강한 힘을 가지고 8년 동안 북한을 굴복시키려 노력했는데도 성공하지 못했고 오히려 역효과만 초래했다. 오히려 '부시의 핵폭탄'이라는 말처럼 부시 전 대통령의 강경책이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를 만들게 한 것이다. 그 이전에 클린턴 전 대통령 때는 북한의 핵활동 동결과 미국이 북한에 안보위협을 가하지 않고 북미관계를 정상화하고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조치를 맞바꾸는 정책을 폈다.
전력생산 때문에 핵개발을 했다는 북한 주장에 대해서도 '그러면 (핵개발을 중지함으로써 초래되는) 전력 손실을 보상하기 위해 경제·에너지 지원을 해주겠다'고 주고받는 식으로 접근했다. 그러자 북한은 실제로 짓고 있던 200MW 원자로와 50MW 원자로를 폐쇄하는 등 8년 동안 핵 활동을 중단했다. 이렇게 주고받는, 포용하는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악의 축이다, 제거해야 한다'고 압박과 제재를 펴는 정책을 쓰면 북한은 반발해서 더 많은 핵무기를 만들어 냈다.
즉 최근까지(의 역사를 보면) 북한 핵에 대한 두 가지 접근방법이 있었는데 양자가 잘 비교가 된다. 압박과 제재보다 포용과 협상이 더 효과적이었다는 것이다.
"10.4선언만 이행했어도 연평도 사태는 없었다"
프레시안 : 이번에 헤커 박사와 함께 방북한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의 로버트 칼린 연구원과 존 루이스 교수 등이 미국정부에 대해 '창조적 접근'을 주문했다. 미국이 한국의 대북 강경책을 추종할 것이 아니라 미국 스스로 사태 해결을 위한 독자적 접근을 시도하라는 주문이었다. 당장에야 어렵겠지만 평화체제로 가기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오늘 아침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남북간 비밀접촉이라도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만약 북한이 3차 핵실험 등 또다른 도발까지 강행한다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임동원 : (한국 정부는) 위기관리를 잘 해야 하고 언젠가는 국면 전환을 해야 한다. 출발점은 남북대화다. 대화를 하면서 전환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 남북정상회담을 해서 '탑-다운 방식'(top-down, 위에서부터 하향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식)으로 해결하자는 얘기도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게 되겠나. 물론 되면 좋겠지만 상당한 과정을 거쳐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불신과 분노의 상태에서는 어렵다. 남북대화를 해서 위기관리를 서로 잘 해나가면서 긴장을 풀어야 한다고 본다. 한국 정부에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는데 문제는 그럴 의사가 있느냐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한반도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1단계는 긴장과 충돌의 서해바다를 평화의 바다로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첫걸음인데 북방한계선(NLL) 때문에 늘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NLL문제 해결 방법도 (2007년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물인) 10.4 선언을 통해 합의했다. '서해 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한다는 구상은 선 개념을 면 개념으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지상에도 휴전'선'만 있는 게 아니라 폭 4km의 비무장지대(DMZ)가 있듯이, 바다에도 상당한 부분을 이렇게 만드는 것이다. 이 수역에는 군함은 들어가지 않고 평화적 어로작업을 보장하면서 어로 지도선만 들어가게 한다든가 하는 것이 이 구상의 내용이다.
이러면서 NLL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보다 더 좋은 합의가 있을 수 없다. 과거 정부에서 연구하고 대책 마련하고 한 것이다. 솔직히 나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이 문제가 합의될 거라고 예상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10.4 선언을 통해서 위대한 합의를 본 것이다. 이 정부가 (그 성과를) 받아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면 되는데 안 하고 있다. 벌써 이 바다에서 몇 번째 충돌이 일어났는지, 몇십 명이 죽었는지 모른다. 노무현 정부 때는 서해 상의 남북 군 함정 간에도 통신을 유지했다. 그 기간 동안은 한 건의 사고도 없고 한 사람도 안 죽었는데 불과 3년도 안 되는 사이에 대청해전, 천안함 사건, 연평도 사태가 줄줄이 일어났다. 사람이 얼마나 많이 죽었나.
프레시안 : 10.4 선언에서 합의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구상이 실현됐으면 이번 사태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란 말인가?
임동원 : 물론이다. (그 구상은) 몇십 년간 남북이 지혜를 모은 출발점이다. 이제 출발을 시작해서 정전 체제를 평화 체제로 바꾸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관련당사국 중에서도 미국, 중국이 앞장설 리 없기 때문에 남과 북이 앞장서서 끌고 나가야 한다. 이전 정권 때는 그런 노력이 많았는데 이 정부는 관심도 없다. 그렇다고 대신해줄 사람도 없다. 많이 노력해도 빨리 성공하기 어려운데 그마저 안 하고 있다. 빨리 해야 한다.
프레시안 : 협상 의지가 있다면 NLL부터 푸는 것이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인가.
임동원 : 그렇다. 선 개념 가지고는 힘드니 면 개념으로 가자는 것은 기발한 아이디어다. 긴장을 완화하면서 위기관리를 잘 하고 남북관계 개선을 꾀해야 한다.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서해를 평화의 바다로 만드는 협상을 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6자회담을 통해 미국과 북한이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비핵화를 실현하는 과정도 같이 실현돼야 한다.
"중요한 것은 미국의 역할…MB가 나서야 하지만 기대하기 어려워"
프레시안 : 헤커 박사도 방북 보고서를 통해 협상 외에는 문제해결의 방법이 없다고 주장 했다. 하지만 북측이 남측의 무고한 민간인들을 향해 무차별 포격을 가한 연평도 사태가 발생하면서 협상의 분위기는 사실상 물 건너 간 게 아닌가 싶다. 지금 분위기에서 남이든 미국이든 어떻게 북한과 대화를 하려 하겠는가. 청와대는 지금 '확전 자제'라는 당초 대통령의 지시를 부정하면서까지 국내 대북 강경파의 눈치만 살피고 있는 것같다. 남측 민심도 북한에 대한 적대감 쪽으로 확 쏠리고 있다. 냉정을 찾자는 사람들은 협상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하지만 대부분은 분노에 차있으며, 일부에선 북한을 무력응징까지 주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임동원 : 어려운 문제다. 일이 많이 꼬였는데,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헤커 박사 등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방안이 옳다고 본다.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북한의 불안의식을 제거하고 안정을 도모하면서 관계개선을 통해 접근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만들면서 북핵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새로운 주장도 아니고 9.19 공동선언에 이미 나온 것이다. 그런 식으로 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과 북한의 역할이 중요하다.
중국도 같은 생각이다. 중국은 지난해 7월에 대북정책 기조를 정한 듯 보이는데 (그 내용은)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고수한다는 것과 북핵문제는 북미 적대관계의 산물이기 때문에 미국이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 등이다. 중국은 미국을 도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정도의 입장이다. 또 중국은 북한과의 전통적인 유대를 앞으로 더 강화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그들의 국익과 안보에도 도움이 된다고 본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오바마 행정부가 결단을 내려야 하며 미국이 한반도 문제 해결에 좀더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비핵화 뿐 아니라 평화체제를 만드는 데에도 미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프레시안 : 그런데 미국의 행보는 중국과는 많이 다른 것같다. 중국은 남북 양측에 대해 냉정과 절제를 요구했으나 미국은 이번 한미연합훈련에 항공모함 조지워싱턴 호를 보내겠다는 식으로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이와 관련해 우려를 제기하기도 했다. 미국 쪽에서는 '중국이 북한을 자제시키지 않았으므로 책임 져라'는 태도인 것 같은데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에는 '오바마의 결정이 한반도 위기를 더 악화시키고 있다'는 칼럼이 실리기도 했다. 실제로 미국의 행보를 보면 한국의 강경대응에 편승해서 역내에서 군사적 영향력을 키우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북미관계를 독자적으로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추인하고 따라오고 있지 않나 한다.
임동원 : 완전히 동감한다. 그 점은 나도 매우 걱정이 된다.
프레시안 : 그런 면에서 오바마 행정부가 대북정책을 바꾸지 않으면 한국 정부라도 바꿔야 하는데,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임동원 :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이명박 정부가 지금이라도 국면 전환을 하면 좋은데 현재로서는 그런 기미가 안 보인다. 걱정스럽다.
부시 전 대통령도 북한이 핵실험 이후인 2007년에 태도가 180도 바뀌어서 '용단'을 내린 적이 있다. 부시 전 대통령은 '북한과는 대화하지 않는다, 나쁜 행동에는 보상이 있을 수 없다'라고 늘 얘기해 왔는데 (2007년에는) 북미 간 직접대화를 시작했고 북한이 그렇게도 원하던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도 해 줬다. 그건 참 용단이었다. 2008년에는 북한을 적성국교역법 적용 대상에서도 해제했다.
그런 조치를 하면서 북한 핵시설 불능화 등의 진전을 봤지 않나. 헤커 박사의 보고서에 보면 이 불능화 조치, 즉 풀루토늄 생산 중단 조치는 지금도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물론 전에 생산했던 핵물질은 보유하고 있지만. 이런 방식으로 접근해야지, 지금 방식으론 힘들지 않은가 한다. 오바마 대통령도 당선되기 전 선거 과정에서는 (김정일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고 하는 등) 포용정책을 강조했는데 지금은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
연평도 사태, 해법은 무엇인가
프레시안 : 천안함 사건 이후에도 정부는 북한을 고립시키려고 하고 강경한 자세를 보여 왔다. 그러나 6월 지방선거를 통해 이런 흐름이 형성되는 것을 국민의 힘으로 무산시켰는데, 이번 같은 경우는 명백히 대한민국 영토와 민간인을 향해 대포를 쐈고 고귀한 인명이 희생됐다. 당장 사태 악화를 막거나 갈등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계기가 없다는 것이 걱정된다.
임동원 : 그런 계기가 마련돼야 하는데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 계기가 있으면 국민들의 생각은 다시 달라질 수 있다. '적대관계를 유지하면 이런 사태가 또 일어나겠구나,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서야 되겠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정부가 좀 나서라, 이래 가지고야 어떻게 살겠나, 정부가 대화하고 적대관계를 누그러뜨려라'는 의견이 나올 수 있다.
물론 당장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번 북한이 대한민국 영토에 포격을 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그건 당연한 것이다. 나도 이번 사태는 솔직히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북한에서 무슨 의도로 했건 잘못한 것이다. 그런다고 우리 정부가 굴복할 리도 없고 오히려 국민들로부터 적개심·분노심만 불러일으켰다.
프레시안 : 당초 청와대에서 확전을 자제하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얘기가 나왔다. 지금은 부정하고 있지만, 사실이라면 이게 정확한 판단이지 않은가.
임동원 : 당연하다. 어느 대통령이든 그렇게 지시해야 하는 것이 맞다. 다른 방법이 뭐가 있겠나. 우려되는 것은 이번 사태로 인해서 우리 대북정책을 돌아봐야 하는데, 오히려 지금까지 잘 하고 있었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남북한 모두 '본때를 보여주자'는 식으로 나가는 것 같은데 걱정이다.
프레시안 : 전 장관으로서 현재 통일부가 적십자회담 무기한 연기, 인도적 지원 중단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는 데 대해 충고한다면?
임동원 : 현 정부로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조언할 것도 없다. 근본적 문제는 통일에 대한 기본철학인데 이것이 바로잡혀지지 않는 한 별 수 없다.
프레시안 : 북한에서 도발 수위를 더 올릴 가능성도 있을까,
임동원 : 그렇다. 더 올릴 수 있다. 우리 국민들이 걱정하지만 북한의 3차 핵실험은 분명히 있을 것으로 본다. 때가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하긴 할 거다. 할 수밖에 없다. 북한이 개발하려는 핵무기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파키스탄과 인도의 경우 7~8번의 핵실험 끝에 핵무기 개발에 성공했다. 아직 북한은 완벽하게 핵개발을 한 게 아니다. 1, 2차 핵실험은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서방측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아직 핵무기는커녕 핵폭탄 단계에도 가지 못했다.
하지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또 실패하더라도 실험 과정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기 때문에 계속 실험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헤커 박사 같은 이는 북한의 2차례 핵실험이 비록 실패했지만 성공으로 가는 징검다리라는 점에서 성공으로 볼 수 있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혹시 북한은 아주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어서 3~4번의 핵실험으로 핵무기 개발에 성공할 수 있는지 그거야 알 수 없지만, 인도와 파키스탄의 경우만 봐도 2번의 핵실험만 가지고는 안 된다. 따라서 북한은 핵무기 개발이 완성될 때까지 계속 핵실험을 시도할 것이다.
프레시안 : 놀라운 일이다. 매우 걱정이 된다. 지난 2번의 핵실험으로도 한국을 비롯한 서방측은 큰 충격을 받았는데...
임동원 : 너무 놀랄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우리 입장에서는 북한이 핵실험을 하지 못하도록 빨리 저지해야 한다. 핵무기 개발의 단계는 보통 5단계로 나눈다. 1단계는 핵물질을 생산하기 위한 시설을 만드는 것이고 2단계는 그 시설을 통해서 핵물질을 생산하는 것이다. 폐연료봉에서 플루토늄을 재처리하는 것이 1,2단계에 해당한다. 3단계는 이 핵물질을 가지고 폭탄을 만드는 것이고 4단계는 핵폭탄을 소형화 경량화 해서 미사일에 탑재하는 것이다. 이때 비로소 핵폭탄은 무기로서의 기능을 갖게 된다. 핵폭탄을 미사일에 탑재해야만 적을 타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3단계에서 핵폭탄(nuclear bomb)이 되고 4단계에서 비로소 적에 대해 사용할 수 있는 핵무기(nuclear weapon)가 된다. 이 핵무기를 여러 개 만들어서 실전 배치하는 것이 마지막인 5단계다.
이렇게 보면 클린턴 전 대통령은 북한 핵개발을 1단계에서 막아서 멈추게 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3단계까지 가게 했다. 북한이 4단계로 들어가기 전에 막아야 한다. 북한 입장에서 핵무기는 만들 수밖에 없다. 나중에 폐기한다 해도 협상력을 강화한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일각에서는 북한을 이해하자, 포용하고 대화하자고 말하지만 이번 연평도 포격으로 이러한 대북 대화 의지가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 같다.
임동원 : 그러다가 또 좋아지는 것이 과거의 역사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른다. 지도자가 어떤 정책의지를 가지고 이 문제를 대하는지가 관건이다.
나는 남북관계의 앞날에 대해 이제까지 비관은 하지 않았는데 이번 사태를 접하고 나서 이제는 낙관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라는 느낌이 든다. 점점 사태가 악화되고 있다. 그래도 전환의 기회는 오리라고 보고, 또 만들어야 한다. 실망해서는 안 된다. 국민들이 올바로 이해하고 생각을 같이 나눈다는 것이 중요하다. <프레시안> 독자들에게도 이 점을 당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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