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부시 "이란 핵시설 공격 계획 세우라고 지시했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부시 "이란 핵시설 공격 계획 세우라고 지시했다"

회고록서 "시리아 공격도 검토…이라크 침공 처음엔 반대"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재임 시절 이란 핵시설에 대한 공격 계획을 세우라고 국방부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부시 전 대통령은 9일 발행 예정인 497페이지 분량의 회고록 <결정의 순간들>(Decision Points)에서 "공격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연구해보라고 펜타곤에 지시했다"고 말했다고 회고록을 사전 입수한 영국의 <가디언>이 8일자로 보도했다.

부시 행정부 시절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격 시나리오는 여러 차례 나왔었다. 탐사보도 전문 기자 세이무어 허시는 미국이 이란의 핵시설을 핵무기로 타격할 계획을 세웠다고 보도한 적도 있다. 부시가 회고록에서 털어놓은 사실은 당시의 보도들이 근거를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부시는 회고록에서 "이것(이란에 대한 공격)이 '폭탄으로 가는 시간'(bomb clock)을 최소한 일시적으로라도 멈출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對) 이란 공격에 대해 일부 참모들은 핵시설이라는 이란 정권의 "비장의 프로젝트"를 파괴하는 것은 이란 내 반대파(야당 및 반정부 세력)를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지만, 미국에 대한 이란의 민족주의만 부추긴다고 우려한 참모들도 있었다고 부시는 회고했다.

그는 "군사 행동은 언제나 테이블 위에 올라가 있었지만 그것이 나의 최후 수단은 아니었다"며 모든 옵션은 토니 블레어 당시 영국 총리와 논의했다고 말했다.

CIA 국장 "시리아 핵시설이 핵무기 개발용은 아니다"

또한 부시는 재임 중 이스라엘의 요청을 받아 시리아에 대한 비밀 공격도 검토했었다고 털어놨다. 이 시설은 북한의 영변 핵시설과 유사해 시리아가 북한의 도움으로 핵무기 개발을 추진한다는 의혹을 샀던 대상이었다.

부시는 에후드 올메르트 당시 이스라엘 총리로부터 시리아에 핵 공장으로 의심되는 시설이 있으니 폭탄으로 공격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안보팀을 소집했다.

부시는 "우리는 그 아이디어를 심각하게 검토했지만 국가정보국(CIA)과 군부는 시리아에 침투조를 투입했다가 빼오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마이크 헤이든 CIA 국장으로부터 문제의 시설이 핵시설일 가능성은 높지만 시리아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일 가능성은 낮다는 전문가들의 결론을 보고받았다고 말했다.

이에 부시는 올메르트 총리에게 그 결론을 전달했고, 올메르트는 실망스런 반응을 보였다. 이스라엘은 2007년 9월 단독으로 시리아 동북부 알-키바르 지역의 핵 관련 의심시설을 폭격했다.

부시는 자신이 이스라엘의 폭격 계획을 승인했다는 주장이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부시는 시리아 폭격은 올메르트가 2006년 레바논의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전쟁에서 손상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실수라고 여긴다고 덧붙였다.

▲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에서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구를 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못 찾았을 때 내가 가장 충격"

이라크 전쟁과 관련해 부시 전 대통령은 전쟁이 시작된 원인이었던 대량살상무기를 찾는데 실패한 사실 등 자신의 결정에 대한 실수를 인정했다. 그는 회고록에서 "전쟁을 시작한 뒤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를 찾지 못했을 때 나보다 더 충격을 받고 화가 났던 사람은 없었을 것"이라면서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소름이 끼친다"고 적었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이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고 있고 알카에다와 연계됐다는 명분을 들어 2003년 이라크를 침공했다. 그러나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고 거짓 정보에 따른 것이었음이 드러났으며, 알카에다-후세인 연계설도 사실 무근으로 밝혀진 바 있다.

부시는 회고록에서 2001년 9.11 테러 발생 후 2개월도 못돼 이라크 공격 계획이 세워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도, 그러나 개전 몇 주 전까지도 전쟁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부시는 이날 <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처음에 (이라크 침공에) 반대했다"면서 "무력 사용을 원치 않았고 외교적으로 해결하려 했었다"고 말했다. 전쟁을 시작할 당시 딕 체니 부통령이 영향을 주었느냐는 질문에는 "체니가 했을지는 모르지만 당시 나는 안 된다고 말했다"면서도 "결국 언제 시작할지 결정하는 사람은 나였다"고 최종 결정은 자신이 내렸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인터뷰에서 미국인들에 대한 사과를 거부했다. 부시는 "사과는 잘못된 결정이란 것을 전제하는 것"이라면서 "그것이 잘못된 결정이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서 있었던 미군의 포로 학대 사건에 대해 "보고를 받고 처음 들었던 느낌은 매우 쓰렸다는 것"이라며 "그들은 포로들을 학대했을 뿐만 아니라 미군을 망신시키고 우리의 이름에 먹칠을 했다"고 비판했다.

부시는 또 방송에서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사임 의사를 조심스럽게 밝혔다는 사실을 소개하면서 "전쟁 중에 국방장관을 교체하는 것이 혼란을 줄 수 있는데다 마땅한 후임자가 없다는 이유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럼즈펠드 장관은 2006년 11월 공화당의 중간선거 참패 이후에야 교체됐다.

회고록에서 부시는 9.11 테러 용의자에 대한 물고문을 승인했다고 고백했으며, 국제적인 비판을 받게 되자 자신의 결정이 필요한 것이었다며 항변하고 나섰다. 부시는 9일자로 보도된 영국 <더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는 "3명이 물고문을 당했지만 그 결정이 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렸다고 지금도 믿고 있다"고 밝혔다.

부시는 "(물고문을 포함한) 심문 기법이 미국의 외교 시설, 히스로 공항, 런던 금융가 등에 대한 테러 기도를 사전에 차단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며 "영국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매케인, 금융위기 기회 못 살렸다"

부시 회고록 <결정의 순간들>
아울러 부시는 회고록에서 허리케인 카트리나 당시 피해자들의 대부분이 흑인이기 때문에 그들의 고통에 무관심했다는 비난이 나온 것에 가장 크게 화가 났었다며 "그런 말을 들었던 때가 대통령 재임 시절 최악의 순간이었다고 부인 로라에게 말했다. 그런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부시는 또 2000년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자신과 경합했고, 2008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로 나갔다 패한 존 매케인 상원의원을 비판했다. 특히 2008년 대선 캠페인 막판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매케인의 요청에 따라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당시 민주당 후보와 매케인을 불러 모아 3인 회동을 했던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부시는 금융위기라는 사태는 경험과 판단력, 카리스마 같은 소양이 필요하기 때문에 메케인의 지지세를 회복할 기회였지만 그가 백악관 회의 때 발언 기회를 얻어도 패스해버리는 모습을 보며 놀랐다고 덧붙였다.

부시의 회고록은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 허리케인 카트리나 대응 문제, 금융위기, 관타나모 기지에서의 포로 고문 등 부시 재임 시절 수많은 쟁점들에 대한 본인의 항변을 실었다. 그러나 자신의 결정만을 옹호하는 부시의 태도는 또 다른 논란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사상 최저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퇴임한 부시는 당초 회고록을 내지 않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의 지지율이 추락하고 공화당의 인기가 상승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회고록을 출간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