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전략가들은 특히 공화당이 2008년 선거에서 참패한 뒤 의회와 백악관을 탈환하기 위해 가동시킨 '컴백' 전략을 무너뜨리고, 오바마 대통령의 '컴백'을 가능케 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골몰하고 있다.
경제는 '제자리' 스타일은 '점잖은 지식인'…선거 이기겠나?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강했던 이번 선거가 민주당의 참패로 끝난 이유는 무엇보다 경제 때문이다. 실업률이 10% 부근에서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체감 경기 역시 회복되지 않는 상황에서 민주당이 기존 의석 중 40석 가량을 잃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실적으로 꼽히는 건강보험 개혁은 2008년 대선에서 그를 찍었던 이념적 중도파, 경제적 중산층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 건보의 혜택에서 소외됐던 이들을 끌어안는 문제와 직접 관련이 없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들의 삶과 밀접한 경기 회복 문제가 아니라 다른 일에 에너지를 낭비했다고 여겼다.
하지만 민주당이 일반적인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60석을 잃은 것은 다른 요인이 중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우선 보수 유권자 운동인 '티파티'로 상징되는 작은정부론 추종자들이 오바마의 또 다른 성과인 금융개혁법을 두고 민주당을 공격했다. 민주당 정권이 월스트리트 금융가들을 구제하느라 지나치게 많은 정부 재정을 쏟아 부었고, 그로 인해 재정 적자가 심해졌으며, 감세를 어렵게 했다고 오바마를 공격했다.
한편 오바마에 의해 '구제된' 월스트리트 자본가들은 다른 측면에서 오바마와 민주당을 반대했다. 금융개혁법을 만들어 자신들의 손발을 옭아맸다는 게 불만이었다. 이들은 공화당 후보들에게 자금을 대고 민주당 후보들을 제압하도록 했다.
이처럼 오바마에 대한 '열정적 반대'는 효과적으로 조직되고, 반대로 오바마를 찍을만한 유권자들은 투표장에 가는 것조차 심드렁해 하는 소위 '열정의 갭'(enthusiasm gap)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오바마는 패할 수밖에 없었다.
대중적인 관심이 집중되는 이슈에 천착하지 못하고 점잖만 빼는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에도 문제가 있었다. 일례로 구제자금을 받은 AIG 고위직들의 보너스 잔치 파문이 나왔을 때, 오바마는 법을 만들어 보너스의 지급을 막는 것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금융위기 전부터 계약된 것이니 어쩔 수 없다. 수천억 달러 구제금융을 논의하는데 그 정도는 의미 없는 액수다'라는 태도를 취했다. 지지율을 손쉽게 끌어올릴 모멘텀을 놓친 것이다.
다만 미국의 대통령이 첫 번째 임기 중 맞는 중간선거에서 패하는 건 매우 흔한 일이다. 20세기 이후 대통령이 첫 번째 임기의 중간선거에서 승리한 경우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에 의해 뉴딜이 시작되던 1934년과 조지 부시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던 2002년 선거 단 두 차례밖에 없었다.
또, 미국의 하원 선거에서 한 정당이 3회 연속 압승하는 경우도 흔치 않다. 민주당은 2006년과 2008년 하원 선거에서 지나치게 큰 차이로 공화당을 눌렀다. 이번 선거 결과는 그같은 '비정상'이 정상화되는 의미도 있었다. 즉, 이번 선거는 유권자들의 성향이 완전히 바뀌어 구조화되는 '재편 선거' 같은 게 아니었다. 중도파들의 표심이 공화당으로 넘어갔을 뿐이다.
▲ 백악관 참모들과 이야기하고 있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the White House |
오바마, '충동구매에 대한 후회'를 자극하라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이같은 '선거 통계'에만 안주하고 중간선거의 패인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조지 H.W. 부시 이래 20년 만에 처음으로 재선에 실패한 미국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다.
오바마의 '컴백'이 가능하려면 뭐니 뭐니 해도 경제가 회복세를 보여야 한다. 백악관은 오바마의 경기부양책이 효과를 발휘하는 시점을 2011년으로 보고 있다. 대공황 때보다 나을 게 없다고 평가되는 현재의 미국 경제는 차기 대선의 최고 쟁점이 될 수밖에 없는데, 백악관의 예상이 빗나간다면 오바마의 재선은 물 건너 갈 공산이 매우 크다.
다만 경제 회복의 구체적인 수치도 중요하지만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글로벌 경제가 동시 침체를 보이는 상황에서 미국 경제가 괜찮아질 것 같다는 희망만이라도 가질 수 있다면 '경제를 망친 대통령'이란 낙인을 피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중산층과 서민들이 오바마를 보고 '우리를 위해 싸우고 있는 대통령'이라는 인상을 갖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될 때 외쳤던 구호 '우리는 할 수 있다'(Yes, We can)에 담긴 변화와 희망이라는 메시지는 추상성을 탈피하고 구체적으로 싸우는 모습을 보여야 하며, 실적을 뽑아내야 하는 것이다.
오바마의 정치 스타일에서도 바꿔야 할 부분이 많다. AIG 보너스 사태와 같이 대중들의 지지를 순간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찌됐건 국내정치 무대에서 가장 큰 '스피커'를 보유하고 있는 대통령이란 자리를 십분 활용해 기회가 왔을 때 정치적 주도권을 잡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터에서의 위기 관리에서부터 각종 국내적 이슈들까지, 기회를 잡을 수 있는 포인트들은 도처에 있다.
상대방의 실책을 유도하거나 실책이 나왔을 때 그걸 낚아 채 정치쟁점화할 수 있는 순발력도 오바마에게 요구된다. 특히 보수주의 운동인 티파티가 이번 선거를 계기로 공화당 내에서 '점령군' 행세를 하게 될 경우 오바마에게는 의외의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 공화당이 감세와 재정 문제 등에서 급진적인 정책을 하원에서 밀어붙인다면 공화당에 역풍이 불 수 있기 때문이다.
1994년 60년 만에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이 이듬해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과 극심한 갈등을 빚던 끝에 연방정부 폐쇄 사태가 일어나자 역풍을 맞은 것과 유사한 케이스가 재연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소비자들이 충동구매를 후회하듯,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싫어 공화당을 찍었다가 실제로 겪어 보니 안 되겠다는 판단('bias remorse')을 하도록 하는 게 오바마의 중요한 대선 전략이 되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제안한다.
또한 <뉴욕타임스>는 하원이 야당에 장악된 상황에서 오바마 대통령에게 재선의 길을 열어 줄 수 있는 유력한 분야는 대외정책이라고 4일 보도했다.
쿠바계 일리나 로스 레티넨 의원(공화당)이 하원 외무위원장이 되는 등 오바마의 대외정책을 둘러싼 의회 환경은 나빠졌다. 그러나 대외정책은 대통령의 주도권이 보장된 영역이기 때문에 오바마가 국내 문제에만 힘을 쏟아왔던 태도를 바꾼다면 그런 환경을 얼마든지 극복하고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구체적으로 러시아와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2), 이란·북한 핵문제, 아프가니스탄 전쟁, 중국과의 관계 설정 등이 쟁점이 될 것이라고 <뉴욕타임스>는 꼽았다.
그러한 맥락으로 볼 때 오바마 대통령이 대외정책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하나의 수단으로 쓸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자동차 분야에서 한국 정부만 어느 정도 양보한다면 공화당과 얘기가 비교적 잘 풀려나갈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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