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푸른 눈이 반짝거린다. 스티글리츠는 신나는 일을 하는 어린아이처럼 이정우(당시 노무현 대통령직 인수위원)의 수첩에 명단을 적어 나갔다. 유명 학자들 사이에 소로스의 이름도 끼었다. 지금은 소로스가 대단한 혜안의 소유자라는 걸 알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나에겐 잉글랜드은행을 물 먹인 투기꾼이었을 뿐이었다. 그는 내 눈 속의 의아함을 읽었다는 듯, "놀랄 만한 상상력을 가지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는 사람이지요" 하고 말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가 바로 내 옆에 앉아 있었다. 아니 그런 명성보다는, 모든 걸 잃어버린 심정으로 버클리와 케임브리지를 떠돌 때, 나에게 다시 경제학에 희망을 걸게 한 사람이기에 더 반가웠다. 그가 한국 대통령의 해외경제자문단장을 맡기로 했다. 그가 지금 적고 있는 이름은 자문단의 위원들이다. 미국 대통령의 경제자문위워회(CEA)보다도 화려하면 화려했지 결코 못하지 않은 이름들이다.
이틀 전 스티글리츠는 당시 대통령 당선인 노무현을 만났다. 동석했던 이정우에 따르면, 두 사람은 금세 의기투합했다고 한다. 스티글리츠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을 때(2001년), 내가 한 언론에 최대한 쉽게 쓴 스티글리츠 이론 소개를 당선인은 들고 있었다. 당선인이 해외경제자문단장을 제안하자 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즉각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는 한국을 잘 알았고 또 좋아 했다.
<동아시아의 기적>(1994)은 스티글리츠가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부총재)로서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성장의 비결을 정리한 책이다. 그는 외환 위기 때 국제통화기금(IMF)의 정책, 특히 고금리 정책을 맹비난했다. 비슷한 국제기구에 있는 사람 사이에서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스티글리츠는 클린턴의 경제자문위원장 시절부터 미국이 한국의 금융 시장 개방을 강요하는 데 반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당시에도 그의 정반대에는 오바마의 경제자문위원장인 서머스가 서 있었다. 스티글리츠는 강요된 금융 개방으로 한국이 위기를 맞았고 미국은 IMF를 통해 또 한 번 한국을 죽이고 있다고 했다.
요즘 말로 하면 경기 증폭적(pro-cyclical, 대부분 '경기 순응적'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의미나 어감으로 봐서 '경기 증폭적'으로 번역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counter-cyclical'도 '경기 역행적'보다는 '경기 완화적'이 낫겠다) 정책, 즉 경제 위기에 고금리 처방을 써서 경기를 더 악화시키는 잘못된 정책을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IMF와 월스트리트 그리고 미국 재무성, 즉 워싱턴 컨센서스의 3주체를 맹비난하던 그는 결국 세계은행 부총재직을 사임해야 했다. 이번 금융 위기가 터지자 그는 곧바로 "위선"이라는 칼럼을 썼다. 한국에는 고금리를 강요했던 미국이 자기 나라의 금리를 제로로 낮추는 것이야말로 위선이 아니고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스티글리츠는 한 책에서 한국이 바라봐야 할 곳이 있다면 스웨덴과 같은 북유럽 모델이지 결코 미국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제 소개할 <스티글리츠 보고서>(동녘 펴냄)에도 나오지만, 그는 "자유무역협정(FTA)이나 GATS(WTO의 일반 서비스 협정)를 통한 금융 개방을 받아 들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책에서 그는 자신이 경제자문위원장 시절에 통과된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에 투자자 국가 제소권이 있었다는 걸 알았다면 결코 통과시키지 않았을 것이라고 후회했다.
스티글리츠가 실제로 노무현 정부의 해외자문단장이 되었다면 우리의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중에 이정우에게 들은 바로는 청와대 내부(그리고 재정경제부)에서 (이번 위기의 주범인) "월스트리트가 싫어할 것"이라는 이유로 흐지부지됐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에게 자초지종을 알리고 사과하는 편지를 보낼 시점도 놓쳐 버렸다. 만에 하나 다시 그를 만나게 된다고 할지라도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할 것이다. 아니 그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걸 다행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스티글리츠 보고서
▲ <스티글리츠 보고서>(스티글리츠위원회 지음, 박형준 옮김, 동녘 펴냄). ⓒ동녘 |
2009년 6월 유엔의 192개국은 만장일치로 <스티글리츠 보고서>를 채택했다. 그해 9월 영문판이 완성됐고 이제 한국어 번역본이 나왔다. 나는 우선 역자(박형준 진보금융네트워크 상임연구위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나 스스로 번역하고 싶었지만 이런저런 이유, 또 게으름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이렇게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전에 번역이 나왔으니 그저 고마울 뿐이다.
아직 세계는 위기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 G20 정상회의가 계속 열리면서도 뚜렷한 합의를 이루지 못하는 것은 패닉 상태에서 벗어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직 방향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반 국민이, 아니 제 아무리 경제학자라고 해도 100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사태를 꿰뚫어 보고 방향을 제시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앞으로도 10년 이상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혼돈의 시기에 이 책은 훌륭한 나침반이 될 것이다.
당연히 이 책은 스티글리츠 혼자 쓴 것은 아니다. 네 개의 분과에서 치열한 토론을 거쳐 보고서는 완성됐다. 그러나 그 옛날 <동아시아의 기적>이 그랬듯 <스티글리츠 보고서>도 그의 체취를 아주 짙게 풍기고 있다.
현재의 금융 위기는 "신자유주의, 또는 시장 근본주의(Market Fundamentalism, 우리는 시장 만능론이라고 흔히 부른다)의 파탄"을 의미한다. 그 중에서도 효율적 자본 시장 이론에 입각한 금융 자본 자유화, 증권화가 불러온 파탄이다. 미국 재무성과 IMF 등 국제기구에 가득 찬 경제학자와 관료들이 빚어낸 명백한 "인재"이다.
스티글리츠가 다른 책 곳곳에서도 강조하듯 "보이지 않는 손은 보이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이유인 정보경제학으로 정보의 불완전성, 비대칭성으로 가득 찬 시장은 언제나 실패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외부성, 그리고 유사외부성으로 가득 차 있으며 국가의 규제가 필요하다.
이미 <세계화와 그 불만>으로 시작된 세계화 시리즈에서 논파했듯이 금융 세계화는 시장 실패의 세계화를 의미한다. 이번의 세계 금융 위기는 그의 주장을 여실히 증명했다. 시장에서 기업은 파산하는 것으로 자신의 실패를 책임진다고 하지만 거대 금융 회사나 기업이 파산하면 시스템 위기로 이어진다.
따라서 세계화한 외부성(global externality)을 교정하고 글로벌 공공재(global public goods)를 공급하는 것이 이번 위기에 대한 해법이다. 또 위기 시의 모든 정책은 케인스의 주장대로 총수요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글로벌 총수요가 증가할 수 있도록 정책을 짜야 한다는 것이 이 보고서의 또 하나의 원칙이다.
그러나 글로벌 규제와 글로벌 공공재의 공급은 한 나라가 해결할 수 없다. 세계 정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IMF와 같은 국제기구가 존재하긴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외부성을 무시하고 공공재를 부정한다. 이 책의 곳곳에 등장하는 문장처럼 "세계의 (정치 등) 조정 기구가 만들어지기 전에 금융과 경제가 먼저 세계화했다". 따라서 유엔 192개국이 참여하고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국제기구, "세계경제협력이사회(GECC, Global Economic Coordination Council)"가 만들어져야 한다.
IMF가 제 역할을 하려면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지배 구조부터 바꾸기 시작해서 새로운 경제 철학을 갖출 수 있도록 철저한 개혁을 해야 한다. 그러나 개발도상국이나 최빈국의 의사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그리고 그럴 의사도 전혀 없는 G20은 그저 아시아와 중동 몇몇 국가의 IMF 쿼터를 5~6%로 늘리는 것을 '지배 구조의 개혁'이라고 부르고 있다.
G20의 논의에서 발전의 면모를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내 생각에 가장 큰 발전은 경기 증폭성에 대한 인식이다. 그동안 주류 경제학은 민스키와 그의 제자들(주로 포스트 케인지언)의 주장을 간단히 무시했다. 첫째, 버블의 존재는 증명할 수 없으며, 둘째 존재한다고 해도 터질 때까지 알 수 없으며, 셋째 사전에 터뜨리는 것보다는 터진 뒤 수습하는 쪽이 비용이 덜 든다는 것이 주류 경제학자들이나 국제기구 학자들의 주장이었다. 이런 얘기는 우리 귀에도 익숙한데 우리나라의 부동산 공급론자, 그리고 기획재정부나 국토해양부가 줄곧, 지금까지도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제 와서 이런 주장을 강하게 내뱉을 간 큰 경제학자는 별로 없지만(속으론 시간이 지나기만 기다리겠지만)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최근에 쓴 글에서 부동산 버블은 저금리 등 금융 당국의 잘못된 정책 때문이 아니라 다양한 모기지 제도 때문이었다고 변명했다. 스티글리츠는 경제학이 이런 상태에 머무는 한, 그리고 이 책이 제시하는 진정한 개혁을 하지 못한다면 위기는 또 올 것이라고 단언한다.
경기 증폭성은 여러 측면에서 겹치고 또 겹쳐졌다.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하면 경기는 증폭된다. 지금 한국이 그렇다. 2009년에 엄청나게 풀린 돈들이 그래도 경제 상황이 나은 동아시아로 몰려들고 있다. 또 다시 주가는 오르고 사람들은 낙관에 빠진다. 그러나 우리가 2008년 겨울에 이미 경험한 것처럼 이 돈이 빠져나가면 주가는 급락하고 더 나쁜 경우 또 다시 달러 걱정에 시달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현재의 자본 적정성 기준 등 건전성 규제도 마찬가지 역할을 한다. 은행이 담보로 잡은 자산의 가치가 올라가면 대출 여력이 늘어난다. 이른바 레버리지가 한없이 늘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자산의 가치가 떨어지는 순간 반대 방향으로 수축할 수밖에 없다. 신용 평가도 여기에 한 몫을 한다. 사전 예측으로 위기를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경기가 급락한 뒤에야 평가를 한꺼번에 몇 등급씩 내리니 경기는 더 빠른 속도로 움츠려든다.
이제 IMF도, 그리고 G20도 이 점은 인정하고 여러 가지 대안을 내놓고 있다. 예컨대 개별 금융 기관의 건전성을 확보하는 감독 정책이 오히려 경기 증폭성을 강화하므로 호황기에는 높은 자기 자본 비율을 적용하고 불황기에는 낮은 자기 자본 비율을 적용하는 완충 자본을 설정하고, 시장 가격으로 자산을 평가하면 호황기에는 유동성이 낮은 자산을 과대평가하고 불황기에는 과소평가하게 되므로 공정 가격 개념을 도입하고 직접적으로 레버리지 비율을 규제하게 될 것이다.
또한 금융은 외부성이 강하게 작용하므로 BIS 규제가 양호한 금융 기관도 파산할 수 있다. 이러한 전이 위험을 막기 위해 최저 자기 자본 비율을 상향 조정하고 후순위채 등을 제외한 양질의 자본(Core Tier1 Capital)을 자기 자본으로 규제하고 단기적 유동성 관리 평가 기준으로 유동성 커버리지 비율을, 장기적 유동성 관리 평가 기준으로 순안정자금 조달 비율을 제시하고 있다. 보고서도 시장 가격 평가를 제외하고 대체로 같은 방향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조지프 스티글리츠. ⓒ뉴시스 |
또 하나의 차이는 대형 금융 기관에 대한 것이다. "너무 커서 실패할 수 없는(too big to fail)" 상황, 즉 대마불사에 이른 금융 기관은 당연히 도덕적 해이에 빠진다. <스티글리츠 보고서>는 글로벌 외부성을 특히 강조한다. 이들 기관에게 구제 금융을 제공해서 살려 놓으면 세계의 돈은 다시 미국으로 향한다. 바로 2008년 말 상황이다. 건실한 정책을 사용하던 개발도상국들은 아무 잘못도 없이 피해를 입는다.
따라서 각 금융 업무는 엄격히 구분되어야 하고 특히 예금보험이라는 국가 보증을 받는 은행에 대해서는 위험 감수 행위를 엄격하게 규제해야 하며 규모에 따라 규제는 더 강해져야 한다. 보고서는 규제의 범위가 포괄적이고 일관된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CDS(신용부도스왑)는 파생상품이지만 사실상 보험의 기능을 하므로 보험감독위원회에서도 규제를 해야 한다.
G20은 이 문제를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 기관"의 문제로 취급한다. 2010년 1월 오바마는 금융회사의 대형화와 위험 투자를 직접 규제하는 '볼커 룰'을 제안했다. 그러나 입법화 과정("도드-프랭크법")에서 시스템 정리 기금(Systemic Dissolution Fund)은 삭제됐고 사모펀드와 헤지펀드에 투자하지 못하도록 규제한 조항은 'Tier1 자본'의 3% 이내로 완화됐고 장외파생상품 취급을 금지하도록 한 조항도 완화됐다. 이런 미국의 상황은 G20의 논의에도 그대로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간접적으로 규모의 제한을 꾀하는 은행세 논의도 지지부진하다.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 한국이 금융활동세를 제안할 것인지가 관심일 정도이다. 만일 한국이 의장국으로서 은행세 논의에 불을 붙인다면 그건 평가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막상 국내에서 기획재정부는 자본시장통합법을 통과시켜 금융 기관 몸집 불리기에 일로매진하고 있다. 한국 기획재정부는 금융 위기 이전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전 청와대 경제수석 박병원이 금융 위기가 터진 후에도 "물에 들어가야 수영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호언했을까?
서울 G20 정상회의의 최대 쟁점은 환율 문제이다. <스티글리츠 보고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답만 말한다면 고정환율제든, 변동환율제든, 아니면 관리환율제든, 소프트 달러페그든 환율 제도는 각국이 택할 일이다. 자본 이동과 변동환율제가 시장 근본주의자들의 처방이지만 이 둘을 택한다고 해서 '트릴레마(trilemma)의 공식'처럼 국내 금융 정책의 자율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의 중국이 변동환율제를 택해서 어느 순간 버블이 붕괴하고 급격한 경기 위축을 겪는다고 상상해 보라. 그것은 더 끔찍한 상황을 초래할 것이다.
<스티글리츠 보고서>는 환율이 아니라 글로벌 불균형의 본질을 찌른다. 1997~98년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IMF의 조건(conditionality)으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받은 바 있는 동아시아 국가들은 외환 보유고를 가능한 늘리려고 한다. 자국 통화가 국제 통화가 아닌 나라에서 외환 보유고는 곧 위기에 대한 "자가 보험(owned insurance)"인 것이다.
그러나 이 상황은 그 나라의 국내 수요를 위축시킬 뿐 아니라 글로벌 총수요를 감소시키는 결과를 낳아서 모두에게 나쁜 상황을 불러온다. 한편, 미국의 처지에서도 달러 기축통화를 유지하는 비용이 점점 늘어나기 때문에 현재의 상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국내의 침체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금처럼 미국이 다른 나라의 통화를 동시에 절상시키기 위해서 대규모 양적 완화(quantitive easing)를 하는 것은 스티글리츠가 보기에 상황을 악화시키는 악수일 뿐이다. 미국은 유동성 함정에 빠져 있으므로 경기는 살아나지 않고 자산 버블만 불러일으킬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국제 통화 시스템 고안에 착수해야 한다는 것은 시대적 사명"이다. 현재의 미국처럼 기축통화를 가진 나라가 글로벌 총수요와 유동성 수요를 감안하지 않고 자국 경제를 위한 금융 정책을 사용하면 세계 금융 시스템은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어느 한 나라의 통화가 아닌 글로벌 기축 통화를 만들어내야 한다. "국제통화증서(ICC, Internation Currency Certificates)"를 새로 만들든 아니면 기존의 SDR을 대폭 확대하고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든 케인스가 제안했던 국제청산동맹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구상이다. 이것이 총수요를 유지하거나 늘리면서 불안정성을 제거하는 근본적인 방향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건 미국이 달러의 특권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스티글리츠 보고서>는 지역 통화 체제의 확대를 또 하나의 가능한 경로로 보고 있다. 예를 들어 치앙마이협정을 확대해서 새로운 준비금제도를 만든다면 아시아에 새로운 통화 체제가 생기는 셈이다. 그리고 이런 지역 통화 체제가 다시 새로운 국제 통화 체제로 모이는 '진화적 경로'를 밟을 수 있다는 것이다.
G20에서는 이 문제에 관한 구체적 논의는 아직 없다. 하지만 프랑스와 독일 등이 달러를 대체하는 새로운 통화 체제를 주장하고 있으니 내년에는 이런 방향의 구상이 제시될 것이다. 다만 한국이 이번에 새로 내놓은 '금융 안전망' 의제가 치앙마이협정의 확대 개편 쪽이라면 파리로 넘어가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스티글리츠 보고서>는 모든 주제에 관해서 개발도상국과 최빈국에 대한 고려를 동등하게 취급하고 있다. 예컨대 보호 무역주의에 관한 논의도 선진국의 보조금을 문제 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위기 시의 각종 보조금, 예컨대 미국 경기 자극 패키지에 들어 있는 "바이 아메리카"는 명백한 보조금이며 불공정 무역이며 덤핑 판정이나 상계관세야말로 문제가 심각한 보호 무역 조치라는 것이다.
<스티글리츠 보고서>의 또 하나의 특징은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보고서는 글로벌 생태 케인스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 G20 정상회담이 새로운 의제로 채택한 "개발"이 이런 방향의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면 그것은 커다란 진전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2010년 서울 어느 호텔, 그리고 한미 FTA
내용이 거의 공개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이명박 정부가 제시한 G20 정상회의 의제는 그 논의 결과야 어떻든 간에 대체로 방향 자체는 맞다.
<스티글리츠 보고서>가 질타하고 있는 시장근본주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기획재정부의 국내 정책(예컨대 자본시장통합법이나 금융서비스 완전 개방, 의료 민영화 등)과는 다행히도 상당한 거리를 보이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금년 초에 선물환규제를 도입한 국제경제보좌관 신현송의 영향력 때문이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그러나 "역시 이명박"이라고 할 만한 사건은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도 벌어질 예정이다. 이 기간 동안 발표할 한미 FTA 재협상 결과가 그것이다. 한미 FTA야말로 <스티글리츠 보고서>가 질타하는 시장 근본주의, 금융 서비스 시장 개방의 독소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이번 위기를 통해 얻은 교훈에 비춰보면, 국가의 권한을 제한하는 (한미 FTA와 같은, 인용자) 협정들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 특히 WTO의 금융 서비스 협정 아래서 가능한 합의들이 강제된다면 각 국가들이 성장, 공평성, 안정화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규제 체계를 개선하는 것을 방해할 것이다. (…)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무역 협정들을 재검토해야 한다."
잘 알다시피 한미 FTA는 WTO의 각종 국제 협정을 능가하는 나프타플러스 협정, 또는 골든 FTA이다. 우리가 금융 안정성을 위해 확보해야 할 정책 공간을 완전히 봉쇄하려는 것이다. 이미 발효된 협정이라도 재검토해야 할 그런 시점에 우리는 쇠고기와 자동차를 더 넘겨주면서까지 미국의 금융 위기를 이 땅에서 재현하려고 국가의 온 힘을 경주하고 있다. G20 정상회의에서 아무리 빛나는 제안을 한들 무슨 소용일 것인가?
사실 현실의 G20 정상회의는 미국 중심의 거대 금융 자본, 그리고 강대국의 이익이 관철되는 장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스티글리츠 보고서>의 개혁은 비현실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누가 뭐라 해도 확실한 것은 이런 방향의 개혁이 신속하고 철저하게 이뤄지지 않는 한 현재의 위기가 계속되거나 조만간 또 다른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역자와 출판사에 쓴 소리 앞서도 말했듯 <스티글리츠 보고서>는 혼돈의 시대에 우리 국민 모두 읽어야 할 필독서이다. 특히 미래를 꾀하는 이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앞으로도 상당히 오랜 기간,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이 책은 빛을 발할 것이다. 해서 하는 말인데 지금이라도 책의 교열과 교정 그리고 오역을 바로 잡기를 바란다. 거시 경제가 모조리 "겨시 경제"로 되어 있어 볼 때마다 짜증을 자아낸다. 수많은 주제를 다루느라 논증이나 실명 비판을 생략한 책이라 의역하지 않으면 굉장히 어렵게 느껴지거나 또는 좋은 말만 나열한 책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오해의 소지가 발생할 정도라면 원문에 가깝게 문장을 손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때론 용어 자체를 잘못 번역한 것도 있고(예컨대 "national treatment"는 "내국민 대우"라는 통상 용어이다) 심지어 오역을 넘어 반역을 한 곳도 있다. 예컨대 "이러한 준비 통화는 대부분 경화로 유지되기 때문에, 곧 미국이나 여타 선진국들의 재원이 이들 국가로 이전되는 것을 의미한다"(278쪽)가 그렇다. 미국으로 재원이 이전된다는 게 올바른 번역이다. 또 281 쪽의 "그런 기대는 충족되지 않았다. 그저 각국은 거시 경제 정책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율성을 갖게 되었을 뿐이다"도 반역에 속한다. 실제 내용은 자율성을 갖게 되리란 기대도 충족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른바 '트릴레마'를 염두에 두고 의역을 하다 보니 생긴 실수이다. 이 책은 그런 이론적 명제들을 넘어선 복잡한 현실을 다루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일일이 영문을 대조하면 훨씬 더 많은 문제가 나타날 것이다. 신속한 번역에 또 한 번 감사들 드리지만 한 번 더 땀을 흘려주는 수고를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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