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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이 '김일성의 유훈' 강조하고 나선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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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이 '김일성의 유훈' 강조하고 나선 까닭은?

[한반도 브리핑] '강성대국·비핵화·통일', 北 행보의 키워드

북한이 9월 28일 조선노동당 대표자회를 열고 후계자 김정은 대장을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출했다. 또한 정치국 상무위원, 정치국 위원 및 후보위원, 당 비서국 및 전문부서 책임자, 당 중앙위원 및 후보위원을 새로 임명하는 대대적인 인사가 단행했다.

어느 정도는 예상됐던 조치들이다. 그러나 북한은 예상을 깨고 김정은의 얼굴을 공개했다. 1974년 정치위원 임명→3년간 당·정·군 유일지도체계 확립→3년의 과도기를 거쳐 1980년 제6차 당대회에서 모습을 드러낸 김정일 위원장의 후계 승계 과정과는 사뭇 다른 행보다.

2008년 하반기 후계자로 결정된 뒤 단 2년 만에 김정은이 공개 행보에 나선 것이다. 김정일의 경우와 비교하면 후계 체제(북에서는 후계자의 유일지도체계라고 한다) 구축과 '대중적 검증'(우상화) 과정이 동시에 압축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만큼 북한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서 김정은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으로의 승계 작업을 서두르고 있는 셈이다.

북한의 이러한 움직임은 김정일 시대를 성과 있게 '결산'(김정일 시대의 총화)하고, 승계 작업을 조기에 마무리 지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시대의 결산 = 후계체제 구축

김정일 시대의 성과 있는 결산은 김일성 주석의 유훈 관철과 연결되어 있다. 이와 관련 재일본조선인총연합 기관지 <조선신보>는 10월 2일 "당대표자회를 계기로 '김일성 동지의 당'은 수령의 유훈을 강령적 지침으로 해 모든 활동을 벌인다"면서 "강성대국 건설과 조선반도 비핵화, 조국통일은 모두 주석님의 유훈"이라고 강조했다. 앞으로 김일성 주석의 유훈 관철에 주력하겠다는 의미다.

현재 북은 2012년을 '강성대국 건설의 대문을 여는 해'로 만들기 위해 모든 힘을 쏟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대외환경 조성과 남북관계의 개선 등이 담보되어야 한다. 지난해부터 부쩍 늘어난 김정일 위원장의 현지지도, 올해 두 차례 북·중 정상회담 개최, 평화협정 체결 제안, 지난해 남북 정상회담 제안 등은 이를 위한 적극적 행보로 평가된다.

북한은 올해 신년공동사설에서도 "인민생활을 높이는 것은 경제 사업이 아니라 수령님(김일성)의 유훈을 관철하고 인민들의 이상을 꽃피우기 위한 당의 위업의 정당성을 과시하는 중요한 정치적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 김정일 시대를 평가하는 잣대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을 어느 정도 이행했느냐가 될 것이다. ⓒ연합뉴스
북의 행보에 대해 많은 국내외 전문가들은 경제적 어려움 극복과 후계 체제 구축을 위한 것으로 분석한다. 그러나 최근 북의 유훈 강조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을 최대한 이행하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의지가 담겨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의 한 교수는 "지난 2년간 김정일 위원장의 행보를 보면 2012년까지 어떻게든 평화협정(안보문제), 인민생활, 남북관계 등 김일성 주석의 주요 유훈을 최대한 달성하려는 구상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며 "김 위원장의 두 차례 방중, 당 대표자회 개최 등도 그런 차원에서 볼 수 있고, 후계 체계의 안정적 구축은 그 결과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2008년 건강이상설이 불거진 후 김 위원장의 행보가 더욱 빨라지고 '유훈'이 자주 거론되는 점은 시사하는 바 크다.

결과적으로 김일성 주석의 유훈 이행이 김정일 시대를 평가하는 잣대가 될 것이고, 이것이 동시에 김정은의 업적으로 선전되면서 후계 체제의 안정적 확립으로 이어질 것이다.

후계 체계 확립을 위한 조직 개편과 인사

이번 당 대표자회를 계기로 북한은 노동당의 기능을 정상화하고, 당의 영도성을 높이면서 김정은 후계 체제를 안정화시킬 수 있도록 조직 개편과 인사를 단행했다.

우선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가 북한의 최고 실세기구로 급부상했다. 부위원장직이 신설되고, 부위원장에 후계자 김정은과 리영호 총참모장이 자리를 잡았다.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에도 군 최고실세들이 보강됐다.

당 중앙군사위에 보강된 인물들의 면면만 보면 이미 김정일 체제의 최고 권력기구로 자리매김한 국방위원회를 넘어선 듯한 인상을 준다. 김정은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후계자 지도체계가 중앙군사위원회를 중심으로 운영될 것을 시사하는 조치로 판단된다. 당 대표자회는 당규약을 개정해 "인민정권과 청년동맹에 대한 당의 령도를 강화하며 인민군대안의 당조직들의 역할을 높일데 대한 내용"을 보충했다.

항일 빨치산의 아들인 최용해의 근로단체 담당 비서 임명, 전병호 정치국 위원의 내각 당위원회 정치국장 임명 등이 이를 뒷받침하는 조치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당 중앙군사위원회와 정치국 상무위원회가 북한의 모든 노선과 정책을 결정하고 핵심기구로 자리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당 중앙군사위원회가 김정은의 유일지도체계를 확립하고, 이끌어갈 기구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의 영도와 선군 노선을 '조합󰡑할 수 있는 기구인 셈이다.

즉 김정은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리영호 부위원장(총참모장 겸직)의 보좌를 받으며 당중앙군사위원회→인민군당위원회→총정치국 계선을 통해 군내에 당의 지도를 관철하고, 당중앙군사위원회→인민무력부·총참모부→각 군단·사단 계선을 통해 작전 수행을 지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당중앙군사위원회→정치국 상무위원회(리영호 정치국 상무위원)→내각 당위원회(정치국) 계선을 통해 내각에 대한 장악력을 높여갈 것으로 보인다. 물론 새로 임명된 정치국 위원·후보위원이 이를 적극 뒷받침할 것이다.

이번 인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리영호 정치국 상무위원이다. 1942년 출생한 그는 항일빨치산의 아들로 전해지며, 그가 당 대표자회 직전에 차수로 승진해 김영춘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대신해 정치국 상무위원에 전격 등용된 것은 상당히 파격적인 일로, 김정은 후계 체제 구축에 핵심 역할을 부여받은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시대에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이 있었다면 김정은 시대에는 리영호 차수가 오진우의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특히 리영호 차수는 당 정치국(상무위원), 당중앙군사위원회(부위원장), 국방위원회(국방위원) 등 북한의 3대 권력기구 모두에 이름을 올려 후계자 김정은을 당과 군에 연결하는 역할, 김정일의 '영도체계'와 김정은의 '유일지도체계'을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맡은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리영호의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임명은 사실상 군내 후계 체계가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김정은 부위원장이 2008년 말 후계자로 내정이 되고, 2009년 1월 노동당 내에 공식화된 후 국방위원회에서 활동한지 1년 6개월 정도 흐른 시점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1974년 정치위원회에 임명된 후 1년여 만에 군대 내에 후계 체계를 완료했다.

결론적으로 이번 당 대표자회를 통해 북한은 안정적 후계 체제를 수립하고, 승계를 준비할 조직 개편과 인사를 마무리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후계자의 정당성과 능력을 국내외적으로 검증받는 문제만 남아 있는 셈이다.

북·중은 대화공세, 한·미는 여전히 '전략적 인내'

후계자를 공식화한 북한은 앞으로 2010년까지 인민경제 생활 향상과 대외환경 개선을 위해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10년을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해'로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고, 후계 체제를 안정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한 전제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조선신보>가 10월 2일 당 대표자회의 의미를 해설하면서 북한이 2012년에 '강성대국' 달성을 천명한 사실을 거론하며 "오늘의 국제정세 하에서 나라(북한)의 경제부흥과 조선반도의 평화보장, 북남관계의 개선은 서로 연계돼 있다"고 주장해 주목된다.

북한이 계획경제의 정비, 중국과의 협력을 통한 대외개방, 6자회담 재개, 남북대화 복원 노력을 동시에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우선 북한은 올해 5월과 8월 두 차례 북·중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북·중 전략적 협력관계를 다방면에서 걸쳐 확대해 나갈 것이다. 중국도 '정부 지원'에서 '정부 주도'로 입장을 변경하며 대북 경제지원에 나설 의향을 밝혔다. 특히 북·중 경제협력이 강화돼 라선시, 청진시를 비롯해 북·중 국경지역에 개방구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둘째, 평화협정 체결을 중심으로 북미대화 및 다자대화에 나설 것이다. 북미협상을 지휘했던 강석주 전 외무성 제1부상의 내각 부총리 및 정치국 위원 임명, 6자회담 수석 대표였던 김계관 외무성 부상의 제1부상으로의 승진 등을 통해 볼 때 북한은 북·미 고위급회담을 위한 사전 포석을 끝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명박 정부와 미국의 태도로 볼 때 올해 안에 6자회담이 재개될 가능성은 낮다. '대응'만 있고 제대로 된 대북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오바마 미 행정부는 아직까지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북한은 북미대화의 재개 및 속도에 맞춰 남북대화 재개를 위한 '대화공세'를 지속할 것이다.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의 비서 승진, 김영철 총정찰국장의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임명 등 기존 대남 담당 간부들이 건재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9월 남북적십자회담→대북인도적 지원→10월 이산가족 상봉으로 이어질 남북관계가 개성공단 활성화, 금강산 관광 재개로까지 발전할 수 있을지가 정상회담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 지난해 비밀 접촉에서 합의된 사항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상황을 경험한 북한은 남측의 쌀 지원,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을 통해 이명박 정부의 '진정성'을 확인하려고 할 것이다.

남측도 국내의 부정적 여론을 바꾸기 위해서는 북측의 '성의'가 필요하다. 이명박 정부는 우선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를 북에 제안했다. 지난해 정상회담을 위한 비밀 접촉에서도 깊이 있게 논의된 내용이다. 과거 같으면 대규모 쌀·비료 지원이 선행돼야 가능한 사안이다.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연계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이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우선 대북정책을 둘러싼 정부 내 강온파의 대립을 해소해야 한다.

북한의 후계자 등장에 대해 한국과 미국 정부가 어떤 판단을 내릴 지도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북한의 '3대 세습'을 강력하게 비난하고 북한 체제의 불안정성을 관리하는 차원이 될지, 김정일 위원장이 있을 때 적극적인 비핵화 대화에 나설지 선택의 시점에 직면한 것이다.

따라서 11월부터 내년 초까지가 대단히 중요한 시기이다. 이 기간에 북한은 '전략적 인내'를 내세우며 대화 재개에 소극적인 한국과 미국을 움직일 수 있는 카드를 고민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것이 비핵화 진전과 대외개방으로 귀결될지, 또 다른 강경 조치로 귀결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다만 북미대화가 지지부진하고 남북 실무대화가 실질적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북한이 추가 핵실험 등 강경노선을 선택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이다.

핵심 키는 중국이 쥐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국과 한국은 북의 핵 폐기 의지를 의심하고 있고, 북한은 미국의 평화협정 체결 의지를 의심하고 있는 상황에서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가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원만하게 이행되기 위해서는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의 중재가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중국이 북의 비핵화 과정을 미국 측에 담보하고, 미국으로부터 평화협정에 대한 확답을 얻어내 비핵화와 평화협정이 동시에 추진되도록 '이행의 순서와 조건의 조합'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가 향후 한반도 정세의 한 축을 규정할 수 있다.

중국이 아닌 이명박 정부가 이산가족 상봉을 계기로 남북 당국간 대화를 복원하고, 대북 특사 파견을 통해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함으로써 한반도 정세 변화의 주도권을 확보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현재의 외교안보라인으로는 무망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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