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남북이 이산가족 상봉과 군사회담을 추진하면서 남북관계가 해빙기로 접어드는 조짐을 보여왔다. 남북 간의 비밀접촉설(說)도 나돌고 있다. 남북관계가 천안함 이전 단계로 회귀하고 6자회담이 재개될 것에 대한 기대감도 생겼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꼬일대로 꼬여 있다. 남북의 접촉이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전환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첩첩산중이다. 6.15 선언과 10.4 선언의 인정부터 시작해서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등을 활성화시키고 북한에 대한 식량과 비료지원을 재개하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처리해야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더구나 천안함 침몰에 대한 출구는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한국정부가 이런 과제들을 처리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11월 11일에 서울에서 열리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담을 앞두고 남북관계를 안정시킬 필요성 때문에 남북 접촉에 나섰다면 남북관계 개선은 불투명하다고 할 수 있다.
미국 정부 내부에서도 북한과 관계를 지금과 같이 제재 일변도로 몰고갈 수 없다는 인식이 싹트고 있다. 천안함 침몰에 대해서는 북한의 사과가 아닌 좀더 완화된 애도 표명(condolences) 요구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천안함 침몰에 대한 시각이 극명하게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런 완화된 방안이 현실성을 띤다고 볼 수는 없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한 직후 "북한은 협상을 원한다"(<뉴욕타임즈>, 9월 16일자)고 쓴 기고문에서 천안함을 거론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미국 내 여론이 빗발쳤다. 또 정작 당사인 북한이 애도 표명을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미국 내부의 미세한 변화 조짐들
지난 8월 하순에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과 전문가들을 모아서 북한 문제에 대한 검토회의를 개최하였다. 이 자리에서 북한을 포용할 방안에 대한 검토가 있었다고 한다. 북한에 대한 경제적 제재와 한미 군사훈련에 의한 군사적 압박은 북핵 문제는 해결못하고 군사적 위기만을 고조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회의 이후에 미국의 대북제재는 추가로 진행되었다. 미 국방부 월리스 그렉슨 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는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하여 "천안함 침몰은 '전쟁행위'였다며 제재는 지속될 것"이라고 16일 밝혔다. 미국의 대북정책 특별대표로서 미국 정부에서 비교적 대북 온건파로 분류되는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도 아시아 순방 이후 "6자회담을 제개하려면 북한이 추가행동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으로 볼 때 미국 정부도 현재의 대북 강경정책을 근본적으로 수정할 의사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는 여전히 핵 폐기에 대한 '북한의 선 행동, 후 북미 접촉'의 입장을 가지고 있다.
다만 남북 대화에 대해서 커트 캠벨 미 국무 차관보가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우선은 남북의 대화가 필요하다"고 답변한 것(16일)이 미세한 변화일 뿐이다. 근본적인 변화라기 보다는 9월에 추진되었던 남북 접촉에 대해서는 동맹국과 협조차원에서 한국 정부와 조율하겠다는 차원이다.
미국 중간선거? 남북관계 변수 안 돼
오는 11월 2일에 실시될 미국의 중간선거도 미국의 대북정책에 큰 변수가 되지 않는다. 대북 강경책으로 일관하던 조지 부시 행정부가 2006년 11월 중간선거 패배 이후 대북정책을 수정한 적이 있었다. 중간선거 이후 네오콘이 퇴각하고 북미 접촉을 재개하여 북핵 폐기를 위한 2.13 합의를 도출한 것이다. 부시 정부 임기 동안 북미 대화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상을 깬 합의였다.
하지만 부시 정부가 대북 유화정책을 구사하는 것이 중간선거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선거를 앞두고 대북정책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부시 정부는 2006년 중간선거에서 패배하자 대외정책에서 이라크 전쟁을 최우선으로 삼고 나머지 문제는 민주당과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 북핵 문제에 대해서 유화적인 입장으로 돌아선 것이다.
따라서 11월 2일 중간선거를 앞두고 외교적 실적을 얻기 위해서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대북정책을 개선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미국의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유권자들의 주요 관심은 경제 문제와 예산적자 등 미국 국내 문제에 집중되어 있다. 현재 유권자들은 또 공화당으로 기울고 있다. 미국의 분석가들은 민주당의 다선 의원들 가운데서도 상하원에서 의석을 잃는 의원이 나올 수 있는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만약 공화당이 하원에서만 다수 의석을 차지해도. 의료개혁 법안 폐지와 월 스트리크 규제 철회를 밀어붙일 것이다. 공화당이 상하원 모두 다수 의석을 차지하면 공화당은 보다 강력한 우경화를 추구할 것이다. 현재 공화당의 약진은 '티파티(Tea Party)'와 같은 강경 우파 세력의 지원에 힘입은 바 크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중간선거 전에 미국의 대북정책이 바뀔 가능성은 없다. 중간선거 이후 민주당이 승리한다면 현재 정책의 연장선에서 대북정책이 구사될 것이다. 공화당이 승리한다면 미국 의회는 보다 강경한 대북정책을 추진을 요구하면서 오바마 정부를 압박할 것이다.
▲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대북정책에 있어 전임 부시 정부 때와 다르지 않은 강경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선출과 북미관계
북한은 당대표자회의를 전후로 해서 김정은에게 대장 칭호를 주고 당 중앙군사위위원회 부위장으로 선출하여 후계체제 구축을 본격화 하였다. 그동안 북한 지도부의 불안정성이 미국이 적극적인 대북정책 보다는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 정책을 구사하게 했던 하나의 이유였다.
김정은 후계체제가 확고해진다면 미국 정부가 우려했던 북한 정권의 불안정성이 제거되는 셈이다. 미국으로서는 북한 정권의 지속성과 현상 유지가 확인된다면 보다 적극적인 대북접촉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북한의 후계체제의 가시화가 단기간에 미국의 대북정책을 변화시키지는 않을 것이므로 미국의 관망하는 정책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외부 투자가 절실하고, 천연자원이 풍부하며, 한·중·일 등이 가까운 교역 상대국이 될 수 있고, 인건비가 저렴하다는 북한의 특성이 투자자들에게는 매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주변 정세의 정치적 불안정성 때문에 이러한 점 역시 단기적인 대북정책 개선요인이 되기는 어렵다.
한반도 문제는 서로 영향을 미쳐서 상승 효과를 거두는 선순환구조가 두가지 차원에서 갖추어져야 긴장완화와 평화의 방향으로 흐른다. 첫째가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의 선순환, 둘째가 정치군사 문제와 경제 문제의 선순환이다. 지금은 북미관계와 남북관계가 모두 악화되어서 평화의 선순환구조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정치군사 문제도 선순환구조를 만들기 보다는 오히려 경제 문제 해결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의 오바마 정부 '길들이기'가 미국의 감정을 건드려
한반도 문제가 이렇게 악화된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면 오바마 정부 출범에서부터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 결정 과정에 있는 인사들은 북한이 2009년 1월 오바마 정부 출범 전부터 '미국의 선 핵위협 제거'를 내세우며 대미 강경발언을 시작했고, 오바마 대통령의 친서를 소지한 보즈워스 대표의 방북을 거부하였으며, 2009년 4월 미사일 발사를 강행했다는 점을 대북 불신의 요인으로 꼽는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이 미사일이 아닌 '인공위성' 발사 준비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2009년 2월 미국 정보기관은 북한이 지구의 저궤도에 '인공위성'을 진입시키는 시뮬레이션 내용을 이미 꿰뚫고 있었다. 인공위성인지 미사일인지 논란이 한창이던 3월 31일에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가 위성사진을 분석해서 인공위성에 가깝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는 발사체 성격 논란에 쐐기를 박는 효과를 가져왔었다.
미국은 사전에 인공위성이라는 사실을 파악하였기 때문에 상황이 제어 불가능하게 흐르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해왔다. 오바마 정부는 상황을 관리하는 발언을 때맞춰 하였다. 데니스 블레어 국가정보국 국장이 "북한이 발사하려는 것은 우주발사체다."라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와 같이 오바마 정부가 북한의 위성발사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려 표명과 냉각기를 거쳐서 대화국면으로 부드러운 전환이 가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북한의 로켓 발사 직후 오바마 대통령은 체코 방문 중 발표한 성명에서 "대포동 2호 미사일 발사는 유엔안보리 결의 1718호 위반"이라고 말하였다. 대통령이 북한의 로켓발사를 미사일로 단정했기 때문에 미사일 발사에 대해 미국이 강경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런 강경책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북핵문제가 발생한 이후 20여 년 동안 북한은 NPT 탈퇴(1993년 4월 13일), 광명성 1호 발사 (1998년 8월 31일), 핵실험 (2006년 10월 9일) 등 위기고조 조치를 취하였다. 그러나 이 경우 모두 중재와 협상을 통해서 위기가 북미 직접대화로 이어졌다. 2009년 4월 로켓발사 이후 지금까지 장기간 대화 공백 상태는 다소 이례적이다.
고통을 주는 대북 강경책, 변화를 이끌지 못해
지금까지 북미관계를 살펴볼 때 북한의 위기고조 조치 이후 북미 직접대화를 통해서 위기를 완화시켜왔다. 하지만 오바마 정부는 이러한 과정을 부정하고 있다. 오바마 정부는 "도발행위에 대한 보상이라는 패턴을 깨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악행에 대한 보상은 없다'는 부시의 발언이 연상된다.
실제로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은 네오콘이 주도했던 부시 정부 시절의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 조야에서는 현재 미국 정부에서 대북정책을 총괄하는 인물로 알려진 제임스 스타인버그 국무부 부장관이 부시 정부에서 네오콘의 대명사였던 딕 체니 부통령이나 존 볼튼 국무부 부장관과 비슷한 견해를 가진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 제임스 스타인버그 미국 국무부 부장관 ⓒ연합뉴스 |
부시 정부 시절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를 이끌었던 크리스 힐 국무부 차관보와는 명확하게 대비되는 입장이다는 것이 중론이다. 힐과 다른 스타인버그의 입장은 부시 행정부 시절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차별화 정책을 펼친 것을 비꼬았던 신조어였던 ABC(Anything But Clinton)에 비교해서 오바마 정부의 ABC (Anything But Chris Hill)로 불려지기도 한다.
오바마 정부 출범을 전후해서 북한이 오바마 정부와 탐색기나 분위기 조성(Ice breaking)과정을 생략하고 대미 강경책을 구사했다. 이는 오바마 정부의 간뇌(도마뱀 뇌)를 자극해서 오바마 정부가 극심한 대북 불신을 가지게 만들었다. 그러나 미국의 대북 강경책은 북한에게 고통을 줄 수 있을지언정 북한을 변화시키는 어렵다. 오바마 정부는 실패한 부시정부의 대북정책을 언제까지 답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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