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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회담 무용론이라니, 미국의 입이 부끄럽지 않은가"

[정욱식의 '오, 평화'] 오바마, 초심으로 돌아가야

6자회담이 2008년 12월 이후 2년 가까이 열리지 않으면서 '무용론(無用論)'이 또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 정부는 우다웨이(武大偉) 한반도 사무 특별대표를 평양→서울→도쿄→워싱턴→모스크바로 보내 회담 참가국들을 설득하고 있지만, 한-미-일 3국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하다.

반면, 북-중-러 3국은 조속한 재개를 희망하고 있다. 천안함 침몰 이전까지 한-미-일 3국이 북한에게 조건없는 6자회담 복귀를 촉구하면서, 중국에게 북한을 설득·압박해달라고 요구했던 것과는 180도 달라진 풍경이다.

이와 관련해 클린턴 행정부 때 국방장관을 지낸 윌리엄 코언(Cohen)은 9월 2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6자회담 무용론을 강하게 들고 나왔다. 그는 "미국은 북한이 언제든지 마음대로 나가버릴 수 있는 6자회담으로 회귀하는 것에 관심이 없다"며, "6자회담이 아니라 새로우면서도 좀 더 긍정적 결과를 도출하며 북한을 비핵화할 수 있는 새로운 형식에 관심이 있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6자회담 무용론이 소수의 의견이 아니라 미국 정부 안팎에서 점차 커져왔다는 점에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공식적으로 6자회담을 포기할 의사가 있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대화를 위한 대화는 하지 않겠다"거나 "같은 말을 두 번 사지 않겠다"는 등의 발언은 즐겨 사용해왔다. 북한과의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에 강한 의구심을 숨기지 않는 발언들이다.

이러한 대화 무용론에는 북미 직접대화의 산물인 1994년 제네바 합의도, 6자회담 합의 사항인 2005년 9.19 공동성명으로도 북핵 문제 해결에 실패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그렇다고 북미 양자대화도, 6자회담도 실패했다고 판단하고 있는 미국이 '신선한 대안'을 추구하는 것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미국 내 일각에서는 중국과의 전략적 타협을 통해 북한의 김정일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거나, 한-미-일 3각체제 강화를 통해 대북 제재 및 봉쇄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그러나 중국과의 전략적 타협론은 이미 미국의 '짝사랑'으로 끝난 지 오래이다. 대북 봉쇄 및 제재 강화론 역시 전형적인 낡은 시대, 즉 냉전 시대로의 회귀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북핵 문제 및 한반도 정세만 악화시킬 뿐이라는 점도 지난 경험을 통해 충분히 입증되었다.

더욱 주목할 점은 중국의 반응이다. <환구시보> 등 중국의 관영 매체들은 최근 북한에 대한 무력시위를 강화하고 있는 미국의 의도가 "김정일 정권 교체"에 있다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또한 미국이 6자회담 재개에 부정적인 이유 역시,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군사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미국이 주한미군을 비롯한 미군을 동아시아에 계속 주둔시키기 위해서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적당한 긴장이 필요한데, 6자회담이 재개되어 긴장 해소와 평화 구축으로 이어지면, 군사 패권이 약화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6자회담 재개에 미온적이라는 것이다.

파란만장한 6자회담의 이력서

2003년 8월에 시작된 6자회담은 말 그대로 파란만장한 이력을 지내고 있고, 지금까지 무용론도 여러 차례 불거졌다. 처음에는 북한이 부정적이었다. 북한은 "조선반도 핵문제는 조미 양자 사이의 문제"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북미 직접 대화를 선호했다. 반면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국제사회 대(對) 북한'이라는 대립 구도를 만들 기 위해 6자회담을 고수했고, 그 본질적인 의도는 '정권교체'에 있었다.

중국은 사활적 이해가 걸린 한반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국제사회에서 책임있는 강대국으로서의 역할과 위상을 높이기 위해 6자회담에 적극적이었다. 한국의 노무현 정부는 부시의 대북강경책을 일정 정도 제어하고 한국 주도의 문제 해결 방식으로서의 6자회담의 유용성에 주목했다. 일본과 러시아는 동북아 지정학의 최대 변수 가운데 하나인 한반도 문제의 개입 수단으로 6자회담을 간주했다.

이처럼 6자의 동상이몽이 충돌하면서 6자회담도 여러 차례에 걸쳐 '산소마스크를 낀 신세'로 전락하기도 했다. 난산 끝에 9.19 공동성명이라는 옥동자가 나왔지만,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로 북미 양국이 충돌하면서 6자회담 무용론은 거세졌고, 2006년 10월 북한이 최초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6자회담은 죽었다'는 비관론도 팽배했다.

그러나 이러한 비관론을 비웃듯, 그 해 11월 6자회담은 재개되었고, 북미 양자대화와 병행발전하면서 9.19 공동성명의 이행계획인 2.13과 10.3 합의가 나왔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불능화하고 핵 신고서를 제출하는 한편, 핵포기 의지를 과시하듯 외신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냉각탑을 폭파하기도 했다. 그러자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던 부시 행정부는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했다.

▲ 2009년 6월 북한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 폭파 장면 ⓒ연합뉴스

6자회담, 아직 한 번도 안했는데

그러나 황금기를 맞이할 것으로 보였던 6자회담은 2008년 12월 검증 의정서 채택을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면서 결렬되고 말았고, 오바마 행정부 들어서는 아직 한 차례도 열리지 못하고 있다. 작년 4월 북한의 위성 발사와 이를 대포동 2호 탄도미사일로 규정한 미국 주도의 유엔 안보리 대응, 북한의 2차 핵실험과 안보리 제재 결의안 1874호 채택 등이 악순환을 그리면서 '6자회담은 정말 죽었다'는 비관론이 더욱 거세졌다.

그리고 회담 재개를 위한 몇 차례의 기회가 있었지만, 장외(場外) 기싸움으로 기회는 유실되었고, 그 와중에 천안함 침몰이 발생하면서 6자회담마저 침몰할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한미 양국은 천안함 사태를 6자회담과 연계시켰고, 북한에게 비핵화 의지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달라며, 6자회담 재개에 조건을 내걸었다.

이러한 오바마 행정부의 태도는 대선 공약과는 정반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08년 대선 유세 때 "부시 행정부가 초기에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부르고 직접 대화를 하지 않음으로써 한미 간에는 갈등을, 북한에는 핵무기 개발의 기회를 제공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지속적이고 직접적이며 적극적인 외교"와 6자회담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달성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 들어 6자회담은 한 번도 열리지 않았고, 북미간의 공식 대화는 2009년 12월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북으로 딱 한 번만 성사되었을 뿐이다. 대선 공약(公約)은 말 그대로 공약(空約)이 되었고, 대외정책의 전위(vanguard)로 삼겠다던 외교는 적어도 대북정책에 있어서는 자취를 감추고 만 것이다. 부시 행정부 초기의 대북정책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대안을 제시했던 '담대함(audacity)'은 사라지고, 대화 회피를 위한 구실 만들기에 바쁜 모습을 보이면서 부시의 '실패한 외교'를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모두가 오바마 행정부만의 책임은 아니다. 거친 언행을 일삼아온 김정일 정권에게도,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의 성과를 "잃어버린 10년"으로 폄하한 이명박 정부에게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가 아직 이렇다 할 외교도 한 번 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을 포기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협상을 하면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희망적 사고만큼이나, '김정일은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도 위험한 것이다. '북한의 패턴'에 신물을 느끼고 있다는 미국의 짜증만큼이나, '미국의 패턴'에 절망해온 북한의 좌절감도 결코 작지 않다. '대화를 하면 또 다시 북한의 술수에 말려들 것'이라는 외교기피증은 유일 초강대국 미국 스스로를 모욕하는 발상이자, '핵보유국 북한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라는 낯설고도 위험한 딜레마를 한국을 비롯한 동맹·우방국들에게 떠넘기는 처사이다.

이제 오바마 행정부도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비관론자들의 속삭임을 뿌리치고 냉철한 현실인식과 역지사지의 관점으로 북한을 상대해야 한다. 대화다운 대화도 한 번도 하지 않고 대화 무용론을 말하기에는 미국의 입이 너무 부끄럽지 않는가?

▲ 지난 2008년 12월 8일 증국 베이징 댜오위타이에서 열린 북핵 6자회담.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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