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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조각이 만드는 수천 개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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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조각이 만드는 수천 개의 이야기

[김유경의 '문화산책'] 조각가 오대호와 정크아트 로봇들 세상

2010년 대한민국의 중부 소도시, 인적드문 산속에 크고 작은 온갖 형태의 '철물 로봇' 수천이 모여 십여년째 세상일을 의논하고 있다면 '무슨 영화속 얘기냐'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건 실제상황, 사실이다. 풍뎅이부터 사람, 외계인, 꽃, 새, 용, 호랑이같은 맹수에 초자연적 존재까지 2000개나 되는 온갖 철기-프라스틱-반도체 문화의 재활용 산물 로봇조각들이 한자리에 모여 자세를 가다듬고 있다.

이들은 서로 친구내지 친구의 친구이기도 하고 다른 종의 존재들이기도 하다. 일부는 전국에 흩어져 떠돌고(전시중이고), 좀 떨어진 공장에서는 또 다른 로봇들이 꿍꽝 우지끈 소리를 내며 고물더미로부터 변신하는 중이다.

▲ 갤러리 야외에 서있는 '무서운' 외계인과 소년. ⓒ이순희

▲ 자동차 라디에터와 바퀴 등으로 조립된 인체 ⓒ이순희

몇 년전 서울 북촌의 한옥에서 인간의 몸체를 한 정크아트 로봇을 처음 보았다. 투구 쓴 얼굴과 기계팔다리에 시계를 가슴에 달고 거실한쪽에 서있는 '그'는 한옥 서까래와 어울려 보였다. 모자와 가방 그런 것들을 팔에 걸고 서서 창밖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 로봇의 고향을 찾아간 길이 충북 음성 가섭산 중턱에 있는 오대호 정크아트작업실이다. 전화기에서는 공장에서 나는 꽝꽝거리는 소리와 배경음이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는데, 갤러리겸 간이 작업실인 이곳은 산속에 숨어있듯 펼쳐진 다른 세계였다.

소박한 상식으로는 원자폭탄, 반도체, 나노가 등장하면서 '철'은 영향력이 줄어드나 싶었다. 하지만 철은 어디서도 죽지 않고 되살아나고 점점 인간세계로 침투해 있다. 동양철학의 근간인 쇠, 우주에서 날라오는 운석에도 포함된 철, 역사의 승자를 만든 철제무기, 지구상의 모든 건물과 거리를 뒤덮고 있는 철골과 자동차, 인체내부에 들어오기 까지 철의 행로는 거침이 없다. 나아가 철은 인간을 지배하려는 존재로 보인다.

2009년 영화 트랜스포머에서 철물 로봇군단의 대장은 '우주를 떠도는 그의 로봇동지들'을 향해 '우리는 지금 지구의 인간세상에서 (자동차같은 철물로) 위장한 채로 인간을 주시하며 살고 있다.' 라고 말한다. 미래세계를 그린 영화 터미네이터에도 '기계를 다 죽일 때 까지 저항하는 인류' 라는 대사가 마지막 멘트였다.

▲ 서울 어느 한옥에 서있는 시계심장의 로봇 ⓒ하지권
오대호(55)씨는 플라스틱 재활용공장을 운영하다 1998년 정리한 뒤 정크아트 조각가로 변신했다. 어려서부터 인간생활에 편리한 메카니즘의 대표주자, 섬세한 가공품인 기계가 사랑스러웠다.

못쓰게 된 기계부품이 아름다워 이것 저것 조립해놓으면 주위의 반응이 좋았다. 사업을 접은 뒤 '뭐 단가가 좋은 상품이 없을까.' 하며 낚시로 소일하는데 남이 버리고 간 잡지에서 뉴욕 어느 빌딩 앞의 철물 조각이 25억원이라는 기사를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런 분야가 있구나. 난 이런거 좋아하고 1억이면 이런 조각 만들 수 있는데 그럼 24억원이 남겠구나."

자신이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일을 찾았다는 확신에다 뉴욕의 그 조각처럼 돈도 벌 것 같았다. 그길로 창고 작업장에서 용접에 절단에 농기계 자동차등 고물을 모아 정크아트 철물조각을 시작했다.

그러나 몇 달 안가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나." 싶어 모두 때려부시며 '얘들아 미안하다.' 하고 울었다. 자신은 말을 하는데 남들은 못 알아듣는 실어증상태에 까지 이르렀다.

▲ 로봇 하나 옆에 친구를 만들어 주면서 개체가 늘어간다고 하는 조각가 오대호씨. 기계가 사랑스럽고 부품이 주는 매력이 대단하다고 말한다. ⓒ이순희
"그래도 이 시기가 절망만은 아니었어요. 경운기 고쳐주고 막걸리 얻어마시던 시절 무소유의 기쁨과 희열까지도 알았으니까요. 거품이 사라지고 새로운 자아가 생겨났습니다."

차츰 그의 조각을 눈여겨보고 웃음짓는 이들이 많아지고 여유가 생겼다. 처음 작품을 판 돈 300만원은 1년내내 보고 또 보고 하면서 깨뜨리지 못했다. 폐기된 온갖 고물 더미에서 찾아낸 부품들로 조각 만들기가 신나는 사업겸 예술이 되었다.

상상력은 날개를 달고 고물 기계들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몰입하는 과학동화의 세계로 돌진해 변신하기 시작했다.

가섭산 정크아트 갤러리에는 10여년 전부터 그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로봇들이 커다란 2층집을 다 차지하고 마당과 길가 풀섶에까지 웅크리고 있다. 한옆은 고물 자료들과 작업도구가 쌓여있고 수십년전 군용 앰블런스가 분해되려고 와있다.

"트랜스포머 오토봇이나 아바타 영화의 괴수같은 것은 10년전에 다 만들었어요. SF영화는 다 보죠."

2004년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행사장에 그의 철물조각이 선보였다. 서울 한복판에 외계인 로봇이 착지하고 물가에 용이 기어나오기도 했다. 무주 태권도대회에는 '발차기하는 태권소년' 대형 조각이 섰다. 저런 긴 발로 쓸 부품은 뭐에서 나왔나 하는 단순한 호기심부터 얼굴과 온몸에 나타난 표정과 긴장의 강도까지 모든 조각들은 창작의 정신을 담았다. 나무통에서 나오는 스피커 형태를 떠나 철물로 조립된 기괴한 조각의 스피커, 조명도 있다. "마니아보다는 수집가들이 이걸 즐겨요." 라고.

농기계 회사 이름도 안 벗겨진 고철이 그대로 보이는 허수아비 로봇에 상상속의 온갖 괴물, 인간, 동식물 등은 자연스럽게 접근해 보게 되고 자유분방함이 조선 민화에서 보는 듯한 생기와 유머어가 배어나온다. 그들은 즐거워 보이고 또 아주 무서운척 한다. 슬퍼보이는 것도 있다.

"하나를 만들고 나면 그 옆에 친구 하나를 붙여주는 식으로 해서 늘어갑니다."

폐기된 기계본연의 곡선과 복잡한 구조, 쇠의 성질이 조합되면서 새로운 생명력을 가진 물체로 태어났다. 하이테크 고물도 활용된다. 컴퓨터 회로판을 등판에 장착한 사마귀, 쇠이빨에 갈색 녹물이 배어나오는 파이프를 휘어 조립한 호랑이, 말을 타고 창을 꼰아든채 솟아오르는 추상의 기사, 학교가는 소년, 톱과 가위로 붙여진 물고기, 풍구를 세워 만든 달팽이, 회색벽돌에 기계손발을 붙인 로봇, 타이어비늘과 강철 톱니바퀴등 수백개의 조립품 몸체에 초인종으로 박은 눈을 부라리는 용, 후라이팬과 숟가락으로 만든 얼굴, 섬세한 투조철판의 매미날개, 깡통을 눌러 꽃잎으로 변신시킨 것 등 이루 다 말하기 어렵다.

3m남짓한 키의 대작 로봇들은 형태가 가지가지다. 말머리, 악어머리에 인간의 몸둥이를 한 로봇은 500kg 무게다. 500여개의 기계부품이 들어간 이 조각을 용접하다 쓰러지며 깔려서 죽을뻔 했다. 아이들이 '외계인'이라고 부른다. 아이들을 재미있게 해주려고 '가장 무서운 야수'를 상상해 만든 것은 악어개같다. 용과 사자는 폐타이어 비늘과 갈기를 지녔다. 빨간 소화기 몸체의 펭귄 수십마리는 단순한데도 살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 2층 갤러리에 들어선 괴수들- 폐타이어로 비늘을 만들고 수백개의 부품이 들어갔다. ⓒ이순희
▲ 단순한 조형들-톱날물고기와 플러그로 만든 고슴도치 ⓒ이순희

"날보고 미대를 다니면서 배운게 아니니 정통이 아니라고 하죠. 하지만 난 그 정통이념에 가까이 갔다간 아류가 될 것 같아서 적극 피해요. 주변에서 하도 권해 뒤늦게 미술대에 편입했지만 제 전공은 기계가 확실해요. 난 젊은이들의 감각을 부러워하지도 않아요. 그저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극대화시켜 내가 개발한 기법을 가지고 즐겁게 하는 것 뿐입니다."

그런데 그의 공장에는 미술대학을 나와 '정크아트를 배우겠다'고 와있는 젊은이들도 있다. 이제까지 만든 그의 정크아트 조각은 소품까지 모두 5000점. 앞으로 1만점을 만들어 채우려한다. 제일 많은 작품을 지닌 조각가가 되고 싶고 "생활에 밀접한 이런 조각이 돈도 벌 수 있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다."고 한다. 현재 100여점의 작품이 외부 행사장 곳곳에 임대돼 전시 중이다.

10여년간 그들과 같이 숨쉬고 육신에 살을 붙이며 살아온 날에 따른 진화가 생겨났다. 이젠 부품을 보면 어떤 작품이 나올지가 보인다. "전에는 기계부품을 많이 모아놓고 거기서 나오는 걸로 작품을 만들었지만 이제는 작품의 개념에 따라 어떤 부품을 구해야 할지 기획하고 만들기도 합니다."

지금은 자동차 라디에터를 변형시킨 인체조각에 재미를 붙였다. 라디에터의 섬세한 줄무늬는 인체의 핏줄 또는 근육처럼 보인다.

"아무 생각없이 단시간에 무심히 만들어내는 것들은 즉발적 공감을 이끌어내요. 그런가하면 수백개 부품을 찾아내서 몇 달씩 걸려 만드는 대작도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생각하던 구조에다 조형의 비례가 좋고 원하던 자태가 나오면 기쁘죠. 대작 만드는 기쁨이 있어요."

▲ 산속 풀섶에서 튀어나오는 호랑이 ⓒ이순희

▲ 말을 타고 창을 든 기사 ⓒ이순희

'왜 하필 철을 다루나.' 하니 오대호씨는 '철 기계가 주는 속도감이 좋다.' 고 한다. 아니면 진흙으로 만들고 공장에 가서 주물을 떠야 하는데 그 과정을 거치기보다는 과학적 상상력이 집약된 기계부품의 아름다움과 기능이 매력적이라고 했다.

이곳을 둘러보는 동안 가섭산 산중엔 비오는 소리뿐이었다. 적막한 작업실에 밤이 되면 로봇과 온갖 조각들이 어떻게 보일지 궁금하다고 했더니 "처음엔 무서웠습니다." 한다. 혹시 무슨 일이 안 일어납니까.

"여태 아무 일도 안 일어났어요. 이야기가 만들어지길 기다려 볼까요."


충북 보은에 2011년 놀이공원이 만들어지는데 여기 오대호 정크아트 갤러리가 정식으로 개관된다고 한다. 백령도 인당수에 간 심청 등 한국의 이야기를 담은 철조각 등이 만들어지는 중이다.

"심청이 탄 배가 있고 그 뒤를 따르는 배에선 무당이 굿하는 장면을 담았어요. 우리 고전의 줄거리를 따라가는 거지요."

음성 그의 갤러리는 동서양의 존재들이 다 섞여 전시된것 보다는 선반위의 자리를 차지하고 모여든 집단이 더 많다. 보은의 작업이 마무리 된 다음에야 '미술관에 잘 전시할 계획을 생각해 보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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