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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럼비와 우리는 한가족"

[작가, 제주와 연애하다]<15> 우리가 끝내 지켜야 할 것

"이 자의 두뇌를 20년간 멈추어야 한다"는 유명한 판결문과 함께 안토니오 그람시가 20년 넘는 형을 받고 파시스트들의 감옥에 있을 때, 유럽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구명운동에 나섰습니다. 로맹 롤랑이 지속적으로 만들어 배포한 팸플릿 역시 크게 힘을 발휘하였습니다.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

이 유명한 경구는 로맹 롤랑의 글 <지성의 비관주의, 의지의 낙관주의>를 그람시가 요약한 것입니다.

제주도 강정마을의 600명이 넘는 주민, 평화활동가들에 대한 연행, 구속, 투옥, 벌금 사태 뒤에는 불법 공사 상황이 있습니다. 주민 협의를 거치지 않은 강제 과정, 전쟁을 도발하는 안보 기지, 민군복합항이 입증되지 않은 설계도, 환경문제가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공사, 인권 유린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불법 요인에 대해 제주 도지사를 중심으로 제주 주요 언론은 입을 다물거나 사실을 왜곡해 왔습니다.

제주해군기지는 미 해군 설계요구에 의해 미군 핵 항모가 입항할 규모로 설계되고 있다는 사실을 2012년 9월, 장하나 국회의원이 밝혀냈습니다.

모국어로 글을 쓰는 시인과 작가들은 제주해군기지 건설 후 대정, 세화 성산에 공군기지가, 산방산에 해병대가 들어선다는 소식을 들으며 제주도가 최전선화되는 것을 공포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대한민국 곳곳의 요지를 미군에게 내어준 형편임에도, 비무장 평화의 섬 한 곳 확보할 수 없을 만큼 우리 조국은 무력한 나라인가에 대해 다만 슬퍼합니다.

군함에 의해 오염될 서귀포 바다와 기지촌으로 전락할 제주도의 고운 마을들을 생각하면, 어떻게 제주도민을 위로해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쓰는 일 외에 별로 잘 하는 게 없는 시인과 소설가들은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서귀포 바람, 애월의 파도, 북촌의 눈물, 위미의 수평선, 쇠소깍의 고요를 생각하며, 두려움과 연민이 어룽진 손으로 제주도민들께 편지를 씁니다. <작가, 제주와 연애하다>입니다. 필자 주

우리가 끝내 지켜야 할 것

사람이 살아가려면 지켜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내 목숨을 지켜야 하고, 내 가족을 지켜야 하고, 내 민족과 나라를 지켜야 하지요. 시야를 좀 넓혀 보면, 우리 삶의 근원이자, 저 광활한 우주에 떠 있는 '창백한 푸른 점'인 지구라는 별을 지키는 일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모두를 지키는 일은 쉽지 않지요. 누군가는 내 나라와 내 가족을 위해 하는 일인데, 다른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나라와 가족과 나, 그리고 지구에 이르기까지 모두의 이해가 항상 일치하는 것도 아니고요. 따지고 보면 지구나 내 나라, 가족 모두 내 목숨의 근원이면서 더 큰 '나'이기도 한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사람의 욕심과 어리석음, 부질없는 노여움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라고 짐작할 뿐이지요.

아름다운 섬 제주의 작은 마을 강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가진 것은 2012년 3월 7일 구럼비에서 첫 발파가 있었다는 소식을 들은 뒤였어요. 부끄럽지만 저는 그제야 해군기지 건설로부터 구럼비를 지키려는 사람들, 제 몸을 쇠사슬로 묶어 구럼비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시위를 하다가 투옥되고, 단식을 하고, 영화나 팸플릿 같은 홍보 자료를 만들면서 열심히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한편으로, 나라를 지키자는 일에 왜 반대를 하는 거냐? 지역 경제를 살리는 일인데 뭐가 불만이냐?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바위 하나 가지고 웬 호들갑이냐? 고개를 저으며 외면하는 사람들도 있음을 알았습니다.

한낱 소시민에 불과한 저는 해군기지가 왜 강정에 건설되어야만 하는 것인지 그 복잡한 사정은 모릅니다.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당연히 따라 들어올 위락 시설이라는 것들이 과연 얼마나 지역 경제를 살릴 것인지 그것도 가늠할 수 없고요. 하지만 구럼비라 불리는 바위에 대해서는 할 말이 좀 있습니다. 저는 구럼비가 정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유산인지 아닌지, 혹은 생물권보호지역인지 아닌지 그런 문제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구럼비가 희귀하고 특별한 바위라서, 저 바깥세상의 권위 있는 단체에서 중요하다고 이름 붙여 준 바위라서 지켜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저는 '제주'라는 섬에 대해 특별한 애정이 있습니다. 섬의 어느 곳에서 솟아났다고 전해지는 부을 나(夫乙 那)의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알고 보면 구럼비는 제 아버지의 아버지, 더 까마득한 아버지와 뿌리가 같은 형제 사이일 수도 있어요. 언젠가 제가 죽어서 땅으로 돌아가, 수백 수천 년의 세월이 흐른 뒤 제 몸의 일부였던 것들이 강물이나 빗물이 되어 제주 앞바다를 떠돌게 될 때, 그곳에 몸을 담그고 있던 구럼비가, '오, 너 이제 돌아왔니' 하고 반겨줄지도 모릅니다. 구럼비와 저는 한가족인 셈이니까요.

ⓒ노순택

세상을 '나'와 '내가 아닌 것'으로 갈라서, 오직 '나'만을 지키고 '내가 아닌 것'들을 배척하고 없애고 바꿔야 한다는 생각들이 '나'를 위험에 처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욕심을 부렸고, 너무 많은 것들을 망가뜨렸습니다. 이제 멈춰 서서 주위를 둘러봐야 할 때일지도 모릅니다. 발밑에 굴러다니는 흔한 돌멩이와 길가의 이름 모를 풀 한 포기가 나 자신과 다르지 않음을, 그것들을 지키는 일이 나와 내 가족과 나라를 지키는 일과 다르지 않음을 깨달아야 하는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구럼비를 지키는 사람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도 결국 나와 내 가족과 내 나라, 우리의 어머니인 지구일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평화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고요. 사람들이 욕심과 노여움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얻게 되는 평화.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이 있는 그대로 어울려 살 수 있는 평화. 그것이 바로 우리가 끝내 지켜야 할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부희령

소설가. 200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단편 소설 부문 당선.
창작집으로 <꽃>(자음과모음 펴냄), 장편 청소년소설 <고양이 소녀>(생각과느낌 펴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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