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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는 어떻게 '제재'의 칼날만 갈게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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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는 어떻게 '제재'의 칼날만 갈게 됐나

[정욱식의 '오, 평화'] 이란 특집<상> 대이란 강경책의 딜레마

최근 미국이 이란 제재에 한국의 동참을 강력히 요구하고, 이에 대해 이란이 한국의 독자적 제재시 경제적 불이익을 경고하고 나서면서, 한국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자니 핵문제를 둘러싼 미국-이란 사이의 갈등에 연루(entrapment)되어 경제적 불이익뿐만 아니라 대중동 외교 전반에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우려된다. 그렇다고 미국의 요구를 방기(abandonment)하자니, 미국의 안보 공약 약화 등 동맹 관계의 이완이 걱정된다는 목소리가 이명박 정부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글로벌 코리아'를 내세웠던 이명박 정부가 냉전적인 한미동맹에 몰입하면서, 동맹 이론에서 말하는 '연루와 방기의 딜레마'가 걸려들고 만 것이다.

▲ 미국의 단독 대북 금융제재안을 설명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로버트 아인혼 미 국무부 대북제재 조정관이 2일 주한미국대사관 공보관에서 대북 제재 관련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아인혼 조정관은 이 자리에서 이란 제재에 협조를 보여줄 것을 강하게 당부했다. 미국이 우리와 경제적으로 결코 작지 않은 영향력을 주고 받는 이란에 대해 강한 압박을 요구하자 혹자는 이를 두고 '대미 추종 외교의 청구서가 한 장 늘었다'고 표현했다. ⓒ연합뉴스

MB 정부의 대미 몰입 외교의 병폐는 이미 잘 드러난 상황이다. 천안함 사태를 거치면서 미국의 강력한 지지를 받아 더욱 강경해진 대북강경책은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의 거센 반발을 야기하면서 미중간의 갈등 구조에 한국이 휘말리고 있는 형국을 연출하고 있다.

올해 들어 중국에 대해 강경 기조로 돌아선 미국은 MB 정부가 강력히 요청한 한미 연합훈련을 중국에 대한 군사적 봉쇄 강화의 기회로 삼고 있다. 또한 MB 정부가 이란 제재에 동참해달라는 오바마 행정부의 요구에 취약한 핵심적인 까닭은 MB 정부가 미국에게 대북 제재를 강화해달라는 요구가 부메랑으로 되돌아온 데에 있다.

이로 인해 남북관계는 파탄 지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한국은 미중 관계에 이어 미국-이란 관계에도 사이에 낀 '이중 샌드위치' 신세를 자초하고 말았다.

문제는 이러한 딜레마가 이제 막 시작 국면에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가 과거 부시 행정부 때를 방불케 하는 이란 강경책에 몰두하는 데에는 핵문제 이외에도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한 것과 중동 평화협상에서 이스라엘의 양보를 이끌어내기 위한 카드로서의 성격도 짙다.

당분간 미국이 이란과의 대화 모드로 전환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다. 이에 맞서 이란 정부도 '평화적 핵주권론'을 고수하면서 미국 주도의 경제제재에 대해 '자립 경제론'으로 응수하고 있다.

<뉴욕타임즈>, "오바마의 놀라운 이란 정책"

오바마가 이란에 강경일변도의 정책을 고수하면서 미국 내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8월 6일자 <뉴욕타임즈> 사설은 오바마의 이란 정책에 "놀랐다"고 강조했다. 적대국 지도자와도 조건없는 대화를 주창하면서 적극적인 개입정책으로 이란 핵문제를 풀겠다던 대선 유세 때와 약속과 집권 초기 외교적 노력은 온데 간데 없고, 제재에 몰두하고 있는 현실을 비꼰 표현이다.

8월 초 오바마 대통령의 초청으로 이란 정책 간담회에 참석한 이 신문의 논설위원들은 오바마가 이란과의 대화 재개 필요성을 언급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화에 시동을 걸 수 있는지, 이란에게 제시할 '다른 미래'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언급하지 않은 것에 실망감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구체성이 결여된 이란 정책은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면서도 실질적인 대화는 거부했던 부시 행정부 때만큼이나 "공허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뉴욕타임즈>도 비판하고 나설 만큼, 오바마의 이란 정책은 실질적인 대화 구상은 결여되어 있으면서 제재와 압박 일변도로 흐르고 있다. 그런데 이는 오바마의 대선 공약과 집권 초기 정책 노선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그는 대선 유세 때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면 게임의 변경자가 될 것"이라며, "터프하고 직접적인 외교"를 통해 이란 핵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했다.

취임 직후에도 "적극적이고 직접적이며 최고 수준의 외교"를 펼치겠다며, 이란이 핵을 포기하고 테러 지원을 중단한다면, 그 대가로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허용, 경제적 투자 확대, 외교관계 정상화 등을 제공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유화 노선을 상징하듯, 오바마 행정부는 2009년 2월 이란의 위성 발사에 대해 '유감'을 표하는 수준에서 자제했다. 이는 두 달 후 북한의 위성 발사를 '탄도미사일 발사'로 규정하면서 유엔 안보리로 가져가 대북 규탄 성명을 채택했던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는 대응이었다.

또한 오바마는 2009년 3월 20일 이란의 설날인 '노루즈'를 맞아 이란 국민들에게 "새로운 출발"에 나설 것을 제안했다. 미국 대통령이 적대국의 명절에 축하와 함께 관계 개선 메시지를 전달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가장 큰 문제로는 이란의 핵 의도를 둘러싼 동상이몽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란은 자체적인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보유를 비롯한 핵 개발이 평화적 목적이자 주권국가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국제법적 권리라고 주장해왔다.

반면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이란의 의도가 '평화적 이용'을 가장한 핵무기 개발에 있다는 의혹을 더욱 굳건히 해왔다.(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한다.) 이 와중에서 이란은 오바마가 진정으로 '변화'의 정신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우라늄 농축을 비롯한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요구했고, 오바마는 이란의 '새로운 출발'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포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응수했다.

정치적 격변도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의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우선 2009년 2월 총선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오바마의 대화 노선에 강력 반발했다. 이란의 본질적인 의도는 핵무기 개발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대화는 이란에게 핵개발의 시간을 줄 수 있다고 막아선 것이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압박에 오바마도 양보안을 내놓았다. 그는 이란이 핵 프로그램과 관련해 "차이를 해결하기 위해 선의의 노력을 하는 지의 여부"를 2009년 말까지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작년까지 이렇다 할 상황 진전이 없자, 오바마는 본격적으로 "채찍"을 들기 시작한 것이다.

2009년 6월 이란 대선에서 대서방 강경론자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재선에 성공한 것 역시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특히 선거 직후 부정선거 시비가 불거지고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면서 미국-이란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미국은 이란 국민의 편"이라며 정권과 국민을 분리시키는 대응법을 선택했고, 아마디네자드 정권은 시위 배경에 미국의 정보기관이 있다며 대미 강경노선을 더욱 분명히 했다. 이러한 와중에 미국 내에서는 이란 정권교체론이 부상해 아마디네자드의 강경론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하고 말았다.

이란 강경책은 중간 선거용?

임기 첫해에 이란 핵문제 해결의 전기를 마련하는데 실패한 오바마 행정부는 올해 들어 유엔 안보리 결의안과 독자적인 제재안을 통해 이란에 대한 경제 봉쇄와 외교적 압박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제재의 목표는 이란 핵 프로그램을 실질적으로 관장하고 있는 이란 혁명 수비대를 경제적으로 마비시키겠다는 것이다.오바마 행정부는 공식적으로는 이란 정부의 비협조적인 태도와 핵문제의 위험성을 제재 강화의 근거로 제시했지만, 이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상황이 파국으로 치달을 조짐을 보이자, 브라질과 터키는 이란을 설득해 지난 5월 '3자 합의안'을 도출했다. 핵심적인 골자는 이란이 보유한 농축 우라늄 1200kg을 터키로 반출하는 대가로 서방으로부터 120kg의 핵연료봉을 제공받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이러한 합의가 "근본적인 우려를 해결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일축하고선, 6월 유엔 안보리의 이란 추가 제재안을 관철시켰다.

미국 등 서방국가들의 주장처럼 이란-브라질-터키 3자 합의는 핵문제를 해결하는데 완벽한 것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문제 해결의 중대한 출발점은 될 수 있었다. 오바마 행정부조차도 2009년에는 이란의 농축 우라늄 해외 반출과 서방국가들의 핵연료 제공을 맞바꾸는 협상안이 초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었다.

이에 따라 오바마 행정부가 2010년부터 강경론을 고수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다른 설명이 필요해진다.

먼저 오바마 행정부가 국내 정치를 이유로 강경 노선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이란과의 대화 선택이 미국 내 보수파의 안보 공세를 초래해 선거 패배의 빌미로 작용할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6자회담을 거부하면서까지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있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특히 이란 핵문제는 북핵보다 미국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미국 정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보유한 유대인의 표심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집권 후반기 국정 수행과 2012년 재선 도전에서 중대한 분수령이 될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오바마가 가시적인 성과가 불확실한 외교적 성과보다 국내 정치에 비중을 두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해지는 대목이다.

또 하나는 이스라엘에 대한 메시지이다. 이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강도 높은 이란 제재를 통해 이스라엘의 선제공격론을 무마시키려는 것이다. 이란의 핵 개발을 "존재론적 위협"으로 간주해온 이스라엘 정부는 지난 6월 채택된 유엔 안보리의 이란 제재 결의안이 부실하다며, 최근 무력사용 필요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이 '지옥의 문'을 여는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우려해온 오바마 행정부는 안보리 결의안 이외에도 자국의 독자적인 제재 및 유럽 연합, 캐나다, 오스트리아, 한국, 일본에게도 추가적인 제재를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이스라엘 달래기의 성격이 강하다.

또 하나의 메시지는 미국이 강도 높은 제재의 칼을 뽑은 만큼, 이스라엘도 중동 평화협상에 적극 나서달라는 취지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행정부는 취임 직후부터 평화협상 재개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지만, 네타냐후 정권은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중동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해결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온 오바마로서는 애가 타는 상황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중동 평화협상 재개를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하나는 9월 26일로 끝나는 이스라엘의 유대인 정착촌 건설 동결을 연장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스라엘이 '두 국가 모델'을 수용하는 것이다.

지난 7월초 네타냐후를 만난 오바마는 이를 강력히 요구했지만, 네타냐후는 확답을 피했다. 이 자리에서 오바마는 이스라엘의 이란 핵에 대한 위협에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하면서 이란 제재 강화 방침을 밝혔다. 명시적인 연계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오바마가 이란 제재 강화를 대가로 이스라엘의 중동 평화협상 수용을 촉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 때문에 대화를 기피하면서 제재에만 몰두하는 오바마의 이란 정책은 '호미로 막을 수 있는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상황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란의 우라늄 농축 능력은 더욱 강해질 것이고, 제재를 통한 문제 해결이 실패하면 이스라엘과 미국 강경파의 선제공격론을 더욱 맹위를 떨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왼쪽)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오른쪽)은 지난 7월 6일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회담을 가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9월 26일로 끝나는 이스라엘의 유대인 정착촌 건설 동결을 연장해 줄 것과, 이스라엘이 '두 국가 모델'을 수용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했지만 네타냐후는 이에 대한 확답을 피했다. ⓒEPA=연합뉴스

* 본 글에 이어 이란 핵문제의 본질을 다룰 <중>편과 중동 아마겟돈과 한국 외교의 선택을 다룰 <하>편이 이번주 내에 잇따라 게재됩니다.

☞ 필자 정욱식 블로그 '정욱식의 뚜벅뚜벅'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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