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민간외교' 면박하는 한국, 국제사회에서 면박당할 일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민간외교' 면박하는 한국, 국제사회에서 면박당할 일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대표 김상근)의 방미대표단이 7월 26일부터 워싱턴DC를 비롯해 뉴욕, LA 등을 방문하여 6.15 공동선천 실천을 위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2000년 6.15 공동선언 발표 이후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는 서로 영향을 주며 선순환적인 발전을 해왔다. 일시적으로 대화가 중단된 경우도 있었지만 지금과 같이 오랫동안 대화가 단절된 적은 없었다. 네오콘이라는 초강경 세력이 장악한 부시 행정부 시절에도 대화 단절이 지금처럼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지금과 같은 대화 단절 상태는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의 상실을 의미한다. 북한에 대한 적대와 봉쇄 말고 다른 정책을 취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봉쇄 정책이나 의도적 무관심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정책이 될 수 없다. 지난 분단의 역사가 이를 설명해주고 있다.

대화가 단절된 상태에서 민간이 나서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대화 재개를 촉구하는 당연한 일이다. 특히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에도 부시 정부와 다를 바 없는 대북정책을 펼치는 미국 정부에 평화를 추구하는 한국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은 너무나 절실한 상황이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세계적인 차원에서 전쟁과 긴장을 고조시킨 부시 행정부에 대한 미국 시민들의 염증에 때문에 반사이익을 얻으면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취임한지 1년도 안된 오바마 대통령에게 노벨평화상을 안긴 것에서 전쟁을 종식시키고 긴장을 완화시켜줄 것에 대한 세계인들의 기대감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 기대감에는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오바마 정부는 기대와 달리 적어도 대외정책이나 대북정책에서는 부시행 정부와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오바마 정부에게 북한 문제는 우선순위에 해당되지 않는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이란, 중동 등 현안문제 때문에 관심사에서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

즉, 오바마 정부는 한반도 평화 문제에 대한 주요한 당사자이지만 관심도가 낮은 것이다. 또한 북한 핵문제를 어설프게 건드렸다가는 대가만 크게 치를 것이기 때문에, 어차피 기다리면 북한이 손들고 나올 것이라고 판단하는 듯하다. 북한에 대한 불신감은 2009년 4월 5일 북한의 로켓 추진체 발사 이후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의 기본 배경이 되고 있다.

과거 클린턴 정부나 부시 정부도 초기에는 현재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과 비슷한 입장이었다. 하지만 클린턴 정부 시절에는 한국에 김대중 정부, 부시 정부 시절에는 노무현 정부가 있었다는 점이 지금과 결정적으로 다른 요인이다.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는 미국 정부가 대화를 통해서 북한 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북미대화의 교량 역할을 했다. 현재의 한반도 상황이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어둠에 잠겨 있는 것은 한국 정부가 북미대화의 교량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 중요한 요인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화를 통한 소통'이라는 전략으로 민간 차원에서 미국 정부와 대화에 나선 것이 이번 6.15 남측위원회 대표단의 방미 활동이다. 하지만 한국의 몇몇 보수신문들은 방미단의 활동을 두고 안보 문제를 가지고 민간이 주제넘게 나섰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이는 대미 외교에서 민간이 새로운 역할을 시도하는 것에 대해 싹부터 자르고 보자는 식의 발상으로 보인다.

▲ 미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김상근 6.15 공동선언 실천 남측위원회 대표 ⓒ김창수
보수신문들은 '신외교'를 아는가

그러나 정부가 평화의 교량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민간이 적극적인 역할 수행을 하는 것은 낯설거나 어색한 일이 아니다. 이미 1999년 세계의 평화 엔지오들이 헤이그에서 개최한 헤이그 평화회의에서는 국제관계에서 민간의 역할을 높이 평가하였다.

전통적으로 국제사회에서 행위의 주체는 정부이기 때문에 평화운동의 역할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헤이그 회의에서는 외교에서 시민사회와 공동협력을 보장하는 신외교(New Diplomacy)를 모든 국가들이 수용하고 촉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민간이 스스로 국제관계에서 적극적인 행위를 하겠다는 선언인 것이다.

신외교가 주창된 배경은 '전쟁의 재앙에서 다음 세대를 구하는 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정부에만 외교를 맡길 수 없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탈냉전 이후에도 진행된 분쟁을 겪으면서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정부의 역할이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반면에 민간운동은 혁혁한 성과를 거둔다. 대인지뢰금지운동의 성과에서 알 수 있듯이 민간운동이 안보 문제에 관한 국제조약인 대인지뢰금지조약을 체결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또 세계적인 민간운동 네트워크를 형성해 정부의 행위를 감시하고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개입을 강화해왔다.

대인지뢰운동의 성과로 미국 평화운동가인 조디 윌리엄스는 1997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다. 당시 미국은 대인지뢰금지를 반대해 이 조약에 서명하지 않았다. 미국 정부가 반대하는 안보 현안에 대해 미국 시민이 국제사회와 연대해 정부간 국제조약을 체결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당시 조디 윌리엄스는 미국 정부에 반대하면서 안보 문제와 국제관계에서 적극적인 행위를 한 것이다. 헤이그 평화회의나 조디 윌리엄스의 경우처럼 민간이 국제관계나 안보 문제에서 정부의 행위를 비판하고 감시하며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미 21세기 국제사회의 추세가 된 것이다.

1999년 헤이그 회의가 전쟁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부에만 외교를 맡길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나, 6.15 남측위가 긴장이 고조되는 한반도 상황에서 민간 외교에 나선 것은 그 배경이 일맥상통하다. 6.15 남측위의 방미 활동은 1999년에 헤이그 회의에서 제안하고 120여개 정부에 건의된 신외교 개념의 일환인 것이다. 6.15 남측위의 활동을 비방하기에 급급한 보수언론들의 보도는 냉전시대의 감각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자인하는 것일 뿐이다.

6.15 남측위 방미대표단은 존 케리 상원 외교위원장의 초청으로 7월 27일 미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한반도평화포럼'에 참석했다. 같은 날 오전에는 국무부를 방문해 성김 6자회담 대표와 로버트 킹 북한인권대사와 면담하였다.

방미단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대화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 등에 대한 기본 입장을 일관되게 밝혔다. 천안함 문제에 대해서도 한국의 시민사회가 가지고 있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미국 정부가 제재로 일관하기 보다는 대화를 통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런데도 천안함 사건에 대해 '미 의회까지 가서 면박당한 진보단체'(29일 <중앙일보>) '정현백 참여연대 공동대표, 미 팔레오바메가 위원장 설전'(29일 <조선일보>)이라고 보도한 기사는 침소봉대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천안함 사건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주요 현안인 평화협정 체결, 비핵화, 6자회담 재개, 북미 직접 접촉 등을 제치고 한·미 양국 정부의 정책에서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 문제에 대한 토론에서 천안함 사건은 이미 중요한 의제가 되어 버린 상황이다. 미국의 주요언론인 <LA타임스>도 대표단의 방미 직전에 천안함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7월 23일자)

이처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토론에서 당연히 논의해야 할 천안함 사건을 거론했고, 미국의 조야와 의견이 서로 달랐다고 해서 이를 면박하는 두 신문의 보도가 미국 의회에 알려진다면 이것이야말로 미국 사회에서 면박당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참여연대가 천안함 조사 결과와 관련한 의문 사항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전달한 것에 대해 '나라를 망신시켰다'고 비난한 일부 언론들의 보도도 같은 맥락이다. 세계의 많은 시민단체들이 G20, ASEM, APEC 같은 다자간 정상회담에 맞춰 활발하고 강력하게 시민사회의 입장들을 전달해왔는데, 이를 색깔공세로 몰아세우거나 나라를 망신시킨다고 비판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참여연대를 탄압하는 사실 자체가 국제사회에 알려진다면 나라를 망신시키는 일일 뿐이다.

케리 위원장의 발언에서 발견한 가느다란 희망

일부 국내 언론들의 침소봉대 때문에 가려져 버렸지만, 이번 6.15 대표단이 거둔 최대의 성과는 지금과 같이 출구가 보이지 않는 갑갑한 상황에서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법이 가느다란 실처럼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미국 정부는 북한의 변화가 우선이라고 전제하는 원론적인 입장이기는 하지만 대화의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존 케리 상원 외교위원장은 미국 정부보다 더 적극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평화적인 협상이 냉전의 굴레에 갇힌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방법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케리 위원장의 이런 입장은 "북한을 우리가 바라는 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다뤄야만 한다"는 편단에서 비롯한다. 그는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인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가 '전략적 무관심'(Strategic Indifference)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케리 의원은 언제든 국무장관에 오를 수 있는 인물이고 현직 상원 외교위원장이다. 그를 통해서 미국 정부에 적극적인 협상을 촉구하는 의견이 제시된 것은 6.15 대표단이 거둔 성과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안보나 외교 문제가 정부의 전유물인 시대는 지나갔다.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는 민간단체들이 국제사회에서 정부의 정책과 자신들의 의견을 활발하게 피력하는 것은 이제 일반적인 현상이다. 이런 활동을 국익에 반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는 것이 전가의 보도로 쓰이는 상황이 오히려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냉전의 유물이 된 시대이다.

국민과 소통하지 않는 국가 안보는 독재정권이 안보를 독재 연장의 수단으로 활용하던 시절에나 있었던 낡은 것이다. 국민과의 의사소통이 안보 비용을 줄이고, 불필요한 갈등에서 벗어나 안보를 지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민주화로 인해 이미 국민들은 안보 문제에도 참여하고 있다. 투명성과 신뢰를 바탕으로 국민과 소통해 안보 위협을 감소하는 정책을 펼치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가 추구하는 새로운 안보관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