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회원국들의 소득불평등 정도를 측정한 조사에 따르면, 최근 10년 사이 한국의 소득불평등은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빠르게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회원국 국민의 소득수준을 9개 구간으로 구분한 뒤 최상위인 9분위의 소득을 1분위 소득으로 나눈 소득배율을 조사한 결과 한국의 소득배율은 1998년 3.83에서 2008년 4.78로 높아졌다. 10년 사이에 약 4배에서 5배로 늘었다는 것이다.
▲ 최근 이명박 대통령 등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대기업을 질타하며 서민 살리기를 역설하고 있지만, 정치적 수사를 넘어서는 진정성과 의지에 대한 신뢰는 얻지 못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 기간 비교가능한 26개 OECD 회원국의 평균 소득배율은 3배 정도에서 조금 늘었을 뿐이어서 우리나라가 평균 증가율보다 4배나 큰 폭으로 소득배율이 증가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은 2008년 기준으로 최상위와 최하위간 소득불평등이 가장 심한 미국(4.51→4.89)과 불과 0.1점 차이로 따라붙었다.
미국의 경우 소득불평등이 얼마나 심하게 진행돼 왔는지는 IMF 수석이코노미스트를 역임한 라구람 라잔 시카고대 교수의 최근 연구가 잘 보여준다. 이 연구에 따르면, 지난 30여년 동안 미국에서는 불평등이 격화되고 실질임금은 정체되어 왔다. 특히 1976~2007년 사이에 늘어난 가계 실질임금 증가분 중 58%가 상위 1% 가구의 몫이었다.
예를 들어 100명의 직원들에게 지급되는 임금이 총 100만원 증가했는데, 그중 1명이 58만원을 가져가고 나머지 99명이 1인당 4200원 정도씩 받은 셈이다.
라잔 교수는 "이처럼 놀라운 소득 불평등이 진행되는 동안, 이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적 대응 방식은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가계 대출을 늘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결국 금융시장의 붕괴를 초래하고, 주로 주택담보에 의지한 방만한 대출은 이제 중단됐다"고 지적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경기침체에 빠진 뒤 수많은 가정이 빚더미에 깔리고 대량의 실업이 발생했지만 미국 정부의 경기부양책은 일자리 창출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대기업과 부자를 살리면 나중에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며 이들에 대한 자금지원과 감세 정책에 집중한 것이었다.
성장 혜택이 대기업과 부자에게 집중된 경제
19년이나 Fed 의장으로 재직하면서 미국 경제를 골병 들게 한 원흉으로 비판받는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조차 최근 미국 <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경제는 매우 왜곡돼 있어 경기부양책에 의한 경제회복도 대형은행, 대기업, 고소득자에게 국한돼 있다"면서 "나머지 경제 부문은 비극적인 장기 실업 속에 피폐해지고 있지만, 이런 경향이나 높은 실업률이 개선될 조짐은 발견할 수 없다"고 개탄했다.
경제구조가 왜곡되기로는 사정이 비슷한 우리나라의 정부 관계자들도 이런 사실을 모르지는 않는 것 같다. 지난달 28일 삼성경제연구소는 15~29세 청년층 4분의 1이 사실상 실업 상태라는 분석이 발표했다. 올해 상반기 청년층의 체감 실업률은 23%로, 공식적인 청년 실업률 8.6%의 3배에 육박한다는 것이다.
이후 이명박 정부 관계자들은 이른바 '대기업 때리기'라고 불리는 정치적 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서민들을 위해 더 많은 투자를 해 무엇보다 중요한 일자리를 창출하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런 발언이 진정성이 느껴지려면 실질적인 제도 개선과 엄정한 법의 집행 등 구체적인 의지와 행동이 따라줘야 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이미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사실상 다국적기업이어서 투자를 하더라도 상당부분의 일자리 창출이 해외에서 이뤄지거나, 첨단산업일수록 고용 창출 효과가 별로 없는 등 구조적인 요인 때문에 정부가 기업을 다그쳐도 일자리를 늘리기는 쉽지 않은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처럼 '구조적 문제 탓'으로 실업 문제를 돌리는 논리에 대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정책당국의 의지와 진정성의 문제를 호도하는 것으로 비판했다. 비록 미국의 이야기이지만 남의 얘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다음은 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에 게재된 'Defining Prosperity Down'이라는 칼럼의 주요 내용이다.<편집자>
재정적자가 문제라면서 '부자 감세'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앞으로도 미국의 실업률은 떨어지는 게 아니라 오를 가능성이 크다. 더 나쁜 것은 정부 당국자들 이런 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증거가 뚜렷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권력자들은 일자리 창출에 대해 책임을 지기 보다는 조만간 높은 실업률은 '구조적' 현상이며, 수많은 미국인들을 장기실업을 몰아넣음으로써 이런 변명을 암울한 현실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할 것이다.
얼마전만 해도 미국인 노동자 6명 중 1명이 실업자나 사실상 실업자가 될 것이고, 실업기간이 평균 35주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으면, 지나치게 비관적이라고 일축당했을 것이다. 만일 사태가 이런 지경이 된다면 무엇보다 정책당국이 일자리 창출을 위해 총력전을 펼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이미 벌어졌는데 정책당국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첫째, 공화당과 보수적인 민주당 의원들 탓에 의회는 손을 놓고 있다. 그들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지출을 거부하고 실업의 고통을 완화시키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실업자를 도울 여력이 없고, 재정적자를 즉각 줄이지 않으면 미국의 국채 금리가 급등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재정적자를 줄이려는 노력은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해야 하지만, 부자에 대한 감세는 아무리 재정적자를 많이 초래한다고 해도 예외이며 반드시 감세 시행 기한을 연장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일자리에 관한 어떠한 대책도 저지할 만큼 많은 의원들이 미국의 '1% 부자'를 위한 감세에 대해서는 그렇게 신경을 쓰면서도,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미국인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회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Fed는 어떤가? Fed는 완전고용과 물가안정(통상 2%)이라는 두가지 목표를 추구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실업률이 매우 높고, 물가는 목표치에 한참 미달하고 있으니 Fed가 경기부양을 위해 공격적인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기대할 만 상황이다. 하지만 Fed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많은 연구들은 Fed가 물가관리 목표를 2%보다 높게 잡으면 경제를 부양할 수 있다는 결론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벤 버냉키 Fed 의장은 제로 수준으로 기준금리를 내린 것 이외에도 여러 가지 대안들을 갖고 있다면서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일부 Fed 이사들은 Fed가 잘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댈러스 연방준비은행 총재 리처드 피셔는 미국의 경제가 활기를 띠지 못하는 것은 향후 규제에 대한 기업들의 우려 때문이지 Fed의 책임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보수 진영에서 인기가 있지만 실제 증거들과는 배치된다.
사실상 피셔는 Fed의 실패를 Fed의 두 가지 관리 목표 중 하나는 목표치를 낮춤으로써 달성한 것으로 평가하고, 물가관리 목표치는 2% 수준이 아니라 '매우 낮은 수준으로 안정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을 물가 목표로 변경한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일본에서 이미 지켜본 경험이 미국에서도 재연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가격이 하락해 디플레이션이 빚어져도 일부 Fed 관료들은 괜찮다고 말하리라는 것이다.
크루그먼 "미국, 높은 실업률 고착화될 것"
의회와 Fed가 이런 식으로 나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나는 앞으로 다음과 같은 일들이 벌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향후 2년이 지나도 실업률은 매우 높은 상태이며, 지금보다도 높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정치인들과 Fed 관료들은 사태를 해결하려는 책임을 지는 대신, 실업 문제는 구조적인 것이고 자신들의 통제 밖에 있다고 한목소리를 낼 것이다.
또한 이런 변명들은 시간이 흘러 장기실업자들이 다시 일자리를 구할 기술과 노동력을 상실하게 되면서 자기충족적인 예언이 될 것이다.
나는 시민들의 분노가 이런 결과를 막을 것이라고 상상하고 싶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정말 분노하고 있지만, 이 분노는 초점이 맞춰지지 않은 것이다. 또한 정부 권력자들은 지금처럼 실업 문제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은 채 실업 문제가 고착화되도록 방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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