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쿠키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던 중남미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 아이티. 그러나 아이티는 더 이상 진흙쿠키의 나라가 아닌 재앙과 아픔의 나라로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다. 약 23만 명의 사망자와 30만 명의 부상자, 그리고 130만 명의 국내유민이 발생한 너무나 비극적인 재앙이었다. 강진 이후 아이티가 다시 회복될 수 있을지 그 누구 하나 장담할 수 없는 상태일 만큼 최악의 상황에 놓여있었다.
그러나 UN, NGO 등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를 비롯한 지역사회의 전폭적 지원과 헌신들을 통해 아이티는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으며, 지금은 초기 긴급구호 단계를 넘어 중장기적인 재건복구의 단계로 넘어가 이들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주고자 오늘도 많은 이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무엇보다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절망 가운데서 새로운 희망의 빛을 찾아가는 이들의 모습들을 통해 다시 한 번 세계 최초로 아프리카 노예들에 의해 주도된 혁명으로 독립을 이룬 위대한 국가의 위상을 되찾아가고 있는 듯하다.
▲ 눈물을 흘리고 있는 아이티. 아이티 지도 모양의 그림이다. ⓒ월드비전 |
아이티 재건작업 가장 큰 난제는
하지만 여전히 아이티는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전 세계 긴급구호 현장에서 수십 년을 활동해온 긴급구호 베테랑들도 이런 곳은 처음이라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단순히 피해현황만이 최악이 아니라 긴급구호 및 재건복구사업을 진행하는데 예기치 않은 많은 변수들이 발생하고 있어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여기에다 우기가 시작되어 더욱 더 큰 어려움들이 가중될 거라는 우려의 목소리들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정말로 우려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지진피해 복구가 여러 가지 걸림돌들로 인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예측도, 우기로 더욱 더 피해가 가중 될 거라는 염려도 아니다.
오히려 이들 스스로 자신들의 진정한 가치를 잃어버리고, 삶의 희망을 포기하게 될까봐 두렵다. 처해진 삶의 무게로 인해 그들 스스로가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생명인지, 그리고 나의 생명이 소중한 만큼 다른 이들의 생명 역시 소중하다는 진리를 잃어버리게 될까 두렵다.
"국제사회의 쓰나미를 맞았다"
다른 한편으론 선이란 이름으로 아이티에서 활동하고 있는 국제사회가 오히려 아이티의 상처를 더욱 덧나게 하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혹 UN 및 NGO들을 주축으로 하는 국제사회가 '우리가 이들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줘야 한다.'는 자기 최면에 걸려있지는 않은지 돌아본다.
혹 이들 가운데 '우리는 답을 알고 있고 이들은 답을 발견할 수 없다'란 전제가 깔려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그렇다면 이들은 국제사회의 우려처럼 정말 자신들의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할 능력이 없단 말인가?
2005년 인도네시아 쓰나미 지진해일 이후 어느 현지인이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쓰나미를 두 번 맞았다. 첫 번째 쓰나미는 정말 지진해일로 인한 쓰나미였다. 그리고 두 번째 쓰나미는 UN과 NGO들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쓰나미를 맞았다".
이 말은 커다란 충격으로 내게 다가왔다. 국제사회는 최고의 인력과 최대의 자원으로 최선을 다한다고, 우리의 이익이 아니라 그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찌는 듯 한 더위와 곳곳에 도사리고 있던 위험들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희생하며 노력했는데 결과는 겨우 이런 냉소적인 비판뿐이란 말인가.
쓰나미 지진해일 당시 긴급구호팀으로 현장을 방문했던 한 사람으로 너무나 서운하고 화가 나기까지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그건 오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었던 내 자신과 엄연한 현실에 더욱 가슴이 아려왔다. 무엇이 문제였단 말인가? 우리의 열심과 노력이 왜 이들에겐 이런 식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었단 말인가?
▲ 국제유민캠프에서 진행되는 물자배분 ⓒ월드비전 |
수년이 지난 지금 그들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들에게 정말 필요했던 것은 단순히 긴급구호물자, 식량, 주택, 학교만이 아닌 그들의 아픔을 함께 공감해주고 함께 눈물 흘려 줄 우리들의 진심어린 마음들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자신들을 처참한 상황에 처한 불쌍한 사람들로서가 아닌 하나의 소중한 인격체로서 인정해주고 존중해 주는 진정한 벗이 필요했던 건 아니었을까?
최근 각종 언론매체를 장식하는 화두는 단연 G20 정상회의다. 올 11월에 개최될 G20 서울정상회의 준비를 위해 각계각층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특별히 시민사회와 국내 NGO들 역시 이번 기회를 통하여 더욱 더 함께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기치아래 애쓰는 모습들이 보인다.
그런데 한편으론 벌써부터 곳곳에서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들이 들리고 있다. 모두가 함께하는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모여 추진해가는 일인데 왜 이런 소리들이 들리는 것일까?
분명 각자 공익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는 투철한 사명감과 정의감으로 가득차 있을 텐데 무엇이 시작 전부터 이런 소리들이 나오게 만드는 것일까? 혹 이들 역시 나만이 답을 가지고 있다는 자기최면에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 혹 공익을 위해 헌신한다 하면서 정작 나와 늘 함께하는 이들을 이해하고 소통하려는 노력들이 부족한 것은 아닌가? 잠시지만 마음이 아려온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될 아이티 재건복구와 G20 정상회의, 선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우리들의 열정과 노력들이 누군가에게 또 다른 쓰나미로 다가오지 않길 바라본다.
* [아시아 생각]은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에서 내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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