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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속 자기 계발은 절대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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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대중문화 속 자기 계발은 절대악인가?

[미래와 희망]

* 이 글은 계간지 <미래와 희망> 최근호(3호)에 실린 글이다. <편집자>

프란츠 카프카의 명작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거대한 벌레가 된 자신을 발견합니다. 기계처럼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 온 그는 이제 출근을 할 수도 없고 그저 방안에 갇혀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가족들의 차가운 외면뿐입니다. 세상 어느 곳에도 그의 편은 없습니다. 결국 그는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벌레로 숨을 거둡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본격화되던 20세기 초반의 서구 사회가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개인은 얼마나 보잘 것 없으며 무력한 벌레같은 존재인지를 확인시켜주는 문학적 증언으로 이보다 더 탁월한 작품은 없습니다. 프란츠 카프카는 요절했지만 그의 작품은 자본주의 체제와 함께 살아남았고 그레고르 잠자는 체제와 인간에게서 모두 소외된 현대인을 상징하는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현실은 어떤 작품을 통해 어떻게 형상화되고 있을까요? 모든 작품은 시대의 소산이며 시대의 증거라는 옛 명제를 떠올려보면 지금 우리가 읽고 보고 들을 수 있는 모든 작품들은 오늘의 거울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작품이 다 오늘의 현실을 종합적이고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습니다. 현실적으로 세상의 모든 예술작품을 읽는 일도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인기를 끌었거나 널리 알려진 광고, 드라마, 책, TV 프로그램, 그밖의 대중문화의 흐름을 선별해 읽으며 이 글의 주제에 어울릴만한 작품들을 찾아보려 합니다. 대중들이 즐기는 대중문화는 당대의 욕망을 가장 첨예하고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텍스트입니다. 물론 그 가운데 몇몇을 골라내는 일은 다분히 주관적인 선택과 해석이 되겠지만 그 과정에서 오늘은 좀 더 비릿한 실체를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글의 전제가 되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현실이라는 표현은 사실 조금 모호합니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욕망은 늘 어떻게든 경쟁 체제에서 살아남아 자신의 부를 축적하고 자신의 꿈을 이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어떻게 달라지는 것인지를 엄밀하게 구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를 거칠게 구별한다면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힘이 절대화되고 국가는 무책임해지는 사회라고 정리할 수 있을까요? 물론 자본주의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어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사회와 한국 같은 신자유주의 사회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들 합니다만 지금 한국사회는 이미 100년째 자본주의 사회이고 30년전부터 조금씩 신자유주의 사회로 전환해온 사회입니다. 겉으로는 휴머니티와 양심, 도덕 같은 윤리들이 작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 자본의 가치가 인간의 가치를 능가하고 있는 사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본의 가치를 노골적으로 찬양하고 미화하는 대중문화 텍스트를 만나기는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2002년 '부자되세요'라는 카피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BC카드 광고나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준다'는 롯데 캐슬식의 아파트 광고는 더 이상 부가 감추거나 거부해야 할 가치가 아니라 당당하고 공공연하게 추구해도 좋을 욕망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심지어는 부가 자신을 구성하고 외화하는 권력과 자존심과 개성으로 전화되고 있음을 노골적으로 반증하고 이러한 가치관을 선동합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 BC카드의 광고는 IMF 구제금융 대란을 거치며 완전히 신자유주의 시대로 진입한 한국사회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착한 일을 하기보다는 부자가 되라고 말하는 저 광고문구는 부에 대한 추구가 더 이상 죄악시 되지 않고 당연하며 심지어 올바르기까지 할 수 있다는 의식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광고들은 한국의 자본주의가 봉건적이고 도덕적인 가치 대신 자본의 가치를 전면화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것은 IMF 구제금융 대란 이후 한국의 자본주의가 구조조정을 거치며 그만큼 고도화되었기 때문일것입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수많은 부도와 정리해고라는 위협적 사건을 거치며 대중들 역시 이제는 누구도 나의 행복을 지키고 책임져줄 수 없다는 위기와 절박감을 느끼고 부가 가장 확실한 현세적 가치라는 믿음을 신봉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 신자유주의의 현실은 부에 대한 열망과 믿음만으로 대중문화 속에서 확인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가 단순히 자본주의의 규모가 커지고 국가운영과 통치 패러다임, 자본 축적 방식이 달라지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서동진의 저술 <자유의 의지 자기 계발의 의지>는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변화를 통치성과 주체형의 변화를 분석하는 것으로 적확하게 밝혀냈다는 점에서 그 탁월한 가치가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그저 미친 듯이 성실하게 일에 몰입하는 노동자가 아니라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 일에 몰입해서 쾌락을 추구하는 소비자로 노동주체가 이행한 것, 그렇게 자기 계발하는 시민이 탄생한 것이 서동진의 논리적 핵심입니다. 서동진의 분석이 탁월한 것은 바로 '자기 계발하는 시민'의 탄생을 통해 한국 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적 변화를 압축적으로 증명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실제로 얼마나 많은 자기 계발의 언술들이 넘쳐났는지는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서동진의 책을 읽은 이라면, 그의 주장에 동의하는 이라면 자기 계발의 문화가 얼마나 신자유주의적 반증인지를 새삼 이야기 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다양한 자기 계발 열풍이야말로 신자유주의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 사례를 인용하는 것만으로도 한국의 신자유주의적 현실을 증거하고 형상화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신자유주의적인 자기 계발의 문화도 대중문화 속에서는 그렇게 노골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문화가 직설이기보다는 은유이기 때문입니다. 학교와 기업, 정부가 펼친 자기계발의 신자유주의와는 다르게 전문적인 경영담론을 동원하지는 않지만 수많은 대중문화의 장면들과 결합한 자기 계발 담론은 더욱 감성적이고 감동적이며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시대의 윤리와 가치가 되기 마련입니다. 벌레가 된 그레고르 잠자를 통해 우리가 초기 자본주의 사회를 더 비판적으로 이해했듯 대중문화 속에 직간접적으로 표현된 자기 계발의 담론들을 뒤지며 현실은 더욱 명확해질 것입니다.

가령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판매고를 올린 조앤 롤링의 해리 포터 시리즈는 단지 어린이와 청소년층을 독자로 한 판타지물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작가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판타지물이라는 외양 아래 자기 계발의 중요한 담론들을 숨겨둔 책입니다. 해리 포터가 마법학교에 가고 악의 세력과 싸우게 되는 것은 단지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의 싸움은 늘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내기 위한 내면의 갈등과 성찰을 수반합니다. 그래서 그는 싸움을 통해서 비로소 자아를 파악하게 되고 자신을 이해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말해 성장하게 되는 것이지요. 자기계발 담론의 한 축이 자아 성찰과 자존감 회복이고 2000년대 이후 대중적인 심리 치유서적들이 큰 인기를 끌었던 것을 떠올려보면 해리 포터 시리즈가 신자유주의 시대의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새삼 이해가 됩니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일종의 자기계발서 주니어 버전으로 기능했던 셈입니다.

2000년대 초반 한국의 주말 프로그램에서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신동엽의 러브 하우스>나 <신장개업> 같은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입니다. 형편이 어려운 가족들을 돕고 가족의 행복을 되찾아주겠다는 취지로 시청자들의 삶에 직접 개입했던 이 프로그램들에서 TV는 단순히 집을 지어주거나 가게를 고쳐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프로그램에는 반드시 심리상담 전문가나 시테크 전문가 윤은기 같은 사람이 등장해서 가족의 불화와 개인의 무기력, 부족한 사업가 마인드 등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성공과 행복을 위한 예비과정으로 반드시 그동안 문제가 있었던 자아가 치유되고 변화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했던 것입니다. 출연자들이 행복하지 못했던 것은 사회나 구조의 탓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자신감을 가지고 낙관적이고 계획적이며 독창적으로 자신의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며 결국 이것은 자기 관리에 소흘했던 것이라고 비판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낙담하고 좌절했던 가장이 꽁꽁 얼어붙은 얼음을 깨고 들어가 '할 수 있다'고 외치고, 가족간의 사랑을 다짐하며 울면서 달렸으며, 그동안 신경 쓰지 않던 외모까지 멋지게 다듬어야 했습니다. 그러한 모습은 바로 자신의 안과 밖을 모두 변화시키는 자기 계발의 TV 감동 버전이었습니다. 이 프로그램들이 IMF 구제금융 위기 이후에 방송되었고 출연자 상당수가 IMF로 인한 직간접적인 피해자였으며 심리치료 전문가나 자기계발 전문가들이 컨설턴트로 TV에 직접 등장해 자기 계발의 위력을 보여주었다는 점은 그래서 예사롭지 않습니다. 자본주의에서 소외되고 낙오된 개인의 행복을 되찾아 주는 일은 TV의 순기능을 보여준 미담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자기 계발의 담론을 더욱 확산시키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자기 경영, 시테크 같은 전문 용어들과 그 패러다임이 휴먼 다큐멘터리의 틀을 타고 광범위하게 퍼져나간 것입니다.

2000년대 이후 특히 2000년대 후반에 다시 폭발적으로 성장한 아이돌 팝 문화 역시 이러한 자기 계발의 문화와 신자유주의적 현실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1996년 SM엔터테인먼트가 일본의 아이돌 문화를 벤치마킹해서 등장시킨 H.O.T 이후 DSP 미디어(옛 대성기획)의 젝스키스마저 크게 성공하자 한국의 대중음악시장은 아이돌들이 점령하고 말았습니다. SES, 핑클, 신화, 지오디 같은 팀들이 1990년대의 1세대 아이돌이었다면 동방신기와 슈퍼주니어는 대표적인 2세대 아이돌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한물 간 것처럼 보였던 아이돌을 다시 한번 트랜드로 만들어버린 브라운아이드걸스, 원더걸스, 소녀시대, 카라, 2PM, 2AM 같은 2006년 이후의 3세대 아이돌들은 대동소이한 활동 패턴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스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DSP 미디어, SM엔터테인먼트, YG 엔터테인먼트, JYP 엔터테인먼트 같은 초대형 기획사의 오디션에 응모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이들은 10대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즐거움을 다 포기하고 연습생 생활을 시작합니다. 이들은 말도 안되는 노예계약을 맺기도 해야 하는 위험을 감내하고서 하루 종일 춤과 노래, 랩, 연기와 화술, 외국어, 악기 연주, 작사/작곡을 공부합니다. 그러나 언제 데뷔를 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고 또한 자신이 어떤 팀으로 누구와 함께 활동하고 어떤 음악을 하게 될지는 더더욱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다가 때가 되었다는 기획사의 판단이 서면 그때서야 다른 연습생들과 조합된 팀을 인위적으로 결성하고 극적으로 준비된 데뷔 무대를 통해 활동을 시작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철저히 음악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추어 주문 생산되는 과정입니다. 이른바 섹시 컨셉으로 갈지, 아니면 순수 컨셉으로 갈지, 힙합을 할지, R&B를 할지를 결정하는데 있어 판단의 근거가 되는 것은 어떤 것이 잘 먹힐까 하는 상업적 판단뿐입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예전처럼 음악성과 진정성 같은 평가의 기준을 들이대는 것은 적절하지 못해 보입니다. 게다가 맞춤 가공된 한 개의 팀이 등장하기 위해 배치되는 작사가, 작곡가, 안무가, 스타일리스트, 매니저의 조합은 가히 공장제 시스템 같습니다. 예술이 창작자의 예술적 욕구를 형상화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고도로 기획된 시스템 아래 존재하는 것은 한국 대중음악의 발전과정일 수 있지만 또한 예술이 고도화된 자본주의에 예속된 대표적인 증거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이돌들은 자신을 단지 고도로 훈련된 상품으로만 묘사하지 않습니다. 비록 이들 대부분이 엄청난 연습과 경쟁을 거쳐서 살아남은 상처투성이의 승리자일지라도 그 모든 과정은 인간승리의 감동적 드라마로 포장됩니다. 대부분의 아이돌 멤버들은 눈물겨운 연습생 생활을 거쳤고 그 과정에서 끝내 살아남지 못하고 팀을 떠난 멤버들도 여럿입니다. 설사 데뷔를 했다고 하더라도 다른 아이돌 그룹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갖은 고생과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서 스타가 된 대부분의 아이돌 그룹들이 TV 프로그램에 나와 눈물을 흘리며 그 시절을 이야기 합니다. 얼마 전 카라의 한승연이 <강심장>에 나와 눈물을 펑펑 쏟으며 힘겨웠던 무명시절을 이야기했던 것도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이러한 눈물의 자기 고백은 결국 이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킬 뿐만 아니라 이들이 엄청난 자기 안팎의 어려움을 모두 헤치고 승리한 인간형이며 자기 계발적 주체임을 확증해줍니다. 최근 방송중인 <강호동의 강심장>은 토크쇼의 재미와 함께 자기 계발의 감동신화를 창조하려 애쓰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입니다.

대중문화에 담긴 자기 계발 담론을 가장 매끄럽게 포장해 낸 결과물은 바로 빅뱅이 펴낸 책 <세상에 너를 소리쳐!>일 것입니다. 이 책은 빅뱅의 멤버들이 단지 뛰어난 재능에 기댄 엔터테이너들이 아니라 초등학교 시절부터 엄청난 구슬땀을 흘리며 자신을 연마해온 노력형 인재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연습 과정에서 이들은 단지 춤과 노래만을 배운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피나는 연습을 거치며 '재능과 능력은 다르다', '정직한 노력은 어디서나 빛난다', '희망을 품는 순간, 기적은 일어난다', '너만의 캐릭터로 승부하라', '자신을 믿는 자가 승리한다'는 자기계발의 정언을 깨우친 자기 계발의 주체로 거듭나고 이 책은 그 모습을 세세하게 묘사하며 감동을 이끌어냅니다.

ⓒ뉴시스

빅뱅의 승리가 자기 계발서를 무척 탐독한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빅뱅을 키운 YG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양현석 역시 세련된 자기 계발 담론의 위력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책의 도입부에 '이 책은 '여러분, 어렵지만 힘내세요', '좌절을 딛고 성공하세요'라는 흔한 메시지가 중점은 아니다. 자신을 만족시키는 창조와 본능, 자신을 소중하고 아름답게 가꾸어가는 강인함, 요즘 신세대들이 가진 특유의 패기와 뜨거운 열정을 독자들에게 '감기처럼' 전염시켜드리고 싶은 생각이다. (중략) 비좁은 문틈 사이로 세상을 들여다보지 말고, 그 문을 박차고 뛰어들어가 '큰 소리로 자신을 이름을 소리쳐보라'는 열광의 주문이기도 하다.' 라고 적으며 빅뱅이 자기 계발적 주체이며 이 책이 그들을 화자로 한 자기계발서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특정 직업에서 뛰어난 성과를 드러낸 인물들이 단지 유능한 기능인이 아니라 자기 계발의 담론에서 승리한 인물로 그려지는 프로그램은 사실 한둘이 아닙니다. 강호동이 진행하는 인기 프로그램 <무릎팍도사> 역시 스타들의 성장담을 감동적으로 들려줍니다. 날 때부터 뛰어난 재능으로 손쉽게 정상에 오른 것이 아니라 정상에 오르기까지 피나는 노력을 했으며 동시에 승리에 안주하지 않게 자기를 끊임없이 관리해온 자기 계발적 주체로서의 진면목과 인간적인 소탈함을 함께 보여주는 <무릎팍도사>는 자기 계발 담론의 TV 토크쇼 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밖에도 최근에는 이러한 자기계발의 노력을 보여주는 프로그램들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자주 등장하는 것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일밤의 '오빠밴드'와 천하무적 토요일의 '천하무적 야구단', '남자의 자격'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자기 분야에서 일가견을 가진 중년의 사내들이 거의 해보지 않은 미션 앞에서 좌충우돌하며 미션을 수행하고 그 과정에서 스타답지 않은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은 분명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진화이지만 직장 밖이나 40대 이후에도 끊임없이 공부하고 자신을 연마해야 하는 우리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자아실현과 삶의 질 개선이라는 이름으로 늘 목표를 정하고 도전하며 성장과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자기 계발에 짓눌린 우리의 자화상이 이러한 프로그램에 담겨 있지 않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무려 75만명이 응시했다던 서바이벌 프로그램 <슈퍼스타 K 시즌 1>도 대동소이한 흐름과 코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도전자들의 눈물겨운 집념과 솔직한 내면을 보여주고 냉정한 심사 과정에서 자신의 목표를 향해 자신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보여준 <슈퍼스타 K 시즌 1>은 단지 음악프로그램이 아니라 가장 폭발적인 반응을 얻어낸 자기계발 드라마 중 하나로 평가될 것입니다. 실제 드라마 가운데에서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허준>, <대장금>, <선덕여왕>이 같은 흐름을 가진 것으로 언급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쯤에서 엄청난 광고수익을 올리고 있는 김연아가 늘 가장 세련되게 당대의 이데올로기를 보여주는 나이키 광고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를 확인해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김연아가 자사 제품을 소비하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환하게 웃는 모습만을 반복해 보여주는 다른 광고들과 나이키 광고는 확연하게 다릅니다. 2009년 말의 나이키 광고에서 무심하게 연습하는 김연아를 둘러싸고 지나가는 말들은 '모두가 지켜보고 있어. 200점으로는 아무도 놀라지 않아. 또 신기록을 세울 수 있을까? 이 정도 부담감도 없을 줄 알았어? 지금 못하면 4년을 기다려야 해. 실수하지 않을 수 있을까?'입니다. 2010년 초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던 당시에 나온 광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녀 홀로 선 빙판 위에는 '실수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지금 못하면 4년 후엔 힘들걸. 무조건 금메달 따야지'처럼 그녀 자신이 떠올릴거라고 상상되는 자기계발의 잠언들이 그득합니다. 나이키의 포토 에세이 스토리는 이러한 말들의 결정체와 같습니다. 사실 단지 뛰어난 스포츠 기능인인 김연아는 이러한 광고를 통해 자신과의 싸움과 갈등에서 이기려 애쓰는 자기 계발적 주체이며 그 결과를 이룬 진정한 승리자로 묘사됩니다. 자신의 목표를 흔들림 없이 모두 이룬 순간 눈물 흘리며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 김연아는 그래서 더 이상 스포츠 스타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딸이며 국가적 영웅으로 칭송되기에 이릅니다. 자기 계발의 담론은 주체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주체의 의지로 표상되고 인정되는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자기계발적 담론을 반영한 대중문화 텍스트들이 반복하는 것은 바로 성공과 실패를 결정짓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메시지입니다. 어딘가에 분명히 있는 자신만의 적성을 찾아 꿈을 가지고 목표를 설정하고 자신을 긍정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만이 승리할 수 있다는 담론은 이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처럼 여겨집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감당할 수밖에 없는 패배와 실패의 아픔조차도 성공을 위해 받아들여야만 하는 필연적 과정으로 여겨집니다. 우리가 노력하고 애쓰는 것은 자아를 실현하고 더욱 자유로워지기 위한 노력이라고 긍정됩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사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나 수많은 자기 계발서에서 이미 숱하게 반복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사실 그렇게 녹록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현실은 오히려 애인과의 대화마저 끊임없이 왜곡되는 TV N 롤러코스터의 <Her(헐)>이나 아직도 가정부가 존재하는 계급 사회를 그린 <지붕 뚫고 하이킥>, 늘 복불복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 <1박 2일>에 더 가깝습니다. 특히 <1박 2일>은 정해진 규칙을 따라야 할 뿐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심지어는 엄동설한에 길바닥에서 잠까지 자야 한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 시대의 사회 질서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합니다. 국가와 자본의 명령에 복종할 뿐 어떠한 반항도 할 수 없고 어떠한 안전장치도 없는 인민들의 삶은 <1박 2일>에서는 코믹코드를 빌어 재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1박 2일>의 멤버들은 서로를 믿고 의지하기보다는 끊임없이 야합하고 경쟁하며 속인다는 점에서 서로 경쟁할 뿐 연대하지 않는 우리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자기 계발의 긍정적 드라마가 아니라 현실의 냉혹함을 직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대중문화 텍스트 역시 적지 않은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혹자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현실을 왜곡하거나 찬양하는 대중문화라며 가난을 희화화했던 <꽃보다 남자>나 서울대 진학을 노골적으로 찬양한 <공부의 신>, 부자가 되고 싶어하는 <부자의 탄생>같은 최근의 몇몇 드라마를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비판받아야 할 이데올로기를 드라마로 외화했다는 이유로 비판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설명될 수 없습니다. 드라마 속에 담긴 이데올로기들이 이미 많은 이들의 욕망과 가치관이 된 상황에서는 그것을 표현했다는 것만으로 비판하는 것은 지나치게 일차원적인 대응으로 보입니다. 언제 TV에서 진보적 가치를 공공연하게 옹호한 적이 있었던가요? 그러므로 선악의 잣대로 TV를 평가하기보다는 표현의 노골적인 정도가 과거와 달라졌다는 점을 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아가 한국의 신자유주의가 자본의 논리를 어떻게 윤리와 쾌락에 결합시키고 있는지를 분석해보는 것이 더욱 현명한 태도일 것 같습니다. 이러한 드라마 역시 단순히 부자가 되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부를 이루는 것이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감동적인 자기 계발적 성공이며 가족의 화합과 사랑까지 얻는 쾌락의 절대조건임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를 이루는 것이 자아실현, 인간승리이며 행복 그 자체라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신자유주의 시대의 윤리이며 자기 계발적 가치 확산의 증거일 것입니다.

지금까지 대중문화 속에서 신자유주의적 자기 계발의 담론들이 어떻게 형상화되고 있는지를 일별했지만 중요한 것은 사례를 나열하며 분석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사례를 어떻게 평가하고 규정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자기 계발 담론들이 빈번하게 긍정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이 어떻게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으로 연결되고 있는지를 밝힌다해도 이것이 모두 부정적 가치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기본적으로 생존과 행복을 추구하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자기 계발을 하는 것은 누구도 쉽게 버릴 수 없는 욕망입니다. 비록 그것이 국가와 자본이 주도하는 인재 경영이나 인적자원관리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더라도 기본적인 바탕은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욕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와 자본이 시켜서이기도 하고, 그렇게 살지 않으면 기본적인 생활도 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잘 살고 싶고 더 나은 자신이 되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에 자기 계발을 멈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서동진 역시 인간의 자유 의지와 욕망을 자기 계발로 포획하는 한국 사회의 신자유주의를 통렬하게 논증하고 비판했지만 그것이 어떻게 극복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신자유주의가 없고 자기 계발의 장치들이 사라진다고 해서 자기 계발의 욕구가 멈출 수 있을까요? 신자유주의가 없더라도 국가는 다른 방식의 자기 계발을 끊임없이 교육할 것이고 또한 인간 역시 더 나은 삶을 위한 자신의 다양한 실천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 계발은 결국 근원적 본능이자 사회적 이데올로기이며 진화의 필연적 조건이자 동력입니다. 그러니 자기 계발의 욕망은 절대 선도 아니고 절대 악도 아닙니다.

만약 대중문화 속 자기 계발의 노력들이 모두 신자유주의 욕망을 내면화한 것이라고 부정해야 한다면 자기 계발하는 주체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투쟁하는 주체를 도대체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는 더더욱 어려운 질문이 될 것입니다. 사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는 자기 계발하는 주체와 투쟁하는 주체가 결코 엄밀하게 분리될 수 없습니다. 용산에서 죽어간 철거민들이 오랫동안 평범한 중산층이었고 많은 노동자들도 해고되기 전에는 노동운동을 나 몰라라 했던 현실은 이 주체 사이 단호한 선가르기가 어렵다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합니다. 더더군다나 자기 계발하는 주체가 투쟁하는 주체가 되지 않는다면, 그러니까 외모 꾸미기에 관심이 쏠려있던 언니들이 기꺼이 촛불을 밝혔던 2008년 촛불집회의 신비와 기적을 재현하지 못한다면 세상은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아직은 자기 계발하는 주체들이 어떻게 투쟁하는 주체가 될 수 있을지를 명쾌하게 해명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이 둘을 그저 분리하는 방식으로는 신자유주의적 자기 계발 담론을 뛰어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지금은 대중문화 속 자기 계발 담론을 일방적으로 비판하기보다는 이를 통해 대중의 욕망을 좀 더 내밀하게 바라보고 자기 계발하는 주체와 투쟁하는 주체가 만날 수 있는 긍정적인 지점을 발견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삶은 모든 것을 껴안을 뿐 나누고 내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서정민갑은…

오랫동안 한국민족음악인협회에서 일을 하며 음악 글쓰기를 시작했다. 2004년부터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05년에는 광명음악밸리축제의 프로그래머로 일하기도 했다. 대중음악웹진 <가슴> 편집인과 대중음악웹진 <보다>의 기획위원을 맡았다. 네이버, <재즈피플> 등 다양한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민중가요 기본 콘텐츠 수집 사업'을 기획·진행했으며, 2009년부터 2010년초까지는 <프레시안>에 'Revolusong'을 연재했다. 'Red Siren' 콘서트 등 여러 공연의 기획·연출 작업도 병행하며 활발하게 노닐고 있다.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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