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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에 국가주권 관리장치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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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에 국가주권 관리장치 무너졌다

[미래와 희망]

다음 글은 지난 6월초 발간된 계간지 <미래와 희망> 3호에 실렸던 글이다. <편집자>

1. 스텔스 무인정찰기

2009년 12월 12일.
아침 일찍 평양의 미림 비행장에서 그루지야 소속의 수송기 한 대가 이륙해서 서해상에 들어오는 순간. 오산에 위치한 미 7공군사령부 상황실에도 경보가 울렸다. 채 5분도 되지 않아 활주로를 박차고 올라온 흰색의 비행체는 즉시 수송기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날개 길이가 20미터 정도의 이 비행체는 레이더에 전혀 잡히지 않는 스텔스 무인정찰기 RQ-170. 이제껏 존재 자체가 알려지지 않은 미국의 새로운 비밀병기다. 서서히 서해상에서 남하하던 수송기에 접근한 이 정찰기는 평양발 수송기 기내를 전자적으로 스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이어 감청을 통해 수송기에 적재된 화물과 행선지 등을 소상하게 파악하고 그 데이터를 7공군사령부 상황실로 전송했다.

한편 7공군상황실은 RQ-170의 또 다른 성능인 전자전을 수행하여 이 수송기의 항로를 교란하여 태국의 돈므엉 군용비행장에 불시착하도록 완벽하게 작전을 수행했다. 북한의 무기 수출을 금지하는 유엔결의 1874호에 의해 미국은 태국에 착륙한 이 수송기를 억류하고 승무원들을 구속하였다. 수색 결과 수송기에서는 북한제 지대공미사일, 대전차용 로켓포(RPG), 폭약, 총기류 등 35톤가량의 북한산 무기가 적발됐다.

CIA의 빈틈없는 정보망이 수주에 걸쳐 추적해 온 이 수송기는 마지막 순간에 미7공군의 비밀 정보무기에 의해 그 화물의 정체가 밝혀졌다. 이 비밀 합동작전은 주한미군 전력이 한반도 방위와 직접 관련이 없는 비밀작전에 얼마나 신속하게 동원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였다. 이 작전의 내용은 사전은 물론 사후에도 한국군에게 전혀 통보되지 않았으며 오직 미국 정부의 결정으로 이루어져 철저히 베일에 싸였다.

한편 오산의 미 7공군사령부는 주한미군사령부나 한미연합사의 지휘를 받지 않고 미 태평양사령부로부터 직접 지휘를 받는 조직이다. 이 때문에 월터 샤프 한미연합사령관도 7공군 사령부 상황실에 대한 어떠한 통제권한도 없다. 우리 주권의 영역 밖에 존재하는 비밀 무기의 존재가 밝혀진 것은 다소 의외의 계기에서 비롯되었다. 새로운 정보무기가 한국에 배치되었을 때 한국정부로부터 전용 주파수를 할당 받아야 한다. 유일하게 한국정부와 협의해야 할 필요는 이것 밖에 없다. 군사주권이 아닌 '전파 주권'이 미국의 비밀무기의 존재를 확인하도록 한 것이다.

이 비밀 작전은 1968년 원산 앞바다에 벌어진 미 정보함 푸에블로호의 북한 나포사건과 마찬가지로 주한미군 전력이 우리의 의사와 관계없이 상당한 수준의 비밀작전을 수행한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실 우리가 주한미군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의외로 적다. 어떨 때는 한반도 안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사안에 대해서도 우리가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것은 또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상당한 진보를 이루고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주한미군은 그 존재 자체가 점점 더 '스텔스화' 되고 있다. 이미 유연하게 변화된 주한미군이 우리 시야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 주한미군의 문제점은 '유연성'이 아니라 '투명성'이다. 한반도에 미군의 어떤 전력이 들어오고 나가는지(flow in-out) 미군은 한국정부에 통보할 어떠한 의무나 절차도 없다. 전 세계 미 동맹국 중에서 이스라엘, 일본, 독일 등 주요 미군 주둔국에 대해 미국은 반드시 주둔국 정부와 사전협의 절차를 갖는데 반해 한국에서만은 그러한 절차가 없다.

2. 럼스펠드의 미소

미국이 한국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를 협의하기로 한 때는 8년 전인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2년 12월 5일 개최된 제34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는 조지 부시 행정부의 초대 국방장관인 도널드 럼스펠드와 이준 국방장관 간에 전통적 군사교리를 혁신하여 새로운 현대적 교리로 전환하기 위한 의미 있는 토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 회의가 있기 전까지 한미연합사령부는 한반도 전쟁계획인 작전계획 5027-98에 의한 한반도 전략의 기본틀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2002년 SCM에서는 분위기가 달랐다. 럼스펠드 장관은 5단계로 엄격하게 작전수준을 구분하는 이 작전계획이 전장의 역동성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역설했다. 현대전쟁은 5단계가 차례대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나타날 수도 있고 또는 어떤 단계를 건너뛰어 더 높은 수준으로 도약할 수도 있다. 예컨대 북한군의 침공을 격퇴하면서 동시에 반격도 이루어질 수도 있고, 아예 침공을 격퇴하는 단계 없이 곧바로 북한지역에서 안정화작전을 수행할 수도 있다. 럼스펠드는 북한 핵의 평화적 해결 노력이 실패하여 서울이 적의 공격위협에 처했을 때 한미연합군은 북한의 핵, 화생무기를 사전에 무력화하고 선제공격을 통해 북한의 지휘·통신체계를 신속하게 파괴해야 한다는 소위 '우발계획(Contingency plan)'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해서 참여정부 시절에는 한반도 전쟁계획은 기존의 작전계획 5027 외에도 우발계획인 5026과 5028, 북한급변사태대비계획인 5029, 태평양사령부가 수립한 5030이 탄생하였다. 전 세계에서 미국이 한 지역에서 5개의 전쟁계획을 갖고 있는 곳은 한반도가 유일하다.

현대적인 군으로의 변환에 대한 럼스펠드의 갈증은 미래 한미동맹의 새로운 밑그림을 그리는 데까지 나아갔다. 한미 양국은 2년여 간의 전문가 논의를 거친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에 대한 약정서(TOR)'도 체결했다. 이 보고서에서는 훗날 주한미군의 대변환을 초래하게 될 핵심 기제인 '전략적 유연성' 개념을 담고 있다. 이는 한국군이 한반도 방위를 전담하고 주한미군은 이를 지원하는 역할로 변모하는 동시에 동북아 지역군으로서의 성격 변화, 즉 냉전형의 한반도의 붙박이 군대가 아니라 '날아다니는 군대'를 지향하고 있다. 우리가 '노동시장 유연성'이라고 하면 그 본질은 정리해고 마음대로 하겠다는 의미이듯이 '전략적 유연성'이란 한반도 입·출입을 마음대로 하면서 한반도 방위 이외의 다기능 목적에 주한미군을 투입하겠다는 의미다. 그런데 여기에서 유의해야 할 것은 럼스펠드는 단순히 주한미군만 동북아분쟁 어디라도 투입할 수 있는 신속 대응군으로의 변화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한미 연합군'이 신속대응전력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군도 미군과 함께 동북아 분쟁, 더 나아가서는 전 세계 '테러와의 전쟁'에 따라다녀야 한다는 의미에서 동맹의 성격변화를 한국과 협의하려고 한 것이다. 중국과 대만의 양안 긴장에서 미국은 반드시 개입하고 더 나아가 '전략적 경쟁자'인 중국을 견제하는 것, 그리고 동아시아 일원에서 있을지도 모르는 테러와의 위협에 한국군도 일정한 역할을 부여하려고 한 것이 한국과 '전략적 유연성'을 협의하려고 한 의도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한국과 동맹 변환에 대한 원만한 협의를 이끌어 낸 럼스펠드는 크게 만족해했다. 한반도 방위라는 협소한 목표를 넘어 중국견제, 불량국가 소탕, 테러세력과 전쟁 등을 위한 각종 글로벌 전략 수행을 위한 '지역동맹'으로의 전환이 바로 그 방향이다. 새로운 동맹 변화의 대원칙을 이준 장관과 기자회견을 마치고 나오는 럼스펠드의 얼굴은 시종 내내 밝았다. 바로 그 럼스펠드의 미소 속에 한반도 전략 변화의 숨은 그림이 있었다.

3. 비밀 교환각서 추진

2002년의 한·미 국방부 간 합의에 크게 고무된 럼스펠드는 2003년에 등장한 한국의 신생정부에 이 문제를 구체화하기 위해 강하게 압박했다. 그러나 '자주'와 '평화'를 표방한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서 어쩐 일인지 한국정부는 미국과 이 문제를 논의하는 것을 극구 피하려 했다.

일단 한국정부가 동의한 용산기지의 평택으로의 이전문제는 주한미군의 변환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주제였다. 미군은 한반도 전역에 너절하게 분포되어 있는 약 180개의 미군 기지를 2~3개의 허브기지로 통합하되, 반드시 공항과 항만을 확보하고 있어야 했다. 유사시 입·출입을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전방의 2사단의 기지와 용산기지를 평택, 군산, 대구와 같은 거점기지로 통합하려는 구상은 여기에서 나왔다. 이 과정에서 미 국방부의 리처드 롤리스 동아태담당 부차관보는 "전략적 유연성 문제가 동맹 현안에서 가장 우선적인 문제"라며 주한미군 재배치, 주한미군 임무의 한국군으로의 전환, 미군 감축과 같은 중요 현안이 전략적 유연성이란 개념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국에 누누이 강조하며 여기에 합의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가 한국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를 협의하자는 제안을 한 때가 2003년 4월 6일 1차 FOTA회의에서였다. 그러나 한국은 주한미군의 역할변경이 기존의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위배되고, 북한 및 주변국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며, 국민적 반발이 예상된다는 이유로 "시간을 두고 검토하자"며 한발 뺐다. 그러나 미국은 "이 문제가 협의되지 않으면 어떤 동맹 현안도 해결되기 어렵다"며 집요하게 요청했다.

2004년 11월 30일, 민노당의 노회찬 의원이 2003년 7월에 열린 제3차 한미미래동맹정책회의(FOTA) 자료를 공개하기 이전까지는 다들 그런 정도인 줄 알았다. 노회찬의원이 연이어 공개한 FOTA 4차 회의 자료에서 충격적인 대목이 발견된다.

3차 FOTA 회의를 준비하면서 국방부 차영구 정책실장은 한국국방연구원(KIDA)로 하여금 주한미군의 역할변경에 대해 우리의 대응방향을 연구하라고 지시했다. KIDA는 "중국과 대만 사이에 갈등이 고조되면 주한미군이 참여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우리도 이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한미군이 한반도 이외 지역으로 투입되는 시나리오는 저·중·고강도 세 가지 시나리오로 설정되었다. 이 세 가지 경우에 주한미군이 투입되는 경우의 수를 설정하고 이를 미국과 협의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 문제가 한미 간에 가장 긴밀하게 논의된 때는 2003년 10월에 개최된 FOTA 4차 회의였다. 노 의원이 공개한 우리 측 준비 자료에 의하면 "주한미군이 지역 안정에 대한 기여증대를 지지하고 환영한다, 다만 현 단계에서 그러한 변화방향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공론화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으므로 당분간 정보 비공개를 유지한다"는 국방부 입장이 정리되어 있다. 그러나 4차 회의에서 국방부 차영구 정책실장은 롤리스 부차관보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주한미군의 지역적 역할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는 게 우리의 기본입장이다. 유사시 주한미군이 한반도에서 '인 앤드 아웃'하는 문제는 연합사령관 권한사항이고 그 과정에서 한국 합참의장과 협의할 것을 기대한다."

일단 구두 상으로는 연합사령관의 주한미군에 대한 포괄적인 권한을 인정하고 우리의 주권에 관한 사항은 대폭 양보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셈이다. 차 실장의 설명에 크게 흡족해 한 롤리스 부차관보는 한국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를 모두 합의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감사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미2사단과 용산기지 이전문제가 순조롭게 협의되기 시작했다.

회의 당시부터 미국도 한미동맹이 '한반도 방위동맹'의 성격으로 해석될 수 있는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전략적 유연성'이 상충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미국은 '한반도 방위'에서 '지역안정'으로 동맹의 목표를 바꾸는 것으로 상호방위조약을 개정하든지, 아니면 조약은 그대로 놔두고 별도의 한미 간 외교 각서를 체결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국방부와 외교부는 상호방위조약을 개정할 경우 공론화가 불가피하고 이로 인해 여론의 역풍을 맞는 것에 대해 두려워했다. 당연히 비밀 양해각서를 맺는 방법으로 여론의 눈을 피하자는 쪽으로 기울었다.

회의가 종료된 직후 비밀 외교 각서의 초안은 한국의 외교부와 미국의 국무부가 '교환공문(Exchange of Note)' 형태로 제시하기로 했다. 10월에 우리 외교부는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하되 그 조건으로 ▲ 미국의 대한(對韓) 방위공약 유지한다 ▲ 주한미군 역할변경으로 우려되는 한국의 안전을 고려한다 ▲ 주한미군 입출입시 한국과 사전협의한다는 세 가지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석 달 후인 2004년 1월에 미 측의 초안이 도착했다. 여기에서는 한국의 안전을 고려한다는 항목이 아예 삭제되었고 '사전협의'도 '단순협의'로 완화되었다. 즉 미국은 한국정부와 협의절차를 통한 사실상의 통제를 받지 않겠다는 것이고 더 나아가 한국 안전에 대한 고려도 수용할 수 없다는 태도였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대한 의문이 있다. 외교부의 교환공문에 대해 보고를 받지 못한 노무현 대통령이 뒤늦게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우리의 의지와 관계와 없이 동북아 분쟁에 휘말리지 않겠다"며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을 하자 외교부가 미국에 보낸 교환공문을 사실과 다르게 '조작'했다는 의혹이다. 즉 미국에 합의를 해주고 나서 노 대통령 발언이 나오자 외교부가 서둘러 미국에 보낸 공문을 다른 것으로 바꿔치기 했다는 의혹이다. 이 의혹을 2004년 하반기에 청와대 국정상황실이 제기하면서 당시 청와대는 외교부의 '대통령 기망'에 대한 진상조사위원회가 열리는 등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그러나 당시 외교부와 국정상황실의 논란에 대한 진상조사는 미완으로 끝나며 아직도 의혹으로만 남아있다.

미 국방부를 방문하여 롤리스와 이 문제를 토론한 바 있는 평화운동가 정욱식은 '한겨레21에 기고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이 회의(4차 FOTA) 직후 외교부는 미국에 외교각서 초안을 보내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지지 입장을 확인해줬다. 이에 고무된 미국 정부는 2003년 11월25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GPR 계획을 공식 발표할 때, 한국을 '모범 사례'로 거론할 계획이었다. 이에 따라 11월17~18일 열리는 제35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 참가차 방한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공동성명에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합의를 포함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이를 수용할 경우 감당하기 어려운 재정적·안보적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한국정부의 일부 관리들은 이에 제동을 걸었다. 이는 서울을 방문하기에 앞서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던 럼즈펠드를 격분시킨 사건이다."

4. 영어 해석의 차이

논란이 계속되자 2006년 1월 19일 미국 워싱턴에서 반기문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참석해 열린 제1차 한미전략대화 공동성명의 2항에서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대해 원칙적인 방향을 협의했다. 성명은 관례에 따라 영어로 문안이 조정됐기 때문에 한국어 본은 따로 없었다. 그 대목은 다음과 같다.

"In the implementation of strategic flexibility, the U.S. respects the ROK position that it shall not be involved in a regional conflict in Northeast Asia against the will of the Korean people."


외교부가 해석한 바에 의하면 "전략적 유연성의 이행에 있어, 미국은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중간에 있는 대명사 'it'가 무엇을 가리키느냐, 즉 앞에 나오는 명사 가운데 'the U.S.'냐, 뒤의 'the ROK'냐다. 여기에서 it가 the U.S.라면 주한미군의 비밀 무인정찰기가 그루지야 수송기를 억류시키는 비밀작전과 같은 행위를 해서는 안 되고 사전에 한국정부와 협의해야 한다. 그러나 the ROK라면 그럴 필요가 없다. 한국군만 동북아 분쟁에 연루되지 않으면 되지 미군은 이미 행동의 자유를 보장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애초 럼스펠드 장관이 한미연합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도모하려던 의도는 주한미군과 한국군이 각기 전략적 유연성의 각기 다른 주체로 분리되었다는 것만이 달라졌다면 달라진 셈이다. 여기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서거 당시까지도 자신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합의해준 적이 없다고 믿었던 것이고, 현 이명박 정부는 이미 노 대통령이 합의해 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단지 영어 한 문장 해석차이로 인해!

이렇게 해서 "전략적 유연성 문제는 2006년에 합의되었다"는 이명박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이제 대세로 굳어지는 분위기이고, 여기에 기초하여 주한미군의 변환은 가일층 가속화되었다. 주한미군 변환은 세 차원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판단된다.

첫째 주한미군 기지차원이다. 특히 그 중심기지인 평택이 장차 한반도 방위를 넘어 대중국 견제를 포함한 동북아 전진기지로서의 위상을 갖게 된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평택은 한국군 시설이 전혀 없는 '순수 미국기지'라는 점이다. 전임 B.B 벨 연합사령관은 평택기지를 거론하며 "한국군은 발자국을 남길 수 없다(No Korean soldier footprint)"라고 말했다. 주한미군의 대동북아 전략수행을 위한 기능을 보유하고 있음이 명확해져가고 있다. 이 기지에 주한미군과 그 가족을 위한 주거, 복지 시설이 들어서는 새로운 신도시 규모의 시설투자가 불가피하고, 그 비용은 전적으로 한국의 몫이다. 애초 참여정부 당시 기지조성 비용이 50억 달러면 충분하다고 했던 것이 현 정부 들어와서 벌써 100억불을 넘어섰고, 이와 별도로 주한미군 장기 주둔을 위한 숙소건설 비용은 별도로 책정될 조짐이다. 이러한 비용의 폭증에 대해 미국 의회는 이미 "주둔국 비용으로 하라"는 조건으로 기지조성 계획을 승인하였고, 전략동맹을 외치는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그 기조는 실행 중이다.

둘째, 주한미군 장비차원이다. 앞서 말한 스텔스 무인정찰기와 그것이 동원된 비밀작전에서 보여 졌듯이 미군의 스텔스 전력이 증강되면 한국 안보의 환경에 심대한 영향이 초래된다. 북한에 들키지 않으니까 비밀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재량권이 커지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미국은 미사일방어(MD)를 위해 한국에 'X밴드 레이더'를 배치할 것을 요구했으나 아무리 친미 성향을 가진 이명박 정부라도, 이것이 허용될 경우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될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결국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차일피일 눈치만 보는 중이다. 중국은 이미 주한미군 기지가 서해안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패트리어트 요격 미사일 등 대중국 무기체계의 배치에 극도의 민감함을 드러내고 있다.

세 번째는 주한미군 병력 차원이다. 전 세계 주한미군 운용에 있어 미군은 필요에 따라 그 운용을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운용하고자 하기 때문에 주한미군을 수시로 빼가고, 또 수시로 병력규모를 변화시키고자 한다. 이 때문에 주한미군 간부는 '이중 직위(Dual Position)'을 부여한다. 1년 중 한국 외에 괌이나 하와이, 또는 아프간이나 이라크로 가서 일정기간 근무하다 돌아온다. 현재 주한미군 병력이 한미 간에는 2만8500명으로 합의되어 있지만 실제로 주둔하는 병력은 그에 훨씬 못 미칠 것으로 보여 진다.

5. 미증유의 주권의 위기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제고와 함께 미국이 한미동맹을 관리하는 핵심적인 의제는 단연코 '한국의 국방비 증액'이다. 이는 럼스펠드 이래 미 국방부가 일관되게 한국에 요구하는 것이고 2008년 게이츠 미 국방장관이 한국의 이상희 국방장관에게 "한국이 안보에 무임승차(free-ride)한다며 강력히 촉구했던 사항이기도 하다. 미국은 현재 GDP의 4%를 국방비에 투입하고 있는데 한국은 2.7%에 불과하다며 최소한 "미국 수준으로 올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요구에 영향을 받은 이상희 전 국방장관이 "국방비가 적다"며 청와대에 항명성 편지를 보낸 작년 8월의 '사건'도 그 배후에 미국이 있다.

미국이 말하는 한국의 국방비 증액의 당위성은 무엇보다 막대한 개발비가 소요되는 미사일방어(MD) 참여 문제가 있다. 국방부가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에게 2008년 초에 보고한 바에 의하면 초보적인 MD 기반구축을 위해 소요되는 비용만 11조원, 그리고 그 개발의 성공여부는 장담할 수 없고, 중국과의 군사적 긴장이 초래되는 점가지 고려한다면 그 정치적 부담은 만만치 않다. MD 참여 문제는 한미동맹이 지역동맹 차원으로 광역화되는데 핵심 지표다. 또한 국방비 증액은 방위비분담금 증액 요구와 직결된다. 이미 미국은 한국을 안보에 무임승차하는 공짜심리 국가라고 낙인찍은 마당에 만약 미군에 대한 지원이 만족스러운 수준이 아니면 언제라도 미군을 감축하겠다고 압박하는 중이다.

이러한 미국의 안보 비즈니스의 이면에 가장 근원적인 문제는 재정적인 문제가 아니라 주권의 문제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제고와 투명성의 결여는 우리 주권의 관리 장치들이 무너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지난 정부에서는 최소한 주한미군의 입·출입을 우리와 사전협의해야 한다는 점을 미국에 제기하였고, 한국이 동북아 분쟁에 연루될 수 있는 위험을 차단하자는 우리의 요구가 최소한 공론화된 점은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아예 이 논의 자체를 회피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태영 국방장관은 이와 관련된 최근 국회 국방위 답변에서 "어차피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의 완결은 6~7년 후의 일"이라며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된 한미 간의 중요 의제에 대해 공론화할 의사가 없음을 명확히 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인식은 이미 진행 중인 주한미군의 변환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거나, 의도적 방치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자신의 주권을 스스로 관리할 줄 모르는 정부, 다음 정권으로 골치 아픈 현안을 미루는 태도 등 오히려 한국의 안보를 불안하게 하는 '위험국가'의 징후가 나타나는 것은 아닌지, 매우 우려되는 점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의존 동맹', '묻지 마 동맹'의 분위기 속에서 2012년으로 예정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연기 조짐은 새로운 문제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미 미국은 한반도 방위를 넘어 선 지역전략 차원으로 이동한 상황이다. 여기에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국이 계속 행사하게 된다면 한국군이 한국의 국가이익 보다는 미국의 전략적 이해에 의해 통제될 가능성을 더욱 증가시킨다. 이미 그러한 조짐은 나타났다.

지난해 8월 프리덤 가디언 군사연습 당시. 월터 샤프 사령관을 비롯한 미군 지휘부는 북한의 급변사태 발생 시에 북한에 미군이 진입하여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를 통제한다는 소위 '개념계획 5029'를 연습하는 기간으로 군사연습을 활용했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한미 군부 간에는 이견이 발생했다.

우리 측은 작전계획 5029를 실행하더라도 여기에는 반드시 전제조건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북한 핵무기 통제를 위한 미국의 군사행동이 한반도에서 전쟁으로 비화되지 않는다"는 조건이다. 북한 핵을 통제한다는 의도로 북한 체제가 혼란에 빠졌을 때 미국이 섣불리 군사행동을 한다면 이것도 역시 북한군의 반발을 초래하여 전쟁을 불러오는 참혹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빈대 잡자고 초가 삼 칸 불태우는' 겪이다. 북한의 조잡한 수준의 핵무기가 당장 미국 본토까지 위험에 빠뜨릴 만큼 급박한 위협인가도 의문이지만, 북한의 핵무기를 조기에 통제한다는 것이 한반도에서 전면전을 결심할 만큼 중요한 문제냐는 의문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속 시원히 답을 내리지 못한 채 한국 군부가 속을 앓을 수밖에 없는 것은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바뀌고 나서 우리는 미군의 개념계획 5029를 전면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전쟁이냐 평화냐는 갈림길에서 한미가 각기 다른 전략적 이해로 움직일 경우 우리의 군사주권은 매우 중요하고 절실한 문제다. 최근 군사연습 기간 중 어느 순간에 전면전 상황인 '데프콘 1'을 선포할 것이냐, 북한 핵 통제를 위해 군사력을 투입할 것이냐, 는 문제로 한미 군부가 종종 논쟁하는 것은 예사로운 일은 아니다. 이런 논쟁은 "과연 한반도 위기를 판단하는 판단관이 주한미군 사령관인가, 한국군 사령관인가"라는 것이 그 본질이다. 이러한 때 한반도 평화보다는 미국의 전략적 이해에 자칫 종속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위기관리권한을 미국에 위임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전시작전통제권이다. 따라서 전략적 유연성 제고와 동반한 전작권 전환 연기는 국가 주권에 있어 최악의 시나리오이고, 이것이 초래할 한반도의 위기적 요인은 미래세대에 돌이킬 수 없는 안보적 부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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