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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린 팝'의 시대를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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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린 팝'의 시대를 준비하자

[中國探究]<88>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문화"로서 '대중문화'가 국경을 넘어 다른 국적의 사람들에게도 뜨거운 환영을 받는 일은 이미 낯설지 않은 현상이 됐다. 오늘날 대중문화는 "물과 같이" 자연스레 다른 문화권 속으로 스며들어 특정한 유행과 기호를 만들어내고 있다. 인과관계의 선후를 분명히 구분해서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안에 문화를 보편적으로 향유하는 방식이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아편전쟁의 패배로 불가피하게 서구 열강에 문호를 개방했던 중국의 대중문화는 1930년대 상하이를 중심으로 화려한 꽃을 피웠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의 조계지라는 특수한 사정 때문에 당시 상하이에는 영화, 패션, 미디어, 오락 등의 영역에서 첨단의 서구 대중문화가 유입됐다. 이렇게 유입된 대중문화는 다시 중국적 현상들과 결합하면서 외부에 의해 부득불 생겨난 신흥 도시를 시끌벅적한 당대 아시아의 코스모폴리탄으로 성장시켜 놓았다.

1949년 사회주의 중국의 수립과 더불어 중국의 대중문화는 더 이상 서구 '제국주의'의 요소를 남겨둘 수는 없었다. 홍콩과 대만이 이전의 '중국'을 계승, 대체했다. 본토 중국에서는 강력한 정치적 요청에 따른 획일적 '군중문화'만이 존재했고, 그런 문화 현상은 문화대혁명에 이르러 정점을 맞이했다. 30년 동안 계속된 사회주의 실험의 역사가 끝나고 사회주의 조정기가 찾아오자 본토 중국에는 다시 대중문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와 더불어 '제2차 개혁개방'이 시작되면서 중국 대중의 새로운 문화에 대한 갈망은 더욱 다양화된 모습으로 나타났다.

사실 2차 대전 이후 아시아에서 일어난 '대중문화' 현상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1950-60년대에는 '제이 팝'(J-pop)이라 불리는 일본 대중문화가 아시아 전역에서 유행했다. 비록 우리의 경우 1990년대 후반에 와서야 일본 대중문화를 개방했기에 직접적인 체감의 정도는 약했지만, 이른바 '망가'와 애니메이션, 영화 등을 중심으로 한 일본 대중문화의 초국적 영향력은 거셌다.

1970-80년대, 그리고 1990년대 초·중반까지는 홍콩 대중문화가 그 뒤를 이었다. '칸토니즈 팝(Cantonese pop)'이라는 명명으로 홍콩의 영화와 가요, 스타들이 아시아 시장에서 소비됐다. 우리에게도 낯익은 이소룡, 성룡부터 주윤발, 유덕화, 왕조현, 장국영 등을 거치는 홍콩의 스타시스템은 국적을 뛰어넘으면서 아시아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 뒤, 주지하다시피 '한류'가 아시아 대중문화를 강타했다. 텔레비전 드라마와 상업 영화, 대중가요에 대한 아시아인의 환호만 보면 문화 이외의 모든 갈등도 일거에 소멸시켜버릴 듯한 정도다. 그렇게 '한류'는 '코리안 팝(K-pop)'이라는 이름을 얻으면서 아시아의 주류 대중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런 아시아 대중문화의 흐름이 흥미롭다 한 것은, 일본과 홍콩, 한국의 대중문화가 각각 특정한 시기를 주도했다는 사실도 그렇거니와, 이들의 부상은 앞선 문화적 흐름들로부터 거듭된 학습을 통해 이뤄졌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다. 홍콩 대중문화는 일본으로부터 학습을 통해 이를 중국적 전통과 접목하고, 한국의 대중문화는 홍콩과 일본을 통해 배운 뒤 이를 한국적 전통과 접목했다. 물론 아시아 대중문화에 대한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한 미국 대중문화의 영향력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적어도 아시아 내부에서 유통되고 소비되는 동안은 오랜 시간 연쇄적 상호 학습의 결과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다음 차례는 어디인가? 오늘날 중국은 사회주의 실험의 역사 동안 부득불 다른 지역에 비해 뒤처진 수준의 대중문화에 대한 안타까움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하고 있다. 정치, 군사, 경제 등 각 분야에서 미국에 필적하는 국력을 키워왔음에도 여전히 대중문화만큼은 아직 뒤떨어진 수준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중국은 지금 일본과 한국, 홍콩을 통한 학습에 힘을 쏟고 있다.

한류의 지속 가능성에 관한 논의가 주목을 받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코리안 팝'으로서의 한류가 그 뒤를 잇는 문화 주체에 아시아 대중문화의 흐름을 넘겨주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의 발로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중국 대중문화의 아시아적 흐름에 주목해야 한다. 이제 곧 '만다린 팝(Mandarin pop)'의 시대가 펼쳐질 것이다.

중국은 이전의 아시아 각국의 대중문화가 만화와 영화, 가요, 텔레비전 드라마 등과 같은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면서 유행을 선도했던 것처럼, 이전의 장르들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새로운 방식의 아시아 대중문화를 기획하고자 한다. 이른바 '문화창의산업'이라는 프레임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 5월 15-16일, 타이베이의 국립대만사범대에서는 역사적인 학술회의가 열렸다. 중국미디어대학(中國傳媒大學) 등 본토 중국의 8개 대학과 대만예술대학 등 대만의 3개 대학이 작년에 결성한 '양안문화 창의산업 연구연맹'이 제1회 '세계화 인문화 창의산업 포럼'을 개최한 것이다. 나는 이 회의에 옵저버로 참여할 기회를 얻어 이들의 논의를 지켜볼 수 있었다. 새로운 분야가 필요로 하는 창조적 기획과 인재의 양성, 자본의 투자 등을 위해 공동 노력을 천명한 회의는 오늘날 중화권의 문화적 관심이 어느 곳을 향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줬다.

중국 대중문화의 다양한 주체들은 지금 뒤떨어진 대중문화의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한국이나 일본 등 아시아 이웃 나라를 징검다리 삼아 미국에 필적할 수 있는 최종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에 앞서, '화인'들을 중심으로 우선 내부의 결속력을 강화하고 있는 중인 것이다. 자신들의 좌표를 분명히 확인한 뒤 이제 한국이나 일본 등을 향한 협력과 교류를 적극 추진하려고 할 것이다. 중국 각지에 건설되고 있는 문화기지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투자 요청도 쇄도할 것이다.

산업적, 학술적, 기술적 인프라가 건설됐다고 판단되면 이제 중국은 차근차근 각자의 영역에서 준비를 지속해 오고 있는 영화나 가요, 텔레비전 드라마, 공연 등과 같은 전통적 장르들에 더해 애니메이션, 게임, 축제, 테마파크, 뉴미디어 등에 이르는 이른바 '문화창의', 즉 문화콘텐츠산업이 발굴하고 있는 새로운 장르의 아시아적 확산을 위해서도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대중문화는 결국 역사적·사회적 조건들이 맞아떨어질 때 빛을 발하는, 특정한 시기를 유행하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만다린 팝'의 부상을 심각한 문화적 위협으로 간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다린 팝'의 영향력을 마냥 가볍게 볼 수만은 없는 것도 현실이다. 그동안 '만다린 팝'이 아직 아시아 시장에서 보편적으로 수용되지 못했던 가장 큰 원인은 역시 기술적, 미학적 한계와 더불어 지나치게 애국주의를 강조하는 이데올로기적 문제 때문이었다. 이 중 기술적, 미학적 한계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해결되겠지만, 이데올로기적 문제는 더욱 '부드러운' 방식으로 은폐될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그 은폐된 지점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아시아인'으로서 함께 살아가는 길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만큼 이제 '만다린 팝'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기업은 현장을 주시하고, 정부는 정책을 마련하고, 학계는 전문가를 키워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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