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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천안함 조사, 주사위 던지기가 아니다"

[기자의 눈] 자칭 '스모킹 건' 국제사회 설득 가능한가

천안함 사고 원인을 조사중인 민군 합동조사단의 결과 발표가 임박했다. 어뢰가 천안함과 최근접 거리에서 폭발했다고 발표할 것이 확실시되는 가운데, 관심의 초점은 그 어뢰를 쏜 주체를 북한이라고 명시할 것인지로 모아진다.

합조단이 '북한'을 써 넣을 것이라는 보도가 대부분이지만, 합조단은 어뢰만 확인하고 대통령과 국방장관이 담화나 성명을 통해 북한의 소행임을 적시하는 방식을 택할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해 <KBS>는 17일 '9시 뉴스'에서 "김태영 국방장관도 직접 발표문을 손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는 18일 "국방부는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외교안보부처 장관과 청와대 핵심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는 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 발표문 초안을 회람할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이는 최종 발표에 정무적인 판단이 강하게 개입될 것임을 보여준다. 정부가 강조하듯 과학적·객관적 조사였다면 결과를 그대로 공개하면 될 일이지 장관과 청와대 관계자들이 굳이 문안을 '마사지'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조사의 과학성, 객관성, 독립성을 정부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조선> "물증 확보는 별개의 문제"

정부가 이처럼 눈에 보이는 무리수를 두는 것은 설령 어뢰 피격이 맞다고 해도 북한의 소행임을 확증하기가 어렵다는 사실과 닿아 있다. <조선일보>는 18일 "대한민국 군함을 향해 어뢰를 쏠 주체가 북한 말고 누가 있느냐는 상식적인 판단과 국제법적으로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물증을 확보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발표가 임박하면서 추가 증거물이 언론에 흘러나오는 것은 그같은 문제를 어떻게라도 극복해 보려는 정부의 고심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KBS>,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익명의 관계자를 통해 일제히 '조사단이 어뢰의 스크루 파편을 발견했다'고 보도하며 '결정적 증거'라고 강조했다.

어뢰의 스크루 파편이 발견됐다는 사실은 이미 <세계일보>가 13일 단독으로 보도한 내용이다. 하지만 군 관계자는 같은 날 <연합뉴스>에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했는데, 그로부터 나흘 후 언론을 통해 다시 '결정적 증거'로 떠오른 것이다. <KBS>는 "지난 주말", 즉 <세계일보>의 보도와 군 관계자의 부인이 나온 뒤에 발견된 파편이라고 피해 나갔다.

그 외에도 천안함에서 검출된 화약이 7년 전 수거한 북한의 훈련용 어뢰에 있던 추진 화약과 같다는 <연합뉴스>의 18일 보도 등 '북한 소행'을 뒷받침하려는 군 관계자의 말이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RDX, TNT, HMX 등 화약 성분은 전세계적으로 사용되는 것이어서 어느 나라가 만든 무기인지를 밝히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이미 알려져 있다. 또한 전문가들은 "어뢰 폭발로 연돌에 화약이 묻었을 정도라면 배 밑바닥과 절단면에는 화약이 잔뜩 남아 있어야 한다"며 "연돌(연통)과 절단면에서 미량의 화약이 검출됐다는 것은 어뢰 피격의 증거로서 효용이 없다"고 말한다.

절단면과 사고 해역에서 발견됐다는 각종 금속 파편들도 마찬가지다. 해난사고 전문가인 이종인 알파잠수기술 대표는 18일 최문순 의원실 주최 토론회에서 "조류가 강한 백령도에서 뭘 찾았다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며 파편 발견 사실 자체에 의문부호를 던졌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금속은 바닷물에서 이온화 경향의 차이 때문에 쉽게 녹는데, 무엇보다 잘 녹는 마그네슘을 발견했다는 건 이상하다"고 설명한 뒤, "바다에서는 뭐든 찾을 수 있다. 심청이 신발도 찾는다"고 비꼬았다.

이같은 반론은 어뢰 공격설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주는데, 하물며 북한의 어뢰였다는 결론을 내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증거임에 틀림없다. 한 마디로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이 아니며, 그걸 가지고 국제사회를 설득하겠다고 나선다면 국제적 웃음거리 밖에 안 될 것이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언론들은 파편과 화약을 정황 증거로 삼아 북한을 특정할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으나, 정황 증거라는 말 자체가 직접적이고 객관적인 증거가 아님을 웅변한다. 사고일을 전후로 한 북한 잠수함(정)의 움직임, 통신 감청 정보 등도 아직까지는 정황 증거에 머물러 있다.

주사위 던지기가 아닌 까닭

사정이 이렇다 보니 논리가 널을 뛴다. '북한이 아니면 누가 쏘겠느냐'는 것인데, <조선일보>는 이를 '상식'이라고 규정했다. <KBS>는 17일 군 최고위 관계자가 '북한이 아니면 우리나라 배에 어뢰를 쏠 나라가 있겠냐'고 반문했다고 전했다. <동아일보> 18일자에 인용된 정부 고위 당국자도 "한국 군함에 어뢰를 발사할 세력은 북한밖에 없다는 내용이 최종 보고서에 반영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군과 미군의 오폭이 아니고 중국과 러시아가 쐈을 리도 없기 때문에 결국 북한이라는 추론은 천안함 사고 직후부터 강력한 설득력을 가지고 유포됐다. 언뜻 보면 반박할 구석이 없는 것 같은 이 논리는 그러나 천안함의 경우 성립되지 않는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주사위를 책상위에 놓고 안 보이는 면을 맞추기는 쉽다. 1이 보이면 안 보이는 면이 1일 가능성을 배제하고, 2가 보이면 2일 가능성을 배제하는 식으로 좁혀 가면 된다. 그러나 이런 '배제에 의한 논리 추론'이 가능하려면 주사위처럼 경우의 수(6)가 확실하고, 1이 보이면 안 보이는 면이 1일 확률이 제로가 되듯 하나의 경우를 완벽히 배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천안함 사고 원인은 경우의 수가 사실상 무한대다. 좌초든 어뢰든 기뢰든 어느 하나가 아닐 확률이 낮다고는 할 수 있어도 제로라고는 할 수 없다. 또한 어뢰가 분명하다고 해도 북한이 아닌 다른 나라들이 쐈을 가능성 역시 완벽히 제로가 아니다. 천안함 사고 원인으로 꼽히는 몇 가지 가능성들에 모조리 반론이 붙고 있는 상황에서 배제에 의한 추론으로 범인을 잡는 건 논리적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천안함을 둘러싼 논리의 비약은 그 외에도 여럿이 있다. 북한의 소행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을 하면 북한을 옹호하는 세력이라고 낙인찍는 게 대표적이다. 이 역시 대중들에게 강력한 힘을 발휘하긴 하지만, 논리적으로 대응할 가치는 없다. 비겁자의 논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천안함 조사에 이의를 제기하는 유시민 경기지사 후보를 향해 "북한에 면죄부를 주고 있다"고 공격하자 유 후보가 했던 대응 정도가 적격이다. "웃고 말죠."

한국에 동조해 손해 볼 게 없는 미국

그렇다면 미국은 왜 한국 정부에 동조하고 있는가? 후텐마 기지 문제 등으로 미일동맹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한국이라도 확실한 자기편으로 만들어 동북아시아 외교의 지렛대로 삼겠다는 전략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또한 한국의 손을 확실히 들어주는 게 미국으로서도 손해 볼 일이 아니라는 계산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이 문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한다고 해도 북한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야 하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기 때문에 부담 없이 한국 편을 드는 것이다.

안보리 차원의 대북 제재가 무산되면 중국·러시아의 거부권 때문에 그랬다고 해버리면 그만이다. 한국의 요청에 따라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몇 번 더 한 뒤에 '이제는 6자회담을 하자'고 국면을 바꾸면 끝이다. 한국에 '성의'를 보였으니 이명박 정부로서도 할 말이 없어진다. 남는 것은 한미동맹이지만 잃는 것은 거의 없다.

여기서 미국이 유의할 점은 '한국의 결정을 지지한다' '한미동맹을 강화한다'는 식의 수사적 발언은 크게 하되 '북한이 천안함을 침몰시켰다'와 같이 명시적인 표현은 피하는 것이다. 언제라도 발을 뺄 수 있게 퇴로를 열어놔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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