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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에 유능한 보수? 안보 지키기 '무능' 정치적 활용만 '유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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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에 유능한 보수? 안보 지키기 '무능' 정치적 활용만 '유능'

[한반도 브리핑] 천안함의 실체적 진실, 의미 없어졌을 수도

이명박 정권은 출범 전부터 김대중과 노무현 두 정권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표현하며 맹공을 퍼부었다. 그간의 과정을 보면 그 표현은 전임 정권과의 차별화를 위한 단순한 정치적 구호만은 아니었다.

그런데 객관적 의미를 지닌 '상실의 10년'이 아니라 주관적이고 또 매우 의도적으로 그 10년을 지워왔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10년간의 소위 '진보 정권'에도 공과가 모두 있을 터인데, 현 정권에는 전부 과로 규정하고 뒤집어버리는 것이 절대선이었다. 지우고 또 지우고...

그 중에도 가장 많이 지워서 이제는 흔적조차 사라지고 있는 영역이 대북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10년간 어렵사리 쌓아놓았던 북한과의 교류와 협력의 모든 선과 끈은 공식적인 것은 물론이고 민간 차원까지 모조리 지워왔다. 쌀과 비료의 공급선이 끊어진지 오래고, 금강산도 막혔다. 마지막 남은 끈이라 할 수 있는 개성공단도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살얼음판이다.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인 것으로 간주되면서 남북관계는 냉전 이후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지금까지 지우개 정도로 지웠다면 천안함 사건은 남은 모든 것을 싹쓸이 해버릴 진공청소기가 될 기세다.

북한의 소행이라는 확실한 증거도 제시하지 못한 채 주요 언론과 정부는 암묵적인 동의하에 서로 주거니 받거니 장단을 맞추고 있다. 국내외 일부에서 제기하듯 이번 사건은 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실체적 진실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 졌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미제로 남아도 결국 그동안의 대북 강경책의 맥락에서 충분히 유용하기 때문이다. 즉, 심증만으로도 충분히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더 강하게 밀고갈 수 있다.

군에 대한 감사와 책임 묻기는 있겠지만 정치적 책임론은 이미 나온 것 같다. 즉, 북한은 역시 상종 못할 도발 집단임이 재차 확인되었고, 지난 두 정권은 그 집단에 속아 퍼주기로 일관하면서 이용만 당했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미 천안함 침몰을 햇볕정책의 결과로 몰아붙인 여당 서울시장 후보의 논리가 여권과 보수 언론을 대변하고 있다.

▲ 이명박 대통령이 4일 국방부에서 열린 전군 주요 지휘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

천안함의 슬픔 뒤에 숨은 안보 공백

그러나 이런 주장이 조금이라도 설득력을 가지려면 다음의 두 가지를 우선적으로 해명해야 할 것이다. 먼저, 천안함이 실제로 북한의 공격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지난 10년간에 발생한 일이 아니라 현 정부에서, 그것도 집권 중반을 향해가는 시점에서 일어났다는 점이다.

전임 정권들의 대북 '유화정책'이 북한으로 하여금 핵실험을 하게 만들고, 김정일 정권의 생명을 연장시켜주었다고 주장하지만, 문제는 대북 강경노선으로 전환한 이후에 발생한 일이라는 말이다.

그렇게 지우고 뜯어 고쳤다는데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 아직 미완성이라고 말할 것인가? 2009년 8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 이후 북한이 협상모드로 나온 것에 대해 대북 강경책의 효과가 북한을 고개 숙이게 만든 것이라던 자화자찬은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하다.

두 번째는 안보 관련 문제다. 안보는 보수정권의 전유물인 것처럼 내세우지만 천안함 사건을 보면 그들이 안보 이슈를 정치적으로 잘 이용한다는 뜻이지, 우위를 보인다는 뜻은 아닌 모양이다. 영해이자 삼엄한 군사 작전지역에서 아군의 함정이 침몰한 지 한 달이 훨씬 지나도록 그 원인조차 규명하지 못하는 안보 공백이, 꽃다운 청년 46명의 목숨을 앗아간 충격과 슬픔을 방패삼아 숨어 있는 양상이다.

특히 엉성한 정보수집 능력과 위기관리체제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엄청난 비대칭적 한미동맹으로 인해 남한 측의 군사력은 그야말로 머리 없이 몸만 있는 상태로 반세기를 이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여권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연기나 미국에 대한 더 깊은 군사적 의존을 해결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들에게 이번 일의 의미는 북한의 호전성에만 있을 뿐, 스스로의 능력과 책임에는 침묵한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이번 천안함 침몰의 범인은 더더욱 북한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래야 대북강경책에 대한 정당성도 얻고, 책임에서도 일정부분 면죄부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천안함 희생자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은 인간적으로는 이해할 여지가 있을지 모르지만, 군 최고통수권자로서는 직무유기나 책임회피에 가깝다.

휘두르면서 효과 없어진 대북 강경책

더 걱정스러운 것은 악화일로의 남북관계다. 그동안의 강경정책이 효과를 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용한 정책 옵션을 스스로 좁혀버렸기 때문에 우리의 선택지가 별로 없다. 최근에 격화되고 있는 남북 간의 상호 비방전을 포함한 관계 악화는 마치 부시 정권 초기의 북미관계를 보는 듯하다. 6년간의 대치국면에서 어떤 진전도 없다가, 결국 북한의 핵실험만 초래한 부시 행정부의 행보를 반복할 것인가?

정치학자 탈코트 파슨스(Talcott Parsons)는 물리적인 힘에 의지하는 권위는 합의에 의한 권위와는 달리 필연적으로 '수축적'이라고 했다.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그 힘의 효율성은 급격하게 줄어든다는 말이다. 미국이 9.11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물리력은 휘두를수록 효과가 작아지는 것을 목격했었다.

천안함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결론 나더라도 남한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는 것은 바로 이런 점을 말해준다. 대북 채널을 모두 지워버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대안은 더더욱 없다. 남북간의 본격적인 군사 충돌을 각오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현 정부가 '비핵·개방·3000'이나 '신(新)평화 구상', '그랜드 바겐' 등으로 충분히 대북 포용에 노력했다고 주장할지 모르겠으나, 그것이 국내정치적 목적을 지닌 이미지 관리용이었을 뿐, 표현에 상관없이 선(先)핵폐기론이 본질인 대북 압박노선이었다.

일이 이렇게까지 된 것에 북한의 책임이 없다는 주장이 아니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그만큼 어려운 관계이고, 비등가적 관계라는 사실을 반세기 경험에서 우리는 인지하고 있다. 즉, 경쟁해서 이기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상호적이고 등가적이어야 하지만, 문제를 풀려는 방향이라면 우리 측의 인내와 기다림이 요구되는 것이 남북관계이다.

군사 충돌, 민간인 억류나 죽음, 간첩 사건, 핵과 미사일 실험 등 이 모든 것이 언제든지 남북관계를 단번에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는 뇌관들이다. 두 전임 정권들은 뇌관들이 터져도 폭탄은 터지지 않게 유지하려했지만, 현 정권은 기다렸다는 파괴적 방향으로 가져가려 한다.

북한이 원래부터 나쁘고, 그러니까 나쁜 행동을 할 수밖에 없고, 혹여나 좋은 행동을 하는 것이 보여도 그것은 저의가 있는 속임수라고 해석한다면 변화나 해결이 아예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현 정부의 대북인식에는 이러한 관성 작용과 자기 강화적 암시가설(self fulfilling prophecy)이 작동하고 있는 듯하다.

'커브볼(curve ball)'이라는 암호명을 가진 이라크 망명자가 제공한 대량살상무기에 관한 정보가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침공의 결정적 구실로 몰아갔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천안함 사건이 그런 식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또 다시 적대적 공생의 길로?

남한은 남한대로, 북한은 북한대로 이제는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접근보다는 서로에 대한 적대감을 확대 재생산함으로써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적대적 공생의 유혹을 어느 때보다 많이 받고 있다.

남한은 6월 지방선거를 포함해 대북 강경책의 정당화를 위해 사용할 것이고, 북한은 북한대로 화폐개혁의 실패와 경제난, 그리고 후계 구도의 돌파를 위해 대결 구조를 이용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북한이 곧바로 전면 대결의 상황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6자회담의 재개나 정상회담을 주장하는 협상파의 입지가 지속적으로 나빠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가장 중요한 외부적 변수라 할 수 있는 미국의 보다 적극적인 접근이 돌파구가 될 수 있겠지만, 아직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산적한 미국 내부의 상황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 정부의 강경함이 미국으로 하여금 행동에 나서기 어렵게 하는 측면도 감지된다. 중국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남한 정부의 강경책이 본격화될 경우 북한 압박에 동참하기보다는 겉으로는 원칙론을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북한을 감싸면서 얻는 이득에 더욱 몰두할 것이다.

남북 당국 모두 근시안적 권력욕으로 인해 민족의 미래를 몰역사적인 적대적 공생의 도박에 몰고 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그것을 통해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냉전 반세기동안 충분히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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