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작년 12월 장거리 로켓 발사와 올해 2월 3차 핵실험을 거치면서 핵위협이 눈에 띄게 높아지고 있다. 특히 과거에는 방어적 성격이 짙었던 반면에 최근에는 "정밀 핵선제타격"을 운운하는 등 공격적인 성격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북한이 핵의 위력을 앞세워 군사 모험주의가 더욱 기승을 부리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또한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도 이례적이다. 북한이 1990년대 들어서부터 정전협정 무력화를 시도해왔지만, 아예 백지화를 선언하면서 "임의의 시각 임의의 대상물을 타격할 것"이라며 선전포고를 방불케 하는 언사를 동원하고 있는 것은 과거보다 훨씬 발언의 수위와 위협의 강도가 높아진 것이다. 특히 판문점에 설치된 북미 간, 남북 간 군 직통전화를 동시에 차단한 것도 주목된다. 전쟁 위협은 높이면서 대화 채널은 단절하는 동시 언행을 동원해 벼랑끝 전술의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 북한은 5일 저녁 8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정전협정을 백지화하고 판문점대표부 활동도 전면 중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연합뉴스 |
북한의 의도는?
그렇다면 북한의 이러한 행태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아마도 가장 답답한 것은 북한의 정확한 의도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일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잇따른 대북제재 결의에 대한 불만과 한미합동군사훈련에 대한 반발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전쟁이냐, 평화냐'라는 양자택일을 압박하려는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추측건대, 북한은 이를 통해 국내 체제 결속, 핵보유국 지위 굳히기, 경제제재 해제 및 평화협정 체결 압박, 북방한계선(NLL) 무력화 등 동시다발적인 효과를 노리는 것 같다. 관건은 이 가운데 어느 것에 방점을 찍고 있느냐에 있다.
우선 북한이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면서 체제 결속에 나서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북한은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과 동시에 사실상의 전시 동원 체제에 돌입했다. 북한 매체들은 모든 당 기구와 조직들이 전시 대비 체제에 들어갔고 각계각층에서 군 입대 열기가 고조되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동시에 장거리 로켓과 장사정포, 함정과 전투기의 사진과 영상을 잇달아 내보내면서 강력한 전쟁 수행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선전하고 있다.
이를 통해 김정은 지도부가 자주권을 단호히 수호하고 있다는 점을 과시해 체제 정당화 효과를 극대화하고, 주민들을 상대로 경제발전과 인민생활향상보다 국가안보를 우위에 둘 수밖에 없는 현실을 주입시키며, "허리띠를 졸라매며" 이룬 국방력 강화로 인해 더 이상 수세적인 입장에 놓이지 않게 되었다는 점을 체제의 최대 성과로 각인시키려고 하는 것 같다. 만약 북한의 최근 언행이 이와 같은 '국내용' 성격이 짙다면, 북한의 설전(舌戰)이 실전(實戰))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북한 지도부가 국내정치적 효과에 만족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북한의 최근 행태의 핵심적인 목적은 핵보유국 지위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데에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은 정전체제의 실질적인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남한과 미국은 물론이고 중국에도 딜레마를 야기하고 있다. 북한의 정전협정 백지화 주장을 인정하면 전쟁을 다시 하자는 뜻이 되기 때문에, 한미 양국은 북한의 선언을 일축하고 정전협정 수호를 다짐하고 있다. 실제로 정전협정문에는 일방적인 파기 통보 조항이 없고 협정의 "수정과 증보는 반드시 적대 쌍방사령관들의 상호합의를 거쳐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정전협정 준수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정전상태로 60년을 보낸 한반도의 상황은 더욱 어정쩡하고 위험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북한은 바로 이 점을 노리는 것 같다. '조속히 평화협정 논의에 착수하든, 핵전쟁을 불사하든 양자택일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해 '게임의 법칙'을 바꾸려고 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역시 정전협정의 당사자이고 지정학적으로도 한반도 전쟁 방지에 사활적 이해가 있기 때문에, 정전협정 백지화 및 전쟁 위협은 유엔 안보리 결의를 찬성한 중국을 압박하는 데에도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북한 지도부는 계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북한이 평화협정에 방점을 찍고 있다면 한미합동군사훈련이 끝난 이후 '평화 공세'로 전환할 가능성도 있다.
다시 NLL이 걱정이다
남북한의 설전이 실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은 역시 NLL를 둘러싼 갈등이다. 한미 양국의 정보자산이 북한군의 움직임을 시시각각 감시하고 있고,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이 크게 달라져 있으며, 군사력도 한-미-일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는 상태에서 북한이 한국전쟁처럼 전면 남침을 단행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NLL은 다르다. 정전협정에도 북방한계선은 존재하지 않고 과거 유엔 사령관이 내부 작전 지침으로 설정한 일방적 성격이 짙다는 점에서 NLL은 국제법적으로 모호한 상태에 있다. 특히 북한은 NLL을 무력화해야 할 군사적 사유가 커졌다고 판단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 한미연합군이 북한 급변사태 시 무력 통일까지 염두에 둔 군사계획을 발전시켜왔고, 남한은 유사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시설은 물론이고 지도부까지 보복·응징하겠다는 적극적(혹은 능동적) 억제 전략을 공식화한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NLL을 무력화하고 보다 남쪽으로 해상분계선을 설정하는 것을 국가안보의 필수 조건으로 간주하고 있을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이 NLL 무력화를 위한 무력시위에 나설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필자의 견해로는 일각에서 거론되는 서해 도서 기습 강점이나 연평도 포격과 같은 '고강도' 도발보다는 NLL 월선, NLL 인근 수역으로의 해안포나 실크웜 미사일 발사 시험 등 '저강도' 도발의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진다. 저강도 도발에 대해 남한이 즉각 무력 보복에 나서기도 쉽지 않고, 설사 나서더라도 그 책임을 남한에게 전가할 수 있다고 판단할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3월 7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서해 최전방의 장재도와 무도 방어대를 시찰해, "적들이 우리 영해·영토에 단 한 점의 불꽃이라도 떨군다면 적진을 아예 벌초해 버리라"고 지시한 것이나, 해안포 상당수를 진지 밖으로 내보내 포문을 개방한 것도 이를 염두에 둔 사전조치라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북한이 이러한 조치와 함께 핵전쟁 위협을 크게 높이고 있는 것도 심상치 않다.(☞필자의 관련 기사 보기)
북한, 미국 욕할 자격 있나?
북한의 의도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여전히 억측의 영역에 속해 있지만, 북한이 전쟁 위협을 크게 높이고 있는 데에는 핵의 위력에 대한 맹신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 북한은 최근 미국의 적대시 정책, 특히 핵전쟁 위협을 크게 부풀리면서 '정밀 핵선제타격'까지 운운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 북한의 자가당착과 자기모순이 똬리를 틀고 있다. 북한은 자신을 상대로 핵선제공격을 채택했던 미국의 부시 행정부를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며 맹비난했었다. 그랬던 북한이 오늘날에는 자신이 핵선제타격에 나설 수 있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그런데 객관적으로 볼 때, 미국의 대북 핵위협은 줄어들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대북 핵선제공격 전략을 구체화하기 위해 지표관통형 소형 핵무기까지 개발하려고 했으나, 미국 의회의 반대에 막혀 실현되지 못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공식적으로 대북 핵선제공격 전략을 철회한 것은 아니지만, 최근 어떤 공식 문서에서도 대북 군사 작전에서 핵무기를 선제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더구나 '핵무기 없는 세계'를 주창한 오바마 행정부가 대북 핵선제공격에 나설 것이라고 상상하기도 힘들다.
물론 필자 역시 오바마의 대북정책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본다. '핵무기 없는 세계'라는 공약의 실천도 너무나 더디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차마 입에 담기에도 민망한 언사를 동원해 서울과 워싱턴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다며 위협하는 것은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를 추동할 현실적인 방법이 아니다. 북한의 본심이 여기에 있지 않더라도 너무 지나치면 모자란 것보다 못한 법이다. 과유불급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북한이 정당한 국제법적 권리를 행사하는 일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일도, NLL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것도,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에 필요한 대외적 환경을 조성하는 일도 욕설과 위협으로는 이룰 수 없다. 이제 그 거친 입을 닫으면서 협상의 문을 열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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