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남부 스몰렌스크에 자리한 `카틴 숲'과 폴란드와의 악연은 계속 되는 것인가.
10일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과 정부 주요 관리들이 카틴 숲을 방문하려다 불의의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면서 `카틴 숲 사건'이 다시 한 번 언론의 조명을 받게 됐다.
`카틴 숲 사건'은 폴란드인들이 러시아에 대해 가진 원한의 상징으로 양국은 이 사건이 대량학살인지 여부를 두고 수십 년 간 감정싸움을 벌이고 있다.
카틴 숲 사건이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지난 1940년 독일과 비밀협정을 맺고 폴란드로 쳐들어간 러시아(옛 소련)의 비밀경찰이 폴란드인 장교와 교수, 의사 등 사회지도층 인사 2만 2천 명을 카틴 지역에서 처형한 것을 말한다.
지난 2004년 러시아는 카틴 숲 사건과 관련해 보유하고 있는 기록을 폴란드에 제공하겠지만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사안이라 관련자 처벌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대량학살은 독일의 유대인 대량 학살을 일컫는 것이지 카틴 사건에는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폴란드는 대량 학살이 인류에 반한 범죄인만큼 기소하는데 시효가 있을 수 없으며 살해 주동자를 색출해 법정에 세우겠다며 국가 기념 연구소(IPN)에서 진상 조사를 벌였다.
카틴 사건은 발생 당시에도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졌으며 3년이 지난 1943년 독일 나치가 카틴 지역에서 4천100구의 시체를 발견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카틴 사건의 주동자인 스탈린은 "폴란드가 독립국으로 일어설 수 없도록 폴란드 엘리트의 씨를 말릴 것"을 명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대전이 끝나고서도 폴란드가 공산 소련 치하로 들어감에 따라 40여 년 간 폴란드와 소련에서는 카틴 사건에 대한 언급은 금기시돼 왔다.
러시아는 나치 독일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다가 지난 1990년 4월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 카틴 사건에 대한 소련군의 개입을 인정했다. 그러나 여전히 국가적으로 책임질 일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러시아 당국은 카틴 사건과 관련해 보관 중인 문건 183건 가운데 67건 만을 폴란드 정부에 제공하겠다고 밝혔을 뿐 116건은 기밀을 이유로 공개를 꺼리고 있다.
오히려 소비에트의 명맥을 잇는 러시아 공산당은 카틴 숲 학살에 대한 소련군의 책임을 부정하면서 의회 조사단을 통해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산당은 카틴 숲 학살과 관련해 러시아 정부가 국가의 지정학적 이익과 역사적 진실을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면서 폴란드가 1920년 소련을 침공하고서 6만 명의 러시아 전쟁포로가 폴란드 감옥에서 숨진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역공격하고 있다.
폴란드는 러시아와의 진정한 협력을 위해서는 카틴 사건이 먼저 해결돼야 함을 강조해왔다.
특히 이번 사고는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화해 모색을 위해 지난 7일 도널드 투스크 폴란드 총리를 카틴 숲 학살 사건 70주년 추모식에 초청한 지 3일 만에 발생한 것이어서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투스크 총리는 푸틴 총리가 카틴 숲 희생자를 함께 추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상징적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푸틴 총리는 러시아 정부를 강력히 비판해온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은 행사에 초대하지 않았다.
카친스키 대통령은 지난 2월 "폴란드의 최고 대표자는 대통령"이기 때문에 초대가 없더라도 카틴 숲을 방문할 것이라면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고 이날 개별적으로 카틴 숲을 찾으려다 변을 당하고 말았다.
현재로선 단순 사고인 것으로 보이나 일각에서 음모론도 나오고 있는 것은 이러한 양국 관계와 특히 카친스키 대통령과 러시아와의 반목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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