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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임

[한윤수의 '오랑캐꽃']<210>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국에서의 출산을 꺼린다. 남의 나라에 와서 노동과 육아를 병행한다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월요일. 모처럼 쉬는 날의 오후.
볼 일 보러 병점(餠店)에 갔다가 발안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80번 버스에 앉아 정신없이 졸고 있는데 누가
"목사님!"
한다.
후다닥 깨어보니 베트남 사람 루이(가명)다.
얼마나 반가운지!
루이는 우리 센터의 한글학교 학생이다. 7개월이나 개근한 모범생이고 거의 학생회장 노릇을 하던 인물인데 어찌된 셈인지 겨우내 보지 못했다.
"루이, 여긴 어쩐 일이야?"
"나 병점에 방 얻어 살아."

루이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사람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는 것. 둘째, 말끝에 <요> 자를 붙이지 않는 것. 반말처럼 들리지만 존대말과 반말의 개념이 애시당초 없는 인물이니 꼭 반말이라고 할 수도 없다.
"저런, 이 먼 데서 발안까지 오토바이로 다녔어?"
"응."
"어디 다녀오는 길이야?"
"운전학원."
"면허 따려고?"
"응."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 운전면허를 따려고 참 열심이다. 필기시험을 한 번에 붙는 사람도 보았다. 잘하는 일이다. 무면허로 운전하는 것보다 백배 좋은 일 아닌가.
"오늘 일 안 해?"
"야근이야."
때마침 갓난아기를 안은 아낙네가 버스에 오른다. 그 아낙을 보니 문득 루이의 아내, 기엔(가명) 생각이 난다.
"기엔 잘 있어?"
"응, 회사 나갔어."

기엔은 남편과 달리 좀처럼 한글학교에 오지 않았다. 선생님들이 그녀에게 한국말로 뭘 물어볼까봐 두려워서 못 온 것이다. 한국말이 너무 서투르면 사람 만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영어 못하는 한국 사람이 미국에 가서 방에 콕 박혀 지내는 것과 마찬가지다. 선생님들이 기엔에게는 아무것도 안 물어보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그녀의 얼굴이 펴졌었지!
루이가 갓난아기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을 보고 물었다.

"애기 안 낳아?"
루이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우리 애기 안 만들어. 한국에선 애기 낳아(낳으면) 너무 힘들어."
대번에 알아들었다. 한국에서 애기 낳아 기르면 너무 힘들어서 피임한다는 얘기다.

도대체 외국인들은 어떻게 피임할까? 피임약? 콘돔?
콘돔을 많이 쓰는 것은 내가 알고 있다. 복지 예산이 넉넉하던 시절, 시청이나 보건소에서 콘돔을 얻어다가 상담실 문밖의 탁자에 놓아두면 삽시간에 없어지곤 했다.

또한 루프 시술을 받고 싶다고 무료로 해주는 데가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한 여성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한국은 가족계획을 하는 나라가 아니니까 무료 시술은 사라졌다. 일반 의원에서 시술하는데 10만원이라고 알려주긴 했다.

벼라별 생각을 다 하는 중에 루이가 말했다.
"목사님, 나 내려."
"응, 여기가 어디지?"
"용수리. 회사 여기 있어."
"그래. 발안에 한 번 놀러와."
"응."
루이는 버스를 내렸다.
건물 모퉁이로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며, 루이 부부가 피임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베트남에도 그들의 애기가 있어서라는 생각이 비로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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