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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두고봐라!"

[김지하 시인의 '신경제론']물-마음과 돈과 물의 시대에 부쳐 (4ㆍ끝)

나는 이제까지 글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경제 즉 돈과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문화 또는 사상, 즉 마음과 그리고 그보다 더 많고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거는 그야말로 그것 없으면 죽어야 하는 산알, 즉 생명의 물을 이야기하였다.


그러면 이제 사람들이 잘 안 다니는 조그마한 오솔길 이야기도 해보자.
왜 그런 외진 이야기가 필요한가?
우리들의 이야기 방식 그 자체 때문이다.


우리들은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그 문제에서 가장 크게 보이고 널리 알려진 것들부터 관심 갖는 버릇이 있다. 그리고 그 관심도 누구나 지니는 일반적 관찰방식이나 이야기투로, 거의 상식 차원이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전문적이고 국소성(局小性)을 못 면하는 습관이 체질화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이른바 그저 밋밋한 때, '승평기(昇平期)'에 적합하지 '개벽기(開闢期)' 즉 대혼돈이 휩쓰는 위기 국면에는 알맞지 않은 것이 보통이다.
도리어 위기의 혼돈기에는 그야말로 독특한, 남이 잘 버릇하지 않는 기이한 관찰방법이나 이야기 스타일로 특이한 원인이나 증상을 끄집어내는 사람이 항용 세상을 위해 은근히 참 도움을 주는 법이다.


오해 없기 바란다.
내가 그런 사람이란 뜻이 아니다. 그런 태도를 한번 가져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일 뿐이다.


여기 두 사람의 예가 있다.
한 사람은 러시아의 언어학자 볼고진이고 다른 한 사람은 중국의 생태학자 '異憫泓'이다. '볼고진'은 이제까지의 역사에서 단 한 차례도 서로 유통이 없었던 캄차카 반도 남부토착부족 이뗄민족의 언어와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오랜 토착언어 사이에 나타나는 기이한 현상, 즉 유사한 발음과 거의 똑같은 표기법을 가진 수십종의 언어를 비교한 결과, 거기에서 인간의 타고난 민족어법을 통한 인류공통의 보편문법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육체성(肉體性)', 예컨대 '혼돈적 질서'에 속하는 인간인식과 사물 사이의 '허튼 소통법' 등을 찾아낸 것이다. 노엄 촘스키의 '민족어라는 주변부에서 도리어 인류 무의식 심층의 보편문법을 찾을 수 있다는 이상'을 맹공격해온 수많은 민족허무주의자들의 '상상적 공동체론'을 근본에서 무너뜨려버린 것이다. 단순히 '민족은 있다'가 아니라 민족 단위와 단위사이의 우주생명학적 보편 문법이 실재한다는 거대한 발견이었다.


또 한 사람 중국생태학자 '異憫泓'은 바다 전문가도 예측 못한 한 선박의 며칠 뒤 파선가능성을 미리 예감한 뱃속의 쥐들이 그 배가 출항하기 전 모조리 배에서 내려버리는 사건과 지진이 올 가능성이 있을 때 닭들이 먹이를 먹지 않고 온 몸을 빈 상태로 유지하는 현상을 관찰하여 놀랍게도 쥐와 닭들의 회음혈 속의 뇌신경 기능이 단순한 감각이나 판단이 아닌, 인간 뇌기능보다 더 근본적인 광활한 우주생명학적 예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사실에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인간의 심층 보편문법이라는 고도의 철학적 인식기능과 일상적인 언어, 특히 동사, 형용사, 부사, 조사 등 허드렛말의 상투적인 체험사이에 직통코스가 있다는 것, 즉 인간 마음에 그 말 층층시하의 위계 따위는 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인간만 아니라 짐승 같은 중생에게도 예컨대 일본 분자생물학의 발견, 뇌신경 박테리아인 '산성 센트라우볼'에다 미국 뇌화학의 '아르곤 다르볼리움', 그리고 미국 뇌생리학의 홀로그램 이론에 나오는 우주공간의 블랙홀이나 초신성 폭발 같은 사태나 인간 뇌세포 안에 그대로 복사된다는 이야기 등은 실제에 있어서 쥐나 닭 속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 그래서 도리어 인간들의 오염된 관념작용의 한계보다 훨씬 더 광활한 예감기능, 특히 어두운 불행의 접근에 대한 감각이 매우 예민하다는 것 등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발견은 놀랍게도 인간만 아니라 중생까지도 포함한 우주생명학시대의 심층 무의식적 소통문화의 창조와 개벽적 지구 변동에 대한 영적 생명력의 자기보호 및 치유능력의 개발가능성에 연결된다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는 몇 가지 유사한 사건을 예로 들어 오늘의 주제인 '물' 밑에 깔려있는 우리의 갈망과 그 실질적 실현 가능성에 대한 그야말로 짐작 또는 희망사항을 그 나름으로 진지하게 개진해보기로 하자.

▲ 김지하 시인 ⓒ인디코

첫째.
젊은 여성들의 자궁에 최근 번지고 있다는 이상한 부스럼 문제다. 별 치료약이 없다고 하는데 이것은 그저 나쁜 현상일 뿐인가? 아니면 어떤 전화위복의 가능성이 있는 것인가?


둘째.
직장 남성들 일반에 광범위하게 번지고 있는 극도의 피로감 문제다. 죽음에 이르는 병인가? 아니면 어떤 반전의 가능성이 있는 것인가? 또는 어째서 그렇게 되는 것인가?


셋째.
1년에 1만3000명씩이나 되는 자살자문제다. OECD 국가 중 첫째요 전 세계에서 네 번째다. 대학생 자살자는 한 달에 30명 이상이고 고등학생도 1년에 140명 정도다. 자살자 중엔 고학력 젊은 여성이 가장 많다.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넷째.
대유행중인 '신종 플루'에 내성 바이러스가 발생했다. '타미 플루'의 약성한계는 뻔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어떤 전통 동양의학 쪽의 소문은 없을까?


다섯째.
죽지 않는 생명체는 해파리만이 아니다.
사방에서, 특히 바다나 강물, 샘, 수돗물, 물병 등에서 괴이한 독성의 액체들이 나타나고 있고 이것이 죽지 않는 생명체와 연결성이 있다고 한다. 이것은 과연 무슨 조짐인가?


여섯째.
텔레비전이나 신문광고 등 시각매체 일반과 문화에서 최근 극단적인 선정성의 '색마성(色魔性)'에서부터 단순한 괴기가 아닌 '해체적 추악(이를 독일 근대미학은 'Grotesque'가 아닌 'Fratje'라고 부른다)'의 '악마성(惡魔性)'에로의 검은 '그림자 이동'(이 역시 문화변동 현상)이 두드러진다.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일곱째.
극단적인 '막말', '상소리', '욕설'과 '범죄적 모방 유형'의 시커먼 바다 속에서 반대로 하얀 '엄마' 이미지가 홍수를 이루고 있다. 이것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또 이런 현상들은 일반적으로 '물'이미지와 어떤 심층적, 복층적, 확산적 연속성을 갖고 있는가?


동학의 제2대 스승인 해월 최시형 선생은 일찍이 '후천개벽은 북극 태음(太陰, 대빙산 등)의 물의 변동으로부터 시작되는데 그 물은 여성들 몸속의 월경의 큰 변화로부터 바뀌기 시작할 것이다'라는 법설을 남겼다. 이미 2004년 인도네시아 대해일 '쓰나미'덕에 대륙판과 해양판 충돌의 원인이었던 지구 자전축의 북극 이동과 함께 북국 대빙산(太陰)의 본격적 해빙, 동토대 밑에 묻힌 메탄층의 대규모 폭발, 북극을 구성하는 두 개의 극(極)인 지리극(地理極, Geographic pole, 지구에너지의 수렴축)과 자기극(磁氣極, Magnetic pole, 지구 에너지의 외계확산축)의 상호이탈과 관계재편성, 남반구 해수면에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이 마구 섞이는 대규모 상승현상, 그에 이은 적도와 케냐에 눈 내리고 얼음이 얼다가 최근에는 춥다 덥다를 반복하는 이상한 복함이 나타나는 현상 등이 모두 다 김일부(金一夫) 정역(正易)에 의하면 이른바 '기위친정(己位親政, 밑바닥이 임금 자리에 되돌아온다, 지구자전축 북극이동)이라는 후천개벽의 일환으로서 이미 해월 선생의 북극 태음과 수 천 년 밑바닥대접의 여성 월경의 연관이 시작되었다고 보인다.


구당(灸堂) 김남수(金南洙) 선생의 '경락학(經絡學)'에 의하면 여성회음과 월경현상은 우주 변화에 극히 민감한 것으로 바로 여성 자궁의 부스럼은 다른 여러 조짐들과 함께 여성 신체와 뇌신경정신 일반에서 거대한 차원변화가 오고 있는 것으로 짐작되기도 한다. 특히 회음 속에 있는 세 개의 바다(帶脈 중심의 陰脈之海, 任脈 督脈 중심의 陽脈之海, 기타 전신의 氣脈을 총괄하는 衝脈之海)에서 움직이는 '물'의 기능과 간장, 비장, 신장의 삼음맥(三陰脈) 및 척추의 중추신경계 근원과 이른바 '회음뇌(會陰腦)'라고 불리우는 고도의 뇌기능이 경합하여 모종의 결정적인 괴질(怪疾) 치료제인 어떤 형태의 '산알'(북한 김봉한의 학설)이 복승(復勝)에서 나타날 가능성도 짐작된다. '허천우' 등 전문 단전수련자나 선도의학계통의 의학적 예감이다. 즉 백두산 의학의 계승자인 장병두(張炳斗) 할아버지의 주장인 '수왕(水王)'이란 이름의 여성 몸속의 신비한 '물'의 기능을 말하는데 이 '물'의 조짐이 부스럼이라는 일설이 있긴 있다. 기다려보자. 여자가 후천 화엄개벽의 초점인 바로 그 '모심'의 주체라 하니 무슨 기적이라도 있기는 있지 않겠는가!


남성들의 극도의 피로는 전 역사적인 남성가부장제, 이른바 여성과 어린이, 노인억압의 패권이 기우는 현상의 시작인 듯하다. 우주의 변동과 생명력은 못 속인다. 이 피로감의 상대적 회복 가능성도 내가 들은바로는 역시 '물'에 있다. 몸속의 물의 기능을 보강하는 일인데 물 많이 먹는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몸 안의 70% 이상의 음수(陰水)를 활발히 가동시키는 이미 말한 바 있는 세 개의 바다를 수련으로 강화시키는 일이다. 선도에 토대한 화엄법신선이 좋다고 한다.


한민족은 예부터 어떤 경우에도 자살 같은 것은 하지 않는 악바리 민족이다. 그런데 왜 이러는가? 나는 대학에서 미학을 전공했다. 그때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연구한 적이 잇다. 피렌체와 베네치아 15세기 전후한 시기 수많은 자살과 특히 젊은 여성들과 젊은 남성들의 자살이 줄을 이었다. 그것은 당대의 큰 과도적 변동 속에서 현실의 암흑(검은 그늘)과 동터오는 새 시대의 새벽(흰 빛) 사이의 갈등으로 유럽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래서 그 미학적 메타포가 '흰 그늘'인데 이 '흰 그늘'은 '어스름한 저녁 강물 속에서 한순간 반짝하고 빛나는 어떤 물방울의 흰 반짝임(invienttamentliche ausbrachtheit)'의 준말이다. 물의 흰 그늘을 늘 생각하며 검은 불행으로부터 싹터올 흰 새날의 희망을 잊지 말기 바란다. 역시 '물'이다.


당나라 때의 화엄법신선 수련공안집인 '벽암록(碧巖錄)'에는 '개사수인(開士水因)'이란 부분이 있다. 열여섯 명의 보살이 목욕하러 물에 들어가려다가 갑자기 그들 모두 한꺼번에 몸과 마음 공히 큰 깨달음과 큰 해방감을 느끼고 문득 부처를 이루었다는 기록이다.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우리 민족의 최고 경전 천부경(天符經)은 '사람 안에서 하늘과 땅이 하나로 통일되는 것'을 곧 최고의 깨달음(화엄개벽)인 최고의 치유(심무극)로 보지만 맨 밑바닥의 가장 중요한 왕(王) 즉 수왕(水王)인 '물'이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본다(천부경 중의 '묘연(妙衍)' 부분) 그 '물'을 오늘날 '신종 플루'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 것인가? '타미 플루'의 내성 바이러스로 절망에 빠진 국민을 위해 보건복지부는 하루 빨리 선도의학을 대체의학으로라도 합법화하고 속히 바로 그 '물의 약품'을 개발하도록 손써야 할 것이다. 빠를수록 좋다. 민족의학의 '물' 전문가들이 자꾸 늙어가는데 '신종 플루'는 더욱 기승하고 이어서 더 무서운 괴질이 또 다가온다는 불길한 소식이니까 말이다. 그런 '물약(감기약)' 개발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백 살 넘은 한 노인의사의 장담을 여러 번 들어서 하는 말이다. 오직 정부의 노력이 문제일 뿐이다. '빨리'다.


죽지 않는 해파리는 해파리만이 아니다. 물에서 죽지 않는 해조류는 자꾸만 생겨나고 있다. 프랑스·스페인 앞바다, 페르시아만, 멕시코, 러시아 등등. 중국에도 괴이한 독초가 생겨났다고 한다. 문제는 <죽지 않는 영원한 생명체>가 <물 속에 탄생할> <그 까닭을 연구하는><우주생명과학의 시작>이 요구된다.


줄기세포 복제니 유전자 게놈이니 뭐니 서양사람 꽁무니 쫓을 틈 없다. 당장 사람 살리는 '물약' 연구하는 우주생명과학이 필요한 것이다.


이 나라에 '아시안 네오 르네상스'가 오고 있다. 문학, 미술쪽은 물론이고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들이 그렇다. '워낭소리'의 시커면 늙은 소의 새하얀 눈물, '해운대'의 대해일의 공포, 그리고 '선덕여왕'에서의 탁월한 여성통치력의 대경합과 단군과 왕검의 이원집정의 전통인 신권(神權)과 왕권(王權), 풍류도와 불교, 체제안주쪽의 귀족들과 삼한통일의 방향성을 찾는 여성왕통과 남성지지자의 결합 즉 이원집정구조의 등장이 눈에 두드러진다. 이것이 곧 신시의 다물(多勿)운동인데 1만4000년 전 마고(麻姑) 시대의 '팔여사율(八呂四律)·여성성·혼동성 여덟에 남성성·균형성 옛 비율의 혼돈적 질서)의 신시시대를 현대에 여는 문예부흥(入古出新)의 일환으로 보인다. 바로 이같은 혼돈적 질서, 즉 여율(呂律)의 미학적 메타포를 일반적으로 '물의 아포리아'라 부른다. 또 '물'이다.


시커먼 상소리와 막말의 바다에서 하아얀 옛 엄마의 이미지를 그리워하는 신세대의 대유행은 '네오 르네상스'만 아니라 '모심의 세계문화대혁명'과 결과적으로는 '화엄개벽'의 큰 물줄기를 형성할 것이다. 이른바 '물'과 '달'과 '그늘'의 아포리아다.


기이한 일이다.
그 첫 물줄기는 열네 살 여자 중학생의 지하철 속에서의 막말 '졸라 빨라'로부터 흐르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욕설은 그 욕설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물과 같은 회귀 현상의 주인공이다. 욕설은 지독하면 지독할수록 그 근본은 정반대, 즉 참으로 순수하고 거룩한 하아얀 첫 샘물을 회복하는 심리작용을 끊임없이 일으키는 심리운동이다. '막히면 돌아간다'거나 '極則反'이 이와 같은 이치다.


나는 현 정부가 그리도 집요하게 4대강 개발 즉 대운하를 고집하는 것을 보며 도리어 최근에는 미소를 짓는다. 그것은 그 반대편으로 돌아가고 있을 과정의 자기를 잘 모르는 자기 변혁의 한 과정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 한 징조가 4대강 반대파 정운찬 총리 기용이요, 역시 개발에 회의적이었던 정몽준의 당권 장악이며 또한 그 이름을 '사강나래'라는 토속적 서정적 어휘를 붙이는 것을 보고 녹색도 뉴딜도 농업이나 홍수용 수질관리도 전혀 아닌 오역(五逆) 오사(五事)같은 역변(易変) 차원의 토목공사에 끊임없이 '녹색'이니 '나래'니 순 어거지를 쓰는 것을 보고 역시 나는 웃는다.


강행을 하든 중지를 하든, 길고 민주적인 공청회나 합리적 추진과정을 거치든간에 그리고 그로 인해 현 정권이 참으로 시커멓게 오염된 '사강나래'로부터 어느날 '신종 플루'의 수백배 독살스러운 수질 즉 '썩은 물'의 괴질로부터 대대적 역습을 당하든, 또 그에 대응한답시고 호시탐탐 생태위기만 기다리고 있는 사회생물학계열의 유전자 조작이나 온생명타령의 지구중추신경계 빅 브라더의 에코 파시즘과 손을 잡든, 불과 얼마 못 가서 두 손 다 들고 다시금 '녹색'이니 '나래'니 하며 빈 마음, 생명 모심의 자리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두고봐라.
물의 텅 빈 마음, 그 모심의 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마음(국민들과 산천초목의 원성)과 돈(해봤자 몇 사람 안 되는 땅장사, 토목쟁이들의 몇 푼 수입 외에 별 이익도 경기도 없는)에 대한 숨은 대안인 '물의 이치'를 바로 물장사 망한 그 사정에서 금방 아프게 깨달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은 화엄경과 개벽학의 기본적 은유다.
그러나 '모심'보다 더 물의 성질을 닮은 것은 없다.
우리는 새로운 시대, 동아시아·태평양 신문명의 축적·복승·확충의 환류적 신시경제 창조의 자리, 황해 지중해의 그 물의 근원인 오대산 서대 우통수에서부터 화엄개벽 모심의 첫 미덕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서대 우통수는 다음과 같은 이상한 별명을 예부터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고이나 마나'
'넘치나 마나'
'흐르나 마나'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이마에 시퍼런 칼날을 세우고 눈을 부릅떠야 한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 왜?


이 세 마디 별명은 곧 그 반대의 세 마디 무서운 비밀을 밑에 깔고 형성된 인근 진부 사람들의 의미심장한 수근거림이었기 때문이다.


진부의 한 토속음식점 '은산(隱山)'의 늙은 술고래주인 명(明) 선생은 말한다.
'정반대야 정반대!
우통수 지하수맥을 정말 조사해봐! 정반대 현상이 나타날 테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새 시대의 지중해 황해의 근본이 그 큰 남한강이고 그 큰 남한강의 근본이 우통수가 될 수 있겠어?


우통수의 땅 속으로 흐르는 물의 이름은 바로 이거야! 그리고 우통수는 어리석을 우(愚), 꿰뚫을 통(通), 물 수(水)야. 무슨 뜻이지? 부처님 뜻 비슷하지? 어리석은 듯하지만 꿰뚫는 물, 진짜 이름은 바로 이거야!


"고이나 마나가 아니고
넘치나 마나가 아니고
흐르나 마나가 아니고."
허허허!
<아니고>란 말이야!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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