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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가 그토록 싫어했던 북한 용어를 MB가 쓰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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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가 그토록 싫어했던 북한 용어를 MB가 쓰다니…'

캠벨 "그랜드 바겐 모른다" 발언 배경, '원조' 6자회담 수석대표의 해석

'그랜드 바겐'은 이명박 정부의 북핵 해법이다. 이 대통령은 작년 9월 "6자회담을 통해 북핵 프로그램의 핵심 부분을 폐기하면서 동시에 북한에게 확실한 안전보장을 제공하고 국제 지원을 본격화하는 일괄 타결, 즉 그랜드 바겐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그로부터 몇 시간 후 그랜드 바겐에 대해 "솔직히 말하면 잘 모르겠다"고 말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랜드 바겐의 비현실성, 대북정책을 둘러싼 미국과의 의견 불일치가 원인이라는 분석이 뒤따랐다.

그러나 6자회담 초기 한국의 수석대표였던 이수혁 전 주독 대사는 캠벨 차관보가 그렇게 반응했던 이유를 다른 각도로 해석했다. 과거 6자회담에서 한국과 미국이 그토록 거부했던 북한의 용어를 이명박 대통령이 사용한 데 대한 당혹감의 표현이었다는 것이다.

▲ 6자회담 수석대표 시절 이수혁 전 대사 ⓒ연합뉴스
일괄타결…동시에…주고받기

19일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통일전략포럼에 발표자로 나온 이수혁 전 대사가 특히 문제로 삼은 용어는 '일괄 타결', '동시에', '바겐' 등이었다. 그는 이 대통령이 그 표현을 쓰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전 대사에 따르면, '일괄 타결'은 북한이 2003년 1·2차 6자회담 때 합의문에 넣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던 용어다. 이는 일반 명사가 아니라 북한이 정의한 특수 용어로 '선(先)핵폐기-후(後)관계정상화'를 거부하고 특정 사안의 순서에 대한 입장을 내포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이 전 대사는 "한국과 미국은 우리가 하는 제안과 순서를 거꾸로 하는 북한의 제안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며, 그 때문에 9.19 공동성명이나 2.13 합의, 10.3 합의 등 6자회담 어느 합의문에도 일괄 타결이란 말은 들어가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청와대는) 북한이 말하는 일괄 타결과 이 대통령이 말하는 것이 같지 않다고 하겠지만 외교 협상에서 용어는 매우 민감한 것"이라며 "일괄 타결이란 말을 만든 (이명박) 정부의 관리들이 과연 1·2차 6자회담이 왜 파행이었는지를 알고는 있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이 전 대사는 "(현 정부가) 그랜드 바겐을 제안해 놓고 계속 일괄 타결이란 말을 붙이는 것에 대해 미국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 전 대사는 '동시에'란 말, 사전적 정의로 '주고받는다'는 뜻을 가진 '바겐'이란 용어, 거기서 파생된 '보상'이란 말도 북한이 끝까지 고집을 부렸지만 한국과 미국이 거부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역시 6자회담 합의문 어디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이 전 대사는 "동시적 조치가 가지는 문제 때문에 한미는 '단계적' '순차적' '병행적' '시퀀싱' '병렬적'이란 말을 쓴 것"이라며 "단계적으로 하는 것이 매우 기술적인 것이라서 본질이 아닌 것 같지만 단계를 만드는 게 바로 6자회담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대통령이 '북핵 프로그램의 핵심 부분'을 언급한 것은 정부가 핵심 부분과 비핵심 부분을 구분하는 것인데 핵심/비핵심을 누가 언제 어떻게 구분할 것이며 핵심을 폐기하는 데까지 가는 과정은 누가 어떻게 합의할 건가"라며 "핵 문제 같은 것은 물리적으로 단계가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신조어 만든다고 해보지 않은 일 할 수 없어"

청와대는 그랜드 바겐에 대해 "타협과 파행, 진전과 후퇴를 반복해 온 과거의 패턴에서 탈피해 북핵 문제를 근본적으로 푸는 통합적 접근법"이라며 "6자회담을 통해 북핵 프로그램의 핵심 부분을 폐기하는 동시에 북한에 대한 확실한 안전보장과 국제 지원을 본격화한다"고 설명했다.

이 전 대사는 이날 발표자료에서 정부의 이러한 설명에 담긴 문제점도 조목조목 비판했다.

우선 '문제를 근본적으로 푸는 통합적 접근법'이란 대목에 대해 그는 "목표에 대한 합의는 이미 6자회담에서 이뤄졌다"며 "합의된 목표를 이행하기 위한 세부 계획에서 파탄이 난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타협과 파행, 진전과 후퇴'에 대해서는 "외교 협상에서는 합의가 비가역적인 조치가 되기를 희망하고 또 그렇게들 약속하지만 국제정치 현실은 최종 결과를 거꾸로 돌리거나 파기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라고 지적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과도하고 불필요한 희망사항이란 것이다.

그는 "6자회담 의제들의 외교적·국내정치적·기술적 이유와 사정을 감안할 때 과정 없이 하나의 단계에서 일거에·동시에 해결되기를 기대하는 건 정말 비현실적"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그는 "실패한 체임벌린의 외교 때문에 유화정책을 피하고, 실패한 제네바 합의 때문에 '동결'과 '보상'을 피하고자 하는 정책결정자들을 이해한다"면서도 "그러나 그 단어를 피하기 위해 신조어를 만들어 보지만 북핵 문제가 자리매김하고 있는 국제정치의 현실적 조건과 환경이 우리로 하여금 아직까지 해보지 않은 일을 해보고, 가보지 않은 일을 가게 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도 핵주권을 가져야 한다거나 북핵을 무시해도 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도 쐐기를 박았다. 그는 "국제규범이나 국제현실은 사변가들의 주장을 수용할 만큼 녹록하지 않다"며 "호미로 막을 일이 가래로 막게 되는 일로 발전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수혁 전 대사는 2003년 8월부터 2005년 4월까지 외교통상부 차관보로 6자회담 수석대표를 맡았고, 노무현 정부에서 독일 대사와 국가정보원 1차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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