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경제 전문가인 양 교수는 9일 한반도평화포럼(공동대표 임동원·백낙청) 개최 월례토론회에서 작년 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나선경제특구에서 대외무역과 외자 유치를 강조하고, 올 초 나선시를 특별시로 격상시켰으며, '국가개발은행' 설립을 발표하고 조선대풍국제그룹을 외자 유치 창구로 지정한 일 등을 거론하며 이같이 설명했다.
양문수 교수는 "국내의 자원이 고갈된 상태에서 외부로부터의 자원 유입이 (화폐 개혁의 성공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북한 정부가 모를 리 없다"며 "화폐 개혁을 계기로 북한의 대내외 경제정책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이어 "그런 의미에서 북한의 화폐 개혁, 엄밀히 따지면 경제 운용의 새로운 판짜기는 완료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라며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 쏟아지고 있는 화폐 개혁 실패론이 성급한 결론이라는 것이다.
▲ 한반도평화포럼 월례토론회 '위기의 북한 경제 어디로 가나 - 화폐 개혁 이후' ⓒ프레시안(안은별) |
"국정가격·환율 발표 미루는 건 개혁 후폭풍 때문"
다만 양 교수도 "논리적으로 따지면 현재의 여건에서 화폐 개혁은 성공보다 실패 가능성이 더 크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반발에 밀려 신권과 구권의 교환 한도를 인상하고 예정에 없던 '무상배려금'을 지급한 점, 새로운 국정가격 체계와 환율을 신속하게 발표하지 못하는 점 등을 볼 때 "예상과 달리 신화폐 체제가 자리 잡지 못하고 후폭풍을 몰고 오는데 대한 (북한 당국의) 우려와 당혹감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물가와 환율이 폭등하고 식량을 비롯한 상품의 거래가 크게 위축되고, 이에 따라 2003년에 도입한 종합시장 폐쇄를 단행한지 불과 보름 만에 통제를 철폐하는 점 등은 화폐 개혁 이후의 경제 전반에 대한 북한 정부의 관리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기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국정가격과 환율에 대해 "단순한 리디노미네이션(액면 절하) 효과만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인플레이션이 진행되면서 국정가격과 시장가격의 격차가 확대됐던 현실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재조정하려 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북한 정부의 예상과는 달리 물가가 폭등하면서 물가 상승의 끝이 보이지 않음에 따라 당초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더욱이 그는 올 2월 초부터 시장에 대한 단속의 고삐를 늦추고 외화 사용 금지 조치도 풀면서 물가와 환율의 폭등이 소강상태에 있지만 다시 상승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화폐의 달러화 경향이 심해져 환율이 상승하고, 그에 따라 수입품의 국내 판매 가격이 상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강경 정책만 참는다면 불안 진정 가능"
이처럼 "경제학자의 눈에는 불안하기 짝이 없는" 화폐 개혁이지만 "일부 언론을 중심으로 북한 내부의 대혼란, 심지어는 폭동, 더욱이 북한 급변사태까지 거론하는 것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는 게 양 교수의 평가였다.
그는 "정부는 화폐 개혁으로 확충된 재정 수입을 활용해 노동자, 농민에 대해 임금과 현금분배액을 대폭 인상했다"며 "비록 일시적이긴 하지만 체제에 순응하는 사람은 언젠가 보상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준 것은 북한 정부 입장에서 적지 않은 성과"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외화 사용 금지나 시장 폐쇄 같은 극단적이고 초강경한 정책적 조치를 철회한 상황이 앞으로 오래 지속된다면 물가와 환율의 불안은 다소 진정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새로운 환율 및 국정가격 체계가 확정된다면 경제 전반의 자원배분 체계의 재편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북한 정부가 북미관계, 남북관계를 비롯해 대외관계 개선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고 이에 따라 외부로부터 지원이 다소 늘어난다면 파국은 피할 수 있다"며 "외부 자원 유입은 다소 시일이 필요하며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상황 나쁘긴 하지만…실패 단정은 일러'
토론자로 참여한 고경빈 전 통일부 정책홍보실장도 화폐 개혁의 성패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고 전 실장은 북한의 작년 핵실험과 화폐 개혁에 대해 "위험부담이 큰 도박으로 의도대로 성공할 가능성 높지 않다"면서도 "그간의 혼란을 끝내는 과정이 될지 또 다른 혼란의 시작이 될지는 향후 수개월이 지나야 판단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철 숭실대 교수는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 직후인 8~9월 남쪽에서 그 문제를 가지고 논란이 많았는데 지금에 와서는 그 이듬해 3월 실시된 종합시장 도입까지를 하나의 패키지로 설명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지금의 화폐 개혁도 겨우 3개월간의 현상만 가지고 단정하는 건 매우 위험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북한 주민의 30~40%가 배급경제 안에 있는데 현재 화폐 개혁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는 그 밖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며 "배급경제 내의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북한 경제를 봐야 균형 잡힌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봉현 기업은행 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화폐 개혁 때문에 북한 경제가 망가졌고, 그래서 북한 체제도 오래 못 갈 것이며, 따라서 더 고립시켜야한다는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며 "북한 당국이 실패라고 단정하지 않았는데 남쪽에서 너무 실패로 몰아붙이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 위원은 "북한이 경제를 중국에 의지하는 현상이 있지만 남북경협에서도 길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있다"며 "대풍그룹이 개성공단에 관심을 보이고 3통(통행·통신·통관) 문제에도 개입하고 있으며, 그룹의 핵심 관계자는 작년 12월 남북 해외공단 공동사찰 때 같이 가기도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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