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는 극동문제연구소의 교수진과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한반도 문제 관련 정책소식지입니다. 이번 6호는 '남북정상회담, 가능성과 조건'을 주제로 6편의 글이 실렸습니다. 3월 첫째 주 동안 매일 1편씩 소개됩니다.
1972년 설립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는 북한·통일 문제에 관한 연구와 정책 제안 활동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는 최고의 민간 연구기관입니다. <편집자>
군불만 때다가 사그러질 운명인지, 아니면 대형 화재로 옮아 붙으려는 것인지 여전히 안개 속에 갇혀 있는 것이 남북정상회담인 듯하다. 이미 대강의 윤곽은 나타난 거 같은데, 거기까지 뿐이다. 앞으로 성사될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이 글은 이명박 정부의 정상회담에 대한 입장은 무엇이며, 그 배경과 이유는 무엇이고, 이명박 정부의 잔여임기 3년 동안 추진해야 할 대북정책의 맥락에서 정상회담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 개진하고자 한다.
원하지만 조건이 맞아야 … '깜짝쇼'는 없다
작년 9월 남북 간에 임태희 노동부장관과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싱가포르에서 접촉했다는 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불거진 남북정상회담 추진설은 벌써 반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 성사까지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북 간에 입장 차이가 분명하여 타협이 이뤄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의 입장은 이 대통령이 북핵 해법으로 제시한 '그랜드 바겐' 구상에 입각하여 핵문제를 논의하고,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물론 이들 중 일부라도 우리 측에 인도하며, 연락사무소와 같이 남북이 상시적으로 협의할 수 있는 상설기구를 설치하는 문제와 정상회담을 정례화 시키는 문제를 논의하자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북한은 핵문제와 한반도 평화협정과 같은 정치·군사적인 이슈는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이며, 납북자 문제는 그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으며, 국군포로에 대해서는 한국이 원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 즉 쌀과 비료를 대거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상설기구 문제나 정상회담 정례화 문제에 대해서도 이견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접촉 과정에서 위와 같은 서로의 요구조건 수위가 어느 정도로 조정되고 있는지는 알려지고 있지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은 북한은 남한의 인도적 지원, 금강산·개성 관광 재개를 포함한 경제지원을 명확하게 해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는 데 반해 우리 측은 그런 것을 얼마든지 줄 수 있지만 사전에 못을 박는 식으로 할 수는 없으며, 핵문제에 관해서는 반드시 논의해야 한다는 것을 최우선적인 전제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북한은 경제, 남한은 안보를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이명박 정부의 정상회담 개최 희망과 의지는 분명한 듯하다. 금년 1월 29일 이 대통령이 영국 <BBC> 방송과 가진 인터뷰에서 "나는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준비가 항상 되어 있다. 조만간이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아마 연내에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한 말은 국정 최고책임자가 할 수 있는 의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언급이 국내에 보도되면서 정상회담 조기개최설이 돌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그러나 단지 우리가 유익한 대화를 해야 하고 북한 핵 문제에 대해 충분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언급으로 볼 때 조건이 맞아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것이 정확하다.1) 말하자면 정상회담 '깜짝쇼'는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이 발언 이후 연이어 나온 관련 고위관료들의 발언 역시 대통령의 발언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현인택 통일부장관은 2월 9일 한나라당 부설 여의도연구소가 주최한 회의 축사에서 정상회담에서는 "북핵 문제와 더불어 의지만 있다면 남북간 인도적 현안도 충분히 논의할 수 있다"며 "그래야 남북관계가 새롭게 열릴 수 있다"고 말했다.2) 김성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도 2월 18일 주한 유럽연합 상공회의소 주최 간담회에서 "지금까지 북한은 남한을 경제적 협력 상대로만 인정하고 전략적·정치적 대화는 미국과만 진행했으나 이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북한은 미국과 대화하려고만 하지 말고 대화를 통해 남북이 스스로 (문제를) 풀어나가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3)
그러나 다른 한편 이들의 발언에는 북한이 나서기만 하면 남북관계가 일대 전환점에 들어설 것임을 하나같이 강조하고 있다. 현 장관이 "정부는 금년에 남북관계의 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고 한 말이나, 김 수석이 "우리 정부는 대화와 협력을 위한 문을 언제나 열어놓고 있다"고 한 말이 그렇다.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 역시 2월 22일 통일연구원 주최 회의에서 "이명박 정부가 집권 3년차를 맞는 올해 북한 정권이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큰 결심을 해 주면 일대 전기가 열릴 것"이라고 피력한 것은 가장 최근의 언급이다.4)
요약하면 이명박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된다면 정치·군사적인 문제를 핵심 의제로서 논의해야 하고, 남한과의 교류에 진정으로 나선다면 대규모 경제지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회담의 형식이나 장소 등은 부차적인 것이며, 행사를 위한 행사를 하는 데는 관심이 없으며, 뭔가 실질적인 논의와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판단될 때 정상회담을 개최한다는 것이다.
Why not with South Korea?
이러한 정부의 정상회담에 대한 태도는 과거 두 차례 열렸던 정상회담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되었다.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정부의 태도가 너무 인색하며,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무시하고 있다는 지적을 제기한다. 정상회담(頂上會談)을 정상적(正常的)인 회담과 혼동하는 것 아니냐는 문제를 지적한다. 일견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2000년에 개최된 첫 번째 정상회담은 그 당시의 시대적 조건이 있었고, 지금은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그 사이 10년간의 '포용정책'의 공과를 따지기 전에 두 차례나 핵실험을 해서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돼 버린 북한을 놓고 남북경협만을 얘기하는 것은 어딘가 한가해 보인다.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남북관계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도 하나의 발상은 될 수 있지만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는 아니다.
김대중 정부 이래 우리 사회의 한 축에는 북한문제 해결은 교류·협력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패러다임이 현재의 남북관계를 접근하는 데 중요한 구상이 될 수 있음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가 지향하는 남북관계도 따지고 보면 이 패러다임에 한 쪽 발을 담그고 있다. '그랜드 바겐'이나 '비핵·개방·3000' 구상이 그렇다. 남한의 우월한 경제력과 북한의 가공할 군사력을 맞바꾸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는 선후의 문제이고, 협상의 포맷이다.
경제 교류·협력을 먼저 행한 후에 정치·군사 문제를 풀어나간다, 북핵문제는 북한이 미국과 풀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므로 이를 존중하여 접근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북핵문제 해결의 지름길이라는 지난 시기의 발상은 "왜 남한과 하면 안 되는데?(Why not with South Korea?)"라는 현 정부의 질문에 의해 전환된 지 2년이 지났다. 그리고 북한이 2009년 8월부터 보여주고 있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대화공세(?)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나름대로 효과를 거두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5) 이런 의미에서 현재 교착상태에 있는 듯 보이는 정상회담 협상 - 김태효 비서관은 "현재 진행되는 것은 없다"고 부인했지만 - 이 타결된다면 분명히 남북관계가 새로운 패러다임, 즉 남과 북이 정치·군사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고, 그에 상응해서 과거보다 더 큰 규모의 경제지원이 들어가서, 김성환 수석이 말한 대로 "두 국가를 유지하면서도 언제든 상호왕래가 자유롭게 된다면 '사실상 통일'이 되는" 상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가능할까?
▲ 중국이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달 6일 방북한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8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
외줄타기가 아니라, 그물 위에서
대북정책의 방정식이 날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탈냉전 시대가 도래하면서 국제관계가 남북관계의 범위 안에 자리를 잡았고,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국내정치 역시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게다가 지구촌화(globalization)가 진전되고, 슈퍼파워로서 중국의 부상도 남북관계를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성격을 갖게 만들었다. 이제 대북정책은 과거처럼 북한만을 대상으로 펴는 일면적이고, 단선적인 방향으로 갈 수 없다. 미국과 중국의 대북정책도 고려해야 하고, 국내정치에 미칠 파장도 감안해야 하며, 북핵 문제뿐만 아니라 북한 정권이 안고 있는 정치적·경제적 문제들도 고민해야 한다. 통일에 대한 비전도 가늠해야 하고, 외교와 안보의 지평도 투사해야 한다. 참으로 고차 복합 방정식에 비견될 수 있겠다.
역시 북한문제에 대한 미·중 간의 인식과 전략 차이가 도드라진다. 오바마 정부는 과거 미국의 어느 정부보다도 대북정책에 관한 한 확고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워싱턴은 북한의 비핵화 노력이 선행되지 않는 한 대화에 나서지 않겠다는 결기를 가다듬고 있다. 1월 29일 대북정책의 '총책'인 스타인버그(James Steinberg) 미 국무부 부장관은 이러한 입장을 "전략적 인내심(strategic patience)"이라고 표현했다.6) 그러나 다른 한편 이러한 인내심의 저변에는 북한의 핵무기에 대해 시간을 갖고 대하겠다는 느긋한 마음도 자리하고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 역시 중요한 것은 이란 핵문제이지, 북핵은 아니다. 북핵은 비확산의 틀 안에 있으면 되는 것이고, 그렇게만 관리되면 언젠가는 해결될 수 있든지 아니면 말든지 하는 입장까지도 읽힌다.
최근 중국이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왕자루이(王家瑞) 대외연락부장의 방북과 김정일 위원장 예방 이후 김계관 부상의 방중과 미국 방문설, 위성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보스워스(Stephen W. Bosworth) 특별대표의 방중과 우다웨이(武大偉) 특별대표로부터의 디브리핑 등 6자회담 재개가 가깝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그에 앞서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도 곧 성사될 거라는 낌새도 드러난다. 중국은 북핵 해결도 중요하지만 북한 정권이 탁자 위에서 떨어져서 깨질 운명에 있는 유리컵이 되지 않도록 대북지원을 핵심으로 하는 개입(engagement)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북핵 협상의 불씨도 되살려놓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이렇게 보면 미국이나 중국 모두 당장의 북핵 문제 해결에 주력하는 모양새는 아니다.
북한은 중국의 지원에 결박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지금으로서는 달리 택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므로 최근 드러나듯이 대중 접근책을 구사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미국의 태도가 생각보다 확고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만일 6자회담이 재개된다면 북한이 미국의 요구, 즉 「9.19공동성명」 이행과 비핵화 의지 천명, 6자회담 복귀를 수용하되, 6자회담에서 북한이 요구하는 대북제재 완화와 평화체제 협상에 관한 논의를 하는 것으로 양보한다는 것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미국이 양보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6자회담이 재개되면 핵협상에 진전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우리 정부가 원하는 북한의 핵폐기 과정은 국제사회 공동 노력의 차원에서 접근될 수밖에 없는 역사적·구조적 조건에 놓여 있다. 북한만을 상대로 하는 대북정책은 바람직하지만 가능하지는 않다. '한반도 문제의 한반도화'를 외기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북한 문제는 이제 되돌릴 수 없는(irreversible) 국제 문제(global issue)가 됐다. 최근 대두하고 있는 북한 급변사태 논의 역시 마찬가지다. 예전처럼 북한은 고토(故土)이므로 당연히 우리에게 권리가 있다는 식의 주장은 정서적으로는 유효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가당치 않다.
그렇다면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한이 담당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가라는 지점을 찾아나가는 일이 선결돼야 한다. 그것은 남한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북한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북한 문제를 민족문제로서보다는 국제사회가 공통으로 안고 있고, 해결해야 할 과제로서 생각하고 그에 걸맞은 해법을 찾아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2차 핵실험을 한 지 5개월 만에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방북해서 북·중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한 것처럼 가능하다면 남한도 그와 같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과의 협력과 공조 위에서 한다면 당장 남북관계의 중대 전기가 만들어지지는 않더라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할 일을 하는 셈이 된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말할 때 항용 등장하는 표현이 바로 원칙과 실용이다. 어찌 보면 대척점에 있을 것 같은 두 단어가 공존하고 있다. 원칙과 실용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쉽지도 않다. 그러나 시차를 두면 가능하지 않을까. 실용을 먼저 내세우고 그 다음에 원칙을 내세우는 식으로 말이다.
필자가 보기에 더 중요한 가치는 정당성이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정책을 편다면 대북정책이 걸치고 있는 국제사회, 북한, 국내사회 모두에게 지지를 받게 될 것이다. 당장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 말아야 한다를 놓고 논쟁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정상회담이 당위에 근거해서 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그물을 엮어 그것을 통해서 북한을 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면 바로 지금 남한이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정상회담이라고 생각한다.
NOTES
1) http://app.yonhapnews.co.kr (2010-01-29 22:47 송고).
2) http://app.yonhapnews.co.kr (2010-02-09 15:35 송고).
3) http://app.yonhapnews.co.kr (2010-02-18 16:18 송고).
4) http://app.yonhapnews.co.kr (2010-02-22 17:17 송고).
5) 현정은 회장의 방북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 장의조문단 방문, 그리고 북한의 정상회담 제안,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회담 등 지난 6개월 동안 북한이 보여준 대남 태도는 과거 전혀 볼 수 없었던 광경이다. 물론 이런 행동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먹혀 들어간 결과라고 해석한다면 이는 아전인수(我田引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점에 유의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분명히 초유의 일임에 틀림없다.
6) 이 발언은 그가 북한대학원대학교와 미 우드로우윌슨센터(Woodrow Wilson International Center for Scholars)가 워싱턴에서 개최한 워싱턴 포럼의 기조연설자로 나와 한 말이다.
* 원제 : 이명박 정부 남북정상회담 추진상황: 원칙과 실용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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