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 한국말 잘하는 외국인은 수준이 높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한국말을 잘 하더라도 한국 법에 대해서 너무 모르면 얘기가 달라진다. 지나치게 모르면 "수준 이하!"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한국 법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 법이 수준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보자.
산토의 동생 산바니는 조치원에서 1년간 근무한 적이 있다. 일이 힘들고 환경이 열악해서 회사를 옮기고 싶었다. 기회가 1년 만에 찾아왔다. 하지만 사장님이
"여기 싸인해."
하자, 영문도 모르고 재계약서에 싸인했다. 그 바람에 울분 속에 지낸 또 다른 1년이 얼마나 괴로웠던고!
만 2년이 되기 직전 산토 형제는 나를 찾아왔다. 나는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산바니 대신에 한국말이 통하는 산토에게 주의를 줄 수밖에 없었다.
"산바니에게 얘기해요. 첫째, 사장님이 싸인하래도 절대로 싸인하지 말 것. 둘째, 만기가 되는 날 점심까지 일하고 대전고용지원센터에 가서 구직필증을 받을 것, 셋째 그날 반드시 대전출입국에 가서 비자를 연장할 것."
산토는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너무 복잡해서 얘 혼자 못할 텐데요."
나는 산토에게 하루 휴가를 얻어서 조치원으로 내려가라고 시켰다. 동생 데리고 다니면서 수속 대신 해주라고.
형이 내려가서 수속을 해주는 바람에 동생은 무사히 조치원을 벗어나 화성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 그게 바로 2년 전 일이었는데 어제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산토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다.
"목사님, 회사 그만두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요?"
"누가 그만두고 싶은데?"
"나요."
"산토가?"
"예."
"산토는 잘 알잖아? 동생 도와줬잖아!"
"몰라요."
"하여간 무조건 싸인하지 마!"
"알았어요. 그런데요 사장님이 외국인 등록증 달래요."
"그래 주었어?"
"예."
"주면 안 되는데! 다시 달라고 해."
"왜요?"
"*등록증 달라는 건 계약 연장하려고 하는 거야."
"그래요?"
"등록증은 본인이 갖고 있어야 돼. 왜 내 등록증을 남에게 주어? 한국 사람도 주민등록증 남에게 안 주잖아! 알았어요?"
"예."
나는 2년 전과 똑같은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첫째 싸인하지 말 것, 둘째 만기가 되는 날 점심까지 일하고 평택고용지원센터에 가서 구직필증을 받을 것. 셋째 그날 반드시 수원출입국에 가서 비자를 연장할 것. 어려워?"
"어려워요."
"아니, 2년 전 동생 도와줄 때는 잘 하더니 왜 그래?"
"글쎄요."
산토는 수준이 높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그렇다고 낮은 것도 아니고.
그냥 높았다 낮았다 하는 수준이다.
*등록증 달라는 건 계약 연장 : 근로자가 싸인하지 않더라도 싸인한 것으로 서류를 만들어 계약 연장한 것처럼 신고하는 회사가 있다. 등록증을 달라고 하는 것은 (계약 연장에 근거하여) 비자를 연장해주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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