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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한국의 UAE 원전 수주에 '떨떠름'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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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한국의 UAE 원전 수주에 '떨떠름' 왜?

[서정민의 '인샬라 중동'] 중동 진출, 근시안적 경제중심주의의 한계

"좋으시겠습니다. 바쁘시겠습니다. 졸업생들의 수요가 폭발적이겠네요."

작년 12월 27일 중동의 아랍에미리트(UAE) 수도 아부다비에서 전해진 소식 덕분에 필자도 이처럼 많은 축하 전화와 문자를 받았다. 사상 최대 플랜트 수주인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전 수주. 중동학을 가르치는 필자와 수학하는 학생들에게 여러 모로 청신호가 될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을 하면서 보내온 축하 메시지들이었다.

1400㎿급 원전 4기 건설. 사업비는 200억 달러. 여기에 최종 수주를 한 것은 아니지만 향후 60년 원전 수명 기간 중 운영과 연료 공급 및 폐기물 처리 등 운영 지원용으로 200억 달러 정도의 사업을 추가로 따낼 것이 거의 확실하다. 중동의 사막 속에서 진행될 엄청난 프로젝트가 당연히 중동 관련 학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다.

일부 언론에서도 '아랍어와 중동지역 전공자의 부족 사태'라는 논지의 여러 기사들이 게재됐다. 장기적인 차원에서 전문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부에게 제기됐다. 하지만 아직 구체화된 것은 거의 없다. 실질적인 움직임은 주로 원자력학과를 개설하고 원자력 관련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프로젝트들이 발표된 것뿐이다. 아부다비 현지에도 대부분 엔지니어로 구성된 인력이 파견될 예정이다.

기술력으로 수주한 프로젝트에 전문 기술 인력을 중점적으로 파견하고, 이를 위해 미래의 인력을 양성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현지 문화와 언어 그리고 정치·경제를 파악할 수 있고 향후 수주와 진출 확대를 도모할 수 있는 인력에 대한 수요와 양성에 대해 언급한 정부 기관이나 기업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경제중심주의다.

1970년대부터 우리의 중동 진출은 거의 전적으로 경제적 접근법에 의존해 왔다. '일본과 같은 경제적 동물일 뿐'이라는 표현은 필자가 중동에서 활동하는 동안 수도 없이 들었다. 중동으로부터 최대 규모 프로젝트를 수주해도 크게 바뀐 것은 없는 것 같다. 2009년 중동으로부터 수주한 플랜트 계약 규모가 200억 달러 이상이지만 기업이나 정부 모두 눈앞의 실적과 돈벌이에만 열중하고 있다.

▲ 작년 12월 원전 수주 계약을 위해 UAE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제공

원전 수주와 중동의 정치

중동에서의 원전 수주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중동 내 원자력 경쟁은 단순히 에너지원 다각화라는 경제적 요인으로만 설명될 수 없다. 심대한 정치적 함의를 담고 있다.

특히 원자력은 안보와 깊은 관련이 있다. 중동에서도 핵 문제는 상당히 심각한 대치 국면을 조성하고 있다. 이란의 핵 위협이 주변 아랍 국가의 핵개발 추진을 자극하고 있다는 분석이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이란과 근접해 있고 수니파 종주국으로서 이란의 시아파 패권주의를 견제하고자 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중심의 걸프 국가들의 반응이 두드러진다.

더불어 서방이 개입하는 국제정치역학적인 복잡성도 내포하고 있다. 원자력 발전은 핵무기 제조에 악용될 수 있는 농축 우라늄을 취급하기 때문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 진영은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는 중동의 원전 개발 러시를 달갑지 않게 보고 있다.

미국 의회의 일부 의원들은 아랍권의 한 국가가 원자력 기술을 갖게 될 경우 다른 국가로 기술이 이전돼 결국 핵무기 개발에 악용될 수 있다며 UAE의 원전 사업에도 부정적 견해를 피력하기도 했다. 미국 주도 서방은 이 때문에 아랍권의 원전이 평화적 용도로만 사용될 수 있도록 담보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UAE의 경우 한국 시간 2009년 12월 18일 미국과 원자력협력협정을 체결하면서 자체적으로 우라늄 농축 및 플루토늄 재처리를 하지 않고 핵연료를 수입해 사용하겠다고 천명했다. '123 협정'(123-Agreement)으로 알려진 이 협정은 UAE가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를 포기하는 대신 미국 기업으로부터 원전 원천 기술을 수입할 수 있도록 미국 정부가 보증해주는 것이다. UAE의 원전 발주에서 계약 체결까지 수주 협상 전 과정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사안이었다.

UAE 정부가 한국 정부와 기업 대표들에게 최종적으로 계약에 서명하겠다고 통보한 날인 12월 18일은 공교롭게도 워싱턴에서 미국과 UAE 대표가 만나 123 협정문을 최종 교환하던 때와 일치한다. 미국으로서는 아랍 국가들의 원전 개발 의지를 언제까지나 봉쇄할 수 없을 바에야 안전장치를 확실히 해 두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동시에 UAE 원전이 다른 아랍권 국가들의 원전 개발시 역할 모델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등 서방과는 가장 상반되는 입장을 가진 이란에게는 UAE의 원전 사업 진행이 껄끄럽기만 하다. 이란은 자국의 핵 프로그램이 핵무기 제조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서방의 주장을 일축하며 어디까지나 에너지원 확충을 위한 평화적인 용도로만 사용될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방은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통해 이란의 우라늄 농축 포기를 압박하고 있고, 유엔을 통해 추가 경제 제재를 준비하고 있다. 국제법상 보장된 우라늄 농축을 포기하고, 한국과 일본 모델 그리고 이제 UAE 모델을 따르라는 것이다. 자체 농축이 아닌 서방이 제공하는 고가의 농축 우라늄을 수입하고 재처리도 서방의 손에 맡기라는 것이다.

이란을 포함한 중동 국가들은 핵탄두 200여기를 보유한 이스라엘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서방이 국제법상 합법적인 평화적 우라늄 농축을 하고자하는 이란 등 중동 국가에 대해 반대하고 압력을 행사하는 것에 반발하고 있다. 이중잣대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현재까지도 IAEA에 가입하지도 않고 있으며 핵확산금지조약(NPT)에도 참여하고 있지 않다. 반면 서방은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겠다는 다른 아랍 및 이슬람 국가에 대해서는 반대를 위한 반대에 집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UAE와 미국이 전격적으로 원자력협정을 체결하고 이와 동시에 한국이 UAE 원전을 수주한 것에 대해 이란과 반미 중동권은 떨떠름한 표정이다. 이란은 우리에게는 가장 중요한 중동의 경제 파트너다. 우리의 중동 내 최대 무역파트너가 바로 이란이다. 우리 수출 상품의 중동 내 최대 판매처도 이란이다.

두바이를 거쳐 많은 한국 제품이 이란으로 향한다.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보다도 더 많은 한국 제품이 팔리는 곳이다. 더불어 이란은 석유 및 가스 자원에 있어 세계 2위의 매장량을 보이고 있다. 에너지 안보를 위해 우리와의 보다 긴밀한 협력이 절실히 필요한 국가다.

이란 정부는 한국이 그동안 IAEA와 유엔의 반(反)이란 결의안에 계속적으로 찬성표를 던져온 것에 대해 적지 않은 불만을 가지고 있다. 서방의 '이란 때리기'에 우리가 동참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할 뿐 국제사회에서 이란의 입장을 전혀 이해해주거나 지지하지 않는다"고 얼마 전 이란에서 만난 한 지식인은 필자에게 거칠게 말했다.

이란은 양국간 경제적 협력 수준에 맞춰 정치적으로도 한국에 동반자 관계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나치게 미국 등 서방 친화적인 외교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특히 원전 수주에 앞서 우리가 UAE와 양국의 군사교류 수준을 대폭 확대하는 내용의 군사교류협력 협정(MOU)을 체결한 것에 대해 이란 등 다른 중동 국가들이 어떻게 평가할지에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UAE 원전 수주로 경제적 이익이 크다고 하더라도 중동 정세에 대한 적확한 판단과 대응자제도 필요한 시점이다.

▲ UAE 원전 건설 협정 서명식 ⓒ청와대 제공

원전은 장기적 사업이다

이처럼 복잡한 중동 및 국제 정세를 고려한다면 원전 수주를 단순히 경제적인 차원에서 기뻐하고 준비하는 것은 적지 않은 위험이 따른다.

원천기술이 없어 설움을 받아온 원자력 발전소 건설이 처음으로 해외 진출에 선공한 것은 진심으로 환영할 일이다. 원전 수출국의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향후 세계 원전 시장에서의 추가 수주 혹은 진출이다. 전문가들은 2030년까지 430개의 원자력 발전소가 세계 전역에 설치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부는 2030년까지 80기의 원전을 한국인의 손으로 짓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중국이 단연 최대시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2020년까지 총 50조원 규모의 1GW급 신형 원전 31기를 건설하기로 해 앞으로 세계 최대의 신규 원전 시장으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중국의 경우 수년 안에 상당 기술을 축적해 자력으로 원전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우리가 장기적으로 계속 원전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지역이다.

남아 있는 곳은 중동이다. 이미 22개 아랍 국가 중 원전 건설 계획을 발표한 나라 수가 13개에 이른다. 중동의 요르단, 터키 등이 가장 가까운 시일 내 원전 건설을 발주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UAE의 원전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아랍권 내 다른 국가들의 원전 건설 경쟁도 가속화될 전망이다. 아랍권 국가들은 풍부한 석유 자원 덕분에 원전 개발에 많은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갈수록 치솟는 전력 수요를 충당하고 석유 고갈 이후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원전 건립이 시급하다는 점에 공감하고 원전 건립을 서둘러왔다. UAE가 세계 3위의 원유 수출국임에도 원전 건립에 적극적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단순히 추가적인 수주 때문만은 아니다. '화약고'라 불리는 중동에서 정치적으로 단순하지 않은 원전 건설을 순조롭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현지의 정세를 적확히 파악하고 긴급 상황 발생시 대처 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하다.

UAE 원전 수주에서 보이듯이 발전소 건설이 전부가 아니다. 60여년 운용 및 관리를 해주어야 한다. 장기적인 사업이다. 기술 인력으로만 발전소 건설과 가동에만 집중하는 것은 무모하기까지 하다. 보다 큰 틀에서 추가 수주와 장기적 운용을 담당할 문화 인재가 필요하다. 한곳에만 치우치지 말고 포괄적인 준비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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