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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영, 다른 선택은 없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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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영, 다른 선택은 없었나?

[기자의 눈] 그의 자진 사퇴가 아쉬운 까닭

전국언론노조 문화방송(MBC) 본부(본부장 이근행)이 방송문화진흥회(이사장 김우룡)이 선임한 신임 본부장들을 '낙하산 이사'로 규정하고 9일 출근저지투쟁을 벌였다. 윤혁 TV제작본부장은 MBC 조합원들 얼마 안되어 돌아가고, 황희만 보도본부장은 50분 가량 이근행 본부장과 언쟁을 벌이다 돌아갔다. 8일 엄기영 전 사장이 사퇴한 이후 MBC가 치러야할 '투쟁'의 시작이다.

8일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엄기영 전 사장은 이러한 '내일'을 내다보고 있었을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이 때문에 회사를 떠나면서 서울 여의도 MBC 사옥 1층 로비에 나와앉은 MBC 지·본부장 등 조합원들과 일일히 악수를 나누며 "미안하다"고 했을 것이다. MBC 조합원들의 싸움은 '낙하산 이사 출근저지 투쟁'에서 시작해 총파업, '낙하산 사장 선임 저지 및 출근 저지'로 이어지며 힘든 장기전이 될 것이고 엄 전 사장은 '사퇴'를 이야기할 때부터 이러한 미래를 경고받았을 것이다.

엄기영, '사퇴'로 방문진에 면죄부 줬다

아무리 방문진의 압박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엄기영 전 사장의 사퇴는 아무래도 아쉽다. 당장 그가 밝히지 않은 사실도 많다. 그는 사퇴를 표명하는 자리에서 방문진을 비판하면서 "도대체 무얼 하라는 건지"라고 토로했다. 그가 MBC 사장으로 버틸 수 없게끔 방문진의 압박과 경영 개입이 심각했다는 이야기다. 그는 방문진의 압박이 어떤 것이었는지, 8일 사퇴를 결심하기까지 겪었던 과정은 어떤 것이었는지, 혹시 진행 중인 감사원의 방문진 감사와 연관성은 없는지 등의 의문에 답해야 한다.

특히 '경영 공백' 상태에 있었던 두달 여간 김우룡 이사장은 엄 전 사장에게 어떤 회유와 압박을 했나. 지난해 12월 4일 자신과 MBC 임원 8명의 사표를 일괄 제출했을 때는 도대체 어떤 이야기가 오갔던 것인가. 이때의 사표 제출은 엄기영 전 사장으로서는 경영권을 자진 반납한 것이었고 지난 8일의 자진 사퇴로 이어졌다. 당시 구구한 해석처럼 경영진 전원이 재신임 되리라는 밀약, 혹은 확신이 있었던 것인가, 아니만 피치못할 압박이 있었나.

▲ 지난 8일 사퇴한 엄기영 MBC 전 사장. ⓒ연합뉴스

그는 이러한 저간의 사정을 밝히지 않고 '자진 사퇴'함으로써 방문진 이사회에게는 정치적 부담을 덜어줬고 공영방송을 사수해야 하는 쪽에는 명분을 덜어냈다. 내용상 방문진의 압박에 의한 사퇴지만 어쨌든 엄 전 사장은 스스로 임기가 보장된 사장직을 내놨다. 이로써 방문진은 엄 전 사장 사퇴의 책임에서 한발 물러나 있을 수 있었다. 엄 전 사장의 '사퇴' 의지를 알고 있으면서도 일방적으로 임원을 선임한 방문진 여당 측 이사들이 그의 사퇴에 '노 코멘트'로 일관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공영방송 수장으로서의 책임감은?

그래서 의문이 든다. 과연 엄기영 전 사장은 공영방송의 수장, MBC 사장직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그가 8일 사퇴 표명과 사원들과의 대화, 사내 인트라넷에 남긴 글에는 'MBC 선후배'에 관한 언급 외에 시청자, 혹은 국민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MBC에서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책임 경영의 원칙은 양보할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라는 표현이 나오나 대부분의 기조는 'MBC'와 '선후배'에 맞춰져 있다. 별도로 시청자들에게 드리는 글도 내지 않았다.

혹시 그는 공영방송 MBC의 수장으로서의 책임감이 부족했던 것은 아닌가. 그에게는 권한이 있었고 책임이 있었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영향력을 자랑하는 방송사의 사장이었다. 그에게 정말 다른 대응방법은 없었을까. 그는 때때로 청와대와 방문진의 압박에 "어처구니가 없다"며 맞섰고 취임 초기 '공영존'을 신설하는 등 공영성 강화에도 힘을 썼다. 방문진의 압박에도 '<PD수첩> 진상조사위원회' 설치와 같은 패착을 저지르지 않았고 방문진이 요구하는 낙하산 이사 선임에 끝내 거부했다. 이러한 노력이 '자진 사퇴'로 빛바랬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던 대한민국 최장수 앵커, 엄기영 앵커의 모습을 애정을 갖고 기억하고 있다. "MBC에서 받은 것이 많다"는 엄 사장은 어떤 언론인으로 기억되고 싶었던 것인가? 공영방송의 다른 한 축인 KBS가 '정권홍보 방송'이라는 비난을 들을 정도로 언론, 특히 방송의 독립성이 흔들리는 때다. 언론인으로서 이명박 정부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언론의 역할을 수호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의 맺음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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