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KBS)이 수입 쇠고기의 안전성을 일방적으로 홍보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하면서 농림수산식품부의 협찬을 받아 논란이 되고 있다.
<경향신문> 26일 보도에 따르면, KBS는 '수입 쇠고기의 철저한 검역 과정을 다뤄달라'는 농림수산식품부의 요청에 따라 지난해 12월 26일 <과학카페>를 통해 수입 쇠고기의 안전성과 맛을 홍보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PD수첩> 제작진에 징역 2~3년형을 구형한 지 5일 뒤다.
KBS, 정부 예산으로 수입 쇠고기 일방 홍보?
<과학카페>는 KBS 1TV에서 매주 토요일 오후 7시 10분부터 방송되는 프로그램. KBS는 이 프로그램에서 9분30초 분량으로 "식품의 과학-미국산 쇠고기 검역"라는 주제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다뤘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의 내용은 검역의 과학적 원리를 짚는 대신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일방적으로 홍보하는 것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철저한 검역 과정을 거친 안전한 쇠고기만 수입"이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마장동 농축산물시장에서 수입 쇠고기가 거래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이어 "신선도 검사, 절단 검사도 빼놓을 수 없다" "혼입된 이물질은 1밀리미터(㎜) 이상이면 검출 가능" 등의 설명과 함께 미국, 뉴질랜드, 호주, 멕시코 등 수출 국가별 자체 검역과정, 부산항 도착, 경기도 광주의 냉동창고 검역 과정,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의 정밀 검사과정을 차례로 보여준다.
또 수입육 레스토랑과 요리 전문가를 비추면서 "철저한 검역과 꼼꼼한 정밀 검사를 거쳐 믿고 먹을 수 있는 수입 쇠고기, 그 담백한 매력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라는 노골적인 광고성 내레이션으로 마무리됐다. 이런 내용을 놓고 '정부 예산으로 수입육 판매상이나 외국 육류협회에서 해야할 광고를 대신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미국산 쇠고기의 경우 광우병 위험 물질(SRM)로 분류됐던 뼈와 내장이 2008년부터 수입이 허용되고 있다거나, 미국과 합의한 수입 위생 조건에 따라 전수조사를 할 수 없다는 검역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
농식품부 KBS 외주 업체에 '수입 쇠고기 검역 과정 다뤄달라'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이 프로그램은 농식품부가 KBS 외주 제작 업체에 '수입 쇠고기의 철저한 검역 과정을 다뤄달라'고 먼저 요청해 제작됐다. 농식품부의 홍보 담당자는 <경향신문> 취재에서 "KBS 외주 프로덕션에 (정부가) 수입 쇠고기를 얼마나 철저히 검역하는지를 다뤄달라고 했다"고 인정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프로그램이 수입 쇠고기의 일방적인 홍보로 일관한 것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프로그램 내용은 제작진의 판단에 따른 것"이라며 "수입 쇠고기를 얼마나 철저히 검역하는지 보여달라고 했을 뿐인데 재미를 주려고 하다보니 실수가 빚어진 것 같다"고 해명했다.
외주 업체 대표는 "KBS나 농식품부로부터 사전에 '오더(주문)'가 있었던 것은 전혀 아니다"라며 "작가와 PD가 사안의 민감성을 미처 의식하지 못하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과정에서 빚어진 실수"라고 설명했다.
조용한 방통심의위…<PD수첩> 철퇴 내린 '공정성' 잣대 어디갔나
한편,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이진강)는 KBS의 이 프로그램에 방영된 지 한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PD수첩>이 2008년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을 다뤘을 당시 심의 착수 보름 만에 '공정성'과 '객관성'에 위배된 보도라며 시청자 사과라는 중징계를 내릴 당시와는 대조적인 모습이기 때문. <PD수첩>과 동일한 잣대를 적용한다면 KBS의 쇠고기 검역 프로그램 역시 징계 대상 아니냐는 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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