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지신(尾生之信)
미생(尾生)이 애인과 다리 아래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을 때, 중요한 것은 '다리 아래'라는 장소가 아니라 '만남' 그 자체였다.
확신하건대, 영리하고 총명하기로 정평이 난 유시민이라면 다리로 가는 길목의 물이 차올라 오르지 않은 곳에서 기다렸을 것이다.
유시민에 대하여 먼저 그 호칭을 어떻게 붙여야 할지 고민이 된다. 유 전 장관? 유 전 의원? 아니면 그냥 유시민 씨? 여러 가지로 생각해보았지만, 그러나 오늘은 긴급조치 9호의 박정희 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같은 시기에 유사한 경험을 거쳐 온 동년배로서 그냥 유시민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가 여러 측면에서 지니고 있는 탁월한 재능을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또한 민주화 진영에서 보면 그는 대단히 소중한 자산이다. 하지만 장기적인 역사적 시각에서 보자면, 유시민이 지니고 있는 현재의 정치적 자산 역시 지난 시기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해왔던 모든 이들의 희생과 헌신의 성과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겸허한 자세, 반성할 줄 아는 용기, 자기가 지금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공적(公的) 가치를 위하여 희생하고 헌신하는 모습을 통하여 정말 큰 그릇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자신을 능히 절제할 줄 아는 것을 강(强)하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을 이길 줄 아는 사람이 가장 강한 것이다.
反求諸己
얼마 전 국회 평직원으로 30년 가깝게 근무한 사람으로부터 서글픈 얘기를 들었다. 옛날과 달리 지금 국회의원 중 젊은 사람들이 2/3 정도 되고 또 그들 대부분 민주화를 외치던 사람들이라 국회가 정말 변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젊은 사람들도 기존의 나이든 국회의원과 똑같아졌다는 것이었다.
2010년 벽두, 여야를 막론하고 작금의 정치판은 분열과 혼돈 그 자체이다. 이는 민의(民意)의 대표체로서의 본래의 의미에서 벗어나 개인적 출세 및 집단적 권력욕의 수단으로 전락한 채 역으로 대중들에게 고통과 좌절을 안겨주고 있는 기존 정치의 붕괴 과정이다. 이 나라의 정치 시스템은 민중의 의지를 전혀 반영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최근 박진영이 정치권의 구애를 '거절'한 사실에서 드러나듯 정치에 대한 대중적 실망감이 극대화되고 있어 이제껏 이 땅의 모든 출세한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흡인력을 지니고 있던 국회의원이라는 '주가'는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는 중이고 조만간 폭락 조짐도 보인다.
난세에 영웅이 나오는 법이다. 정치인 유시민에 대한 현재의 '지지'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의 '이미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며, 그것이 사상누각으로 될지 아니면 문전옥답이 될 것인지는 지금부터 드러날 스스로의 힘과 '실천'에 달려 있다. 국민참여당의 실권자나 친노 세력의 적통 계승자라는 지위에 스스로 만족한다면 구태여 그 어려운 자기반성이나 자기 혁신을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만약 지금 고심참담,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민주개혁 세력과 대중들을 한데 끌어안아 보듬고 이 시대의 '패자(覇者)'로서의 포부를 지니고 있다면, 근본적인 자기반성과 성찰이 그 선결 과제로서 필수적 요소가 된다. 그럴 때만이 비로소 그러한 포부가 이뤄질 수 있는 풍부한 계기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참여당의 창당이 "분열(分裂)이 아니냐?"는 질문에 "분열이 아니라 '분립(分立)'이다."라고 답변했던 것이나 참여정부의 성격을 '사회자유주의'라고 칭하는 방식의 자기 방어 논리만으로는 지금의 모습 이상으로 더 크게 발전할 수 없다. 유시민이 "옳은 말을 싸가지 없게 하는 사람"이라는 누군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던 사람이 대단히 많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반구제기(反求諸己), 어떤 일이 잘못 되었을 때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아야 할 터이다. 군자는 허물을 자신에게서 구하고, 소인은 허물을 남에게서 구한다. 남과 상황을 핑계대지 않고 먼저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참여정부의 적자를 자임하면서 현재 차기 대권주자 후보군에서 지지율 2위에 랭크되어 있는 유시민은 참여정부 당시의 이라크 파병,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시도, 양극화의 심화, 아파트원가 공개, FTA 문제를 비롯하여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의 의료민영화 논란 등의 문제에 대하여 솔직한 고백이 필요하다.
사실 민주 세력의 도덕성은 이 땅의 대중들이 기대고 싶어 했던 가장 큰 덕목이었다. "한나라당은 차떼기로 부정을 했는데 우리는 겨우 얼마밖에 안 된다"라거나, "MB의 반민주 반민중 정책에 비하면 우리의 정책이 얼마나 좋았는가!"는 등 항상 수구 세력과 비교하고 그로부터 자신의 상대적 우위와 정당성을 주장하려는 자체가 이미 자기 존립의 근거를 근저로부터 붕괴시키는 것이다. 부정부패의 문제에서 비록 그 '양'과 '상황'에 있어서는 꽤나 억울한 면이 존재할지라도, 대중들의 간절한 기대를 무너뜨렸다는 것 그 자체로서 '질적으로' 이미 수구 세력의 부정부패보다 훨씬 큰 부정부패라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한다.
유시민과 서울역 회군
포털사이트 Daum의 아고라를 보면, 본인이 직접 한 주장은 아니지만 유시민을 80년 서울역 학생시위 당시 '투쟁파'의 지도자로 기술하고 있다. 그러면서 유시민의 '포효하는' 사진이 '투항파'의 상징으로서의 심재철 사진과 함께 크게 실려 있다. 이와 같은 글이 한두 개가 아니라 상당히 많아 온라인에서는 "80년 당시 유시민이 투쟁파의 지도자였다"는 주장이 '역사적 진실'로서 널리 퍼져 있다.
이는 명백한 역사 왜곡이다. 유시민은 당시 심재철과 함께 온건파로서 서울역 회군을 주장했던 학생회 소속이었다. 당시 강경파이자 투쟁파는 이해찬이나 김부겸을 비롯한 '복학생파'였다. 유시민을 투쟁파의 지도자로 묘사하는 것은 역사의 왜곡일 뿐 아니라 당시 서울역 시위에 참여하였고 투쟁을 실천했던 수많은 동지들과 선배들을 모독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본인이 적당한 시기에 직접 해명을 해야 한다고 본다.
비록 작은 일이지만 작은 일일수록 엄격한 자기 잣대가 필요하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점이야말로 보수 세력과 차별화된 덕목이다.
지나간 과거의 '유지' 혹은 '유산'에 기대 자기 자리만 지키면서 토끼를 기다리는 수주대토(守株待兎)의 길이 아니라 더 큰 인물로 괄목상대(刮目相對)하는 내일을 보고 싶다.
'총명'이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첨언할 게 있다.
"총명하다"는 것은 그저 단순히 영리하다거나 머리가 좋다는 말이 아니다.
"밖으로 남이 하는 비판적인 말을 잘 들을 수 있는 것을 귀가 밝다고 하여" '총(聰)'이라 하고, "안으로 자기 자신을 잘 성찰할 수 있는 것을 눈이 밝다고 하여" '명(明)'이라 한다.
부디 남의 비판도 잘 받아들이고 자신을 잘 성찰하여 진정으로 총명한 유시민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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