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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발 악순환, 오바마 정부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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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발 악순환, 오바마 정부에 달렸다

[한반도 브리핑] 한국의 키신저나 후쿠야마는 진정 없는가?

최근 북한의 태도를 둘러싸고 말들이 많다. 군부와 대남부서의 혼선이나 갈등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있다. 코너에 몰려 오락가락한다는 해석도 있다. 과연 그럴까? 이러한 해석은 프레임의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북한이 남북관계를 결정한다는 프레임,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남북관계는 상호작용의 산물이다. 북한의 대남정책은 남한의 대북정책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학술용어로 거울영상효과라고 한다. 혹은 더욱 어려운 표현으로 인터페이스 동학(Interface Dynamics)이라고도 부른다.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처럼, 상대의 태도는 나의 행동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물론 그 반대의 설명도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2009년 8월 이후 북한은 대화를 하자는 것이고, 남한은 대화에 소극적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남한이 대북정책을 전환하면 남북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 남북관계에서 남한 변수가 갖는 영향력이 더 클 수 있다. 그래야 현재의 정세가 제대로 보인다.

한반도 정세에서 '한국발 악순환'이 현실

이런 시각으로 국방위원회 대변인 성명을 해석해 보자. 보복성전과 남한배제를 주장하는 이 성명에는 전제가 있다. 급변사태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기 때문에 '보복성전'을 한다는 것이고, 이러한 행위를 사죄하지 않으면 '배제'하겠다는 입장이다. 그 말은 앞으로의 남북관계가 남한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남한의 선택은 세 가지다.

첫째, 공존정책으로의 전환이다. 최소한 공개적으로 흡수통일을 거론하지 않고, 화해협력을 지향하며, '접촉을 통한 변화' 정책을 선택한다면, 정세는 달라질 것이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이 활성화될 것이고, 민간 차원의 경제협력도 활성화될 것이다. 중소기업의 미래를 향한 출구도 마련될 것이며, 새로운 건설 수요도 만들어져 한국 경제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나아가 한반도의 미래를 고민하면서 평화체제에 대한 비전을 정립한다면, 북핵문제도 대타협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남북관계 뿐 만 아니라, 6자회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남북미 삼각관계의 선순환에서 중심국가가 되는 것이다.

둘째, 비핵화에 대한 강경입장과 민간협력에 대한 온건입장을 병행하는 방법이 있다. 당국 대화는 비핵화의 과정을 보고 결정하지만, 민간차원의 과도한 경색을 풀어주는 선택이다.

최소한의 상황 관리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금강산 관광은 현재 상황에서 남측 당국이 결정하면, 바로 풀린다. 북한의 사과와 재발방지, 그리고 강화된 관광객의 신변안전도 얻어 낼 수 있다. 북측은 이미 남측의 요구사항을 들어주겠다는 입장이다. 민간차원의 인도적 협력이나 사회문화 교류 역시 마찬가지다. 남측이 풀면, 북측은 당국대화가 없어도 민간교류는 계속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분리전략은 한계가 있다. 한국이 포괄적 접근이 아니라 핵문제 우선 해결론을 고집하면, 6자회담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기 어렵다. 핵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민간교류도 영향을 받는다. 분리 전략은 일시적이다. 지속가능한 방법이 아니다.

▲ 지난해 남북적십자 회담이 열린 금강산 주변의 모습. 당국 대화는 비핵화 과정을 보고 결정한다는 입장인 현 정부 내에서도, 민간차원이나 이산가족·경제협력 관련 남북교류는 이어져 왔다. 그러나 '분리전략'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뉴시스


셋째, 지금처럼 흡수전략을 계속하는 전략이다. 당연히 남북관계가 어렵다. 더 중요한 것은 핵문제 해결도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북핵문제의 외교적 해결이란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노골적으로 흡수하겠다고 선언한다면, 그것은 북한의 핵보유를 정당화시키는 명분을 제공할 뿐이다.

평화체제에 대한 입장도 마찬가지다. 2005년 9.19 공동성명이 여전히 북핵 해결의 이정표라면,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위한 별도포럼'을 미룰 이유가 없다. 북핵 폐기의 환경 조성에서 평화체제는 관계 정상화, 에너지 경제지원보다 중요하다.

여기서 한국의 역할은 특별히 중요하다. 한국은 한반도에서 군사적 신뢰구축의 중요한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이 문제에 소극적이라면, 미국 자체적으로 북한을 설득할 수 있는 동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불행하게도 세 가지 시나리오 중 현실은 세 번째다. 흡수전략을 유지해서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그것이 미국의 협상력을 떨어뜨리는 '한국발 악순환'의 현실이다.

주목되는 미국과 중국의 선택

한국발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다. 국내적으로 이념적 프레임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불행한 것은 부시 행정부 때 네오콘을 비판하고, 견제했던 전통적 보수가 한국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에는 키신저 같은 경험 많은 외교관도 없고, 후쿠야마 같은 논리적인 보수학자도 없는가? 안타까울 뿐이다. 7.4 공동성명 세력이나 1990년대 남북기본합의서 세력도 남북관계가 이 정도면 충분히 점잖게 합리적으로 보수담론으로도 비판할 법 한데 그런 목소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애석할 뿐이다.

한국발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책임은 결국 오바마 행정부에 달려 있다. 지금처럼 우선순위에 밀려, 부시행정부 보다 못한 소극적 자세를 유지한다면, 북핵문제의 전망은 비관적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포괄적 접근'은 어디로 갔는가? 포괄적 접근은 기본적으로 병행 해결론이다. 북핵 폐기와 더불어 상응조치로 관계 정상화, 에너지 경제지원, 그리고 한반도 평화체제문제를 동시 병행적으로 이행하는 구도이다. 그것이 9.19 공동성명의 핵심 원칙이기도 하다.

한국 정부처럼 북한이 선(先) 제제해제, 선 평화협정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6자 회담이 열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오판이다. 과연 그런가? 최근 북한의 외무성 성명을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것은 비핵화 우선론에 대한 북한식 대응논리이고, 협상을 앞두고 협상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전술적 과장이다. 과거 6자회담이 표류하고, 교착되고, 위기에 빠졌을 때를 떠 올려 보자. 북한이 제재의 모자를 쓰고 6자회담장에 나갈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어디 한 두 번인가?

그러나 접촉을 통해서, 대화를 통해서 회담은 열렸고, 밀고 당기는 과정을 통해 진전을 이루었다. 포괄적 접근, 즉 병행해결론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있다면, 북한을 설득할 수 있다. 협상은 주고 받는 것이다. 북핵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것이다.

점차적으로 북핵 해결에 대한 중국식 해법과 한국식 해법의 차이가 드러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가 어떤 입장을 택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중국식 해법은 접근을 통한 변화다. 중국이 한국, 일본과 더불어, 선 제재해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구체적인 내용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중국은 유엔안보리 결의가 대량살상무기나 군수품 거래에 해당하는 것이지, 일상적인 무역에 적용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지방정부를 넘어서, 이제는 중국의 중앙정부가 움직이고 있다. 북중 합의에 따라, 경제협력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고, 동북경제권 구상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북한의 입장에서도 중국과의 협력은 매우 중요하다. 인민생활 향상이라는 2010년의 국가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공급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북중 관계가 북핵 상황의 악화를 방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핵실험과 같은 고강도 전략으로 전환하는 데 부담을 가질 것이다. 북중 관계의 차이가 북한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불행하게도 현재와 같은 한미공조가 지속되면, 북핵 국면은 교착 혹은 표류할 수 있다. 북핵문제 해결과정에서 미중 협조관계가 매우 중요한 변수가 되었다. 다만 최근 미중관계가 미국의 대만에 대한 패트리어트 미사일 판매, 달라이 라마 접견 예정, 그리고 미국 국내정치에 따른 무역 분쟁의 가능성으로 불안해지고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물론 북핵문제 해결과정에서 중국의 역할이 확대되었기 때문에, 이 분야에서 양국의 협력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조만간 이루어질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중국의 중재자적 역할은 다시 수면위로 떠오를 것이다.

불안한 교착국면 이후?

이 시점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바로 '시간'이다. 남북관계에서 악화의 책임을 서로에게 전가하는 악순환의 과정을 영원히 되풀이 할 수 없다. 6자회담 재개를 둘러싸고, 선비핵화냐, 선평화체제냐? 라며 떠넘기는 국면도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북한은 초조하다.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과 후계체제, 그리고 2012년이라는 목표시점이 그들의 초조감의 배경이다. 강성과 온건의 흔들리는 진폭이 빈번해 지고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 15일 강경한 내용의 성명을 발표한 북한은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인민군 육해공군이 참여한 합동훈련을 참관했다며 <조선중앙TV>를 통해 사진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일부 보수적인 사람들은 초조한 북한이 결국 굴복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한국발 악순환은 결국 미국이 북핵문제 해결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순간, 달라질 수 있다. 과거 6자회담에서 일본처럼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는 처지를 스스로 선택할 필요가 있을까? 협상국면이 조성되면 한국의 입장이 곤란해 질 수 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6자회담도 마찬가지다. 신뢰구축 없이, 평화체제 없이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 교착국면이 아무런 성과 없이 지속되면 결국 북한은 핵보유의 길로 다시 돌아서 버릴 것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현재 상황이 북핵 동결 국면이 아니라는 점이다. 시간이 갈수록 북한의 핵능력은 증가하고 있다. 중국으로 통하는 문이 열려 있어, 국제사회의 제재도 실질적인 효과가 없다. 시간이 흐른다고, 유리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최소한 협상을 통해서 북핵문제를 해결할 생각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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