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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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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한윤수의 '오랑캐꽃']<180>



제주시 애월읍의 공장에서 일했던 인도네시아 인이 찾아왔다.
역사상 가장 먼 곳에서 찾아온 노동자로 기록될 것 같다.
그는 1년 만기 직전에 퇴사를 당해서, 불과 닷새 차이로 퇴직금을 못 받은 경우였다. 미치지!

진정을 하려고 보니 제주에는 노동청이 없다. 다만 광주지방노동청의 한 부서인 제주근로감독과가 제주시에 있다. 그쪽으로 진정서를 보냈다.

제주에서 출석요구서가 왔다. 하지만 제주까지 간다면 비용과 시간이 장난이 아니다. 비행기값이 얼만데!
감독관과 통화를 시도했다. 다행히도 담당 감독관이 친절했다.
"오실 것 없이 그냥 서면으로 진술하세요."
너무나 황송해서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올라갔다.
"그래도 될까요?"
"그럼요. 먼저 사업주부터 조사한 후에 연락드리죠."
"하이고, 이거 고맙습니다."

하지만 며칠 후 걸려온 감독관의 전화는 황당했다.
"사업주의 주장이 맞아요. 근로자가 자진해서 퇴직했네요."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왔다.
"아니, 닷새만 있으면 퇴직금 받는데, 스스로 나가요?"
감독관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나갈 수도 있죠."
"무슨 소리 하십니까? 머리에 총 맞지 않은 이상, 왜 퇴직금을 포기합니까?"
"그럴 수도 있잖아요!"
"정황을 보십쇼. 그날도 노동자 스스로 사무실에 간 게 아니라 사장님이 불러서 갔던 겁니다. 사장님이 연장할 거냐고 물어서 연장 안 한다고 했더니 짜른 거 아닙니까?"
"........"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런 식으로 사업주 편을 들면, 국민권익위에 올리든지 끝까지 문제 삼겠습니다."
감독관이 반발했다.
"인권단체는 그렇게 겁 줘도 되는 겁니까?"
왈가왈부하다가,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고 객관적인 조사를 요구했다.
"차라리 대질 조사를 해주세요."
"아니, 제주도까지 오실래요?"
항공료 비싼데 설마 오겠냐는 것처럼 들린다.
오기가 나서 대꾸했다.
"가죠. 못 갈 줄 아십니까? 대질 날짜 정해주세요."

졸지에 제주도까지 가게 생겼다.
덕분에 인터넷에서 싼 항공권을 검색하는 것이 내 일과처럼 되었다.



대질 날짜가 정해졌다.
가장 싼 왕복 항공권을 예약했다.
1인당 약 15만원이다. 나와 노동자, 2인 비행기값만 30만원이다. 해고수당 90만원을 받기 위해서 30여만 원을 쓰게 생겼다. 가긴 가야 하지만 참으로 비합리적이다.
아니나 다를까 비용 문제가 불거졌다. 내 항공료는 내가 부담하지만 노동자의 항공료까지 부담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제주까지 비행기 타고 가야 한다고 하자 노동자가 난색을 표한 것이다.
"나는 못 가요."
"왜?"
"지금 공장 일 바빠서 못 가요. 비행기값도 없고."
눈물을 머금고 제주행을 접었다.
본인이 못 간다는데 어쩌겠는가?
그는 해고수당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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